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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안녕, 하세요? (20/72)


  • 〈 20화 〉안녕, 하세요?

    유리가 가기로   내가 양치할 때즈음이었다. 딸기를 먹은 뒤, 우리 셋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마왕이 헛소리를 하고 내가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는 식이었지만.

    일어나고 씻지 않은  떠오르고, 난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있었다. 그때 문 너머에서 유리 목소리가 들렸다.

    “지헌아, 나 이제 갈게?”


    양칫물을 뱉고 바로 문을 열었다. 내가 사줬던 베이지색 가방을 눈에 보이게 맨  그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가게?”


    난 설마 유리랑 마왕이랑 싸운 줄 알았다. 마왕은 그녀를 좋지 않게 보는 눈치였고,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왕은 태평한 표정으로 폰을 만지작거렸고, 유리도 싸운 것처럼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둘의 눈치를 살피는 내게 유리가 말했다.

    “좀 더 있고 싶은데.”


    그녀가 폰을 만지는 마왕 쪽을 곁눈질했다.


    “점심에 엄마아빠랑 같이 먹기로 했거든. 미안해.”


    “아냐, 아냐. 괜찮아.”

    “근데 있잖아, 지헌아.”


    내가 왜?라고 물으려는 순간, 유리는 입만 움직여서 뭔가를 말하려 했다.

    이따 복도에서 볼래?


    자취방에서 이 정도 대화에도 눈치채던 마왕이었다. 그 쪽을 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에게 말했다.


    “그래, 또 봐.”


    “알았어. 선배! 저 갈게요.”


    “오냐~.”


    마왕은 폰에만 정신이 팔려서 대답도 대충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유리는 “나 갈게.”하며 병실을 나갔다. 나도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입을 헹구고는 유리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여기야, 여기!”

    복도 모퉁이에서 유리가 날 향해 손짓했다. 그쪽으로 가니, 그녀는 날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며 물었다.

    “혹시 선배한테 감금된 거야?”

    “뭐?”

     말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폰도 꺼져 있고, 어제 갑자기 과 단톡도 나갔고, 선배가 시킨 거야?”

    “아 그거.”

    전원을 끈 거나 단톡을 나간 건 과대 때문이었다. 특히 폰 같은 경우, 그 놈이 다른 사람한테 빌렸는지 모르는 번호로 여러  전화가 왔다. 처음엔 그냥 거부 버튼을 눌렀지만, 이제는 귀찮아져서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물론 그걸 말할 순 없었기에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거 별 거 아니야. 어제 부딪힐 때 좀 맛이 갔더라고. 처음엔 괜찮다가 아예 꺼져버렸어.”


    “과 단톡을 나간 건 뭐야?”

    “그거는……”


    단톡 같은 경우는 거짓말할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단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근데 있잖아, 과대한테 연락해봤어?”


    과대가 나오자 유리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그건 왜?”

    “어제 뉴스 있잖아. 그거 보고 나한테 전화 왔는데, 너한테 오지 않았나 싶어서.”


    “그래?”


    내 질문에 대답하는 그녀의 입가엔 웃음이 살짝 피어 있었다.


    “하준이한테 연락 온 건 없었고, 내가 전화해도 안 받았어.”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안심할 리가 없었다. 아마 과대가 언급된 것 자체가 불안의 원인 같았다.


    “그래?”

    “응! 진짜야!”

    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폰을 꺼냈다.

    “이거 봐봐.”

    폰에서 통화기록을 보여줬다. 오늘 아침이랑 어제 저녁에 전화했던 것과, 점심 즈음엔 부모님에게 연락했던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전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수십번 연락된  발견했다.

    “!”

    내가 그걸 보자, 유리는 황급히 화면을 꺼서 가방에 넣었다.


    “그, 그런데 있잖아, 지헌아.”

    당황한 모습을 보니, 아마 과대 전화번호인  같았다.  놈이랑 사귄  몰랐던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일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왜?”

    “응, 그러니까……”


     먼저 불러 놓고는 할말을 찾았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너 퇴원 언제 해?”

    “월요일. 주말엔 퇴원이 안 된대.”


    “그래? 내가 월요일에 퇴원할 때 와도 될까?”


    이때 유리는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처럼 눈만 올려서 내 눈치를 살폈다. 이렇게 안절부절한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봤는데, 왜 익숙한지 모르겠다.

    “어, 그래도 되지. 근데 이제 가야 되는 거 아니야? 부모님이랑 점심 먹는다며.”

    내 말에 유리는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 그러네! 나 이제 진짜 갈게!”


    “그래, 월요일에 보자.”

    “월요, 아니 내일도 올게! 내일 또 봐!”

    그렇게 말하며 유리는 복도를 걸어갔다. 나도 이제 병실에 가려고 몸을 돌렸다. 몇 걸음 만에  병실 문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유리가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이 느껴졌다.


    “……!”

    고개를 돌리니, 아까 이야기를 나눴던 모퉁이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내가 그 쪽을 보자 숨는 것처럼 둥근 무언가가 사라졌다.

    설마 유리인 걸까. 가기로 했으면서 왜 내가 들어가는  보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병실로 들어갔다.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폰을 보고 있던 마왕은, 이제 TV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기척을 느꼈는지, 그녀는  보지도 않고 물었다.


    “유리와의 대화는 잘 마쳤는가.”


    “어떻게 알았어?”


    “나가자마자 따라 나갔는데, 당연히 이야기하러 간 거 아니겠나.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폰 보고 있었으면서 다 눈치채고 있던 것 같았다. 일단 별로 숨길 건 아니라서 유리와 이야기했던 걸 말해봤다.


    “별 거 아니야.  폰 꺼져 있냐, 단톡엔  나간 거냐, 설마 너한테 납치된 거냐.”

    말하면서 환자 침대에 걸어갔다. 마지막 말엔 침대에 앉은 상태였다. 하여튼 그 말을 들은 마왕은 날 돌아보며 물었다.

    “짐이 왜 자넬 납치해야 되는 겐가!”

    “유리 눈엔 그렇게 보였나 보지. 그런데 걔도 과대랑은 연락이 안 되는 것 같더라.”


    “흠, 거짓말 같진 않았나?”

    “아니야. 그건 확실해.”


    그 말을 끝내고 잠깐동안 우리는 영화에 집중했다. 그러다 얼마 안 되서 광고가 시작되자, 마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 ‘계획’말일세. 유리도 포함시킬 겐가?”


     질문에 내 계획을 떠올렸다. 변수까지 고려해서 계산한 끝에, 결과가 나왔다.


    “유리가 필요하긴 해도, 필수적이진 않아. 계획에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런가. 뭐, 자네 선택이니 참견하진 않겠네. 아 참, 그리고.”

    뭔가 생각났는지, 마왕이 날 돌아봤다.

    “오늘 점심은 안 올 걸세. 그렇게 알게나.”


    “뭐?”

    “아까 짐이 점심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네.”

    “아니, 넌 무슨 아침을 굶기고 점심까지 굶기려 드냐!”

    “굶기다니, 그렇게 말하지 말게. 짐이 상처받지 않나.”


    “난 이미 상처받았거든! 그것도 팔에!”

    “그렇게 화내지 말고, 일단 들어보게. 자네, 3대 영양소가 뭔지 아나?”


    마왕이 내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손은 엄지와 검지, 중지가 펴진 채였다.


    “먼저 탄수화물. 아까 빵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잖나.”


    중지를 내렸다.


    “이제 비타민이라네. 유리가 사온 딸기를 먹었고.”


    검지를 내렸다.

    “남은 건 단백질일세.”


    그녀는 내게 엄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짐은 그 단백질로 치킨을 시켰지.”

    “마왕님!”


    3대 영양소는 그게 아니었지만 나는 마왕을 부르면서 감탄했다. 어차피 치킨엔 지방이 듬뿍 포함됐다.

    한편, 마왕은 내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부르자, 크게 웃었다.


    “우하하하! 어떠냐! 이게 바로 마왕의 위용이다!”


    “역시 마왕님이십니다!”

    전직 용사로서 마왕을 찬양하는 건 말이 안 됐지만, 치킨은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누구라도 이 진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없었다.

    “더욱 짐을 칭찬하거라! 더!”

    “마왕님은 하늘에 달린 달보다 눈부시고, 땅속에 박힌 흑요석보다 반짝이는 존재이십니다!”

    “우하하, 뭣이?”

    똑똑


    마왕이 웃음을 멈춘 직후,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병실 문이 열리더니, 아침에 왔던 사람과 다른 간호사 누나가 문사이로 고개만 내민 채 말했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그녀는 그 말만 하고 문을 닫았다. 나는 닫힌 문을 향해 말했다.


    “네, 죄송합니다!”

    나는 사과하는 반면, 마왕은 황당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뭐가.”

    “달이니, 흑요석이니 하는 거 말일세.”


    “잠입할  들었지.”

    용사일 적에 마족의 수도로 숨어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행사가 열리고 있어서 행진중인 퍼레이드를 발견했다. 그때 마왕을 처음 봤는데, 그 대머리에 갑옷을 입은 얘가 여자일 줄은 몰랐다.


    퍼레이드 중에 마족들이 외친 걸 기억한 거라고 마왕에게 말했다.

    “그, 그런가. 설마  세계에서 그런 걸 듣게  줄은 몰랐네.”


    “혹시 옛날 생각나게 만들었냐? 미안.”

    “괜찮네. 조금 부끄러울 뿐이라네. 그리고 말일세.”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내게 씨익 웃어 보였다.

    “천사와 왕족의 혼혈로 알려진 호문쿨루스보단 낫다고 보네.”

    “너 그걸!”

    그녀가 말한 건 용사의 출생에 대한 설정이었다. 사실 용사로서의 몸은 비밀리에 조직된 시설에서 태어난 호문쿨루스였다. 마왕과 대적할 존재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으니, 천사랑 왕족의 혼혈로 설정된 거였다.


    내가 경악에 찬 눈길로 바라보자, 마왕이 당당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심연을 들여 보고 있으면, 심연도 자네를 들여 보고 있다고 말일세. 뭐, 그런 걸세.”


    “와, 마족 개무섭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애초에 마족이 더 낫다고 보네만.”


    “하긴.”

    마왕 죽이자 마자 용사 목 자르는 게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과거는 과거고, 여기는 전생 마왕과 전직 용사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현대였다. 이런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수다거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킨에 대해 물었다.

    “치킨은 언제 온대?”

    “조금 있으면 올 걸세. 자네가 양치하러 가기 전에 시켰으니 말일세.”


    “나랑 유이랑 대화할 때 시킨 거 아니었고?”

    “그때는 게임하고 있었다네.”


    그래서 그렇게 집중했던 거구나.

    이때 다시 영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영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니 치킨이 도착했다.


    똑똑

    “배달왔습니다.”


    노크하고 대답할 틈도 없이 병실 문이 열렸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배달원은 치킨이 든 봉투를 들고 들어오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마왕을 발견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은발의 백인 미녀를 보고, 이번엔 날 쳐다봤다.

    “……”

    뚫어져라 쳐다보면 그는, 우리 앞에 치킨을 내려놓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병실을 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마왕의 남친이라 착각한 것 같은데,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치킨이 도착하자, 마왕은 웃으며 포장을 뜯었다.

    “후훗! 오늘밤을 불태울 연료가 왔구만!”


    얘는 말을 좀 다르게 하면 안 되나. 밖에 다 들리겠구만.

    오해 살 만한 발언을 하며 치킨 먹을 준비를 끝냈다. 치킨무 국물을 마시는 마왕을 두고, 난 닭다리를 집으려 준비했다. 그때 어디선가 애니 노래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런 소리에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소리가 나오는 건 마왕의 주머니 속이었다. 그녀는 치킨무를 내려놓고는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고는 놀란듯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지, 짐은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네. 먹지 말고 기다려 주게.”


    그렇게 말하면서 병실을 나가, 려다 날 돌아봤다.


    “먼저 먹으면 안되네!”


    “알았어, 안 먹어.”

    이제 안심했는지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려다가 또 말했다.

    “절대 짐보다 먹지 말게!”


    “안 먹는다고!”

    그제서야 병실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난 영화보면서 마왕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고, 내 폰을 집어 전원을 켰다. 어제부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과대도 나한테 전화한  포기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폰을 켤 동안에도 마왕은 들어오지 않았다. 심심해서 어제 보지 못한 웹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아.”


    그만 반사적으로 받아버려서 누구인지 보지 못했다. 만약 이게 과대일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있어서 폰을 들었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리는 건 익숙한 마왕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가 전화한 줄 알고 언제 오냐며 재촉했다.


    “너 왜 안 와? 치킨에 사용감 남게 하기 전에 빨리 와라.”


    하지만, 나는 마왕이 이렇게 통화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했다.

    -저 소희 엄만데요.

    그렇다면 마왕 어머니에게 전화 온 걸 알아챘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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