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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학식은 돈까스지 (4/72)


  • 〈 4화 〉학식은 돈까스지

    점심시간이 된 학생 식당 앞은 당연하게도 많은 학생들로 붐볐다. 그런 그들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은색 머리를 한 그녀는 당연하게도 날 불러낸 마왕이었다.


    “오! 자네!”


    그녀는 날 보자마자 이쪽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에게 향해있던 시선이 내게 쏠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올려 최대한 얼굴을 가리면서 마왕에게 다가갔다.

    “이제 왔는가! 하마터면 안 오는 줄 알았네!”


    자기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모르는 마왕이 환하게 웃었다. 난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문자 수백개를 보냈는데 당연히 와야지!”


    “왜 그런가, 백통 조금 넘게 보냈다만.”

    “그거나 그거나! 내가 몇 번이나 알았다고 했잖아!”


    “수백번의 말보단 한가지의 행동이 낫지 않은가.”

    “아, 됐고. 여기 부른 이유가 뭐야.”


    “식당에 밥 먹으려고 불렀겠지, 왜 불렀겠나.”

    당연하게도 말하는 마왕의 얼굴을 보고 나는 잠깐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내가 죽은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한다고?”


    “뭐 어떤가, 지금은  살아있는데. 자! 어서 가자꾸나!”

    마왕이  손을 잡고 학생식당으로 끌고 갔다. 점심시간이라 식권판매기에 밀린 줄 끝에 서며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친구와 같이 학식에 줄을 서는 게 꿈이었다네.”

    “뭐? 너 친구 없냐?”

    “짐이 누군가의 위에 서는 재능은 있어도, 옆에 서는 재능은 없어서 말이지. 실은 짐의 친구는 자네가 처음일세.”

    “너 나보다 한   먹었잖아. 20년 넘게 살고도 친구가 없다고?”

    “음, 짐에게 다가오는 이는 많았지만 다들 오래가지 않았네. 왜 그런지 모르겠군.”


    나는 왜 그런지 그녀 말투를 듣고 잘 알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쭉 내밀며 불만인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귀엽게 보이다가도 날 찔렀던 걸 떠올라 마음이 식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니 그녀가  부른 이유를 생각해냈다.

    “그러냐. 그런데 누가 나 죽였다고?  출혈사로 죽은 줄 알았는데.”


    “분명히 출혈이 심하긴 했네. 하지만 마지막 상처는 다른 이가 입혔지.”


    “그게 누군데.”

    “짐도 사실 피를 많이 흘려서 말이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붉은 머리였어.”


    “……붉었다고?”

    “음, 그랬지. 게다가 짧은 머리였네. 아마 요만큼 왔지.”

    마왕이 자기 귀 바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짧고 붉은 머리.  말만 듣고도 마왕이 누굴 말하는지 깨달았다.


    “짐의 수하 중엔 그런 머리를  자가 없어서 말일세, 혹시 자네 쪽인가?”


    “아아, 내 쪽이야. 이름이 세라라고. 다크엘프랑 인간이랑 혼혈 있어.”

    고아였지만 왕실 암살단에 소속되서 냉혹한 암살자로 자란 사람이었다. 특기가 50여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화살로 동전 맞추는 걸로, 궁술이 뛰어난 여자로 기억했다. 처음 만났을  밥먹는 것도 명령하지 않으면  먹을 만큼 기계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같이 지내면서 웃기도 하고 사람 티  내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인  같았다.

     씁쓸한 표정을 보고 마왕이 물었다.

    “자네와 가까웠던 이였나?”

    “어느 정도는.”

    “미안하군. 자넬 괴롭게  목적은 아니었는데.”

    “아냐, 그럴만 하지. 전쟁이 끝날 때 되니까 왕실에서 날 안 좋게 보더라고. 죽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걔로 죽일 줄은 몰랐지.”

    “하! 역시 인간들은.”


    “지금은 너도 인간이야.”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마왕의 어깨를 약하게 밀쳤다. 마왕도 내 의도를 알았는지 연한 웃음을 띄면서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 있는  보며 말했다.


    “아! 도착했군! 어서 뽑게!”


    무슨 소리지, 하다가 뒤를 돌아보고 깨달았다. 이야기하는 사이 나와 마왕은 식권판매기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식권 판매기에 있는 터치패널을 보면서 마왕에게 물었다.


    “뭐 먹을래?”

    “자네는 뭘로 하겠나?”

    “나는, 무난하게 돈까스!”


    “오, 짐도 돈까스로 해야겠군!”


    “그러면 안되지.”

    “음? 무슨 말인가?”


    “나는 돈까스, 너는 다른 거, 그렇게 시키면 한번에  종류를 먹을 수 있잖아.”


    “오오! 아싸인 짐과 인싸인 자네는 다르구만!”


    나도 아싸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러고보니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유리와 밥 먹은 적이 한번밖에 없다는 게 기억났다. 첫날만 같이 먹었고, 다음날부터는 유리가 다른 친구들이랑 먹는 바람에 나 혼자 먹었다.

    “짐은…… 떡볶이로 하겠네!”


    마왕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마왕은 식권 판매기에 있는 터치패널에서 떡볶이 사진을 누르고 있었다. 그걸 보며 딴 생각한 게 들키지 않으려고 맞장구 쳤다.


    “떡볶이라, 좋지.”

    “자네도 누르게. 짐이 살터이니.”


    “네가 산다고? 그럼 치즈돈까스로 해야지!”

    “앗, 그렇다면 짐은 치즈떡볶이다!”


    마치 푸드코트에 처음  어린아이마냥, 마왕은 신난 표정으로 화면을 조작했다. 그녀가 카드를 꼽아서 결제하고, 조금 지나서 식권 판매기 옆에 있는 창구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각자 음식을 든 채 테이블 중에서 마주보고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았다.


    그곳에 가서 앉자, 마왕은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와, 짐이 이렇게 친구와 식사를 하게  줄은 몰랐네. 짐에게 이런 일을 가능케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네.”

    “고맙긴. 어서 먹, 어?”

    “왜 그런, 어?”


    창구에서 수저를 가져오는 걸 깜빡했다. 돈까스는 포크와 나이프가 같이 나와서 상관이 없었지만, 마왕이 시킨 떡볶이는 식기를 주지 않았다.

    그걸 보고 나와 마왕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져올게.”

    “괜찮네, 짐이 가져오지.”

    “산  너잖아, 내가 가져와야지. 앉아있어. 자리 지키고.”


    “음…… 알았다네.”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지만 마왕이 자리에 앉았다. 나는 금방 올게, 말하며 수저를 가지러 갔다.

    식기를 깜빡하는 실수는 여기 처음 왔을 때도 저질렀다. 지금 마왕처럼 유리와 나도 대학생이 되었다는 실감을 느끼며 학생식당에 왔었다. 어리바리타면서 주변 선배들한테 물어본 게 기억났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유리는 나와 따로 먹었고, 나도 자취방에서 라면이나 밥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그렇게 암울한 생각을 하며 식기를 가지로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마왕 옆자리에 과대가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과대 앞자리엔 유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는 바로 내 옆이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 마왕에게 식기를 건넸다. 과대는 그제서야  존재를 알아채고 인사했다.

    “어, 지헌아. 소희 선배랑은 언제부터 친해진 거야?”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데 마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말했지 않은가! 전생에서 친해졌다고 말일세!”


    ……이 멍청이가.

    나는 자리에 앉으며 아까 보낸 답장과 같은 말로 대답했다.

    “게임에서 만났다니까. 유리야, 안녕.”

    “어, 안녕.”


    내 오른쪽에 앉은 유리는 언짢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했다. 자기 앞에 라면을 두고 앉은 유리는 젓가락을 들기만 한 채 마왕과 과대를 바라봤다. 면이 불어가는 데도 그러는 걸 보면 자기 남친이 다른 여자 옆에 붙어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유리 남친은 자기 여친은 신경도 안 쓴 채 계속해서 마왕에게 말을 걸었다.


    “추리닝 소화하기 진짜 어려운데, 선배님은 원판이 좋아서 그런가봐요.”

    “흠, 그런가? 냠”

    “선배들한테서 추리닝만 입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진짜에요?”

    “녹색도 있다만, 냠”

    “노, 녹색이요?”


    “검정색도 있다네. 냠. 붉은색도 있고, 냠. 남색도 있지, 냠.”

    과대는 자기 음식은 먹지 않고 말거는 반면, 마왕은 자기가 한마디  때마다 떡볶이를 먹었다. 철벽치는 모습이 웃겨서 마왕에게 물었다.

    “넌 도대체 추리닝이 몇 개나 있는 거냐?”

    “짐 말인가? 10개 이후로는 세는 걸 그만뒀지.”

    “그게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않은가! 자네는 트레이닝복의 위대함을 모르는 겐가?”


    과대와 때와 달리, 나와 이야기하는 마왕의 얼굴엔 생기가 가득 차 있었다. 나한테 추리닝의 위대함을 말하는 마왕 옆에, 과대가 눈만 안 웃고 있는 얼굴로 쳐다봤다.


    뭐 어쩌라고.

    “하준아!”

    유리가 이때다 싶은지 과대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과대는 상냥한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쳐다봤다. 둘은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난 마왕의 헛소리를 들으면서 돈까스를 썰기 시작했다.

     세상을 두가지로 분류하자면 찍먹이냐, 부먹이냐로 나눌 수 있다.  파의 대립은 끝나지 않으며, 부먹이 정통이라는 정설이 나왔음에도  논란은 여전히 화제였다. 그만큼 돈까스를 먹을 때도 나는 두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미리 썰어서 한꺼번에 먹는 파, 아니면 먹을 때마다 잘라 먹는 파. 나는 전자였고, 돈까스를  때면 한입 먹고 싶다는 강령한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 참고 번거롭지 않게 한꺼번에 먹는 걸 상상하며 겨우 참아왔다.


    내가 이걸 말하는 이유는 바로, 마왕이 내 돈까스를 한입 먹었기 때문이었다.


    “안 먹을 겐가? 짐이 먹도록 하지, 냠.”

     부위는 소스가 흠뻑 젖어 들어 촉촉한 튀김옷이 완성된 조각이었다. 마왕은 그런 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떡볶이 국물이 묻은 젓가락으로 집어먹었다.

    “야아아! 그걸 네가 왜 먹어!”


    “아까 나눠 먹자고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미리 말해야지!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 나도 네 꺼 먹을 거야! 내놔!”


    “자, 먹게!”

    마왕이 자기 떡볶이 그릇을 내밀었다. 나는 포크를 들어 그릇 안에 있는 떡볶이,  아니라 표면 위에 크게 뭉쳐 있는 치즈 덩어리를 찍어 먹었다.


    “그걸 먹으면 어떻게 하나! 악마인 겐가?”


    “용사거든!”


    “그렇다면 짐은 마왕일세!”


    그러더니 다시 내 돈까스 조각을 집어먹었다. 그것도 치즈가 가장 많이 붙어 있는 조각이었다.


    “야!”

    “냠냠냠! 아, 용사 거라 더욱 만나는고만!”


    “!”

    다시 포크를 떡볶이 그릇에 찍었다. 이번에 노리는  어묵조각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찍으려 포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앗! 그건 반칙 아닌가!”

    “반칙이 어딨어!”


    마왕과 나는 서로 음식을 뺏어 먹었고, 그 싸움을 종결낸  유리였다.


    “둘이 많이 친한가보네?”

    유리의 목소리에 나와 마왕은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주위 시선을 끌고 있던 걸 눈치챘다.


    얼굴이 뜨거워지며 떡볶이 그릇에서 포크를 치웠다. 그런 반면 마왕은 웃으면서 내 돈까스 조각을 하나 더 집어먹었다.


    그걸 보고 다시 항의하려다 유리가 말을 걸어서 그러지 못했다.

    “둘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진 거야?”

    “어?”


    “초등학교때부터 같이 다녔는데 아는 사이라고 말도  했잖아. 서운하게.”

    나한테 남자친구있다고 이야기 안 한 건 다른 경우인가 보지? 라는 말을 겨우 참아내고 다른 말을 내뱉었다.


    “나도 이 사람이 여기 다니는 줄 몰라서. 어제 알았지. 어제.”

    “아 참, 유리야.”


    갑자기 하준이 내 말을 끊었다.


    “우리 교수님이 수업 전에 오라고 하지 않았어? 이제 가야 되지 않을까?”

    유리는 자기 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래? 아직 시간 남은  같은데.”

    “미리 가면 좋잖아. 빨리 가자.”

    그렇게 자리에 일어나다 말고 뭔가 떠오른 듯이 마왕에게 말했다.


    “소희 선배! 제가 선배님 번호 없는  같은데 주실래요?”

    하면서 마왕에게 자기 폰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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