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진작에 이렇게 하면 좋잖아요.”
한정우의 말에 폭주족들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들은 전부 계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바로 앞에서 발포스가 머리만한 주먹을 흔들고 있으니 개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객기를 부렸다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던가.
아무리 코인을 많이 얻고 싶다고 한들,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숨이 중요한 법이었다.
“도대체... 당신은 뭐하는 사... 존재입니까?”
폭주족의 보스는 힐끔, 발포스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보기에 한정우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강한 힘을 보유하고, 사지가 절단 된 사람들을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걸로 회복시킨단 말인가.
‘심지어 잘리기 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이야.’
한정우의 손에 의해 부활된 그들은 전보다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유가 한정우가 선물을 받았던 엘릭서의 힘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 참고로 당신들을 치료할 때 사용된 엘릭서의 비용도 청구할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아...”
한정우의 말에 그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한정우는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굽혔던 다리를 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폭주족들의 시선이 따라왔지만, 한정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발포스. 저희도 이제 출발하죠.”
“네.”
그들을 지나쳐 움직이려던 한정우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는 멈칫거렸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네?”
한정우는 자신이 오게 된 지역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
“여기가 대전이었구나.”
폭주족에게 정확한 위치를 전해들은 한정우는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구가 파산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정우는 경기도에 있었다.
부천 신중동역에 있었는데, 용계에서 바로 이동한 곳은 대전에 있는 은행동이라는 곳이었다.
한정우가 알기로는 은행동은 대전에서 번화가로 불리는 곳이라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번화가는 사라지고 건물의 무너진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아. 여기 빵 맛있었는데.’
대전의 명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빵집의 건물이 무너져 있는 걸 보며 한정우는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예전, 출장 때 대전에 올 때면 꼭 들려서 빵을 사가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 빵을 다시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여기 있던 빵집에 있는 빵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못 먹는다는 생각에 조금 아쉽네요.”
“아... 그러면 여기서 일하던 직원이라도 납치해 올까요?”
“...?”
발포스의 말에 한정우는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빵집의 제빵사를 납치하자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그렇죠? 어차피 코인도 벌어야 할 텐데. 아예 그냥 저희가 데리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괜찮네요.”
어차피 이 빵집의 직원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코인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코인을 벌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데.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잡을 바에는 자신의 밑에서 빵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루 12시간만 빵을 굽게 하고 나머지 시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면 되겠죠.”
“와... 그 정도면 진짜 평생을 몸 바쳐서 일해야죠. 다른 곳을 20시간 일해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럼, 우선 직원을 찾아야 하는데.”
주위를 둘러본 한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몬스터와 던전, 지진 등으로 인해 무너지고 망가진 주변.
보이는 거라고는 잔해였고 몬스터 뿐이었다.
발포스의 손에 쓸려나가는 몬스터들.
그 가운데에는 사람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찾을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음... 그래도 운이 좋으면 찾을 수 있겠죠. 아까도 인간들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렇네요. 뭐. 못 찾아도 상관없기는 해요. 빵이야 사 먹으면 되니까.”
비록, 이 빵집에서 먹었던 빵을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보다 맛있는 빵을 찾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충분히 괜찮은 빵을 살 수 있고.
‘애초에 빵을 그리 자주 먹는 것도 아니니까.’
한정우는 빵을 자주 찾아 먹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저 두 달에 한 번, 혹은 반년에 한 번 먹는 게 전부.
“그런데 저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음... 일단 발길 가는대로 가고 있기는 한데.”
발포스의 물음에 주위를 둘러보던 한정우는 걷던 걸음을 멈췄다.
한정우가 지금까지 걷던 거리는 은행동에서 가수원동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렇게 걸어가는 게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길이 많이 달라졌다.
가수원동으로 가고 있기는 한데,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폭주족 중 한 사람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봐요.”
“지금이라도 잡아올까요?”
“아니요. 그것도 시간 낭비죠. 일단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붙잡아서 길을 물어보면 되겠죠.”
한정우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 당장이라도 차원 은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뭐가 문제일까.
키에에엑!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르륵!
발포스가 손을 한 번 휘젓는 것으로 몬스터들은 한순간에 사라졌으니까.
그래, 말 그대로 사라졌다.
불길에 휩싸여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죠. 최근까지 너무 바쁘게 지냈잖아요. 뭔가 여유로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음...”
“은행장이라고 해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은행장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한정우가 지구에 내려와 영업하는 등의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시스템과 용계, 저승 등에 은행을 세우면서 무척이나 많은 코인을 벌어들였으니까.
‘지금도 코인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고.’
시스템에서 들어오는 코인도 상상 이상이었다.
이미, 코인이 조를 넘어서 세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코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솔직히 지금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지만.
은행장이 된 이후로 더욱 강해진 코인에 대한 욕심으로, 코인을 버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은행을 어디에 세우는 게 나을려나. 수도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지구는 워낙 많은 나라와 인구로 인해, 한 나라에만 은행을 지을 수는 없었다.
대륙도 나누어져 있어서 한 곳에 설치한다고 되는 문제가 없었다.
못해도 다섯 개 이상은 곳곳에 설치를 해야 그마나 전 세계적으로 고객들을 모을 수 있겠지.
‘지구에 하나, 미국에 하나, 러시아에 하나, 중국에 하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중에 생각하고.’
서울로 가려면 역시 걸어서 가기는 매우 힘들 것 같았다.
한정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발포스에게 말을 걸었다.
“발포스.”
“네. 은행장님.”
“탈 거 있습니까? 빠르고 편한 게 좋은데.”
“탈 것 말입니까?‘
”네.“
한정우의 말에 발포스가 잠시 고민했다.
그것도 잠시, 발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저었다.
”마침. 제게 탈 것이 하나 있네요.“
“어떤 거죠?”
“잠시만요.”
발포스가 한정우에게서 조금 떨어지더니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히히히힝!
그러자 마차가 한 대 나오며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음... 저거 타도 되는 겁니까?”
“네. 제가 길들인 지옥에서 사는 신수인데. 나름 탈만 합니다.”
마차의 외형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검은색 바탕에 금색 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그 주위로 불이 휘감고 있었다.
마차뿐만이 아니었다.
그 마차를 끌고 있는 말 또한 상태가 이상했다.
우선 매우 컸다.
한정우가 알고 있는 말보다 세 배는 더 큰 느낌.
코끼리보다 더 커 보이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불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명 살아 있는 말인데, 불로 형태가 이루어져 있었고 그 말발굽이 닿고 있는 바닥은 용암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신수라고 했더니. 확실히 평범한 말과는 다르네.‘
분명 현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정우는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런 현상에 놀라기에는 그는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일들은 지금의 현상에도 반응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음... 일단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이동하는 게 좋겠네요. 위로 올라갑시다.”
“네.”
발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정우에게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앞을 지나치던 한정우는 문득, 마부석에 누가 앉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화륵, 화르륵.
마부석에 앉아 있는 마부 역시 불로 뒤덮여 있었다.
다만 전체가 불로 이뤄져 있는 게 아닌, 해골 위로 불이 뒤덮여 있는 모습이었다.
지옥에서 불타는 죄수고 올라온 느낌.
한정우의 시선에도 마부는 정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푹신하네요.”
“그렇죠? 마계에 사는 고룡의 가죽과 지옥견의 털로 만든 마차입니다. 승차감이 좋아 다른 차원의 군주들도 탐내고 있죠.”
“그럴 만하네요. 따뜻하고 푹신한 게 상당히 편해요.”
한정우는 소파의 쿠션을 꾹꾹 누르며 감탄사를 흘렸다.
과장 조금 보태면 구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
그 정도로 상당히 편안했다.
히히힝!
한정우와 발포스를 태운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나오면 바로 멈추게 했으니, 그 전까지 쉬시면 될 겁니다.”
“네.”
그 말에 한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돌아보았다.
커튼이 처진 창문.
밖이라도 볼 겸, 한정우는 커튼을 거뒀고.
’눈 아프네.‘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바로 커튼을 거뒀다.
어찌나 빠르게 달리는지, 어떤 풍경이었는지조차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속도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아서 몰랐네.‘
워낙 편안해서 그런지 달리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스템이라도 정리해 볼까.‘
차원 은행의 구조를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한성태는 바로 시스템을 켰다.
그러자 보이는 차원 은행의 시스템 창.
확실히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보니, 너무 비효율적이란 말이지.‘
한정우는 자신의 은행이 효율없이 돌아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손.
히히힝!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말이 울면서 사람을 발견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