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하악! 하악! 상악! (22/72)


  • 〈 22화 〉하악! 하악! 상악!

     상처를 보시는 의사 선생님이 의문을 듬뿍 담아서 말씀하셨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요?”

    “아니 이게, 어라?”

    “왜 그러시는데요.”


    “미안하지만 잠깐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어봤으면서 손은 이미 폰을 꺼내고 있었다.


    용사였을 때, 이런 생채기는 간단한 마법으로도 완치가 가능했다. 치료마법이 안 듣는 저주가 걸린 칼날에 맞고 난 상처를 봐도, 이렇게 피고름이나 썩은 냄새가 안 나는 건 잘 낫고 있는 증거였다.


    그런데 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세히  팔을 보자,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내 동의도 없이 사진을 찍던 의사가 폰을 흰 가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환자분, 혹시……”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진지한 표정보고, 마른침이 저절로 삼켰다.


    “혹시, 슈퍼히어로에요?”


    하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나는 순간 사실 용사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그걸 겨우 참아내고, 대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아니, 이게요, 환자분.”


    그는 다시  팔을 잡아 자세히 살피고는, 다른 손으로 상처를 가리켰다.

    “지금 상처가 너무 빨리 낫고 있어요. 원래는 2주, 짧아도 일주일은 넘게 걸리거든요? 근데 지금 환자분은 지금 실밥을 빼도 괜찮아 보여요.”

    상처가 너무 빨리 낫는다는 말에 마왕을 쳐다봤다. 일이나 강의 때문에   없는 부모님과 유리 대신에 온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동시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이지 말고 무슨 일인지 알려 달라고.


    마왕을 보자, 의사 선생님이 다시 날 불렀다.


    “환자분.”

    “아, 네?”

    “실밥 지금 빼실래요? 아니면 며칠 뒤에 빼실래요.”

    “지금 뽑아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런데, 이런 경우는   말고는 본 적이 없어서요.”

    그가 ‘이 분’을 말할  마왕을 쳐다봤다.


    “꼭 하시려면 하셔도 되는데, 상처 난 데가 워낙 움직임이 많은 부위라서요. 웬만하면 안 뽑으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어, 그러면 나중에 할게요.”

    “그래요?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수요일에 오실래요? 원래 그 날이 소독하는 날이기도 하니까, 그때 봅시다.”


    “아 네. 그렇게 할게요.”

    “아알겠습니다아.”

    그는 말을 늘리면서 앉아 있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같이 온 간호사와 함께 의사 가운을 휘날리며 병실을 나갔다.


    둘이 병실을 나가자 마자  마왕에게 물었다.


    “뭐냐, 이거.”


    “당연하지 않은가, 영혼이 바뀌었으니 몸도 바뀌는 게지.”

    저번에 나일론 밧줄을 끊었을 때와 같은 말이었다.


    몸이 바뀌었다는 말에 두 손을 들어서 살폈다. 이세계에 가기 전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팔뚝이었다. 하지만 이 손으로 나일론 밧줄을 끊고 칼  사람을 제압했다. 점점 인간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 두려움을 알았는지, 마왕이 날 안심시켰다.

    “걱정말게. 몸이 바뀌어도 자네는 여전히 자네라네.”

    “뭐?”


    “그 힘은 자네가 노력하여 얻은 것일세. 피를 토하며 훈련에 임했으며, 자가치유력을 높이기 위해 몸에 많은 마법을 걸었겠지. 하지만 자네 본질이 바뀌진 않았다네.”

    “내 본질이 뭔데.”


    “찌질함 아니겠나.”

    “야!”


    “깔깔깔, 농담일세, 농담. 사람의 본질을 어찌 한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정 두려우면 사춘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걸……”

    “걱정말라고 하지 않았나. 몸이 바뀌어도 안에 있는 게 바뀌지 않았다면 자네는 여전히 자네일세. 그리고 이제 슬슬 갈아입게. 퇴원해야지.”


    그녀 말이 맞았다. 아무리 힘든 훈련을 했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 마왕 말대로 찌질함이 곁든.


    이 생각을 하니 어느 정도 기운이 났다. 퇴원절차를 밟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받게.”

    마왕이 건넨 옷을 받았다. 영화관에서 입었던 옷은 피가 묻어서 입을  없었고, 이 건 그녀가  자취방에서 가져온 거였다.

    이제 슬슬 갈아 입으려는데, 마왕이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런가?”


    “왜 그런가,  아니라.  안 나가냐.”

    “그것이 문제였나. 그럼 이렇게 함세.”


    나가기는커녕, 마왕은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계속 여기 있는 낫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찜찜했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나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빳빳하면서도 거친 환자복을 벗고 마왕이 가져온 옷을 집었다. 그런 도중 고민이 하나 생겼다.

    팬티도 갈아입어야 하나……

    그녀가 가져온 옷가지 중엔 팬티도 있었다. 만약 여기서 안 갈아입으면, 마왕이 새 팬티를 보며 더러운 놈이라 생각할 거였다. 그렇다고 갈아입으면, 내가 하루종일 입었던 속옷을 그녀에게 보여주는 거였다.

    “흠……”

    “뭐하는 겐가, 안 갈아입고.”


    “어엇! 시발 깜짝아!”


    내가 욕하면서 놀란 이유는 갑자기 마왕 목소리가 들린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화장실 문 사이로 얼굴을 반만 내밀고 있어서 더 깜짝 놀랐다.


    마치 스토커나 귀신처럼 훔쳐보는 모습에 놀란 나는, 뛰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외쳤다.


    “아  보지 마라! 좀!”


    “에이, 괜찮지 않나.”


    “너 자꾸 그러면 신고한다!”

    “그럼 더더욱 봐야 하지 않겠나!”


    “어어어!”


    덜컹 덜컹!


    문이 열리려 하자, 난 옷을 들어서 주요 부위에만 가린  화장실로 뛰어갔다. 문 손잡이를 잡아서 그녀가 못 나오도록 노력했다.


    “문을 왜 열어!”


    “감옥 들어가기 전 보는 마지막 풍경 아닌가!”

    “미쳤냐!”


    “하악! 하악! 상악! 오늘 팬티는 무슨 색인가?”


    “알아서 뭐하게!”

    “검은색인 걸 알고 있지만 말일세!”


    “알면서 왜 물어봐!”

    한손으로 옷을 입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몰랐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열리려는 문을 잡고 있으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난 전직 용사로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마왕이 힘을 약하게 줘서 다행이었다. 그녀도 진심으로 문을 열려 하지 않고, 일부러 문을 흔들어 소리만 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내 상처가 터지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아니었다.


    “왜 자꾸 훔쳐보는 거냐. 자취방에서도 그러고, 여기서도 그러고.”

    그렇게 말하면서 대충 입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마왕은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어떤가. 재밌지 않았나.”


    “다음에 너 갈아입을 때 보자. 그때도 재미있나.”

    “짐은 괜찮다네.”


    “뭐?”

    “자네가 그렇게 감빵에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두어야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아서 다행일세.”

    “너 이씨, 여자라고 그냥!”

    “자네는 짐이 여자로 보이는가?”

    마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폈다. 처음 자신이 마왕이라고 불렀을 때와 같은 녹색 추리닝을 입고, 어깨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은색 머리칼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난 백인 치고는 조신한 가슴을 힐끔 보고는, 마왕의 어깨를 약하게 때렸다.


    “여자 아니면 뭐냐.”


    내 말을 듣고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짐이 여자 아니면 뭐겠나!”

    “응 그래, 여자지, 여자야.”

    기뻐하는 그녀를 두고, 갈아입지 못한 팬티를 빨래더미 속에 숨기며 가방에 넣었다.

    내가 입원할 때 마왕이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옷을 갖다 주거나,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거나. 게다가 그녀 아버지께서 치료비와 입원비까지 대주었으니, 어쩌면 난 마왕 앞에서 발가벗고 스트립쇼를 춰야 될지도 몰랐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내 가방에서 빨래더미와 게임기 부품들을 넣어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됐다, 이제 가자.”

    “이리 주게, 짐이 들지.”

    그녀가 내민 손을 치우며 난 가방을 맸다.

    “내가 들게.”

    “자넨 환자이지 않나. 짐이 들겠네.”

    “괜찮다고. 남잔데  정도는 들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병실 문을 열었다. 갑자기 마왕이 그런  등을 밀쳤다.

    “하! 그래, 자넨 남자였지.”


    생각보다 힘이 약해서, 넘어지지 않고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가며 마왕에게 물었다.

    “뭐야, 그럼 내가 여잔 줄 알았냐.”

    “최근까진 여잔 줄 알았다네.”

    “뭐?”


    “괜찮지 않나. 지금은 제대로 남자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오묘했다. 확실히 난 남잔데, 마왕이  남자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까 내가 여자라고 말했을 때 그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고, 1층에 도착할 때까지 마왕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말의 내용은 별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오늘 무슨 꿈을 꿨는지, 게임 가챠에서 어떤 캐릭터가 나왔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마치 신나서 아무 말이나 하는 아이 같은 그녀를 데리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 앉은 간호사는 돈은 낼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처방전을 내밀었다.

    “이거 가지고 약 타시면 되요. 약국은 병원 바로 앞에 있구요.”


    “네, 감사합니다.”

    “네에, 근데 소희야.”


    이 간호사는 병실에 자주 들어왔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까 의사도 그렇고, 이 병원에선 마왕을 모르는 사람이 드문 모양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마왕이 평소처럼 당당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음, 왜 그런가.”


    “아직도  버릇 못 버렸니?”

    “이 자는 짐이 다치게  게 아닐세.”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친을 다치게 만들어?”

    “짐이 아니라고 했잖나. 그런데, 이 자가 짐의 남친이라고?”


    “아니야?”

    “훗, 아니네만.”

    마왕은 코웃음치며 내가 자기 남친인  부정했다. 그걸 보면서 약간 기분이 다운됐지만, 그녀는 난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웃어댔다.

    “후훗, 이 놈이 남친이라니. 훗, 후훗.”

    자꾸 피식 거리는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았다. 그런 재밌는 모습에 나도 웃으면서 부정했다.

    “저기요. 얘랑 저랑 안 사, 아!”


    갑자기 마왕이  발뒤꿈치를 찼다. 아프다기 보다는 놀라서 마왕을 쳐다봤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닐세. 이제 그만 가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병원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 장면을 어이없어서 쳐다보는데 간호사가 말하는 게 들렸다.

    “쟤는 못 사귈  알았는데. 아이고야~.”


    탄식에 가까운 푸념을 뒤로 하고 마왕을 쫓아갔다. 그녀는  지프차에 태울 때까지 내민 입술을 유지했다.















    마왕이 부끄럼타는 버전



    “네에, 근데 소희야.”

    이 간호사는 병실에 자주 들어왔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까 의사도 그렇고, 이 병원에선 마왕을 모르는 사람이 드문 모양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마왕이 평소처럼 당당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음, 왜 그런가.”

    “아직도  버릇  버렸니?”

    “뭐, 뭣,  자가 듣지 않은가! 자넨 좀 저리 가게!”

    마왕이 당황한 표정을 띄우며 날 옆으로 밀어냈다. 간호사는 그걸 보면서 왜 그렇냐는 듯이 물었다.


    “왜 그래, 다 알고 만나는 거 아니야?”


    “알고는 있네만, 그래도 일부러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은 겐가?”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인데?”


    “그거나 그거나!”


    “어, 지헌씨?”

    간호사는  이름을 서류에서 읽고는  불렀다.


    “네?”


    “얘가 좀 그래도, 마음은 착해요.”


    “아니, 그건 알고 있는데요.”


    내 말을 들은 간호사는, 놀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오오~! 알고 있다는데~?”


    “시끄럽네! 자꾸 이러면 민원 넣겠네!”


    “네네, 알겠습니다. 나가시는 문은  쪽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병원 출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마왕은 날 이끌고 병원을 나가려 했다.

    “어어, 잠깐만.”

    “어서 오기나 하게!”

    평소와 달리 당황한 그녀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특히 분홍색으로 물든 귀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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