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오빠 무서워! (12/72)


  • 〈 12화 〉오빠 무서워!

    “킁킁, 자네 미스트  겐가?”


    자취방을 나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마왕이 내 냄새를 맡았다.

    “아니? 그걸 왜 써.”

    “자네 몸에서 향기가 나길래 물었네만.”

    “아 그거? 바디로션 냄샌데.”


    “자네 바디로션도 바르나? 오오, 짐과 데이트한다고 신났구만?”


    그녀가 약 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팔꿈치로 날 찔렀다.

    “뭔 데이트야. 그냥 영화 보러 가는 건데. 아, 왔다.”


    농담을 무시하면서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마왕이 따라 들어오자 닫힘 버튼과 1층을 눌렀다. 내려가는 사이, 나는 고개를 올려 위에 나타나는 숫자가 1이 되길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마왕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씻는 사이 검은색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던 마왕은, 방금  나처럼 멍하니 엘리베이터 위쪽을 올려봤다. 검은 트레이닝복과 웬만한 백인보다 하얀 피부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음?”

    너무 오래 쳐다봤는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마치 귀여운 아이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웃으며 마왕이 물었다.

    “짐이 너무 예뻐서 넋을 잃은 겐가?”

    확실히 그런 것도 있긴 했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마왕이 가져왔던 가방을 떠올렸다.

    “야, 너 가방 어쨌냐.”


    “가방 말인가? 자네 방에 두고  모양이군. 어차피 나중에 다시 오면 되지 않나.”

    “너 여기 또 오게?”

    “또 오면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겐가? 내일도 올 거고 내일 모레도 올 걸세.”


    “무슨  방이 놀이터냐? 맨날 오게?”


    “다를 게 없지 않나. 아! 도착했군!”

    마왕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나갔다. 그 뻔뻔하면서도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오지 말라고 해도  거 같아서 더 이상 말하는  그만뒀다. 대신 폰을 들어 영화관으로 가는 버스를 검색했다.

    “72번이 조금 있으면 오니까, 좀 빨리 걸어가야 겠다. 근데  어디 가냐?”


    버스를 타려면 큰길가로 가야 했다. 그런데 마왕이 향하는 곳은 골목 쪽이었다. 그녀는 내게 뒤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따라오게. 짐의 차로 가지.”


    마왕이 조물주의 상위급인 건물주의 딸인  생각해냈다. 자기 딸한테 검도장을 쓰게  정도로 사랑한다면  하나 정도는 사줄  같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마왕을 따라잡으며 물었다.

    “너 차도 있냐?”

    “정확히는 삼촌 차지만 말일세.”


    “삼촌?”

    “음, 삼촌과 짐과 꽤나 친해서 말이지. 가끔씩 이렇게 차를 빌리곤 하지.”

    “너  없어?”

    “그런 자네는 차 있나? 그리고 대학생에게 차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취직한 것도 아닌데 말일세. 아, 이 차라네.”


    마왕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지프차 앞이었다. 흰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연식이 조금 되보이는  앞에서, 그녀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냈다. 열쇠고리도 없이 그저 달랑 차 키 하나만 들고, 운전석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차에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마왕은 시동을 켜고 몸을 기울여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자, 타게!”


    “어, 어.”

    아직은 정신을 못차렸지만, 일단 타긴 했다. 안전벨트를 메다가, 차에서 나는 냄새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비릿하면서도 흙이 조금 섞인 듯한 냄새는 이세계에서 맡아봤다. 이건 사냥해서 잡았던 짐승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쳐다봤다. 아니, 거긴 뒷좌석이 아니라 짐칸이었다. 의자를 들어내고 만든  공간엔 삽이나 부츠 같은 것들이 놓인 가운데, 바닥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마왕에게 물었다.

    “너네 삼촌 차라고?”

    “그렇네만?”


    마왕은 차를 운전하며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집중했다. 운전 중이라 말을 걸진 못하겠고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조수석 아래 작은 금속덩어리를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워 봤다. 새끼 손톱만한 크기에, 보기보다 조금 무거운 그것은 한 쪽 부분이 파여 있었고, 반대쪽은 둥글었다. 속이 빈 원뿔에 공을 붙이고,  사이는 주름 세 개가 잡힌 모양이었다.

    “그거? 총알일세.”

    마왕이 곁눈질로 내가 그걸 보고 있는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운전에 집중하며 그녀가 말했다.

    “공기총 총알인데, 반납하다가 몇 개 흘린 것 같구만.”

    “삼촌분께서 총알을 왜 차에 넣고 다니냐.”

    “그 분 취미가 수렵일세. 짐은 따라다니다 돈을 조금 벌었다네.”

    “뭐?”


    “한전에서 까치를 잡으면 마리당 6000원씩 준다네. 이번 겨울 방학엔 그걸로 돈을  벌었지. 자네  사준 것과 게임 사준 게  돈에서 나온 걸세.”


    “아니, 네가 총을 쏜다고?”


    “그렇네만.”


    “총을 쏴도 돼?”

    “잠깐만 기다리게나.”

    마왕이 말을 끊고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골목길에서 큰길가로 나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수렵 면허도 땄고 총포 소지 허가도 받았네.  스무살만 넘으면 딸 수 있는 걸세. 문제될  없지 않나.”

    말을 마치자 마자 차가 멈췄다. 빨간 불이라 멈춘 거였다. 마왕은 운전대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앞유리 너머로 횡단보도 위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호를 기다렸다.

    나는 총알을 만지작거리며, 추리닝 차림에 고개를 내민  신호등을 보는 마왕을 쳐다봤다.
    확실히 사냥이 그녀와 잘 어울리긴 했다. 전생에 마왕이었다는 점도 그랬고, 추리닝을 입은 털털한 차림에 장총을 든 이미지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마왕이 말했다.


    “자네도 하나 따지 않겠나? 허가증.”

    “내가?”

    “그렇게 어렵진 않다네. 넉넉히 한달 정도 걸릴 것이고, 자네 정신에 문제 없다면 쉽게  수 있을 걸세.”

    놀라서 마왕을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신호등을 향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권하는 것보단,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같았다. 그런 모습에 나도 아무런 말이나 했다.


    “그럴까?”


    “따면 짐과 같이 수렵하는 것도 좋겠군.”


    “좋네. 좋겠어.”

    “총은 짐이 마련하겠네. 요즘 삼촌이 안 쓰는 총이 몇 개 있다네.”

    “총 안 사도 되겠네? 아 신호 바뀌었다. 출발하자.”


    “짐도 봤다네.”


    마왕은 다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하는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봤던 모습으로는 내게 온갖 장난을 칠 것 같았는데, 운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녀가 말이 없자 나도 말이 없어졌다.

    한동안 말이 없던 마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게 말하는 것보단 중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딸기가 먹고 싶구만.”

    심심하기도 했고, 말이 없는 마왕이 어색해서 대답했다.

    “하긴, 요즘 딸기가 제철이긴 하지.”

    “지금 제철이라 하기엔 많이 지났지 않은가?”


    “제철이  아니였냐? 딸기가?”


    “딸기 제철은 봄이 아니라 겨울일세.”


    “하우스 딸기 말하는 거냐?”

    “당연하지 않나. 하우스 딸기가  딸기보다 맛있는 법이라네.”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생각해보게. 야외에서 거칠게 자란 딸기와, 실내에서 곱게 자란 딸기. 무엇이 더 맛있겠나? 당연히 실내 아니겠는가.”

    “그렇게 말하면 밖에서 자란 건 야성적인 맛이 있지 않을까?”


    “본디 온실 속에 자란 풀이 더 곱고 부드러운 법이라네.”

    우리는 영화관 지하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운전에만 몰두하며 차분하고 조용한 마왕은 평소와 달라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그리워지기도 했고. 하지만 시동이 꺼지자 마자 다시 시끄럽게 굴기 시작했다.


    “음! 생각보다 차가 안 막혀서 빨리 도착했구만! 이제 내리게!”


    “알았어. 잠깐만.”


    “빨리 내리게! 빨리! 빨리! 빨리이이!”

    차라리 운전하던 마왕이 나았다.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닫으려는데 나처럼 운전석에서 내린 마왕이 물었다.

    “총알은 어쨌는가? 그거 반납  하면 불법이라서 두고 내려야 하네!”


    “그럼 진작에 반납을 하던가.”

    지금까지 쥐고 있던 총알을 조수석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영화관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왕은  따라와 옆에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흘렸다고 하지 않았나. 자! 이제 가세!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기다린다고? 누가?”

    “뭐, 가보면  걸세.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지.”


    얘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좋은 꼴을 못 봤다. 처음 검도장으로 데려갈 때도 그랬고,  사준다며 프로틴을 사줄 때도 그랬다.


    “이제 가자꾸나!”


    마왕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에 이끌려 반억지로 영화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입구에서 나오는 한 커플을 발견했다. 그 둘은 평일 낮인 걸 불구하고 교복 차림이었고, 남자 애는 담배마저 물고 있었다.


    자기 건강을 자기가 해치겠다는 건데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왕은 그들을 보자마자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 미소는 평상시 짓던 당당하지 않았고, 어딘지 모르게 살벌해 보였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마왕이 물었다.


    “자네는 짐이 그 알바로 얼마나 벌었는지 아나?”

    “어?”


    “짐은 이 정도 벌었다네.”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런데 왼손은 다 펴졌고, 오른손은 검지와 중지만 편 상태였다. 그건 누가 봐도 7을 의미했다.


    뭐하는 짓인지 생각하다가, ‘원래 이런 애였지’란  떠올렸다. 일단은 그녀가 뭘 하던 어울려주기로 했다.


    “어, 70만원?”

    “아닐세.”


    “700만원?”

    “그것보다 더 벌었다네.”


    “그럼, 7000?”


    “너무 나갔군.”

    마왕이 물을 때마다 고등학생 커플은 점점 우리와 가까워졌다. 남자는 마왕 얼굴을 힐끗 보기만 할 뿐, 우리에게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그래서 얼만데?”하고 묻자, 그녀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사삭!


    그렇게 움직였던 마왕의 검지와 중지 사이엔, 불붙은 담배가 있었다.


    “뭐냐, 그거.”

    “뭐야!”

    내가 묻는 동시에 지나쳤던 커플 중에 남자가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자신의 빈손을 내려보고 있었다.

    “이것 좀 받아주겠나?”


    마왕이 내 손을 잡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내 손가락엔 그녀가 들고 있던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당황하면서 마왕을 내려봤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날 올려 보고 있었다.

    “야!”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돌아봤다. 그 양아치 남자애가 날 부르는 소리였다. 그는 내 손에 들린 담배를 보며 소리쳤다.


    “네가 가져갔냐?”

    “어?”


    “오빠 무서워!”


    갑자기 마왕이 은발을 휘날리며 내 뒤로 숨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잡고 겁먹은 표정으로  올려봤다. 얼굴만은 예쁜 그녀가 겁먹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니, 나도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 입에선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아니, 네가 나보다 한  많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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