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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96화 (96/113)

제96화

쾅, 콰앙!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충격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한정우는 바로 앞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는 신룡이 타온 차를 마신 채 태연하게 발포스와 카셀린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셀린이 강하기는 하네.’

한정우의 시선이 카셀린에게 향해 있었다.

본래였다면, 한정우의 눈은 두 사람의 전투를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발포스와 카셀린은 눈 한 번 깜빡할 때 수십 번의 주먹을 오고 갔고.

그들의 움직임은 빛보다 빨랐다.

한정우는 그들의 움직임은 모두 시선에 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그의 눈동자가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그가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격의 상승.

코인으로 올린 격이 그들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정우가 저 사이에 끼어들어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지켜볼 수 있다는 거였으니까.

볼 수 있는 것과 싸우는 건 엄연히 느낌이 달랐다.

한정우는 단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생물을 죽인 던전에 들어가기 전, 몬스터들을 죽인 게 전부였다.

한정우가 저 사이에 끼어들었다가는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몸이 터져나가리라.

‘굳이 내가 싸워야 할 필요는 없지.’

한정우는 자신이 약하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고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잘 싸우지 못한다고 해서 그가 살아가는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한정우는 어떻게 보면 사무직이나 다름 없었다.

싸우기 보다는 돈을 굴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싸우기 위해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직접 싸우기보다는 경호원을 고용해 자신을 대신해 싸우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한정우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당장 몇 개의 차원을 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의 자금은 계속해서 불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그의 옆에 있는 경호원들도 역시 늘어날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그가 은행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승과 지구, 그리고 시스템의 탑에 있는 은행 모두가 그의 것이었다.

이제는 용계마저 그의 것이 되었고.

한정우는 이곳을 관광지로 만들 생각이었다.

불가능이란 없었다.

코인만 있다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한정우에게는 그만한 코인이 있었다.

“좀 늦네.”

발포스와 카셀린의 전투를 바라보며 한정우는 툭툭, 찻잔을 두드렸다.

발포스라면 카셀린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카셀린은 강했고 전투가 길어졌다.

‘나 때문인가.’

한정우는 싸움이 길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발포스는 한정우에게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힘을 조절하며 싸우고 있었다.

문제는 카셀린이 힘을 조절하며 싸워도 될 정도로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였다.

“...시간은 코인인데 말이지.”

한정우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격이 상승하면서 성격이 변한 것일까.

한정우는 두 존재의 싸움이 지루해져만 갔다.

저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얼마나 많은 코인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내 말을 발포스에게 전할 수 있겠어?”

한정우는 자신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신룡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네, 네?”

신룡이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

신룡은 발포스와 카셀린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두 존재의 전투는 신룡의 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강한 파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신룡은 자신이 발포스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만약 자신이 한정우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려고 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났겠지.

‘엎드리자. 바짝 엎드려 있는 거였다.’

신룡은 한정우를 슬쩍 바라보며 두 번 다시 개기지 말자고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괜히 마음에 안 든다고 덤볐다가 그대로 목이 잘려나갈 수도 있었다.

수 천년을 살아온 신룡이었지만, 그는 아직 더 살고 싶었다.

카셀린과 싸우는 발포스를 바라보며 신룡은 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신룡이라는 이유로 나대지 말자고.

‘바로 앞에서 저러고 있는데, 차를 마시고 있는 저 인간도 정상적이지 않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려오는데.

한정우라는 은행장은 그 전투를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었다.

차를 홀짝이며 너무 태연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신룡은 한정우도 정상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저런 존재에게 덤비려고 했다니.

신룡은 자신의 무지함에 혀를 내둘렀다.

“내 말을 전할 수 있나?”

한정우를 바라보던 신룡은 그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네, 네?”

그는 자신이 한 대답을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네, 네?’라니.

너무 멍청한 대답이었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어 자신을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한정우를 바라보는 신룡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신룡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정우를 바라보았다.

“내 목소리를 전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가, 가능합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한정의 모습에 신룡은 황급히 대답했다.

이번에도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는 발포스가 없는 지금, 한정우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그대로 자신이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자도 마음대로 불러내는 놈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신룡은 멍청하게 일을 벌이는 용이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잘 알았다.

“어떤 말을 전하면 될까요?”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실망할 것 같다고 전하면 돼. 내 신경은 쓰지 않고 힘쓰라고 말이야.”

한정우의 말을 들으며 신룡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발포스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저게 힘을 제한하고 있는 거라고?

용계의 최강이라고 불리는 카셀린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 저 모습이?

카셀린은 강자였다.

그것도 시스템이 인정한 강자.

카셀린이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차원들은 단신으로 지울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강한 존재였고 신룡인 그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상대로 힘을 아끼고 있는 발포스는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발포스를 부리는 인간이라니.

신룡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여기서 더 고민을 한다는 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신룡은 날아올랐고 발포스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를 전했다.

“은행장님께서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하십니다. 빨리 안 끝내면 실망하실 것 같다고요.”

신룡의 말에 발포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에 신룡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으니 빨리 정리하라고 하십니다.”

신룡은 겨우 말을 전하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발포스의 시선이 한정우게 향했기 때문이다.

한정우는 발포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신룡은 발포스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주인께서 그만 끝내라신다.”

발포스의 말에 카셀린이 크게 분노했다.

“네놈. 감히 누굴 무시하는 거냐!”

카셀린은 자신을 상대로 발포스가 힘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이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크게 화를 터드렸다.

그녀의 분노에 발포스는 웃음을 흘렸다.

“무시할만 하니까. 무시를 하는 거다.”

그의 손이 우악스럽게 카셀린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카셀린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쳤지만, 거미줄과도 같은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카셀린을 잡은 그의 온몸에서 용암이 흘러내렸다.

지옥의 불보다 뜨거운 그의 불은 용으로 변한 그녀의 비늘조차 가볍게 녹여버렸다.

캬아아아악!

비늘을 녹이고 살을 태우는 통증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발포스는 그녀의 입을 콱 붙잡고는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틀어막았다.

우드득.

그녀의 목에서 부셔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발포스의 힘이 제대로 개방되고 용계는 우르르 떨렸다.

그의 힘을 제대로 받아내기 힘들다는 듯이 그의 반경 1km내에 있는 공간이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발포스가 뿜어내는 열기에 무엇이든 녹아버렸다.

그저 힘을 보였을 뿐인데도 용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 죽이지는 마세요.”

그때 들려온 한정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카셀린은 그대로 머리를 잃어버렸으리라.

그의 목소리에 발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구나. 건방진 용아.”

그는 카셀린의 머리에 달린 뿔을 잡아 부러뜨리더니, 그녀의 몸을 땅으로 내던졌다.

발포스가 뿜어내던 열기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땅에 떨어진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친다.

카셀린을 내려다본 발포스가 한정우를 향해 돌아간다.

촤르르륵.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나타난 금색의 쇠사슬이 발포스의 팔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시스템 오류 발생.]

[대마신 발포스가 강제로 힘을 개방한 흔적을 발견합니다.]

[시스템이 발포스에게 제약......]

발포스를 억압하는 쇠사슬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한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스템이 움직여 발포스를 억압하고 있는 게 보였다.

발포스는 그의 명령을 듣고 힘을 개방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닌, 직속 상관인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게 맞다.

한정우는 발포스가 강제당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따악.

그의 손가락이 튕겨졌고.

특급 관라지를 호출하는 구슬에 빛이 들어왔다.

-저를 찾으셨습니까.

서열 72에서 특급으로 승진한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를 바라보는 한정우의 눈빛은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관리자가 몸을 움찔 떨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정우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던 것이었다.

코인으로 격을 올린 한정우의 기세는 예전과 달라졌다.

한정우는 은행장, 그의 은행이 늘어나고 자금이 늘어날수록 그의 격도 함께 상승한다.

관리자에 비하면 아직 약하지만, 그럼에도 한정우의 기세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특급 관리자는 한정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고 관리자가 직접 한정우를 자신을 대하듯 모시라고 말한 상태였다.

그런 존재의 기분이 나빠 보이니 특급 관리자가 긴장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잘못 하다가는 특급 관리자에서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수도 있었으니까.

“저거. 해결 가능합니까?”

한정우의 말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하나의 풍경.

그곳에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쇠사슬에 가만히 묶여 있는 발포스의 모습이 있었다.

시스템과의 계약을 어긴 죄인들에게만 생성되는 제약의 사슬.

“해결해주셨으면 좋겠는데.”

한정우는 그를 바라보며 저 사슬을 없애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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