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생사의 고비 (6/72)



〈 6화 〉생사의 고비

이런 감각은 전장에서 밖에 느끼지 못했다. 잠깐의 실수로도  목숨이 날아갔고, 지금 쓰러진 마왕 또한 내 실력에 운명이 결정됐다. 만약 여기서 이겨낸다면 마왕을 살릴 뿐만 아니라 최종 승리도 받아갈 수 있었다.


긴장에 숨이 가빠지고 내 귀에도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강하게 뛰었다. 손에 땀이 흥건히 젖어 금방이라도 쥔 걸 놓칠 것 같았지만,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몰라 손을  수 없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숨을 죽이며 주위에 귀를 기울일 때, 마왕이 소리쳤다.


“95방향! 95방향! 거기에 적일세!”

“어디, 어디 있는데!”


“95방햐아아아앙! 바위 뒤에에에!”


“어디 있냐, 아! 아니 어딨냐고! 아까부터 계속 물었잖아!”


헤드셋을 벗으며 바로 옆에 있는 마왕에게 소리쳤다. 그녀도 질세라 헤드셋을 벗은 채 내게 말했다.

“짐이 95방향이라고 계속 말했네만! 자네가 못 들은 거잖나!”


“네 방향에서 95방향이었잖아!  방향에서 알려줘야지!”

“그걸 짐이 어떻게 아나!”

강의가 끝난 3시, 그녀를 만나자 마왕은  피시방으로 데려왔다. 친구랑 같이 게임을 해보는 게 꿈이었다며 8시까지 같이 게임을 했다. 저녁은 피시방에서 파는 떡갈비 덮밥과 음료수(마왕님 카드 a.k.a 마카)로 때웠다.


그런데 이렇게 몇 시간이나 게임을 하니 눈이 빠질  같았다. 게다가 옆에서 내가 실수할 때마다 잔소리하는 마왕 때문에 대가리는 깨질 것 같았고.


“아니, 전장에서 병사를 지휘하던 용사 맞나? 왜 게임 실력이 그따윈겐가?”


“몇 년동안 이세계에 있었는데 당연히 실력이 떨어졌지!”


“정신은 다녀왔겠지만 육체는 어제 자네와 똑같지 않나!”

“신체 능력이 중요한  아니라 마인드가 중요한 거지! 정신력!”

“아까도 블랭할 때도 그 말하다가 미니언만 끌었지 않나! 짐은 자네가 패작하는 줄 알았네!”

“내가 언제 미니언만 끌었어! 아까 아리 끌어서 한타 이긴 거 기억 안 나냐!”

“결국 졌지 않나!”


“한타 이긴 거면 그 판은 이긴 거나 다름없는 거 모르냐! 너 진짜 게임 할  모르는 애구나!”

“저기……”


“왜요!”

“뭔가!”

갑자기 누군가 끼어들어서 사납게 대답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곳엔 여자 알바생이 두손을 모은 채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녀는 공손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두 분이 너무 시끄러우셔서 항의가 들어왔거든요.”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근처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  명이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말이 커진  자각하고 알바생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거, 미안하게 됐네.”

“아니요. 그, 게임할 때는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떠나고,  마왕에게 한마디했다.


“너 때문에 욕먹었잖아.”


“왜 짐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서로 투닥거리다가 배틀로열 게임은 끄기로 합의했다. 이제 할 만한 게임은 다 했고,  할지 고민했다.

마왕이 아직 남은 캔음료를 홀짝이며 물었다.

“이건 어떤가.”

“뭔데.”

그렇게 해서 쳐다본 그녀의 화면엔 커다란 원 그림이 띄어져 있었다. 아니, 그림이 아니라 움짤이었다. 원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소용돌이 그림을 만들었다.


“같이 시공의 폭풍 속으로 빠져보지 않겠나?”

“아 좀. 꺼져.”

내가 이세계에  년  있으면서 이런 현대 생활을 그리워했지만, 시공의 폭풍만큼은 아니었다.

그런 걸 할 바엔 차라리 유리한테 고백하고 말지.

내 거절을 들은 마왕은 눈썹을 들어올리며 따졌다.


“그럼 이제  할 거 있는 겐가?”


“글쎄……”


“아까 한 게임도 자네가 하자고 해서 한 거 아닌가.”


“그런 것치곤 엄청  올라서 하던데.”

“무릇 마왕이라면 항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 하는 법일세.”

“그래서 폭풍 게임도 하는 거냐?”

“그건 농담이었네.”

나는 음료수 캔을 들고 흔들어 내용물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저 빈 캔이었지만 남아있는 한방울이라도 마시기 위해 캔을 입에 대고 기울였다. 탄산이 다 빠져 달달한 검은 물 몇방울을 마시자 마왕이 말했다.


“이제 게임도 질렸고, 욕도 먹었고, 이제 나가는 건 어떤가?”

“뭐하게. 아까처럼 소리지르게 노래방이라도 가려고?”

“오, 친구와 같이 코노 가는 것도 버킷 리스트에 있다네.”

“안 가. 나 노래  불러.”


“……쳇, 그러니까 여자한테 차였지.”

“뭐 임마?”

“짐은 아무 말도  했네만?”


마왕은 뻔뻔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별로 화가 나진 않았다.


나도 어차피 실연당한 건   전(이세계 생활 포함)이고, 미련 같은 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유리가 이상한 놈 만나서 상처입는 것도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았고.

“자네 지금 유리양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말에 정신이 들어서 급하게 부정했다.

“아닌데? 아까 네가 윈스하면서 던졌던 거 생각한 건데?”

“아니, 그건 짐이 실수한 거라 하지 않았나.”

“네, 주방 아직 쿨이라고 했는데도 대놓고 들어가는 거 잘 봤습니다. 네.”

“키가 이상해서 그런 거였네! 절대 고의가 아니었네!”

“나는 네가 패작하는 줄 알았다, 진짜.”


“됐네! 어쨌든 피시방을 나가도록 하지.”

마왕이 소리치며 피시방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나며 같이 피시방을 나갔다. 피시방 건물 입구를 나서며 주위를 둘러봤다.

퇴근 시간대도 지나고 밤이 되어 있었다. 들어갈 때만 해도 대낮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피시방에 있다가 나오니, 가로등 빛이 햇살을 본 뱀파이어처럼 눈이 부시게 다가왔다. 아니면 그냥 눈이 피로한 거든가.

오랫동안 앉아있어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풀었다. 굳어버린 근육을 부셔버린다는 느낌으로 스트레칭을 하는데, 마왕이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야, 어디가.”

“따라오게. 짐이 재밌는 곳으로 안내하지.”

“어디 가냐니까.”

“도착했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지 않겠나? 어서 따라오게.”

일단은 의심쩍었지만 살랑거리는 은발을 뒤따라갔다.


피시방이 있는 건물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자 원룸촌이 나타났다. 내 자취방도 여기 근처였기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다. 동네 백수마냥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마왕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예지 능력이 있었다면, 당장 내 자취방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약 5분간 걸어서 도착한 곳은  건물이었다. 1층은 아직 불이 켜진 카페와 24시간 편의점이 있었다. 나는 카페를 보고 ‘친구와 카페에서 이야기하는  꿈이었네!’라고 마왕이 말할 것 같았지만, 그녀는  곳을 지나치고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어? 들어가도 돼?”

“왜 안 되겠는가. 어서 들어오게.”

고개를 들어 위층을 올려 봤다. 2층은 불이 꺼져 있었고, 3~5층은 사무실 간판이 달렸고 군데군데 불이 켜진 게 보였다. 이런 건물에서 나랑 뭘 하려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안 따라오는 겐가?”


건물 입구에서 마왕이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어어! 갈게!”

이렇게 말하자 마왕은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벽돌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니 마왕이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가슴팍에 칼을 꽂던 마왕이니까!

그래도 이건 심하다 해서 벽돌을 바닥에 던지고 건물로 들어갔다. 마왕은 내가 들어오는  확인하고 건물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2층에 위치한  꺼진 곳이었다. 그녀는 2층에 있는 유리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발꿈치를 들어 문 위쪽에 달린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마왕이 열고 있는 문엔 이런 글이 스티커로 붙어 있었다.


검 도 


도대체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자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철컥!

“됐네, 들어오게.”

열린 내부는 밖에서 봤던 것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마왕이 들어가고  바로 옆에 있는 스위치 켜는 소리가 들리자 불이 켜졌다. 그녀가 신발을 벗고 그 안으로 향하자, 나는  안을 볼  있었다.


들어가자 마자 바로 보이는 거울로 가득 메운  쪽에 목도인지 죽도인지 하는 것들이 쌓여 있었고, 그 반대편엔 철제 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들어가는 문과 마주보는 곳엔 밖에서 보이던 창문이 보였다.


나도 들어가면서 신발을 벗고, 검도장으로 보이는  내부를 걷는 마왕에게 물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냐?”


“뭐하는 곳이긴. 검도장 아닌가.”

“검도장? 함부로 들어와도 돼?”


“괜찮네.”

마왕은  향해 몸을 돌려 팔을 벌리며 말했다.

“여긴 짐의 아버지가 여기 주인이니.”

주위를 둘러보고 마왕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너네 아버지 검도장 관장님이셔?”

“아닐세.”

“그럼 뭔데.”

“여기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마왕의 손가락은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건물’을 이루는 바닥을.

“……”


“왜 짐의 손을 잡는 것이지?”


“우리 친구 맞지?”


“친구라고 주장하는 이마다 친구인 자가 없었네. 그리고 그 가식적인 웃음을 지우지 않으면 저기 있는  죽도로 죽도록 맞을 걸세.”

조용히 손을 놓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왕의 손엔 굳은살로 뒤덮혀 있었다. 아까 학교 흡연장에서 날 껴안을 때 힘도 그렇고, 운동 좀 한 모양이었다.


마왕은 내가 손을 놓았음에도 천천히 죽도가 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런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여긴 왜 데려온 거냐?”

“자네 혹시, 짐과 싸울 때가 기억나는가?”

“뭐?”

“그때 자네가 짐에게 치명상을 놓을 때 참으로 어이가 없었네. 이빨로 목을 물어뜯다니 말일세. 인간이 아니라 무슨 짐승인  알았네.”


마지막 말을 할 땐 내 쪽을 잠깐 돌아보다가, 다시 앞으로 향했다.


“아니 그때는 전시이기도 했고, 내가 많이 힘들어서.”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마왕은 무시하고 쌓인 죽도를 하나 집었다. 그걸 집어 들고 허공에 휘두르고는 말했다.

“참으로 아까웠네. 짐의 실력이 출중한 만큼, 자네도 만만치 않았으니. 하지만 그렇게 실력을 낭비할 줄을 꿈에도 몰랐네. 자네도 분명 아쉬웠을 게야. 분. 명. 히.”

마왕은 옅은 웃음을 띠며 날 바라봤다. 그 미소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어, 그게 있잖아.”

눈을 돌리며 화제를 바꿀 만한 것들을 찾았다. 그러다 생각치도 못한 걸 발견했다.


벽 위쪽에 사진과 상장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은발의 소녀가 검도복 차림으로 상장을  채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상장에 적힌 내용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상장에 있는 글을 읽었다.


최우수상, MVP, 올해의 선수상

대충 이런 상장들이 족히 열개는 넘게 걸려 있었다.

“너……!”


마왕은 내가 경악에 찬 눈과 마주치며 물었다.


“어떤가, 짐과 다시 붙어보지 않겠나?”


“아니, 너 그렇게 결판 낸  아직도 못 잊었냐?”

“당연하지 않나, 자넬 찾아다닌 이유  절반은 이것 때문인데.”

“그, 내가 진 걸로 할 테니까.”


“괜찮네.”


마왕은 자기가 들고 있던 죽도를 내게 던졌다. 가까스로 그걸 받고 다시 마왕을 보는데, 그녀는 어느새  죽도를 들고 있었다.

“자, 이걸로 자웅을 겨뤄보세!”


“으, 으아아악!”


자세한 일은 다루지 않겠다. 그저 시공의 폭풍 속으로 가는  나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얻어 맞았다고만 말할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ㅋ아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 중2병 선배랑  찐따랑 피시방 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사진을 보냈습니다
???: ㅈㄴ 시끄럽게 게임하는뎈ㅋㅋ 무슨 방송하는 줄 알았닼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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