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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00화 (100/113)

제100화

[50,000코인을 대출하셨습니다.]

강대철은 자신의 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코인이 들어왔어.’

1, 2천 코인도 아니고.

무려 5만 코인이 계좌로 입금되었다.

그 사실에 강대철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차원 은행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지구가 파산하기 전, 물질만능주의라고 불리던 과거보다 더한 코인만능주의가 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아무런 담보도 없이 코인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계좌란 거. 정말로 코인 거래가 가능하잖아?’

심지어 코인을 빌리기 위해서 만든 계좌는 세상이 멸망하기 전 있었던 은행의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일을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대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쩌면 자신은 엄청난 존재를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건드려서 안 되는 존재를 건드린 건 아닐까 하고.

“진짜 오만 코인이야. 이거면 나도 강해질 수 있다고!”

문제는 강대철이 그리 오래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자신이 빌린 코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충분히 유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강대철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빌린 코인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 석탄이라는 등급은 뭐야?”

“현재 고객님의 계좌가 가진 등급입니다.”

“그럼 이 석탄 위에도 등급이 더 있다는 거겠네?”

“물론이죠. 위로 은도 있고 금도 있습니다. 그 이상의 등급도 있고요.”

“등급의 계좌가 올라갈수록 빌릴 수 있는 코인도 늘어나고?”

강대철의 의문에 한정우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강대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 하면 등급을 더 올릴 수 있... 넌 또 뭐야!”

한정우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강대철의 앞을 한 사람이 가로 막았다.

자신의 가슴에 얹어진 손에 순간적으로 화를 냈던 강대철은 상대를 자세히 살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커?’

2m는 가뿐하게 넘기는 발포스의 모습은 위협적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더군다나 그 몸이 전부 근육으로 이루어졌다면, 더더욱 큰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뭐, 뭔데!”

“이 이상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다가가면 뭘 어쩔 껀데.”

하지만, 코인을 앞에 두어서일까.

강대철을 감싸던 공포도 한순간에 사라졌고, 그는 더 많은 코인을 얻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강하게 나왔다.

그 모습에 발포스가 멈칫거리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사냥개처럼.

발포스는 한정우가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강대철 고객님.”

“뭐, 뭐!”

“저희가 고객님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한테 무례하게 구셔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한정우는 발포스에게 손짓하며 뒤로 물러나게 했다.

“저희에게도 예의를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한정우의 말은 매우 점잖았지만, 그 속에 담긴 경고는 섬뜩했다.

우득, 우드득.

그의 옆에서 발포스가 손가락을 풀며 강대철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코인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목숨이었다.

강대철은 그들의 시선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아아앙!

익숙한 소리와 함께 강대철이 소속되어 있는 폭주족의 식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

한정우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이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전부 다 가죽 자켓... 패션 센스도 영 아니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정우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었다.

머리카락은 모히칸을 따라 했고 맨몸에 가죽 자켓을 입거나 뾰족한 징이 밖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귀나 혀, 입술 등에도 피어싱을 한 사람들이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여러 의미에서 장관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창피하지도 않나?’

한정우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모습.

속으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겉으로는 절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프로였으니까.

장차 자신의 고객이 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래, 그쪽이 차원 은행에서 나왔다는 그 인간이 맞나?”

“네. 맞습니다.”

보스로 보이는 사내의 말에 한정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보스는 다른 폭주족들과 비교해도 가장 화려한 모습이었다.

입술에는 다섯 개의 피어싱이 달려 있었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반지들과 금과 보석으로 번쩍이는 가죽 자켓까지.

심지어 그가 타고 있는 바이크에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해골이 조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다는 게 딱 저런 모습이겠네.’

세계가 멸망해서 그럴까.

참,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구가 파산하기 전에는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인간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들조차 한정우의 고객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정우는 자신의 고객에게 한없이 친절한 은행장이었다.

“들어보니까. 코인을 빌려줄 정도로 코인이 많다던데. 그게 사실이야?”

“물론입니다. 저희 차원 은행은 고객님이 되신 분께 코인을 빌려드립니다.”

“흠... 그 고객이라는 거 되려면 조건이 있겠지?”

보스의 말에 한정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생긴 건 다짜고짜 코인을 내놓으라고 덤벼들게 생겼으면서.

정작 하는 행동들은 생각 이상으로 침착했다.

‘괜히 보스가 아니라는 건가.’

한정우는 씨익, 미소를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

사방에서 폭주족들이 놀라는 반응이 보였다.

그들은 강대철이 그랬던 것처럼, 계좌를 개설할 것인지 묻는 메시지가 떠올랐을 것이다.

“이게 뭐지?”

“보는 그대로입니다. 계좌를 개설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코인을 빌리실 수 있습니다. 추가로 계좌간의 거래도 할 수 있고요. 물론, 약간의 수수료는 받겠지만, 마석이나 아이템으로 코인을 거래하는 것보다는 싸게 먹힐 겁니다.”

“음...”

한정우의 설명에 보스가 눈살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정우는 그들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역시 나는 이런 걸 보고 있는 체질이 아니야.”

보스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바이크에서 내렸다.

“계좌는 모르겠네. 네 코인이나 내놔.”

“아...”

“보니까, 코인도 많은 것 같은데. 적선하는 셈 쳐. 무사히 돌아가고 싶다면 말이지.”

보스의 말에 한정우는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한순간에 부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 우리가 그런 걸 왜 해. 나는 단 한 번도 내 결정에 후회를 한 적 없어. 더군다나 이렇게 세상이 멸망하고 힘을 얻은 지금은 더더욱.”

그의 말에 한정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쉽게 가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무식하게 해야 하는 걸까.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그쪽의 의견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래. 잘 알아들었다면, 그냥 얌전히 코인이나 내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

“저희가 당신들에게 코인을 줘야 할 이유가 없거든요.”

한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발포스를 향해 손짓했다.

“죽이지는 마세요.”

“예!”

그의 말에 발포스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폭주족들의 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저 떡대 하나 믿고 그러는 거야? 하... 요즘에도 이런 새끼들이 다 있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죽입시다 형님!”

“네. 그냥 죽여버려요! 어차피 저놈 죽여도 코인은 나오잖아요!”

보스의 말에 폭주족들이 괴성을 지르며 손에 든 무기를 마구 흔들었다.

“그래, 그냥 죽...”

보스가 입을 열어 명령하려고 할 때였다.

콰직!

보스의 앞에 있던 폭주족 하나가 발포스의 주먹에 맞고 저 멀리 날아갔다.

폭주족은 벽에 처박히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

그에 멍하니 앞을 바라본 보스는 발포스의 덩치가 전보다 더 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자, 잠...!”

콰직. 쾅!

끄아아악!

때는 이미 늦었다.

*

끄어어억.

사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핏물이 땅을 적셨고 본체와 분리된 팔과 다리들이 땅을 뒹굴고 있었다.

한정우는 그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죽이지 말라고 했다고. 정말로 죽이지만 않았네.’

발포스가 만들어낸 참상을 보며 한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맡은 임무는 완벽하게 해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발포스의 손속은 과했다.

단순히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들 하나하나가 결국 내 고객이 될 텐데. 한 사람이라도 죽는 건 아쉽잖아.’

이왕 죽을 거면 계좌를 연결하고 죽어야지.

나중에 발포스에게 따라 이야기를 하겠다고 생각하며 한정우는 참상 속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강대철에게 다가갔다.

“히... 히익!”

그는 한정우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정우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강대철 고객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소중한 고객님께 함부로 흠집을 내지 않거든요.”

“...”

“그나저나. 이 사람들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건가요?”

“네. 가능합니다.”

한정우의 물음에 발포스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보스에게 다가갔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볼까요.”

“끄어어어.”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해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겠죠.”

“사, 살려...”

“물론 살려드려야죠. 저희의 소중한 고객님이신데.”

다정한 한정우의 말에 폭주족 보스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마치,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 후회하는 얼굴.

그 눈빛을 마주하며 한정우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자.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제 고객님이 되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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