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여기가 고객님께서 다니시던 일터군요?”
주변을 살펴보는 한정우의 말에 정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정우와 발포스가 함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모습은 측은지심마저 느껴지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불안해합니까?”
“...네, 네?”
“너무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당신을 위협에 빠뜨릴 수 없으니까요.”
한정우의 말에 조금 안심이라도 된 걸까.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애써 웃음을 짓는 그녀를 뒤로한 채 한정우는 걸음을 옮겼다.
6층의 건물.
그 앞으로 망가진 차들과 시멘트 등으로 이루어진 바리게이트가 있었다.
바리케이트 뒤로는 활과 검, 창을 든 사람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게 보였다.
‘조악하네.’
그들을 바라보는 한정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과연 그들은 얼만큼의 코인을 가지고 있을까.
한정우의 시선이 그들을 노골적으로 살펴보았다.
그에게는 저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코인으로 보이고 있었다.
아주 적은 코인부터 조금 많은 코인까지.
6층 건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직원들의 월급과 보너스는 챙겨줄 수 있으리라.
한정우는 슬쩍, 웃음을 흘리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바리게이트의 앞.
“멈춰!”
“너 뭐야 이 새끼야!”
“여기가 어느 구역인지 모르는 거야?”
바리게이트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 무기를 들어 한정우에게 겨눴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진한 경계심과 살기가 가득해 있었다.
‘너무 경계하는데.’
그들이 보이는 살벌한 모습에 한정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포스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근육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정우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순식간에 살육 현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포스.”
그가 손을 뻗어 발포스의 팔뚝을 꾹 눌렀다.
한정우의 손길에 발포스가 몸을 움찔 떨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그를 바라보며 한정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여기서 발포스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라고.
그의 신호에 발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인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발포스는 한정우의 명령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미, 한 차례 시스템의 구속에서 풀어줬기에.
더더욱, 발포스는 한정우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정미나 씨. 잠시 나와보시겠어요.”
한정우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정미나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마치, 자신이 정말로 나서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진 모습.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에도 한정우의 생각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정미나 고객님. 복수를 원하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협조해주시지 않으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아...”
한정우의 말에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녀가 나서야 일이 진행될 수 있다는 걸.
“안 꺼져?”
“저 새끼가 진짜 죽고 싶나!”
“야. 누가 가서 석궁 좀 가지고 와라! 저 재수 없는 면상에 한 발 박아줘야겠다.”
한정우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일까.
그들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소리치는 게 보였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줄곧 머뭇거리고 있던 정미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한 발자국 씩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구 소리치던 사람들이 멈칫거렸다.
그들은 정미나를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아돌아와서는 안 되는 사람을 본 듯한 얼굴.
“오랜만이에요.”
정미나가 그들을 향해 한 마디했고.
“으아아!”
“정미나가 살아 돌아왔다”
“당장 대표님한테 알려!”
그들은 난리가 났다.
*
대표는 기분이 좋았다.
사육장이 생각 이상으로 수입이 좋아졌고.
새롭게 들어온 자원들은 짭짤했다.
VIP 고객들도 만족하며 코인을 던질 정도.
이대로만 있으면, 코인 방석에 앉는 것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런 방해가 없다면, 코인 부자가 될 수 있겠지.
쿵쿵쿵!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그래, 문을 크게 두드리며 들어온 아랫놈들이 아니었다면.
그의 기분은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좋을 예정이었다.
“뭐죠?”
직원들을 바라보는 대표의 눈빛은 차가웠다.
자신의 기쁨을 방해한 원인이 대단한 게 아니라면, 바로 사육장에 던져버리겠다는 눈빛.
그 시선에 대표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들어올 때만 해도 급하게 움직였던 그들은 대표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대표님.”
“네. 말하세요.”
대표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대신,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살벌했다.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들어온 직원들 모두 사육장 몬스터들의 먹이가 되리라.
꿀꺽.
그 사실을 인지한 직원들이 마른 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대표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떨렸고.
직원들은 서로의 팔을 툭툭치며 네가 말해라 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말 안 합니까? 지금 제가 참고 있으니까. 만만하게 보이나 보군요.”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대표님!”
대표가 일어서려는 기색에 그들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황급히 소리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대표가 손을 들어 까딱거렸다.
“제 인내심의 한계가 바닥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저기, 그게...”
대표의 경고에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 모습을 보는 대표의 미간이 찡그러졌다.
“하아... 어떻게 한 번에 알아듣는 새끼들이 없지?”
대표가 손을 들어 직원 하나를 겨눴다.
그 행동에 직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살려...!”
콰직.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서 괴수의 머리가 나타나더니 상체를 물어버렸다.
그대로 사라지는 괴수의 머리.
직원이 있던 자리에는 상체를 잃은 하체만이 남아 있었다.
“히익!”
“끕!”
그 바로 옆에 있던 직원들이 헛숨을 들이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옆에서 한순간에 동료가 죽었는데,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하지만, 정작 사람을 죽인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짓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직원들의 얼굴이 조금 더 창백해졌다.
“안 말합니까?”
스윽.
대표가 다시 한 번 손을 들고.
“저, 정미나 배신자가 왔습니다!”
직원들 중 하나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 말에 허공을 휘저으려던 대표의 손이 멈칫거렸다.
“누가 왔다고요?”
“정미나 배신자가 지금 정문에 와 있습니다!”
“진짜인가요?”
“네! 진짜입니다!”
“당신의 목숨을 걸고?”
“...네!”
아니라고 해도 죽고 맞다고 해도 죽는다.
그럴 거면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는 곳에 거는 게 당연하다.
직원의 대답에 대표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거뒀다.
정미나...
그 이름을 중얼거린 대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정미나 팀장이 왔으면 대표인 제가 직접 마중을 나가야죠.”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사람들이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대표는 그 사이로 걸어가며 미소를 지었다.
“갑시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요.”
“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대표의 말에 직원들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으로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
“여기 의자를 가져왔습니다.”
발포스의 말에 한정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리니 발포스가 가져왔다는 의자가 보였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해온 거야?’
발포스는 어떻게 구해왔는지.
4인용 소파를 들고 와 바리게이트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와...”
“저걸 도대체 어떻게 가져온 거야?”
“새거 같은데? 미친 거 아니야? 지금도 저런 게 남아 있어?”
그 행동이 얼마나 신기했으면, 바리게이트에 있는 사람들조처 멍하나 바라볼까.
한정우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의자로 가서 앉았다.
예전이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정우는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자리는 겨우 그런 시선들에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약한 곳이 아니었다.
“괜찮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한정우의 말에 발포스가 씨익 웃는 게 보였다.
그런 둘을 정미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세요?”
“뭐가요?”
“아니. 적들이 바로 앞아 있는데.”
“적이요?”
그녀의 말에 한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살펴보았다.
정미나가 적이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차원 은행의 예비 고객들만이 보였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강하면 그렇게까지 태평할 수 있는 걸까요?”
“음...”
그녀의 말에 한정우는 턱을 긁적였다.
얼마나 강하냐라.
한정우는 고개를 들어 발포스를 바라보았다.
그 하나만 있어도 지구를 종말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환경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지구 전체에.
발포스는 그런 존재였다.
시스템조차 그 힘을 경계해 제약을 걸 정도.
그런 존재와 함께 있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한정우가 위협을 느끼려면 발포스의 공격이 그에게 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한정우는 다리를 꼰 채 정미나를 바라보았다.
“고객님께서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한정우의 대답에 정미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불안한 듯 바리게이트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정우는 그녀가 불안해하는 걸 굳이 풀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설명해도 정미나가 알아듣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차라리, 직접 힘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르다.
“슬슬 나오는 군요.”
기다리는 것도 지쳐갈 때, 발포스가 건물이 있는 방향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눈을 감고 있던 한정우도 바로 눈을 떴다.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
그 모습에 한정우는 눈을 깜빡거렸다.
휘익.
사내가 손을 휘두르고.
콰지직.
발포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언제나타났는지 모를 괴수의 머리가 발포스의 주먹에 부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