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네가 왜 여기 있어? (2/72)


  • 〈 2화 〉네가 왜 여기 있어?

    “야 이 미친놈아!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었다. 한국어가 천국 공용어가 아닌 이상,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  있었다. 눈에 익은 골목길, 노랗게 켜진 가로등, 불 켜진 검은색 승용차. 이세계에서 눈을 뜨기 직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나는 죽자 마자, 다시 현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감각에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승용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운전자가 내린 것이었다.

    “뭐야,  다쳤냐?”

    방금 전까지 욕한 것치고 내가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정확히는 내 치료비를 걱정하는 거겠지만.

    일단 계속해서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콘크리트로 된 바닥을 짚고 일어나, 엉덩이와 손에 묻은 흙들을 틀었다. 그 사이 운전자는  어깨 너머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다친  맞아? 괜찮아?”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썹을 찌푸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 어깨와 몸을 매만지며 한마디 했다.

    “안 다쳤잖아. 이 새끼, 엄살은.”

    그때까지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걸었던 익숙한 골목길, 오랜만에 보는  같으면서도 낯선 주황빛 가로등, 회색 콘크리트 담벼락들.


    다른 세계의 크레이덴 왕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야, 받아.”

    운전자가 손에 뭔가를 쥔 채 내밀었다. 그걸 받아보니, 50000원권 두 장이었다.


    “그걸로 병원가고, 모자라면 전화해. 너 핸드폰 있지?”

    그 말을 듣고 바지 주머니를 만져봤다. 딱딱하고 납작한 물건이 있어서 꺼내 보니, 역시 내 스마트폰이었다. 폰에 지문을 인식시키고 화면을 키자, 음식 사진 배경으로 현재 시각과 오늘 날짜가 나왔다.

    “줘봐.”

    억지로 내 손에서 폰을 가져가고는 뭔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서 그에게서 핸드폰 컬러링이 들려왔다. 남자는 자기 폰을 꺼내 전화를 끊고는, 다시 내게 폰을 돌려줬다.

    “이걸로 연락처 교환했으니까 뺑소니라고 신고하면 고소할 거다. 저기 블랙박스 보이지?”

    그가 가리킨  앞유리엔 작은 붉은색 LED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밤이라  모이지 않았지만, 저게 블랙박스에서 나오는 빛 같았다.

    “저걸로 다 찍혔고, 번호도 줬다. 신고하면 무고죄로 고소 들어갈 거니까 잘 알고 있어…… 근데”


    그가 말하다 말고 내 뺨을 치기 시작했다. 아프라고 때리는  아니라 정신을 차리라는 듯 약한 세기였다.

    “괜찮아? 야, 정신 좀 차려봐.”


    “아, 네. 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다른 세계로 막 온 충격 때문이었는데 그는 내가 차에 치일 뻔해서 정신이 나간 줄 안 모양이었다.

    “이 새끼, 안 괜찮은 거 같은데.”

    남자는 지갑을 들더니 거기서 50000원 권을 한 장 더 꺼내 내게 건넸다.


    “자.”

    “아,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며 두 손으로 돈을 받았다.


    “그래, 이 새끼, 이제 정신이 돌아오나 보네. 뭐 다친 덴 없고?”

    “어…… 없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없냐고.”

    “없어요, 없어.”

    “그래, 나 바빠서 갈 테니까. 나중에 검사 받고 돈 모자라면  연락해라.”

    그 말을 남기고 운전자는 다시 차를 타고 떠났다. 나는 그런 차의 뒷모습을 보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내가 이세계로 가기 전 풍경이었다. 폰을 들어 다시 시간과 날짜를 확인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실연하고 차에 치이기 전과 돌아온 오늘은 동일한 날 같았다.

    이세계에 다녀왔던 게 절대 꿈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팔다리가 몇 번이고 날라가도 전투에 집중할 수 있는 수련이나, 비록 정략 결혼이었지만 신부의 베일을 올릴 때의 순간, 죽기 직전에 마왕과 나눴던 이야기들. 이런 게 또렷하게 기억났다.

    상황 파악하는 건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받은 돈을 주머니에 넣고 자취방을 향해 걸어갔다. 도로에서 얼씬거리다가  차에 치여 다시 이세계로 가는  싫었다.

    10여분 동안 걸어서 자취방이 있는 빌라에 도착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 방이 있는 층을 누른 뒤, 도착할 때까지 엘리베이터 안에 부착된 거울을 쳐다봤다.
    거울 속 나는 한심하게 보였다. 제대로 감지 않은 듯한 더벅머리에, 여드름 같은 피부 트러블은 없지만 거친 피부, 오랜 실내 생활로 인한 굽은 등, 오이처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듯한 이목구비. 그러니까 다른 남자한테 첫사랑을 빼앗기지, 라는 생각이 저절로 나왔다.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난 내려서 자취방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교가  근처였지만 성적을 잘 맞는 조건으로 부모님께서 얻어주신 방이었다. 여느 대학생 자취방이 그렇듯 침대 하나만 들여도 3분의 2가 꽉 찰 만큼 좁았다. 대학에 진학하면 많은 친구들이 생기고 잘하면 유리와 같이 놀려고 얻은 방이었다. 이제는  떠나간 꿈이었지만.

    어쨌든 난 신발을 벗자마자 바로 현관 옆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상의를 벗고,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처럼 거울로 날 비춰봤다.

    얼굴은 아까 봐서 알고 있지만, 상체는 얼굴을 볼 때보다  처참했다. 삐쩍 말라서 갈비뼈가 튀어나왔고, 군살이 덕지덕지 붙어 흉한 몸이었다. 이세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운동은 해본 적 없으니 하체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다른 세계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평범한 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단련한 몸을 보면 추하다는 말밖에 안 떠올랐다. 게다가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몸을 죽고 나서 잃어버렸으니 엄청난 상실감이 느껴졌다.


    과장 조금만 해서 뼈와 가죽밖에 안 남은 가슴팍을 손으로 만져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마왕의 마검이 꿰뚫었는데도 아무런 상처나 흉터도 보이지 않았다. 촉감도 그저 평범한 피부처럼 느껴졌다.

    다시 한  내가 정말 꿈을 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계에 다녀왔다는 증거는 내 기억밖에 없었다. 전생에 입고 있었던 갑옷과 장비는 물론이고, 근육이나 흉터마저도 다 사라진 채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과거였고, 내 내일은 강의를 가야 한다는 미래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잘 된 거였다.

    용사로 생활하면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초반에만 신났지, 가면 갈수록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루도 쉬지 않는 훈련때문에 내일 아침  뜨는 게 두려웠고, 전쟁 중엔  친한 전우들이 죽어 나가는 게 두려웠다. 더군다나 마왕을 물리치는 전쟁에서 모든 이가 날 의지했고, 내가 의지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용사가 아닌 나 강지헌으로 봐준 사람은 단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로 돌아오면서 그런 나날도 끝났다. 이제 평범하게 살면서 친구도 만들고 여자친구도 사귀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비록 첫사랑은 아프게 끝났지만.

    유리가 과대와 키스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광경을 직접 목격할 때처럼 쓰리진 않았다. 그냥 그랬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첫사랑에 대한 상처도 많이 아문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녀에 대한 마음이 다 식은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용사로 살았을 때 그렇게 바랬던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언제 잃을지 모르는  기회를, 난 후회없이 보낼 거라고 다짐했다.




    마음을 다잡으면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가 시작할 때까지 10분 정도 남아서 강의실 안은 자리가 넉넉했다. 딴짓하기 좋은 뒷부분은 다른 동기들이 차지했지만, 난 충실한 대학 생활을 보내기 위해 조금 앞자리에 앉았다.


    “지헌아!”

    내 이름이 들려 뒤를 돌아봤다. 유리가 날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옆자리엔 과대가 앉아 있는  보였다. 그들 주위에 다른 동기들이 둘러싸듯이 앉은  보니 둘이 사귀는 걸 당당하게 알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유리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앞을 쳐다봤다.

    몇 년이 지나도 첫사랑은 첫사랑인 듯, 어제 회상할 때와 다르게 직접 보니 가슴이 쓰려 왔다. 마치 나쁜 꿈을 꾸는 것처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 기분을 지우기 위해 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딱히 앱을 켜서 뭘 하기보다는 배경화면을 조작해 아이콘을 이리저리 이동시켰다.

    어제 몇 년만에(실제로는 하루만이었지만) 부모님께 전화하기 위해 폰을 들었을 때, 나는 터치라는 게 얼마나 신기한 건지 깨달았다. 갔다 오기 전엔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거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져보니 마법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진짜 마법을 처음 봤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매끈한 유리창을 만졌을 뿐인데  안에 있는 그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놀라울 뿐이었다.


    몇 시간이나 했지만 아직도 이런 게 재밌어서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해?”


    고개를 들자 유리가 보였다. 유리는 분홍 스웨터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차림이었는데, 마치 인터넷에서 본 듯한 신입생 룩 같았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그녀가 물었다.

    “너 뭐해?”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내 기억상 말을 건 쪽은 항상 나였다. 중학교 때 이후로 유리가 이렇게 말을 걸었던 건 오랜만이었다.

    “어, 어?”


    “아니, 너 뭐하냐고.”


    유리는 내 핸드폰 화면을 봤다. 아무 것도 켜지지 않은 걸 본 것 같았다.

    “너 게임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네?”

    “아니, 그냥, 보고 있었는데.”

    “맛있어 보여서?”

    내 폰 배경화면이 음식이 랜덤으로 나오는 거라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게 맛있어 보이긴 하지.”

    “하, 뭐야. 그럼 먹으러 가야지. 그런데 우리 쪽으로 올래? 강의 시작하기 전까지만 이야기하면서 놀자.”


    그녀는 초등학교때부터 같이 다녔던 나보다, 일주일 만난 대학 동기들을 ‘우리’라고 칭했다. 그걸 생각하면서 유리가 앉아 있던 곳을 쳐다봤다.

    이제는 유리의 남친인 과대가 자기 친구들과 웃으며 날 바라봤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 광고를 몇 년 동안이나 하는 연예인처럼 생긴 그의 얼굴에서, 난 거절을 읽었다. 그건 그 주위의 남녀 동기들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이세계에 다녀오기 전이라면, 유리랑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갔을 지도 몰랐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됐어.”


    “어?”

    “괜찮다고, 너네들끼리 놀아.”


    “어, 진짜?”

    유리는 내가 거절한  당황하며 다시 물었다.

    “진짜   거야? 저기 진짜 재밌어.”


    “괜찮다니까. 나랑 쟤들이랑  맞을  같아.”

    몇  동안이나 용사로 지내고 여러 파티에 다니면서 관상을 비슷한 걸 배웠다. 정확히는 얼굴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 읽는 법이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반강제적으로 배워버린 거였다.


    어쨌든 지금 저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를 읽으면 내가 어떻게 될 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무리에 들어간 초기엔 잘 대해주다가, 시간이 흐르면 심부름꾼이나 놀림감으로 전락할 게 뻔했다.

    그러고 보니 저 과대가 그 후작새끼랑 분위기가 닮았다. 잘생긴 외모에 연회장에선 용맹이니 어쩌면서 인기를 끌다가, 막상 마족이랑 전쟁 나니까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며 후방으로 튀어 버렸다. 그런데 후방에서  잘하던 사람의 자리를 뺏는 바람에 오히려 지원에 차질이 생겼고, 그 놈 때문에 안 죽어도 될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제 전쟁도 끝났을 건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빽이 있는 것 같으니까 처형은 안 당할 것 같은데.


    내가 거절하자 유리가 재차 물어봤다.

    “진짜  갈 거야? 쟤들도 하준이도 같이 놀자고 했다니까.”

    만만한 찐따 새끼 보이니까 데려오라고 했겠지. 그런데 과대 이름이 하준이었나.


    물론 이 말은 하지 않았다.


    “난 그냥 여기서 폰이나 보고 있을게.”

    “그냥 같이 가자, 응?”

    “아니야. 난 혼자가 편해.”

    “너 그러다 아싸 될 수도 있어.”

    그 말을 하면서  바라보는 유리의 표정엔 걱정이라는 감정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만만한 사람 잡아서 노는 인싸보다, 외롭더라도 편하게 있는 아싸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됐어, 나 그냥 아싸할래.”

    “아 진짜. 그래도 너 같이 놀고 싶으면 말해? 알았지? 기다릴게.”

    유리는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나는 그녀가 하준인지 뭔지 하는 과대 옆으로 돌아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차피 이미 떠난 첫사랑이었다. 7년동안이나 좋아했는데도 그녀가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던 거였다. 이세계에서 만난 부하가 그랬다. 짝사랑이 1년을 넘어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그 말처럼 난 유리에게 집착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걔 이름이 뭐였지? 래리였나? 아니 걔는 전쟁 하루만에 죽었지. 걔가 누구더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폰 화면을 조작했다. 아이콘을 이리저리 옮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강의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과 동기들 말소리가 멈추길래 교수님이 온 줄 알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강의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등까지 오는 은발을 길게 늘어뜨리며, 서구적이고 가지런한 이목구비엔 당당하게 웃는 표정이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아깝게 파란 추리닝 차림을 한 그녀는 정확히 날 보며 물었다.

    “어젯밤 꿈은 잘 꾸었는가, 지헌이여.”

    저번주에 단 한 번 보고 이세계에서 몇 년을 지냈어도, 그녀에 대해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백소희였다. 말투에서 풍기다시피 중2병이 좀 늦게 그리고  강하게 온 불쌍한 인간이었다. 예쁜 외모 때문에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지만 이런 성격이라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네?”


    백소희는 O.T가 끝나고 벌어진 술자리에서 내게 강한 충격을 준 인물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유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내게 다가와 영문모를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꺼냈다.

    그녀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면서  쪽으로 걸어왔다.

    “흠, 아직인겐가? 짐이 잘못 느꼈을리는 없을 텐데.”


    “저기, 무슨……”


    “혹시 짐이 기억나지 않는가?”


    “저번주, 그때 O.T에서 봤는데요.”


    “그때를 말하는 게 아닐세. 전생 말일세, 전생.”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그녀가 고민하듯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추리닝 차림에 정신만 똑바로 차렸다면 드라마에 나왔을 법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떠오른 건지 얼굴을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 이걸 들으면 알 지도 모르겠군!”

    “뭔데요.”

    선배는  강의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짐은 지금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있다네.”

    좋은 꿈.  단어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자네는 꿈에서 깨어난 상태겠지만 말일세.”

    좋은 꿈이라……. 좋은 꿈……

    생각날 듯 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답답한 듯이 자기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짐이란 말일세! 지크프리트!”

    “!”

    지크프리트는 내가 이세계에서 용사일 적에 쓰던 이름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좋은 꿈’이란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해냈다.

    “자네가 죽였던 마왕! 오다인 소피아 레비아탄! 기억나지 않는 겐가?”


    그녀는 바로 내가 죽였던 마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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