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너 뭐하냐? (11/72)


  • 〈 11화 〉너 뭐하냐?

    눈꺼풀을 뚫고 둘어오는 아침햇살에 잠에서 깼다. 마저 자기 위해 눈을 뜨지 않고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생각치도 못한 고통이 온몸이 쑤셨다. 왜 아픈 거지, 하고 잠결에 생각하다가 어제 일을 떠올렸다.

    피자 먹은  + 연애상담 해준 걸로 어제 저녁에 죽지 않을 만큼 처맞았다. 만약 내가 용사가 아니었다면 이대로 탈진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죽어서 편해졌을 거니까.


    그래도 오늘이 공강이라서 다행이었다. 친구들과 놀려고 금공강을 맞췄다가 아싸가 되는 바람에 혼자 있는 날이 하루 더 늘었을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쓸지 몰랐지만 그래도 오늘을 이용해서 쉬어야 겠다.

    잘했어, 수강신청 때의 나.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눈을 감은 채 다시 잠에 빠지려 했다. 그때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사여…… 일어나게 용사여……”

    이걸 듣고 또 이세계로 왔나, 싶었다. 차에 치일 뻔하다가  적도 있으니, 자다가 갈 확률이 없는  아니었다. 한번 다녀왔으니 처음 보다 익숙해지겠지만, 이게 꿈이길 바라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렇게 내  앞에 보이는 익숙한  자취방이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왕이 감색 추리닝을 입고 괴상한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용사여, 후! 언제, 후! 일어나는 겐가! 후!”


    눈을 뜨자, 마왕의 춤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얇은 판을 구부려 만든 것 같은 동그란 물건을, 양손으로 들었다 내렸다. 동시에 무릎을 번갈아 올리며 도대체 뭔지 모를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근육통과 죽도에 맞아 생긴 타박상으로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너 뭐하냐?”

    “후! 일어, 후! 났는가! 후!”

    날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도 그 춤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뺨엔 은색 머리카락  가닥이 땀때문에 달라붙어, 그녀의 입으로 들어간 게 보였다.

    볼 때마다 인형 같은 미모가 아깝다고 생각되는 마왕이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차라리 못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쑤신 몸을 일으키며 덮고 자던 이불을 치웠다. 잠기운을 떨쳐 내기 위해 손을 올려 맨손 세수를 하며 물었다.

    “아니, 너 뭐하냐니까?”


    “보면, 모르나! 운동, 중일세!”


    “운동을 왜 내 방에서 하는데.”

    어느 정도 잠을  얼굴로 마왕을 살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건 스위치 게임 중 하나인 링피트였다.

    ……근데 나 링피트 없는데?

    그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다가  다른 게 떠올랐다. 어제  때까지만 해도 난 혼자였다. 그런데 일어나니 마왕이 있을 수가 없었다.

    “너 어떻게 들어왔어?”


    마왕은 춤을 끝내고 게임 도구를 가슴 앞에 든 채 말했다.


    “비밀번호 치고 들어왔네만.”


    “내가 가르쳐  적이 있나?”

    “꼭 가르쳐줘야 아는 겐가? 어제 자네가 칠 때 봤지.”


    “너 그거 주거 침입이야.”


    이제는 마왕의 기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별로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쟤  저러냐.’하는 생각이었다.

    아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모서리에 앉아 마왕이 하는 짓을 보려 했다. 그런데 마왕은 게임을 꺼버리는 거였다.

    “야, 너  꺼.”

    “자네 깰 때까지만 할 거였네. 일어났으니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냐. 좀 비켜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 했다. 방이 좁아 마왕 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경로였다. 땀 흘리며 얼굴에 홍조가 든 그녀를 보다가, 문득 눈에 거슬리는  있었다.


    “너 잠깐 가만히 있어.”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음? 자네 지금 뭐하는……!”


    “가만 있으라고.”


    땀으로 젖은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손가락을 펴서 쓰다듬었다. 축축하고 매끈한 감촉 가운데 이질감이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 원인인 머리카락을 마왕의 입 안에서 빼 줬다.
    마왕의 땀이 묻어 축축한 손가락을 그녀 추리닝에 닦으며 말했다.

    “머리카락 먹으면 맛있냐?”

    “오, 오……”


    “근데 넌 남의 집에 왔으면서  그렇게 땀을 흘리며 운동하냐. 이제 비켜, 화장실 가게.”

    “알았, 알았네.”

    평소와 달리 마왕은 묘하게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런 그녀를 지나쳐서 난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마왕이 말했다.


    “자네, 생각보다 여자를 두근거리게 할 줄 아는구만?”

    “뭔 소리야. 네가 운동해서 그런 거겠지.”

    “그건 아닌  같네만.”

    그 말을 무시하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이제 변기 커버를 올리고 바지를 내리는 데, 집에 마왕이 있는  떠올랐다.

    그랬다. 마왕이 있었다!

    집에 여자가 있다는 생각을 한 순간, 아까 내가 한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깨달았다. 용사였을때, 머리카락이  부하들에게 이런 걸 자주 해준 적이 있었다. 그 버릇으로 그만 마왕에게도 똑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오줌 싸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오늘은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봤다. 평소엔 하지도 않는 손을 씻으며 마왕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생각했다.


    들어오기 직전, 마왕은 내게 ‘여자를 두근거리게 아는 법’을 안다고 했다.  말은 내가 그녀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마왕의 얼굴을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굴이 붉긴 하더라도 방금 전까지 운동한  원인이었다.

    일단은 화장실에서 나가야 했다, 계속해서 여기 처박혀 있으면 의심할 게 뻔했다.

    문을 열고, 조심히 밖을 쳐다봤다. 마왕은 아까와 같은 위치에 서서 이 쪽을 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당당한 얼굴을 한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오줌발이 약하면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할 걸세!”

    응, 아니었다! 하긴 마왕이 그럴리 없지. 어제 피자를 그렇게 먹는 얘인데.


    “앉아서 싸서 그런 거거든!”


    후련한 마음으로 외치며 화장실을 나왔다. 화장실 문과 마주보는 곳에 있는 주방을 지나가다가, 그 위에 어제는 없었던 흰 봉투가 놓인  보였다. 그걸 발견하자 마왕이 먼저 말했다.


    “그거 자네 아침일세. 어서 먹게.”


    “뭔데 이거.”


    “아침엔 당연히 토스트 아닌가.”


    “뭐, 일단 고마워.”

    봉투를 뒤적거려 은박지로 감싸진 토스트를 꺼냈다. 온지  됐는지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은박지를 벗겨내고 한입 먹으며 마왕에게 걸어갔다.

    마왕은 링피트에서 콘솔을 분리하고, 책상 위에 세워 둔 스위치 본체에 결합하고 있었다. 허벅지를 감싼 검은 띠에도 콘솔을 꺼낼 때, 난 다시 토스트를 베어 물으며 물었다.


    “너 여기  왔냐.”

    “짐이 자네와 놀러 온 것처럼 보이나?”

    “놀러 온 거 맞는 거 같은데.”

    “정답일세, 용사여. 포상으로 스위치를 주지.”

    마왕이 ‘내’ 스위치를 건넸다. 그걸 받아들며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스위치의 온도가 심상치 않았다.

    “엄청 뜨겁잖아! 너 도대체 게임을 얼마나  거냐?”

    “짐이 따뜻하게 데워 놨네. 토스트와 같이 들게나.”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고.”

    “뜨겁다네. 혀 데지 않게 호호, 하고 불어 먹게나.”


    계속해서 헛소리를 하는 마왕. 그녀는 자기가 가져온 걸로 보이는 백팩 앞에 앉아, 링피트 부품을 넣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작은 파우치를 꺼냈다.

    “아, 게임 칩 좀 꺼내 주지 않겠나? 깜빡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파우치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엔 수많은 게임 칩이 들어가 있었다. 그에 비해 5개밖에 안되는 빈약한 내 게임칩들을 힐끔 보며, 게임기에서 칩을 꺼냈다. 그걸 받은 마왕은 파우치에 넣고 다른 걸 꺼내 내게 주었다.


    “자.”


    그건 내게도 있는 게임이었다. 아주 빈약한 자부심을 느끼며 그걸 말했다.

    “나도 있는……”

    “핥게.”


    “핥겠냐!”

    칩을 그대로 돌려줬다. 마왕은 그걸 파우치에 돌려 놓으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그러는 겐가?”

    “너야 말로 왜 그러는 건데?”

    “이건 짐이 아직 핥지 않은 것일세. 처음으로 핥을 기회를 자네에게  거란 말일세.”

    “이상한 쓴맛밖에 없는데 뭐하러 핥냐?”

    “그 쓴맛이 좋은 걸세! 자네는 칩을 핥아본 적이 없나?”


    “한두번 하다 말았지! 그럼 너는 칩을 다 핥아 봤냐?”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기 저 칩들은 아직 아무도 안 핥은 겐가?”


    “그렇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군!”

    그러더니 마왕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게임 패키지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난 서둘러  패키지들을 주워들었다.


    “너 왜 그래?”


    “불쌍한 자네 칩들을 핥아주기 위함이다만?”


    그럼 게임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 거 같잖아! 하고 말하려다 참았다.

    “이상한가?”


    “이상하지!”


    내 말을 들은 마왕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불평하는  멈추지 않았다.

    “아! 자네 불쌍한 칩들은 인간의 따스함을 절대 느끼지 못하겠구만.”

    “필요 없거든.”


    “그럼 이 칩이라도 핥아 주게나.”


    마왕이 자기 가방에서 게임 패키지를 꺼내 건넸다. 무인도에서 자기 집을 짓는 게임을 받아드는데, 패키지에 포장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걸 발견했다.


    “이거 신품인데?”


    “당연하지 않나. 자네와 같이 하려 어제 사 온 건데.”

    마왕은 파우치에서 같은 게임 칩을 꺼내고 있었다.

     한두끼라면 모를까, 이렇게 몇 만원 하는 게임은 선뜻 받기 부담스러웠다. 이걸 백팩에서 자기 스위치를 꺼내는 마왕에게 말해줬다.

    그녀는 전원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부담 갖지 말게. 짐의 소지금 내에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세.”


    “그래도 용돈 받고 그럴 처지일 건데.”

    “짐은 용돈 안 받네. 알바로 돈을 버네만.”


    “알바라고? 무슨 알바?”


    “음……”


    마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뭐, 대충 한철 장사 같은 걸세. 불법은 아니니 걱정 말도록.”


    “알바해서 받은 거면 더 미안한데.”


    “그럼 어제 때렸던 합의금이라 생각하게.”


    “알았어!”


     말을 듣자 마자 바로 포장을 뜯었다. 솔직히 어제 처맞은 것과 끌려 다녔던 걸 돈으로 합산하면 몇 만원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서로 어느 정도 합의가 된 거긴 했다. 그래도 밥 한두끼로는 좀 모자라긴 했다.

    “꽤나 시원시원하게 받는군?”

    ……게임을 받고 싶기도 했고.

    패키지를 열어 게임칩을 꺼냈다. 마왕의 마음처럼 따뜻한 게임기에 칩을 끼워, 게임이 깔릴 때까지 기다렸다.  사이 마왕은 먼저 게임을 켜서 플레이 중이었다.

    게임에 집중하는 마왕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여기 왜 왔냐.”

    “놀러왔다고 하지 않았나.”


    “진짜 놀러 온 거냐?”

    “그렇다네. 실은 어제 여기서 자네 스위치를 보고 놀러 오기로 결심했지.”

    “왜. 친구 자취방에 멋대로 들이닥쳐서, 무작정 콘솔 게임하는 것도 꿈이었냐?”

    “그렇지!  아는군!”

    비꼬는 거였는데 마왕이 너무 밝게 대답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대답하느라 들었던 고개를 내리고 게임에 집중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점심 먹고 같이 영화 보러 가는 것도 꿈이었다네.”

    “점심에 영화보자고? 내 스케쥴은 고려 안 하냐?”


    “어차피 자네 짐 제외하면 친구 없지 않나?”


    “……쳇!”


    사실이라 더 짜증났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여기서 샤워하고  걸세.”


    “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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