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X대로 다니면 X같지 (7/72)


  • 〈 7화 〉X대로 다니면 X같지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로 하고. 다들 다음에 봐요.”


    교수님이 책을 덮고 가방에 챙기면서 하신 말씀이었다.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은 책을 챙기며 “수고하셨습니다”며 중얼거리거나, 자기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외롭게 홀로 앉은 나는, 책을 덮지도 않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아, 뒤질 뻔했다.


    어제 대련을 가장한 매타작이 3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30분은 일상복으로 쳐맞다가, 나머지는 검도장 이름이 적힌 추리닝을 입고 처맞았다. 물론 나도 막기는 했다. 머리로 막고, 팔로 막고, 배로 막고, 허벅지로 맞았, 아니 막았다. 그저 죽도로 막지 못했을 뿐.


    그로인한 고통으로 난 제대로 자지 못했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오전강의에 늦을 뻔했다. 심지어 강의 도중에 수없이 졸아서 나쁜 의미로 교수님이 내 이름을 외우고 말았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지도 못 할 정도로 아팠으면 좋았을 건데. 그렇다면 병결 처리하게 병원 갔을 건데. 자고 일어나니 딱 움직일  있을 정도만 근육통이 사라졌다.

    그나저나 이제 뭐하지……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강의는 오전으로 끝이었다. 그 날 밤 이후로 유리와 이야기한  한 번 밖에 없었고, 유리 이외엔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과대 이야기해준 놈은 그거 말고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친구라고 할 만한 얘가 아니었다.


    순간 마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형같이 생겨서 마치 북유렵 미녀 같은 얼굴이었다. 그 안은 사람을 마구잡이로 패고 “아 재미있었다네!”라며 상쾌한 웃음을 짓는 괴물이지만.


    “지헌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멍이 들어 욱씬거리는 몸을 움직여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자리엔 과대가  있었다. 여자한테 잘먹힌다는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내려봤다. 어제부터 같이 붙어 다니던 유리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책상에 앉아 동성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

    방금 눈이 마주친  같은데 착각이었을까.


    유리에 대한 감정이 사라졌다고 해도 이 놈이 그렇게 좋게 보이진 않았다. 그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퉁명한 말투로 말하고 말았다.


    “왜.”

    어제 마왕에게 거절당했던 때와 달리, 과대는 당황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너 어제 소희 선배님이랑 피시방 갔다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제 누가 피시방에서 봤다길래.”


    그러더니 내게 자리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 안엔 나와 마왕이 웃으며 게임을 하고 있는 사진이 나와 있었다.

    내가 저렇게 활기차게 웃을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누가 멋대로 찍었다는 불쾌감이 올라왔다. 불편한 심정으로 폰을 거두는 과대에게 물었다.


    “이거 누가 찍었어?”

    “대훈이가 찍었지.”

    “걔가 누군데.”

    “저기 쟤.”

    과대가 가리진 쪽엔 살집이 있는 남자애가 강의실을 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약간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잘 기억해 보니 어제 피시방에서 나와 마왕을 보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얼굴을 찡그렸다. 주먹을 쥐고 싶은  참기 위해 손을 올려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거에 대해 별로 안 좋아하는 타입이야. 함부로 사진 찍히거나 뒷담화에 올려지거나 하는 거.”


    그런 건 용사일 적에 충분히 당했다. 내가 아주 조그마한 실수만 해도 귀족 놈들이 피라냐처럼 달려들었다. 그것 때문에 불륜설도 나돌았고, 마족과 내통하고 있다는 설도 돌았다. 다른 세계에서까지 누군가의 구설수에 오르고 싶진 않았다.


    “빨리 좀 지워줬으면 좋겠는데. 특히 마, 아니 소희선배는 지워야 될 거야.”

    나와 다르게 마왕은 어느 정도 재력가 집안이었다. 자기 딸한테 빈 검도장을  정도로 딸을 아끼는 아버지라면, 이렇게 초상권침해를 당한 거에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말에 과대는 빌어먹게도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알았어. 대훈이한테 빨리 지워달라고 할게.”

    “그럼 됐고.”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자려 했다. 하지만 볼일 끝난  알았던 과대가 다시 날 불렀다.


    “지헌아. 아직  말이 남았는데.”


    “또 뭐.”


    몸을 일으켜 과대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과대에게 무례한 행동이었을 건데 그는 기분나빠하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 건데. 소희 선배랑 만난 게임 좀 알려줄 수 있을까?”

    “……뭐?”


    “아니 유리가 소희선배랑  보니까 사이 좋아 보인다고, 같이 게임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래. 게임  알려주면 안될까?”


    “잠깐, 내가 걔랑 게임에서 만났다고?”

    걔랑 나랑 치고 박고 하면서 친해졌는데…… 가 아니지!

    피곤해서 머리가 잠깐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면 과대 놈이 터무니없는 말을 해서 뇌가 멈춘 거든가. 어쨌든 나는 마왕과 게임에서 만났다는 설정을 떠올렸다.

    “아 만났지. 어, 게임에서 만났다. 그런데 게임이름 알려 달라고?”

    “응.”

    얘는 왜 내가 선뜻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걸까.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거기 사람도 적어서 서버 닫았어.”

    “진짜로?”


    구라지,  멍청아. 그리고 진짜로 게임에서 만났다고 해도 퍽이나 알려주겠다.

    과대가  말을 듣고 순순히 자리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끈질겼다.

    “아니 그럼 한번 피시방이나 가지 않을래? 소희선배랑 너랑 나랑 해서. 아 유리도 하고!”

    “유리는 피시방 안 가는데.”

    “아 맞다.  유리랑 같이 자랐다고 했지. 유리 요즘 나랑 피시방 같이 다니고 있어.”


    내가 가자고 할 때는 한 번도 안 갔으면서!


    “그러고 보니까 유리가 너 얘기 많이 하던데.”

    “……정말?”

    “그럼! 진짜 나 만날 때마다 너 얘기하는데?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 같은 거.”

    유리가 이야기에 끼어드는 바람에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이때 내 머릿속을 맑게 해준  마왕이었다.

    “거기 지헌 있는가?”

    무슨 장판교의 장비마냥, 은발에 녹색 추리닝 차림을 한 마왕이 당당하게 강의실 문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내 옆에  있는 과대를 보고는 사라졌다.

    “쯧.”

    마치  볼  본 것 마냥 혀를 한  차고는 내가 있는 책상까지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미남 미소를 흩뿌리는 과대를 무시하고, 갑자기 내 등짝을 때렸다.
    짝!

    “아악! 이런 미친……!”


    멍든 등에 타격을 받으니 비명과 함께 욕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강의실 안이라 욕은 하지 못했고, 그저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대기만 했다. 마왕은 그런 내 모습이 재밌는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소가 걸린 얼굴로 마왕이 물었다.

    “자네, 오늘 점심도 짐과 같이 하지 않겠나?”

     입에 나오는 건 당연히 수락이 아니었다.


    “왜 만나자 마자 손찌검이냐! 어제 팬 걸로 만족 못하냐!”


    “어제는 짐이 일방적으로 때린  아니라 동등하게 대련한 거 아닌가.”

    “대련? 상장 수십개를 받은 사람이, 보호 장비도  입은 사람이랑 하는게 동등한 대련이냐!”


    “짐도 안 입었네만.”


    “나만 입어도 불공평하겠구만!”


    “그래도 크게  다칠 만큼으로 조절하지 않았나.”


    “죽지 않은 만큼 조절한  아니고?”

    “사내가 무슨 이렇게 말이 많나. 자, 어서 가세나!”

    마왕이 내 겨드랑이 밑에 팔을 넣어 억지로 일으키려 했다. 나는 “그거 성차별적 발언이다.”라고 하면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어제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자, 마왕은 나대신 책들을 가방에 넣어주고 가방을 매어줬다. 했다. 심지어는 내 팔을 자기 어깨에 걸쳐 거의 부축해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교실을 나가고 복도를 걸을 무렵,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걸음의 주인은 바로 뒤까지 가까워졌다가 목소리내서 마왕을 불렀다.


    “저기, 잠깐만요! 선배!”

    “……하아.”


    마왕은 조금 떨어진 과대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대놓고 한숨을 내뱉었다.  부축한 상태로 고개만 돌려 과대를 바라봤다.


    “뭔가?”


    저렇게 대놓고 싫어한다면 기죽을 만도 한데, 과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 내게 말 걸었던 것보다  상큼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세희 선배 게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저랑 같이 피시방 가실래요? 아! 지헌이랑 같이요.”


    마왕은 이제 날 부축하는 팔을 내리고, 천천히 과대 바로 앞까지 걸어가 물었다.


    “자네는 짐이 지금 그걸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안되나요?”

    “짐이 지금껏 살면서 자네 같은 놈  명도 못 본 줄 아는 겐가?”

    “선배님.”

    과대는 손을 들어 마왕의 턱을 잡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키스할 것처럼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저 같은 남자는 처음일 걸요?”

    이때 마왕이 날 향해 뒤돌아보고 있어서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자기 손을 휘둘러 과대의 손을 쳐내는 것만 보였다.

    “하! 씨이발, 지랄하네.”

    처음으로 마왕이 욕하는 걸 목격했다. 말투로 봐선 험한 말은 한 번도 안 할  같았는데, 이렇게 찰지게 욕할 줄은 몰랐다. 마왕의 욕에 과대는 강의실에선 보지 못했던 당황한 표정을 띄었다. 그런 얼굴에 대고 마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자네 얼굴을 무기로 삼는 건 좋으나, 무기는 가능하면 숨겨야 하는 법일세. 부디 그걸 자기 좆대로 휘두르지는 말게. 좆같으니까.”

     향해 돌아오는 마왕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내 팔을 자기 어깨에 올려 부축했고, 고개만 돌려 과대에게 말했다.


    “이번은 봐주겠네. 하지만! 두 번 다시 짐의 얼굴에 손대면, 그때는 짐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날  알았지만, 끈질긴 과대가 뒤에서 물었다.


    “선배! 이것만 말해줘요! 둘이 사귀는 거에요?”


    나는 보다 못해 소리쳤다.

    “그래! 사귄커헉?”

    내가 말을 끝마치지 못한 이유는 갑자기 마왕이 내 옆구리를 때린 탓이었다.

    “야!  때려!”

    “왜 짐과 자네 사이를 그렇게 만드는 겐가.”


    도와주려 했는데 이런 반응이라 짜증나서 외쳤다.

    “내가 왜 이런 여커허헉!”

    아까보다 더 강한 세기로 맞았다.


    “그건 또 그거대로 싫네!”


    뭐 어쩌라는 거야!


    어제 처맞기도 했고 방금 맞은  때문에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버렸다. 마왕에게 의지하면서 복도를 걷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뒤를 돌아봤다.


    과대는 아까 있었던 강의실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강의실 문엔 유리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유리는 얼굴을 찡그린  뭔가 말했지만, 거리가 있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기분 나쁜 얼굴로 과대에게 뭔가 말하다가, 과대가 무슨 말을 한 건지 금방 얼굴이 풀어졌다. 둘은 서로 손을 잡은  강의실로 들어갔다.


    “이보게.”

    옆에서 마왕이 말을 걸어 그녀를 쳐다봤다.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표정이라 나는 무슨 말을 할 건지 예상했다.

    “유리가 어떤 남자를 만나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걔가 선택한 거지.”


    “……”

    “그리고 이미  잊었다니까. 신경  써도 돼.”

    “……짐은 그저 어딜 들르겠다는 말을 할 거였다만.”


    “그럼 빨리 말하지! 그런데 어디 갈 건데.”


    “일단 와보게.”


    어제 검도장  때도 비슷하게 말하지 않았나?

    마왕에서 부축받아 도착한 곳은 학교 건물에 있는 정문이었다. 장애인 복지법에 맞게 계단과 휠체어 경사로가 되어 있는 정문에, 주인 모를 전동 킥보드와


    “오, 역시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군!”

    ……주인 모를 밧줄이

    “밧줄도 제대로 있구만!”

    ……있었다.

    여기 도착할 때 즈음엔 어느 정도 다리 힘이 들어와 서있을 수는 있게 됐다. 마왕은 그런 날 정문에 세워두고 자기 킥보드 옆에 놓인 밧줄을 주웠다.  밧줄을 들고 천천히 내게 가져오더니, 그걸로 내 허리에 두르기 시작했다.


    “너!”


    밧줄을 묶느라 마치 날 껴안은 자세가 된 마왕을 내려봤다. 은발 사이로 그녀의 살색 두피가 언뜻 보였다. 거기에서 풍기는 향기에 얼굴이 뜨거워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빌면서 물었다.

    “너, 뭐, 뭐하냐?”


    “어제 짐과의 대련에서 자네가 짐의 공격을  막았지 않았나?”

    마왕이  허리에 밧줄을 두르고 매듭을 묶자, 내게 떨어지더니 반대쪽 밧줄을 자기 허리에 묶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전생의 자네와 현재의 자네는 크나큰 신체적 차이가 원인이었지. 그래서 짐은 생각했다네.”


    자기도 밧줄을 묶고, 전동 킥보드에 올라탔다.

    “자네의 기초체력을 올려주기로.”


    “아니, 자, 잠깐만.”

    “걱정말게. 짐과 자네는 일심동체이니.”


    마왕은 밧줄을 당겨 자신과 나를 연결한 밧줄을 점검했다.


    “자! 이제 출발하겠네!”


    “어어? 어어어어어!”

    마왕은 휠체어 경사로를 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최대한 아픈 다리를 움직였다.


    이때, 내 바지 주머니 속 스마트폰엔 유리에게 문자가 왔다는 걸 난 몰랐다.




    유리: 지헌아


    유리: 아까 하준이가 복도에서 같이 피시방 가자고 했다는데

    유리: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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