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보던 한정우는 가까이 다가온 사람을 보며 눈썹을 꿈틀 거렸다.
성문에서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는 상대가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채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진흙덩어리.
성문을 통해 나온 건 쟁반처럼 생긴 것을 들고 나오는 진흙덩어리였다.
“골렘이군요.”
“골렘?”
“네. 마석으로 움직이는 몬스터인데... 상대의 성취가 높지 못한 지 제대로 된 골렘은 아니네요.”
발포스의 말에 한정우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뚝을 두드렸다.
사람이 아니고 골렘이 나온 상황.
그렇게 된 이유는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외부인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평범한 도시였다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저런 큼지막한 성벽을 세우지도 않았겠지.
대격변이 일어나고, 워낙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경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술 거야?”
“아니요. 이걸 왜 부숩니까. 발포스는 말보다 주먹부터 나가는 걸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고치겠습니다.”
한정우의 말에 발포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에 한정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발포스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존재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자신의 말에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발포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도시에 들어오고 싶으면, 거기 안내문에 적힌 대로 하면 된다.
성벽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한정우는 고개를 낼려 쟁반에 담긴 것을 바라보았다.
철로 된 손바닥만한 작은 상자와 채혈도구, 그리고 그 옆으로 작은 안내문이 하나 있었다.
한정우는 그것을 들어 살펴보았다.
⌜도시민이 되기 위한 방법.
1.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을 입력한다.
2. 기존에 한국이었는지 입증하기 위해 피 한 방울을 뽑아 유리 병에 담는다.
3.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문을 보면 한정우가 눈을 깜빡거렸다.
험하게 경계하는 것 치고는 도시민이 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한정우가 손을 뻗어 철제 상자를 잡을 때였다.
“은행장님. 거기 제약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네?”
“그걸 등록하면, 이 도시의 주인에게 거역할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네요. 위치 추적 마법도 걸려 있고요. 그 외 여러 자잘한 마법도 있습니다.”
“...”
발포스의 말에 철제 상자를 잡으려던 한정우의 몸이 멈칫거렸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발포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민이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하긴,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버리면 믿을 수 있게 되기야 하겠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명령대로 움직일 테니까.
자신들을 거역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위험이 될 수 있을까.
‘조금 당혹스럽기는 하네.’
그들의 생각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당할 뻔했던 한정우의 입장에서는 조금 짜증나는 상황.
발포스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모르는 인간의 꼭두각시가 될 뻔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약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감수하고 안전한 곳에 들어갈지 몰라도.
한정우는 약한 사람도 아니었을뿐더러, 굳이 도시에 들어가야 할 입장도 아니었다.
굳이 이곳에 아니더라도 다른 도시가 있고, 지금도 코인을 잘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아. 그런데 은행장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네?”
“여기에 걸린 마법 자체가 약한 거라서요. 적당히 약한 상대에게는 걸릴지 몰라도, 은행장님처럼 격이 높은 이에게는 작동 자체가 안 될 겁니다.”
“아. 그런 가요?”
“네. 다만, 건방지기는 하네요. 감히 누구에게...!”
발포스가 주먹을 꽉 쥐며 성벽을 노려보았다.
그는 한정우가 피해를 입지 않은 것과 별개로, 인간들이 그에게 수작을 부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관리자들조차 한정우 앞에서는 몸을 굽혔다.
오직, 시스템의 창조자이자 최고 관리자만이 한정우와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대마신인 발포스조차 한정우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데.
인간들은 건방지게 한정우를 자신의 밑에 두려하고 있었다... 라는 게 발포스의 생각이었다.
그렇다 보니 더 크게 분노하고 화를 내는 거겠지.
발포스가 분노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한정우가 자신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 가만히 있으라 말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저 거대한 성벽도 한순간에 무너졌으리라.
“그럼... 이거 해도 된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치는 취해놓겠습니다.”
발포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철제 상자를 만졌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철제 상자가 웅하고 떨려 왔다.
“이거 문제 없는 거죠?”
“네. 문제 없습니다. 그저, 마법만 지웠을 뿐이니까요.”
발포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한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문에 적혀 있는대로 전부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발포스까지 등록이 끝나고, 골렘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골렘이 작은 카드 두 장을 생성해냈다.
그건 예전, 세상이 망하기 전 가지고 있던 주민등록증을 닮아 있었다.
다만,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주민등록번호 대신 이름과 소속 도시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한정우와 발포스가 카드를 나눠 가졌고 골렘이 성벽으로 돌아갔다.
-확인되었다. 이제 들어와도 좋다.
기계음의 말에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에서 발포스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따라왔다.
그는 힐끔, 석궁과 스피커가 있는 곳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중에 부셔버려야겠어.”
말을 놓고 있는 게 건방지다며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한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도시에 들어갈 때는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지만.
도시에서의 모든 일이 끝나고 나올 때 스피커를 부수는 것 정도는 상관없지 않을까.
안 그래도, 한정우 역시 성벽이 하는 말들이 거슬렸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하대하는 듯한 느낌.
한정우와 발포스는 그런 대우를 받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중에 적당히 대접은 해주고 가자 생각하며 두 사람은 조용히 성벽을 통과했다.
*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곳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곳곳에 괴생명체들이 나타났다.
땅은 갈라지고 거대한 나무나 넝쿨들이 건물을 부수고 땅을 뒤엎었다.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은 망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아갔다.
그들이 각성하였고 빠르게 도시를 수복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거처도 서울로 옮겨졌고, 도시의 주위로는 거대한 성벽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사냥반이 밖으로 나가서 코인을 벌어오고 생산직들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었다.
서로가 협력하며 살아가는 도시의 가운데, 높이 솟은 탑이 하나 있었다.
대통령의 거처이자 수도의 관리자들이 살아가는 관리탑.
높이만 100m가 넘는 그 탑은 어느새 서울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최고층에 자리한 대통령은 창문을 통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대통령은 짙게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두드렸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비서. 있습니까?”
“네. 대통령님.”
“이쪽으로 와서 한 번 보세요.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처럼 보이지 않나요?”
“...”
“지방에서 있던 내가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전부 대통령님께서 대단하신 덕분이죠.”
“맞아요. 저들은 저를 우러러 봐야 합니다. 저 때문에 이런 안전한 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죠.”
대통령은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눈에 사람들은 일개 가축, 혹은 곤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비서는 대통령의 생각을 알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수도에서 대통령은 왕이며 ‘신’이었다.
“오늘은 뭐 특별한 일이 없나요? 요즘 매일 같은 곳에 있으려니 조금 심심하네요.”
“오늘 새롭게 시민 둘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나쁘지 않네요. 노예가 추가 된 거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세요. 알죠? 저는 제 사람을 잘 챙긴다는 걸.”
“네.”
이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통령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 좋군요. 이런 경치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아요.”
그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대통령실을 가득 채웠다.
*
“상당히 사람이 많네요.”
도시 안에 들어온 한정우는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격변이 일어나 망한 도시치고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만 해도 수백명은 되어보인다.
“이 정도면, 코인도 잘 들어오겠네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도 차원 은행을 차리기에 가장 좋은 위치를 찾아볼까요?”
“예. 그게 좋겠네요.”
한정우의 말에 발포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정우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한정우는 발포스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녔다.
이곳에서는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새롭게 들어온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팔아요!
-보아뱀 튀김 팝니다! 아주 맛있어요.
-바다돼지 다리 구이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정도 복원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망가진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현대 문물들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뛰어다니며 자신의 물건을 팔고 코인을 벌었다.
-이번에 마석이 싼값에 나왔다고 하던데?
-나도 그 소식 들었어. 마석이 대량으로 나와서 값이 낮아졌다고 하네.
-하... 미치겠네. 마석 대량으로 사들였는데. 이걸 어떻게 하냐.
코인을 직접적으로 거래할 수 없으니, 마석을 대체하던 그들은.
매일매일 달라지는 마석의 시세에 울고 웃었다.
한정우는 그 모습을 전부 둘러보며 도시의 중심지로 향했다.
대통령의 탑이자, 관리자의 탑이라고 불리는 높은 건물의 바로 옆.
한정우는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은 통과해야 하는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면 되겠네.’
넓은 공터.
이곳에 무엇을 지을려고 하는지 공구와 자제들이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무슨 상관이야.’
한정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땅을 사시겠습니까?]
결국 세상은 코인으로 통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