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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02화 (102/113)

제102화

“허억...! 허억...!”

부서진 건물의 잔해 속을 가로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은 공포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젠장, 젠장!’

취이익!

그녀의 뒤로 몬스터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2m가 넘는 크기의 오크들.

놈들은 그녀를 놓을 생각이 없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쿵쿵거리며 쫓아오는 오크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내가 왜 쫓겨야 하는 건데!’

그녀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평소였다면 일행들과 함께 안전하게 움직였을 텐데.

‘배신자가 있었을 줄은 몰랐어.’

그녀의 일행 가운데 배신자가 있었다.

세상이 망하기 전부터 친분을 다지고 있던 자신들 사이를 이간질로 갈라놓은 한 사람.

그로 인해 일행은 갈라졌고.

그녀는 오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공격 스킬만 있었으면 어떻게든 했을 텐데.’

정미나.

그녀는 힐러였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는 일행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버프 스킬과 상처를 치료해주는 스킬 밖에 없는 능력자.

공격 스킬 하나 없는 그녀였기에, 아무리 많은 오크를 잡은 경험이 있다고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 말고는 그녀에게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조차 이제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허억...! 커헉. 쿨럭...!”

애초부터 체력이 좋지 못했던 그녀는 계속해서 달릴 수는 없었다.

중간에 오크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면 모를까.

그녀의 느린 다리로는 오크를 따돌릴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발버둥칠 뿐이었다.

그것조차 이제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끝인가?’

체력이 한계까지 다다라 현기증마저 날 때, 정미나는 자신의 죽음 기다렸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자신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털썩.

바닥에 주저 앉은 그녀는 멍하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쿵, 쿠웅!

무거운 발걸음.

취이익!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침을 질질 흘리는 그 모습에 정미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현실에 나타난 오크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인간 따위는 한손으로 두 개고를 깨뜨릴 정도로 매우 강력한 존재.

소설이나 만화에 등장하는 전투력 측정기 취급을 당할 만한 존재가 전혀 아니었다.

일행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오크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제는 자신을 지켜줄 일행조차 없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집안에 조용히 있을 걸.’

객기를 부린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며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올 끔찍한 죽음을 기다렸다.

화르륵.

코앞에서 느껴진 뜨거운 열기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어?”

오크들이 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 그녀를 위협하던 오크 세 마리가 말 그대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걸까.

탄내만이 남은 자리에는 잿가루가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어째서 오크가 사라진 거지?

“괜찮으신가요?”

그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를.

그리고 그런 그를 지키듯이 서 있는 덩치가 큰 사내를.

“아...”

그들의 모습에 정미나는 긴장이 탁 풀렸고.

“감사...”

말을 끝까지 잊지 못한 채 정신을 잃어버렸다.

*

“음...”

한정우는 자신의 품안에 안기듯이 쓰러진 그녀의 모습에 눈을 깜빡거렸다.

오크들에게 죽을 것 같아 구해줬는데.

설마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기절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발포스. 제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요?”

“그럴리가요. 은행장님처럼 선한 얼굴은 보기 힘든데요. 아마, 도망칠 때 쌓여 있던 피로로 쓰러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발포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한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객이 하나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구해주기는 했는데.

기절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발포스를 돌아보았다.

발포스는 한정우의 품에 안긴 그녀의 모습에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감히 은행장님을 불편하게 해드려?’라는 듯한 표정.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한손을 휘저었다.

“그건...?”

“체력 포션이요. 예전에 사두었던 건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은행장이 되었을 초기.

은행원들의 체력을 바로바로 회복시키기 위해 샀던 체력 포션인데.

취침실이나 휴게실이 체력 회복 옵션이 붙어 정작 쓰지는 않았던 애물 단지.

3코인이나 하는 체력 포션이었지만, 여인에게 사용하는 그의 모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중에 청구하면 되니까.’

자신이 사용한 모든 걸 받아낼 생각이었으니까.

“으음...”

체력 포션을 목으로 넘기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옅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정신이 좀 드시나요?”

한정우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에 그녀가 멈칫거렸다.

아직까지도 한정우의 품에 안겨 있는 그녀.

“...”

눈을 끔뻑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멍해보였다.

침묵도 잠시.

“꺄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한정우의 품에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반응에도 한정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치던 그녀가 손을 들어 자신의 몸을 더듬거린다.

“...살았어?”

자신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

그 모습에 한정우는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정신을 잃으셔서 놀랐습니다.”

“아... 당신이 아까 그...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정우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허리가 구십도로 굽혀진 그녀의 모습에 한정우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서로 돕고 도와야 하는 세상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아... 진짜. 감사드려요.”

한정우의 말에 그녀가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의 반응에 한정우는 자신이 다 대가를 받아낼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혼자서 쫓기게 되었는지 물어도 될까요?”

“그게...”

잠시 망설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

한정우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아...”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에게 용건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

그녀의 개인 사정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도움...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럼 저 좀 도와...!”

“대신 저와 계약 하나를 해주셔야 합니다.”

한정우의 이어지는 설명에 그녀가 멈칫거렸다.

계약.

그 단어가 가진 힘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던 지구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녀가 눈을 데구르르 굴려 발포스와 한정우를 살펴보았다.

“계약이라면 어떤 걸 말하시는 건지?”

“간단한 겁니다. 당신이 제 고객이 되어주시면 됩니다.”

“...고객이요?”

“네. 제 고객이 되어주신다면 복지 차원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고객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도움은 한정우의 몫이었지만.

한정우는 그 사실을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새로이 고객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인데, 그런 걸 자신의 입으로 망칠 이유가 있을까.

“고객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별거 없습니다. 저희 차원 은행의 고객분들 중 한 분이 되시는 게 전부죠.”

“차원은행이요?”

“네. 차원 은행입니다. 은행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한정우의 물음에 그녀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응에 한정우는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살아가는 사람 중 은행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다못해 시골에 살아가는 노인들조차 은행을 이용한다.

“정말 고객이 되는 것 말고는 따로 대가가 없는 건가요?”

“물론이죠. 아. 고객님이 마신 체력 포션에 대한 대가는 치르셔야겠네요.”

“체, 체력 포션이요?”

“네. 고객님께서 죽을 실 것 같아서 체력 포션을 드렸거든요. 금액은 얼마하지 않습니다. 백... 오십 코인 정도에요.”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한정우는 가장 합당한 금액을 제시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오십 코인도 매우 적은 금액이었지만.

‘창고에서 썩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어차피 체력 포션을 쓸 사람이 없어서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코인을 벌어들이는 게 훨씬 나았다.

“그 정도라면... 네. 할게요! 저 고객하게 해주세요!”

대가가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녀는 바로 고객이 되겠다 말했다.

그 말에 한정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정미나’님이 석탄 계좌를 개설하셨습니다.]

계좌를 개설했다는 메시지.

‘이 메시지도 나중에 관리자 데리고 바꿔야지.’

한정우는 시야를 가리는 메시지를 살피며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메시지를 수작업이라도 하는 건지, 때에 따라서 내용이 바뀌었다.

나중에 확실하게 체계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새로운 고객인 정미나를 바라보았다.

“와...”

그녀는 계좌가 생겨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스마트 뱅킹보다 더 좋겠지.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이용하는 것도 간단하니까.

‘인증 절차가 필요 없으니까.’

한정우는 손을 휘저어 메시지를 치워냈다.

“계좌를 개설하셔서 알려드리는 건데. 저희 상품 중에는 대출도 있답니다. 아주 약간의 이자만 주신다면, 필요한 만큼 코인을 빌릴 수 있습니다.”

“진짜 은행이랑 똑같네요?”

“은행이니까요.”

한정우가 바로 대답하자 그녀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은행이었죠.”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뒤로 한 채 한정우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발포스가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발포스? 뭐합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정우의 물음에 발포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응시하고 있던데.

‘뭐. 알아서 하겠지.’

한정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구에서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아니, 지구가 아닌 그 어떤 차원에서 한정우를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한정우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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