〈 28화 〉군대 못 가는 몸으로 만들어주지!
내가 생각하는 순정은, 콘돔과 별다를 게 없었다. 쓸 때는 세상 모든 걸 가진 것처럼 좋아도, 막상 싸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변기에 들어가거나 길바닥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긴 한데, 버려지는 건 항상 똑같았다.
그건 지헌이도 마찬가지였다. 7년 동안 좋아하는 여자애, 그것도 그걸 알고 있는 그녀가 나랑 키스하는 걸 목격했다.
아마 그 7년 동안은 행복했겠지. 눈만 마주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만 스쳐도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했겠지. 근데 그 결과가 뭔데.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나랑 키스하는 꼴이 됐잖아.
운전하면서 그런 병신 옆을 지나갔을 때 소리 내서 웃지 않으려 노력했다.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랑 키스하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는 건 그의 찌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처럼 잘생기고 돈이 많게 태어났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유리가 얼마나 멍청한 년인지 깨닫고, 금방 다른 년이랑 만나서 행복했겠지. 저게 다 평범하게 태어나서 생긴 일이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지헌은 병신 찌질이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소희 선배와 만나는 건 전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껏 많은 여자를 봐왔지만, 선배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정신 나간 행동이 아니라 그 외모 때문이었다. 백금으로 만든 것 같은 은발에,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타입의 미녀였다. 난 그녀가 내 밑에서 신음소릴 내는 걸 보고 싶었다.
처음엔 오타쿠 같은 말투와 허름한 추리닝을 보고 금방 꼬실 수 있을 줄 알았다. 오타쿠 여자들은 나 같은 미남에 대한 내성이 없어서, 다가가기만 해도 얼굴을 붉혔다. 예쁜 애들은 드물었지만, 개중엔 만난 당일 모텔에 간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선배가 바라는 건 오직 지헌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하나 못 지키는 지헌이만 옆에 두고,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짜증나는 건 날 봐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찌질한 지헌을 선택한 게 짜증났다. 내가 그보다 못한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선배랑 어울리는 건 나다, 그런 생각에 미치는 바람에 일이 꼬여버렸다.
그 새끼들이 기사를 올리고 모든 사람이 내가 했던 걸 알아채게 됐다. 여자 쪽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됐는데, 가족이 문제였다. 누나와 형들은 연락을 끊어 버렸고, 부모님은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외국에 바람 좀 쐬러 가라고 했다.
나는 이게 날 버리기 위한 첫 단계라는 걸 눈치챘다. 나도 귀찮아진 년을 이런 식으로 버렸으니까.
유학 간 직후엔 돈을 넉넉히 주다가, 시간이 지나면 금액이 줄고 아예 끊어버리겠지. 할머니도 지원을 아예 안 한다고 했으니, 빈털터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게 다 그 새끼들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빌고 부탁했어도 들어주지 않았고, 날 강아지처럼 놀리며 조롱했다. 그런 굴욕을 준 놈들을, 나한테 한 방 먹였다는 착각 속에 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한국을 뜨려면 시간이 남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엎드린 채 깨어났다. 우둘투둘한 바닥에 뺨이 식어가는 와중에도, 용사일 때 생긴 습관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를 확인했다.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씩 움직이는 걸 보니,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떨어져 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움직여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허리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척추를 따라 달군 쇠막대를 이식한 것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 통증 때문에 정신이 맑아지자, 내가 이세계로 가지 않은 걸 눈치챘다. 중세 판타지인 그곳에 검은 아스팔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플 거였으면 차라리 이세계 가는 게 나았다. 더럽게 아프네, 진짜.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아픈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나는 와중에 차가운 액체가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손을 들어 닦고,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비춰봤다. 어두운 밤인데도 그게 검붉은 피인 걸 알아챘다.
끈적이는 피를 바지에 닦으면서 오늘 병원 가야 했다는 걸 떠올렸다. 어차피 입원하는 김에 실도 뺄 수 있으니, 어쩌면 운이 좋은 걸 수도 있었다.
뻐근한 허리에 오른손을 짚으며, 눈만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자취방으로 가는 익숙한 골목길이 보였고, 내 뒤엔 날 친 거로 보이는 승용차가 있었다. 날 친 새끼 면상을 보고 싶었지만 앞 유리가 깨져 있어서 실루엣만 대충 보일 뿐이었다.
가급적 허리를 움직이지 않게 노력하며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주위가 어두웠고, 유리가 검게 태닝 돼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똑똑
왼손으로 나오라고 유리를 노크했다.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창문을 내리지도 않았다.
“저기요!”
똑똑!
조금 더 세게 쳐봤다.
사람을 쳐서 정신이 나갔겠지만, 난 지금 허리가 나간 상태였다. 날 이렇게 만든 놈 사정은 내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리지 않았고, 나는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소리 질렀다.
“아니, 저기요!”
다시 두드리려는 순간 차 내부에 불이 켜졌다. 스마트폰인지 손바닥만 한 작은 사각형 광원이 생기고, 그걸로 인해 운전자 얼굴이 보였다.
“!”
그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잘생긴 얼굴을 한 사람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날 차로 친 운전자는 바로 과대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날 친 게 그저 실수가 아님을 알아챘다. 애초에 좁은 골목길에서 그렇게 달려왔는데, 날 죽이려 한 게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온몸의 피가 분노로 끓어올랐다.
“이 미친 새끼가!”
그렇게 외치며 왼손을 휘둘렀다. 아픈 것도 잊은 채 힘껏 휘두른 주먹은 유리를 손쉽게 박살 냈다.
잘게 깨져서 떨어지는 유리 조각들을 무시하며, 운전석에 앉은 과대 멱살을 쥐었다. 그대로 팔을 당겨 그를 차 밖으로 끄집어내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아앙!
“시바아알!”
안에서 겁먹은 듯한 그의 욕설이 들려왔다. 하지만 난 움직이는 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오른손으로 유리 조각이 가득한 창틀을 잡았다. 차를 멈추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큰 파열음이 들렸다.
쾅!
뭔가에 부딪혔는지 차가 갑자기 정지했고, 그 관성에 의해 난 퉁겨지듯 앞쪽으로 날아갔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몸은 허공을 날다가 결국 아스팔트 바닥에 구르듯이 떨어졌다.
“커헉!”
이번엔 의식을 잃지 않았다. 대신 내장을 토해낼 것 같은 고통이 그 대가였다. 안 그래도 한 번 차에 치였는데, 이 충격까지 받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겨우 목만 움직여 차를 쳐다봤다.
차는 전봇대를 제대로 들이박고 보닛이 찌그러졌다. 망가진 차에서 운전석 문이 열리고 과대가 나왔다. 그도 차를 받은 충격 때문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 개새끼야! 왜 잡고, 지랄인데!”
내가 너무 아파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날 노려보는 그의 눈빛으로 제대로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데도 이 말만큼은 하고 싶었다.
“아니, 뭔, 개, 소리야……!”
“이 씨발아! 네가 잡아서 사고 난 거 아냐!”
과대가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난 그를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그는 찌그러진 차 보닛에 손을 짚으며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오려 했다. 그 와중에도 이해되지 않는 헛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너 때문에 이런 거잖아! 왜 항상 내 계획을 망치는 건데! 말하지 말라니까 기사 내고! 선배 자꾸 건들고! 멱살 잡아서 사고 나게 만들고!”
그 개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난 바닥에 누워서 고통으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도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야! 나 죽이려 하는데 가만히 있냐!”
“죽이려고 한 거 아니야! 개새끼야! 살짝만 치려고 했다고!”
“순 병신 아니야, 이거!”
“이 시발놈이! 끄응!”
그는 신음을 내며 내 앞에 도착했다. 그러더니 유리 조각이 박힌 내 손을 짓밟았다.
“아악!”
“다 너 때문이야! 다!”
“뭐라는 거야!”
“너!”
올라간 눈초리로 과대가 날 내려봤다. 손을 밟고 있던 발을 치우고, 이번엔 내 얼굴 위로 들어 올렸다. 우둘투둘한 신발 밑창 옆으로 쌍코피 흘리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다 너 때문이야……!”
얼굴이 짓밟힐지도 모르는 위기에, 뜬금없이 과대 얼굴이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쌍코피를 흘리는 데도 잘생겨 보이는 건 좀 많이 불공평했다.
“이 개새끼야!”
그가 소리치는 동시에 눈을 감아 충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겐가! 지금!”
마왕이 가진 특유의 말투가 들리고 나서, 뭔가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뻐억!
“아악!”
텅! 텅그렁! 푸슈우……!
그의 비명을 듣고 눈을 떴다. 과대는 내 얼굴에서 발을 치운 채 자기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내 머리 옆에 떨어진 걸 확인해 보니, 그 잘생긴 얼굴에 날아간 건 500미리 캔맥주였다. 캔은 여러 충격에 의해 터져서 내용물을 내뿜었다.
“이 개……!”
꽤나 아플 건데도 과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손가락 사이로 날 노려봤다. 다시 발을 들으려 할 때 반대편에서 빠르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긴 은발을 휘날리며 과대에게 몸을 던졌다.
“새끽!”
온몸을 던진 태클에 과대가 말하다 말고 뒤로 퉁겨져 날아갔다. 마왕은 그 반동으로 잠깐 허공에 뜨다가, 내려오며 내 다릴 밟았다.
“아악! 야!”
“미, 미안하네! 미안해! 일부러 한 건 아니라네!”
녹색 추리닝을 입은 마왕이 내 몸 위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그녀는 뒤에 엉덩방아를 찧고 못 일어나는 과대를 곁눈질로 살피더니, 다시 내게 물었다.
“괜찮은 겐가? 이게 무슨 일인가?”
“너 설마 잘 모르는데 쟤 때린 거냐?”
“누가 봐도 저놈이 잘못한 게 맞지 않은가. 그런데 일어날 수 있겠나?”
그녀가 물어보며 내 상체를 안아 일으켰다. 옷에 피가 묻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도와주려는 모습은 은발의 성녀와 다르지 않았다.
앉으며 찡그린 내 얼굴을 본 마왕은 조금 안심했는지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찡그리면 더 못생겨지네.”
“시끄러.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냐? 9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자네가 보고 싶어 좀 일찍 왔다네.”
“거짓말하지 말고.”
“같이 게임하려고 왔다네. 그런데 무슨 일인 겐가? 설마 납치당하기라도 한 겐가?”
그녀는 전봇대를 들이박고 찌그러진 차를 향해 턱짓했다. 그 질문에 난 차 옆에 쓰러진 과대를 곁눈질했다.
“저 새끼가 나 차로 쳤어.”
“뭣이?”
내 말을 들은 마왕이 눈에 힘을 주며 일어나려는 과대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부축한 날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악! 놓지마! 아파!”
“미안하네. 잠깐만 기다리게.”
“뭐?”
“괜찮네, 죽이진 않을 테니.”
이를 갈며 말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의 발걸음은 침착했다. 하지만 그런 마왕이 다가갈수록 바라보는 과대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서, 선배! 저 환자에요. 때리시면 안 돼요!”
“그럼 지헌은 환자가 아니었나? 자네보다 더 심하게 다친 것 같네만.”
“저 새끼는 그래도 싸요!”
“싸다고? 그렇다면 자네는 거의 공짜로군!”
“억!”
마왕은 말을 마치며 과대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닥에 구멍을 낼 듯할 기세로 그를 밟기 시작했다.
“서, 선배! 잠까 컥! 잠깐만요! 끄윽!”
“닥치게! 아예 군대 못 가는 몸으로 만들어주지!”
“어억! 컥! 살, 악! 살려주세요!”
“자네가 알아서 살아남게나!”
그렇게 외치면서 그녀는 공을 차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마왕이 휘두른 발이 향한 곳은, 과대의 다리 사이였다.
뻐억!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맞지 않은 나도 아플 정돈데, 그는 입을 벌리며 비명을 지르려 했다.
“어어억......!”
얼마나 아픈지 차마 비명을 끝내지도 못했다. 그저 입만 최대한 벌린 채 소리없는 아우성만 지르는 게 전부였다.
그 사이에도 폭력은 계속됐고, 과대는 같은 곳을 맞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려 맞는 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발길질은 강해져만 갔다.
무차별하게 폭행하는 마왕의 모습을 보면서, 이세계에서 용사를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용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만날 수 없었을 거니까. 현대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유리를 짝사랑하고 과대와 연애하는 걸 마음 아프게 지켜봤겠지.
마왕은 내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대가로 신이 주신 선물일지도 몰랐다.
“이! 시발! 잡! 것이!”
……그런데 너무 많이 때리는데?
과대는 아까와 다르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발길질에 맞아 흔들리는 게 그의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어어, 야! 잠깐만!”
나는 아픈 몸을 겨우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얘 죽어!”
겨드랑이 아래로 두 팔을 넣어 마왕을 말렸다. 그러자 발을 멈추면서도 헐떡이는 말투로 외쳤다.
“괜찮지 않은가! 자넬 죽이려고 했는데! 타인을 죽이려 한 거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만 하네!”
“아니, 소희야!”
나는 팔을 내려 그녀를 풀었다. 대신 유리 조각이 박힌 손으로 가냘파 보이는 어깨를 잡아 날 보게 만들었다. 마왕은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소중한 것을 빼앗길 뻔한 야수의 표정이었다.
그런 압박 속에서도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외쳤다.
“소희야! 정신 차려!”
내 외침에 마왕이 점점 이성을 찾았다. 부릅뜨던 눈이 풀어지면서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 알겠네. 짐이 너무 흥분했군. 미안하게 됐네.”
그 말을 듣고 난 안심하고 그녀 어깨너머로 과대를 쳐다봤다. 그는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채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도 죽진 않았는지, 피와 콧물이 섞인 방울이 콧구멍에서 커졌다가 작아지길 반복했다.
안 죽어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마왕이 살인범이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세계라면 몰라도 현대에선 무조건 잡혀 들어가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왕 어깨에서 손을 치웠다. 그러자 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만졌던 부분이 더러워진 걸 발견했다.
“소희야, 미안. 나 때문에 옷이, 좀.”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기 어깨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네. 어차피 자네 부축하면서 묻지 않았는가. 게다가 좋은 것도 들었고. 걱정 말게.”
“좋은 거라니?”
“자네 그거 아는가?”
“뭐가.”
마왕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이 처음일세. 짐을 이름으로 불러준 것이.”
나는 소희의 푸른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