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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06화 (106/113)
  • 제106화

    발포스가 날뛰었다.

    양들 속에 들어간 늑대처럼.

    그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사람들을, 인간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신기하게, 몸이 저렇게 되는데도 죽지를 않네.’

    발포스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팔을 뽑고 눈알을 파낸다.

    잔인한 손속은 저들이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죽지를 않는다.

    마치, 발포스가 마신으로서 인간에게 죽음을 허용하지 않은 것처럼.

    ‘피가 날 만한 곳을 전부 지져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한정우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그러다가 어쩌다 실수로 한 사람 정도는 죽일 수 있을 텐데.

    발포스는 착실하게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죽지는 않고 고통만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문.

    그래, 눈앞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어가는 고문을, 그들은 당하고 있었다.

    ‘애초에 죽어도 딱히 상관은 없지.’

    코인은 육체가 아닌, 영혼에 새겨지는 것이었다.

    차원의, 세상의 근원.

    그렇기에 그들이 죽는다고 해서 가지고 있는 코인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죽는다고 해도 영혼이 남아 있었고.

    영혼은 한정우의 거래처 중 하나인 저승으로 향한다.

    설령 영혼이 소멸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소멸한 영혼에서 코인을 떨굴 테니까.

    어찌 되었던 한정우에게 손해는 아니었다.

    그들이 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건 단 하나.

    아, 앞으로 코인을 뽑아내지 못하겠구나가 전부였다.

    ‘너무 쓰레기같은 마인드인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황당하든 생각에 한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런 걸 보고도 웃는다고?’

    그 모습을 보는 정미나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는 광경인데.

    차원 은행에서 나왔다는 양반은 저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웃고 있었다.

    발포스라 불린 사내가 자신의 명령을 착실하게 수행해 만족하는 것처럼.

    ‘내가 누굴 부른 거지?’

    정미나는 처음으로 한정우와 계약한 것이 후회가 되고 있었다.

    들개 무리의 우두머리를 쫓고자 공룡을 데려온 느낌.

    아니, 이건 그냥 인간이란 사람에게 자비도 없는 감정도 없는 두려운 존재를 데려온 것만 같다.

    그래서 두려웠고 소름끼쳤다.

    파르르.

    그녀가 헛구역질을 하고는 몸을 떨자 옆에 있던 한정우가 다정하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당신을 해칠 사람은 없으니까.”

    한정우의 말에 정미나의 표정이 새햐앟게 질렸다.

    그녀는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걱정의 대상이 잘못되었다.

    정미나가 걱정하는 건, 자신이 불러서는 안 되는.

    절대적으로 위험한 존재를 불러내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한정우의 시선이 들개 무리들에게 가 있지만.

    그 시선이 언제 다시 정미나에게 갈지 몰랐다.

    그때가 된다면, 그녀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겠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녀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웃음인들 짓지 못하랴.

    정미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을 보며 한정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리하고 있네.’

    한정우는 민나정의 속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라고 해서 지금의 광겨들이 편한 건 아니었으니까.

    바로 앞에서 사람들의 육편이 날아다니는데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그건, 격을 상승시킨 한정우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발포스, 조금 지루하군요. 빨리 끝냅시다.”

    “네.”

    한정우의 말에 발포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는 이 광경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말로는 지루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한정우는 피가 난자한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다.

    저걸 계속 보고 있으면, 밥을 먹기가 무척이나 힘들 것 같았다.

    “주인님께서 빨리 끝내라고 하시네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명령이 있었으니.

    발포스가 작게 중얼거리며 손바닥을 들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한 직후부터 줄곧 주먹을 쥐고 있지 않았다.

    주먹으로 때리면 그대로 죽을 테니까.

    그렇기에 오직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인간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꽈드드득.

    대표의 어깨가 뭉게지는 게 보였다.

    사람의 뼈가 저렇게까지 쉽게 부서지고 어긋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

    아니, 저걸 부순다고 해야 할게.

    어린아이가 찰흑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발포스는 아무런 제지없이 사람의 몸을 뭉게고 있었다.

    “제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네. 여기 대령했습니다.”

    한정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기 형체가 된 사람이 떨어졌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고치 형체의 모습은 살아숨쉰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어디가 입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

    아무래도.

    한정우가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에 발포스가 많이 화났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지 않겠지.

    “손속이 과했네요. 이러면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네. 뭐... 크게 신경 쓸 건 없습니다. 제 명령대로 살려는 뒀으니까요.”

    한정우가 크게 화내지 않은 이유는 하나.

    발포스는 그의 명령대로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한정우는 그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실수로라도 한 명 정도는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 말은 곧, 발포스가 한정우의 명령을 매우 중요하게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이건 좀 곤란하겠네.”

    고깃덩이를 살펴보던 한성태는 한숨을 내쉬더니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우웅.

    손가락에 끼어있던 해골 반지에서 보라색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아공간을 생성해냈다.

    “포션이 이쯤에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에 사두었던 포션이 있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효과가 좋다고 하던데.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할 일이 없어 쓰지 못했지만.

    이제야 겨우 한 번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디 보자. 대충 여기가 입인가.”

    한정우는 포션을 하나 들어 고깃덩이를 살펴보았다.

    촤악.

    얼굴의 형태로 보이는 부근에 포션을 뿌렸다.

    치이익.

    포션이 닿은 부위에서 마치, 고기가 불에 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우득, 우드득.

    뼈가 어긋나고 관절이 꺽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고기 형체가 사람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끄으으윽!”

    입의 형태가 돌아오기 무섭게 대표가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병에 남아 있는 모든 내용물을 부웠다.

    “아, 아파!!!”

    적당히 나아진 모습.

    여전히 괴상하고 죽지 않은 게 신기한 형태지만.

    그래도 말을 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포션 하나도 코인인데.

    처음 보는 사내에게 포션을 더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내가 포션을 산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 그냥 팔까? 어차피 쓰지도 못할 텐데.’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아공간의 부피만 차지할 터.

    그럴 바에는 필요한 사람에게 팔아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정신이 드십니까?”

    “아파... 아파!”

    “살고 싶으신가요?”

    “사,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너무 앞아요. 살려주세요.”

    한정우의 말에 대표가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게 들려왔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드리겠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대신, 당신이 계좌 개설을 하셔야겠네요.”

    “하, 할게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 하나로 대표는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대표의 모습에 한정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시스템을 조작했다.

    띠링.

    곧, 새로운 고객이 생겨났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만족스럽다.

    “그럼, 이제 당신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포션을 팔겠습니다. 원가는 30코인이지만, 특별히 저는 당신에게 20코인에 팔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참고로, 한정우가 포션을 샀을 때 가격은 8코인이었다.

    하지만, 대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알고 있다고 해도 대표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당장 그의 몸을 덮치고 있는 통증은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사, 사겠습니다. 제발 사게 해주세요!”

    고객이 사정하는 모습에 한정우는 바로 고객을 끄덕였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거래가 완료되셨습니다.”

    코인이 들어왔다는 메시지.

    한정우는 망설이지 않고 새로운 포션을 꺼내 대표의 몸에 부웠다.

    “허억... 허억...!”

    두 세병을 더 붓고 나서야 대표의 몸이 온전히 나을 수 있었다.

    “내, 내몸!”

    그는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과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한정우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고.

    ‘생각보다 가진 코인이 많네.’

    나쁘지 않은 고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꽤 오래 걸어와 사람들의 모욕 속에서 인내심을 보인 대가를 충분히 받은 기분.

    코인을 보기 무섭게 한정우의 속에 있던 작은 짜증마저 사라져버렸다.

    이제 그의 앞에 있는 건 소중한 고객님일 뿐이다.

    ‘아. 그렇지. 이것도 해결해야 하네.’

    한정우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움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미나가 그의 시선에 몸을 움찔 떠는 게 보였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한정우는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말했으니까.

    “정미나 고객님?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한정우의 말에 그녀가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노골적인 시선들.

    한정우는 저 시선에 담긴 의미들을 알 수 있었다.

    경멸, 두려움, 공포, 분노, 증오, 적의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다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한정우와 발포스를 이 자리에 데려온 게 정미나라는 것을.

    그래,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지만.

    “보는 시선이 불순하네요.”

    한정우의 한 마디에 그들이 바로 시선을 돌렸다.

    정미나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미나 고객님? 당신이 잘못한 거 없습니다. 고개 드세요.”

    “...네.”

    “고객님께서 이 건물의 구조를 잘 알고 계시나요?”

    한정우의 물음에 그녀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안을 살펴보고 싶네요.”

    그의 말에 사람들이 좌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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