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나 왜 여기 있냐 (16/72)


  • 〈 16화 〉나 왜 여기 있냐

    나는 병원 1인실에서, 링거도 꽂지 않은  환자복만 입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복잡했다.


    잠깐 보자던 경찰 아저씨는 날 병원에 데려갔다. 마왕은 조사받아야  게 있다며 경찰서로 데려갔고, 난 병원에서 17바늘은 꿰매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3분의 1 정도 꿰매니 부모님이 오셨다. 아버지는  상처를 보시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고, 어머니는 화를 내며 그 놈이 어디 있는지 말해달라고 하셨다. 두 분은 그렇게 병원을 시끄럽게 하시다, 치료받는 내내 옆에 있어 주셨다.

    삼분의 2정도 꿰맬 때엔 유리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울먹이면서 말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제대로 못 들었다. 그래도 대충 미안하다는  같아서 난 괜찮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치료가 끝나고 소독할  즈음, 날 데려다 줬던 경찰아저씨가 왔다.  양아치는 특수 상해죄로 구속됐으며, 저번에 저지른 것도 있어서 감옥에 갈 거라고 했다. 게다가 그를 제압할  했던  정당방위가 될 것이니 걱정말라는 말도 남겼다.

    아저씨가 떠나고 치료비를 계산하려는데, 또 누가 등장했다. 이번엔 정장 차림의 남성이었다. 40대로 보이는 그는 반드시 입원해야 된다며, 날 1인실에 배정시켰다. 더불어 치료비와 입원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공짜라는   받을 수가 있어야지.

    괜찮다고 하는데도 부모님은 병문안 시간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 주셨고, 한 분이 남아서 간병하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조금 찢긴 상처에 링거도 안 맞았는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고…….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 넓은 병실에 나 혼자 남게 됐다. 아무도 없어 조용한  싫어서 tv를 틀어 병실 안을 소음으로 차게 만들었다. 이제 폰을 들어서 아무 거나 하려고 하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폰을 내리고 병실 문을 쳐다봤다. 일반 문보다 크게 만들어진 병원 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누가 온 건지 몰라서 일단 말없이 그쪽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자 수많은 노크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수 있었다.

    “들어와.”

    드르륵!

    “병세는 좀 어떤가!”

    말이 끝나자 마자 들어온 사람은, 역시나 마왕이었다. 오늘 낮에 헤어질 때와 같은 검정 추리닝 차림으로 하고, 평소처럼 당당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닫을 때 내 방에서 봤던 익숙한 가방을 매고 있는  보였다.


    나는 문을 닫고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지금 병문안 시간 끝났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들키면 되지 않나.”

    “무슨 상관이라니!”


    “괜찮네. 원래 1인실에 간병인  명 정도는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가방을 벗어 바닥에 놓았다. 이제는 멋대로 내 침대에 앉는 마왕을 보며 물었다.


    “네가 간병인이라고?”


    “왜 그런가. 너무 좋은가?”


    “좋네. 너무 좋아서 죽겠네.”

    “그렇게 안 좋아해도 된다네.”

    “반어법이란 거 모르냐?”


    “자네가 츤데레인 건 진작에 알고 있었네.”


    하나도 모르는 듯한 그녀는 몸을 숙여, 가방에서 오렌지주스 병을 꺼냈다. 나는 그 1.5리터짜리 음료수가 내 거인 줄 알고 손을 뻗었다.

    “병문안 선물이냐?  가져와도 되는데.”


    “그럴  알고 안 가져왔다네.”

    그렇게 말하더니 뚜껑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황당하게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도 병 입구를 입에서 떼면서 이렇게 외쳤다.

    “키햐! 꿀맛이로구나!”

    “오렌지맛이겠지, 무슨 꿀맛이야.”


    “삐지지 말게, 자네 음료수도 제대로 사왔다네.”

    마왕은, 아니 마왕님은 가방을 들어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가방 안을 뒤적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환자에게 설탕 덩어리는 안 좋을 것 같아서 보리가 들어간 걸로 사왔다네.”


    “보리차 사왔냐?”

    “이것일세!”


    그녀가 꺼내 보인 건 캔맥주였다.


    “야! 환자한테 술을 사오냐!”

    내 말에도 마왕은 과장스럽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뭣이? 맥주가 술이었나? 짐은 음료수인  알았네만!”


    “미성년자가  수 없으면 그게 술이지!”

    내 말에 마왕이 깔깔대며 웃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가 그녀가 예쁘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면 한  정도는 칠 수 있으니까.


    그녀는 맥주캔을 가방에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다시 손을 빼더니, 그 손엔 내 스위치가 들려 있었다.


    “그럼 이거나 하세! 받게!”

    그걸 내게 던지듯이 주고는, 이번엔 자기 걸 꺼냈다.


    게임기는 나오면서 정작 내 음료수는 없는 게 이상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거 안 사왔냐?”


    “음료수 마시고 싶다면, 자! 마시게나!”

    그녀는 자기 옆에 있는 음료수병을 내밀었다. 뚜껑이 닫히지 않아서 마왕의 침이 그대로 묻어 있을 병 입구가 보였다.

    혹시 이걸 마시면 간접키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받기만 하고 마시진 않았다. 그걸 눈치챘는지, 마왕이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호오, 혹시 짐을 여자로 의식하는 겐가?”

    “그건 아니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병 입구에 입을 대고 마셨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살짝 얼굴을 굳혔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안 좋구먼.”

    마왕이 하는 말을 들으며, 페트병을 내렸다. 내 침과 마왕의 침이 혼합됐을 병 입구를 애써 무시하면서 말했다.


    “난 내 음료수 안 사온 게 기분이 나쁜데.”

    “에이, 사내 놈이 그런 걸로 삐지는 겐가?”

    “그거 성차별 발언이다, 너.”

    “무슨 개소린가, 자네. 그리고 일인실을 쓰게 해줬으니 만족하지 않은가?”

    마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보라는 듯이 주위를 둘러봤다.

    “뭐? 네가 했냐?”

    “정확히는 짐의 아버지지만 말일세.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병원에 전화하셔서 자네 치료에 전력을 다하라고 하셨다더군. 치료비뿐만이 아니라 입원비도 지불하실 걸세. 어떤가, 좋은가?”


    나는 마왕의 아버지가 그저 평범한 건물주이신 줄 알았다. 물론 건물주도 평범하진 않지만, 전화 한통으로 병원에서 일인실을 내줄 정도면……

    “야.”


    “짐과 친구 맞냐는 질문을 한다면 바로 쫓아낼 걸세.”


    “알았어.”


    “이 손도 놓으시게.”

    “응.”

    살포시 잡았던 그녀의 손을 놓았다. 내 손이 떨어지자, 마왕은 게임기에 집중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나도 게임기를 들어 전원버튼을 눌렀다.

    “이거? 아마 2~3주?”

    “그 정도 밖에 못 사는 겐가?”

    “아니야! 낫는데 그 정도 걸린다고!”


    “훗, 농담일세.”


    잠깐 고개를 올려 마왕의 얼굴을 쳐다봤다. 인형 같은 외모는 게임기에 고정된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시선을 내리며 게임을 켰다. 로딩을 기다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당분간 물 닿게 하지 말라고도 하더라.”


    “짐이 베였을 때도 그런 소리를 들었지.”

    “뭐?”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마왕도 자기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는지, 자신도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날 보고 있었다.

    “짐이 방금 뭐라고 했나?”


    “너, 베, 베였? 너?”


    “아닐세! 자네가 뭘 생각하던 아닐세!”

    “너 설마!”

    영화관 입구와 화장실에서 그녀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피 터지게 싸운 것도 아니고, 저 정도면 비싸 봐야 2~30일세. 게다가 합의 안 하더라도 훈방으로 끝날 걸세.”

    “그 대가는 항상 짐에게만 돌아왔지.”




    이상하게 합의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았고, 내가 다친 걸 대가라 불렀다. 이것만 봐도 그녀의 과거에 대한 추리가 쉽게 이루어졌다.


    “너 옛날에 맨날 싸우고 다녔냐?”


    “아, 아니네만?”

    “그걸 믿겠냐!  고등학교 때 일진이었지?”

    “일진은 아니었네! 짐은 고독한 늑대였단 말일세!”

    고독한 또라이였겠지!

    “과거는 과거로 봐주게나! 부탁일세! 이제는 아무에게나 시비걸고 다니진 않는단 말일세!”


    검도장에 봤던 상장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많은 상장을 받았으면서, 프로로 가지 않고 우리 과로 온 게 이상했다. 분명 고등학교 때 어떤 큰 사고를 쳐서 출전 금지라도 당한 것 같았다.


    어쨌든, 그녀 말대로 과거는 과거로 남기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마왕을 보는 눈은 바뀌지 않았다.


    “이야,  맞으면서 싸웠냐? 살벌하다, 살벌해.”

    “자네도  맞지 않았나! 게다가 그 년이 커터칼을 들이대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겐가?”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게임을 시작했다.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몬스터를 샤낭하다가, 문득 궁금한 게 있어서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눈은 여전히 게임기 화면에 고정한 채였다.


    “왜 그런 겐가.”


    평탄한 어조를 보니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인  같았다.

    “너 그, 과대놈이랑 번호 교환했냐? 저번에 거절하더만.”

    “그것 말인가? 아마 짐의 말대로 한 것 같다네. 학생회에 짐의 번호를 물어본 것 같더군.”

    “어떻게 했데?”


    “학생회에 있는 여자를 꼬시지 않았겠나.”


    “하긴, 걔라면 그럴 만도 하지.”


    “그걸 기회삼아 자네와 유리를 이어주려 한 것이라네.”


    “알았어.”

    “그것 외엔 그 놈과 연락하지 않았다네.”


    “알았다고.”


    “볼일이 끝났으니 이젠 차단시킨 것도 알아주게나.”


    “알았다니, 아야!”

    “왜 그런 겐가, 자네?”


    내 신음소리에 그녀가 게임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통증의 원인인 상처를 살피며 대답했다.

    “여기가 좀 아프네.”

    사실, 꿰매니 이쪽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손으로 게임을 하니 상처에 자극이  것 같았다.


    마왕은 그걸 살피더니,  게임기를 뺐었다.

    “어, 야!”


    “지금은 게임할 때가 아닌 것 같군.”

    뭐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녀 말이 맞았다. 의사선생님도 움직이면 흉터가 커질 수도 있으니, 게임을 안 하는  나았다.


    “대신 짐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게!”


    “뭐?”

    갑자기 마왕이 게임기를  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내 오른쪽에 붙어서,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야, 야.”

    “시끄럽네.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뭐라 하려고 해도 마왕은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움직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그녀에게서 나는 향긋한 냄새 때문에 가슴이 괴로웠다. 내 방에서 썼던 바디워시가 아니라 이건 그녀 자체에서 나는 향기였다.


    게다가 인형처럼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바로  앞에 있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 귀에도 들릴 만큼 심장소리가 시끄러워서, 그녀가 듣지 않도록 간절하게 기도했다.


    마왕한테 가슴이 뛰는 건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건 내가 컨트롤할  있는 게 아니었다.

    “자네.”


    순간 날 부르자 들킨  알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

    “어, 왜?”

    “저걸로 하는 건 어떤가?”


    내 얼굴에서 두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예쁜 얼굴을 가진 그녀는, 병실에 있는 TV를 향해 턱짓했다.


    “저기에 연결해서 하는 걸세. 아무래도 이 작은 화면으로 같이 보는 건 무리가 있으니.”


    “조, 좋네! 그렇게 하자.”


    “그럴 줄 알고 그걸 가져왔다네!”


    그렇게 말하면서 마왕은  옆을 떠났다. 그러자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어쨌든 그녀는 자기 가방을 들더니, 게임기와 TV를 연결시켜주는 스위치독을 꺼냈다.


    “병문안이 아니라 나랑 게임하려고 가져왔냐?”

    “짐도 이걸 사용할 줄은 몰랐다네. 역시 유비무환이구만.”

    마왕은 스위치독을 들고 TV로 걸어갔다. TV아래에 있는 서랍장에 스위치독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내게 등을 돌리고 케이블을 연결하는데, 그녀 귀가 분홍색인  발견했다. 원래 저런 색이었나 싶어서 쳐다보는데, 마왕이 내게 등을 돌린 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유리에게서 연락 왔는가?”


    그 말을 듣고 영화관에서 봤던 유리를 떠올렸다. 내가 마왕과 함께 화장실을 나오고도, 그녀는 내게 피난다고 외쳤던 장소에서 서 있었다. 유리는 얼굴을 창백하게 한 채 도저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아까 울긴 해도 제대로 전화해 줬다.

    “왔지. 왜?”


    “병문안도 왔는가?”

    "아니."

    "배은망덕한 여자로구먼."


    “아니 뭐, 많이 놀랐으니까 그런 거겠지.”

    “역시 짐이 최고, 어! 자네! 보게나!”


    갑자기 마왕이 TV화면을 보다가 소리쳤다. 그녀 말대로 화면을 보자, 나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낮 1시경, 칼을 든 고등학생이 영화관에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한 대학생이 그를 제압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용한 게 싫어서 틀어 놨던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뉴스에 내가  일이 나왔다. 화면에 영화관 CCTV영상이 나오자 마왕이  돌아보며 말했다.


    “크! 멋있구만! 멋있어!”


    화면에선 내가 과대를 제치고 고등학생에게 달려가는 것까지 나왔다가 영상이 멈췄다. 때려 눕히거나 그런 건 심의에 걸리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한 일이 뉴스에 나오니 뿌듯했다. 그 다음 내용이 나오기까지는.

    -이 영상 속 청년의 이름은 이하준입니다.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인터뷰에서 발언했습니다. 인터뷰 영상, 보시죠.

    화면에 과대 얼굴이 나왔다. 그는 영화관을 배경으로 말하고 있었다.

    -해야  일을 한 거죠. 누구라도 그랬을 거에요.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영상이 끝나고 다음 뉴스가 나오는 순간, 마왕이 말했다.


    “이런 개씨발잡것을 봤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