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가끔씩 보면, 자네는 용사가 아닌 것 같다네. (13/72)


  • 〈 13화 〉가끔씩 보면, 자네는 용사가 아닌 것 같다네.

    갑자기 마왕이 은발을 휘날리며 내 뒤로 숨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잡고 겁먹은 표정으로 날 올려봤다. 얼굴만은 예쁜 그녀가 겁먹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니, 나도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 입에선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아니, 네가 나보다 한 살 많지 않냐?”

    “잘생기면 다 오빠고, 예쁘면 여동생일세! 온다네!”

    마왕은  귀에 작게 속삭이고는, 연약한 여자를 계속해서 연기했다. 그 사이 고등학생 남자애는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야이 시발새끼야. 내가 담배피는 게 꼽냐?”

    남자애는 나보다 키가 10센티가량은 더 커서 날 내려봤다. 그런 반면 난 그런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체격차이가 나면 무서울 만도 한데, 이상하게 전혀 그러지 않았다.

    “미안, 돌려줄게.”


    마왕이 내 손에 쥐어 줬던 담배를 내밀었다. 그는 거의 내 손을 때리듯이 팔을 휘둘러 담배를 가져갔다.


    “흐음, 후~”


    남자애는 내 바로 앞에서 담배를 빨더니, 내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의 썩은 입냄새와 담배냄새가  코에 직접적으로 들어왔다.


    “야, 여친 좀 예쁘다고, 가오 좀 부리려고 그러는 거냐?”

    “그건 아니고.”

    “오빠! 오빠가 담배피는 급식새끼는 그냥 두면 안 된다고 했잖아!”


      닥쳐라 마왕아!


    마왕이  말을 듣고, 남자애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는지, 기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오오, 담배피는 급식은 그만 두면 안된다고? 멋있는데?”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오해야.”

    “지금 여친한테 몰아 씌우는 거야? 졸라 멋있네? 여자가 아깝다!”


    “야! 어차피 저 년  성형이야! 코랑 눈이랑 다 했네!”


    갑자기 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애가 말했다. 남자애가 마왕을 예쁘다고 하는 게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마왕이 소리쳤다.


    “어딜 보고 짐이 성형이라는 겐가!”

    그 말에 나와 커플의 시선은 마왕을 향했다. 그럴 알아챈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오빠, 무서웡!”하면서 연약한 연기를 계속했다.

    어쨌든 얘가 이상한 건 하루이틀이 아니니까 그냥 두고, 나는 앞에 있는 남자애에게 집중했다.


    “다 오해니까, 각자 갈 길 가면 안 될까?”

    “그렇겐 안 되지!”

    그는 담배를 과장스럽게 바닥에 내려 치듯이 던졌다. 담배 꽁초에서 불똥이 떨어지는  보는데, 갑자기 남자애가  멱살을 잡았다.

    “남의 거 뺐었으면 너도  줘야지? 죄를 지었으면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금방이라도 날 때릴 것처럼 주먹을 치켜 들었다.


    반격하려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얘는 미성년자였고, 나일론 밧줄도 쉽게 끊을 힘으로 사람을 때리면 합의금으로 얼마나 깨질지 무서웠다.

    그때 마왕이 뒤에서 속삭였다.


    “자네, 짐이 얼마나 벌었는지 알고 싶나?”

    지금 그게 문제겠냐.

    “○천만원일세. 깽값은 충분하다네.”


     그 말을 듣자 마자 바로 손을 휘둘렀다. 왼손 손바닥을 펼친 상태로, 남자애의 오른쪽 가슴아래 갈비뼈로 감싸진 곳을 두드리듯이 때렸다.


    “……!”


    별로 세게 치지 않았는데도, 그는  멱살 잡은 손을 놓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정말 아픈지 신음소리도 못 내며 숨을 헐떡였다. 이 모습을 보니 내 얼굴에 담배연기 뿜은  조금은 용서가 됐다.

    내가 친 곳은 급소 중 하나로, 간이 위치한 장소였다. 격투기 선수들이 힘들게 단련하는 곳을 평범한 고등학생이 맞았으니 버틸리 없었다.

    “야!”


    자기 남자친구라고 여자애가 주차장 바닥에 꿇어 앉은 남자애한테 달려왔다. 날 한  째려보고는 자기도 주저 앉아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야! 괜찮냐고!”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자, 여자애가 바라보는 건  쪽이었다.


    “야! 너 얘가 누군지 알아? 어디 서클인지 아냐고!”

    얘는 정말 내가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일단 악, 마왕의 속삭임에 넘어가 때리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때 마왕이 또 작게 속삭였다.


    “번호 따야 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깽값 주려면 필요하다네.”


    이상하게 이런 걸 잘 아는 마왕을 수상하게 생각하면서, 바닥에 앉은 여자애에게 말했다.

    “폰  줄래?”


    “뭐?”


    “폰 주라고. 나중에 합의금 줘야 돼서.”

    “뭐야 너네! 돈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자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만약 주차장에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이쪽을 향해 봤을 것 같았다.

    먼저 시비  건 그 쪽이면서 왠지 피해자 같은 말을 한 여자애는, 폰을 꺼내 내게 건넸다.

    “자! 번호 적어! 내가 몇 백이든, 몇 천이든, 몇 억이든,  달라고 할 거야!”

    들었던 말보다  액수에 마왕을 쳐다봤다. 그녀는 같은 포지션을 유지한 채로 작게 말했다.

    “피 터지게 싸운 것도 아니고, 저 정도면 비싸 봐야 2~30일세. 게다가 합의 안 하더라도 훈방으로 끝날 걸세.”

    아니, 너무 잘 아는데?

    일단 마왕이 말한대로 내 번호를 그녀 폰에 입력했다. 전화까지 걸어서 진짜인 걸 확인시켜 줬다. 그쯤 되니 남자애가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여자애가 그를 부축했다.


    “너  씨……!”

    “자기야! 괜찮아?”


    날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아직 몸에 힘이 돌아오지 않는지 달려들진 않았다.


    “오빠, 이제 가자. 응?”


    변하지 않는 마왕의 연기를 보며, 나는 고등학생 커플을 뒤로 한 채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가면서 나는 남자애를 때렸던 왼손을 들었다. 원래라면 아까 같은 상황에선 겁을 먹었을 것이었다. 그 놈이 한 협박과, 그런 그를 때렸다는 사실 그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겠지. 하지만 용사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폭력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이 현대로 돌아온 날, 삶을 충실히 살기로 다심했다. 용사로서 살았던 비범한 시간을 버리고 평범한 삶을 살기로 그 날 밤 맹세했다.


    어쩌면 마왕에게 한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마왕이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평범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용사도 다르지 않았다.

    “자네! 더 시원히 때릴 수는 없었는가?”

    상념에 빠지고 있는데 마왕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뻔뻔스럽고, 전혀 여자처럼 안 보이는 모습으로.


    그 모습에 난 어이없어서 물었다.

    “너는  그렇게 걔들한테 시비를 건 거냐!”


    “담배를 피고 있지 않았나. 잘못된 길을 걷는 미성년자가 있으면 성인이 바로 잡아 줘야 하는 걸세.”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하지,  시비를 거냐고.”

    “경찰이  놈 담배피는 걸 보려면, 그 놈은 한 보루는 태워야 할 걸세. 게다가 주먹이 법보다 가깝지 않나.  효과 있고.”


    “그래도! 그래도 다음엔 네가 해!”

    “짐이 하면 얕보인단 말일세. 헌데, 자네  그러는 겐가?”

    “뭐가.”


    “자네 목 말일세.”


    그 말을 듣고 손을 들어  목을 만졌다. 그런데 목울대 부분에 약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남자애한테 멱살 잡힐 때 긁힌 모양이었다.

    “앗, 따가워라.”


    “아픈가?”

    “아프지, 그럼!”


    “팔이 잘려 나가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던, 그런 자네가  말인가?”


    “그때는 마비 마법이 걸린 갑옷 때문에 그랬지. 어느 정도 다쳐도 계속 싸울 수 있게.”

    “정말인 겐가? 왕국 쪽 놈들은 정말 잔인하구만.”

    “내가 해달라고 한 건데?”

    “……가끔씩 보면, 자네는 용사가 아닌 것 같다네.”

    “내가 뭐 어때서!”

    아까 있었던 일은 잊고 매표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날 죽일 듯이 노려보길래 뭐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매표소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 뒤를 따라오는 놈은 없었다.

    매표소 위, 앞으로 상영할 영화를 보면서 마왕에게 물었다.


    “우리 무슨 영화 볼 거냐?”

    “이제 알게 될 걸세! 아! 여기일세!”


    갑자기 마왕이 한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녀가 바라보는 쪽엔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판넬이 있었다. 그런데  옆엔 과대와 유리가 있는 게 보였다.


    과대는 오대오 가르마를 자연스럽게 탄 머리를 한 채, 마왕을 바라보며 미남 웃음을 뿌렸다. 그는 회색 블레이져와 슬랙스를 입었는데, 자칙하면 은갈치라고 보일 수 있는 옷을 그는 빌어먹게도 잘 소화했다.


     보자 미소를 지우고 얼굴이 굳히는 유리도 비슷한 차림이었다. 커플이라는 걸 티 내는 건지 그녀도 회색 블레이져 차림이었었다. 다만 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었는데, 허벅지가 절반은 드러낼 만한 짧은 기장이었다. 항상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바지만 입어서, 그녀의 허벅지는 수영장에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과대에게 보여주려고 입었다는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지금 신경 쓰이는 건 유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쪽을 향해 밝게 웃으며 가려는 마왕을 붙잡았다. 그녀의 어깨를 잡고, 과대와 유리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무엇 말인가.”

    “왜 쟤들이 저기 있냐고!”

    턱짓으로 그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마왕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힐끔 바라봤다.

    “같이 영화 보는 게 뭐가 문제인 겐가.”

    “문제투성이지! 아니, 나랑 유리랑 이어준다면서 쟤는 왜 있는 거냐? 아니, 왜 나한테 유리 있다고  안 해줬는데?”


    “말하지 않았나, 그때의 즐거움이라고.”


    “하나도 안 즐거워!”

    “짐은 즐겁네만?”

    “야!”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 유리 쪽을 쳐다보니,  목소리가 들리진 않은  같았다. 다시 고개를 원위치해서 마왕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잘 들어보게, 용사여. 자네가 사모하는 유리는 저 과대란 놈이랑 사귀지 않나?”

    “사모까진 아닌데.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저 놈은 짐에게 관심 있단 말일세. 유리 앞에서 표현하는  서슴지 않고.”

    “그것도 그렇지.”


    “물론 유리가 자기 애인이 다른 여자에게 질척대는 걸 보면 기분 나쁠 걸세. 계속 그러면 헤어지겠지.”

    “응, 그래서?”


    “생각해 보게. 만약 짐이 과대에게 관심있는 척하면?”

    “유리가 과대한테 진절머리가 나서 나한테 온다고?”


    “그렇지!”


    “와, 너 천재냐?”

    “마왕일세.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마왕.”


    “마왕님!”

    “후훗, 잘 따라오게. 용사여.”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마왕님!”

    그렇게 다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판넬 옆에 있던 그들 중에 유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고개를 돌려보자, 그녀가 매표서  팝콘 파는 곳에 있는 걸 발견했다.


    “자네는 유리에게 가게. 짐은 저 놈한테  터이니.”


    “알았어.”

    “가세.”


    계획대로 마왕이 과대에게 가는 동안, 나는 유리에게 향했다.

    유리는 점원이 팝콘 담아 주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귀여운 단발머리를  그녀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유리야.”


    “어? 어, 지헌이야?”


    어제 싸우고 헤어졌던 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걸 먼저 풀기 위해 사과했다.

    “미안했어. 어제. 감정이 너무 격해지는 바람에.”


    “아니야. 둘이 사귀는지 하나도 상관없는데 내가 화내는 게 이상했지.”


    상관없다라……

     말을 무시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괜찮아. 그런데 팝콘 사는 거야?”


    “응. 영화 볼 때는 팝콘이지. 너희도 살 거야?”

    회의하는 동안 과대가 같이 영화 본다고 설명한 모양이었다.

    “사긴 사야지.”

    마왕은 다이어트 중이니까 내 것만.

    주문을 추가로 넣고, 계산은 며칠 전 현대로 돌아올 때 받은 합의금으로 계산했다. 얼마  되서 유리가 시킨 것과 내게 같이 나왔다. 그런데 그녀가 시킨 건 커다란 팝콘 하나와 콜라 두 개였다. 유리와 과대   먹을 거란 의미였다.


    자기 여친을 심부름꾼 취급하는 것과,  작은 손을 한계까지 벌려  들려는 유리가 안쓰러웠다. 난 팝콘 하나만 시켰기에, 그녀를 도와줬다.

    “자, 팝콘은 나한테 줘.”


    “고마워, 지헌아. 어? 근데……”


    “근데 왜?”


    유리가 냄새를 맡는 것처럼 코로 옅게 숨을 들이켰다.


    “너, 향수 뿌렸어? 아니면 미스트나.”


    마왕도 이 소리하던데.


    “아니. 그냥 바디로션만 바른 건데.”


    “너 바디로션 바르기 시작했어?”


    중학교때부터 발랐는데, 이제 깨달았다.

    각자 산 걸 들고, 일행이 있을 곳으로 가려 했다. 마왕과 과대는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들은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위한 의자들이 있는 곳에 있었다.


    과대는 미남 미소를 뿌리고 마왕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이야기를 듣는 척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딴청을 피웠다.

    그 모습을 본 유리는 다시 얼굴이 굳어졌고, 난 그런 그녀와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 왔는가!”


    딴청을 피우다  발견한 마왕이 웃으며 소리쳤다. 이윽고 내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손에 들린 팝콘을 집어먹었다.


    “냠냠, 어찌하여 자네 것만 사왔는가?”

    “너 다이어트 하는 거 아니었어?”

    “어차피 오늘 밤에 뺄 거 아닌가.”

    마왕이 계속해서 팝콘을 먹으며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면서,  오늘 밤에 있을 매타작에 마음이 들떠 버렸다.

    이런 ㅆ……


    속으로 욕을 하며 유리가 들고 왔어야 할 커다란 팝콘통을 과대에게 건넸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유리를 심부름 시킨 감정 때문에, 일부터 팝콘을 과대 옷에 조금 흘리게 했다.


    “자.”

    “고마워, 이런 건 내가 들었어야 했는데.”


    잘생긴 얼굴로 헛소리를 해댔다.

    과대는 자기  의자에 통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지헌아, 같이 화장실 가자.”

    같이 화장실 가는 건 여자애들의 특권인 줄 알았는데, 사실 잘생긴 남자애도 포함되는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팝콘을 아예 마왕에게 건넸다. 그때 과대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빨리 와라. 씨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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