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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94화 (94/113)
  • 제94화

    “용계를 원합니다.”

    한정우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용계. 그것을 달라고.

    “어... 음. 용계 말인가요?”

    “네.”

    관리자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그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데구르르 굴리고 있었다.

    용계를 원한다.

    “그러니까... 그곳의 자원을 원하신다는 거죠?”

    “차원 전체를 가지고 싶다는 겁니다.”

    “...”

    한정우는 매우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관리자는 더욱 당황한 기색이었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게 이렇게 당당하게 차원을 달라는 고객은 없었다.

    시스템은 최대한 자신들에게 종속된 차원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

    빚을 지고 기한까지만 갚는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시스템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시스템을 아는 이들은.

    시스템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시스템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스템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스템은 대가를 꼭 받아내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꼭 필요하지 않은 이상, 상응하는 대가를 준비하지 않고서는 시스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시스템에게 빚을 지는 건 그야 말로 최악이었으니까.

    하물며 최고위신들조차 신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거래를 하지, 그 이상의 빚을 내지 않는다.

    아니, 다 떠나서.

    시스템에게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강압하지 않았다.

    시스템과 적대한다는 건 수천 만개의 차원들을 적으로 돌린다는 거였으니까.

    “제가 잘못들은 거겠죠? 왠지 은행장님께서 차원을 달라고 하신 것 같은데...”

    “잘 들으셨네요.”

    “...음.”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제대로 들었다고.

    “저... 은행장님?”

    “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계시나요?”

    “힘든가요.”

    “물론이죠.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저희가 차원을 하나 사들이는데 얼마를 내시는지 아시기는 하시나요?”

    관리자는 매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최고 관리자를 만날 때에도 이렇게까지 감정 변화를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그는 매우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얼마입니까?”

    감정 변화가 매우 다양한 관리자와 다르게, 한정우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사무적인 미소만을 띄운 채.

    “네?”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당당한 그 태도에 관리자가 당황했다.

    뭐지, 평소의 한정우가 아니었다.

    아니, 전에도 좀 속물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리자인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굴지 못했는데.

    ‘창조주님을 만나서 그런가?’

    하긴 생각해 보면 이상할 건 없었다.

    한정우는 더 이상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거기다, 시스템을 만든 최고 관리자와 면담을 하기까지 했으며.

    동업자가 되었다.

    비록 그가 72위에서 특급으로 수직 상승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전부 한정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닌 다른 관리자가 한정우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되었을 터.

    그 광경을 직접보기까지 한 그니까, 굳이 관리자에게 굽실거려야 할 필요가 없을 느낀 거겠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반응이 당연했다.

    은행장이다. 무려 최고 관리자가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동업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설령 한정우가 관리자들에게 하대를 한다고 해서 뭐라할 관리자는 없었다.

    최고 관리자가 아닌 이상, 누구도 그가 무례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한정우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관리자를 존중해준다는 것으로도 감사해야 마땅한.

    그의 행동은 당연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연함이 그의 제안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사겠습니다.”

    “용계를 말입니까?”

    “네.”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슬쩍 자금을 확인했다.

    [2134조 4354억 5......]

    어느새 이천 조를 넘어가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 2조가 전부였었다.

    많이 있을 때는 최대 10조가 최대였다.

    ‘확실히 시스템의 중앙이 위치가 좋기는 해.’

    시스템에 거주하는, 그리고 시스템의 탑을 방문하는 이들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차원 은행을 모르던 이들조차 시스템에 방문하면서 차원 은행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개중에는 대부들도 은근히 많았다.

    특히 재산이 너무 많은데 마땅히 보관할 데가 없어 불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차원 은행은 최고 관리자가 직접 입증해준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차원 은행에 돈을 넣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조금은 의심이 가지던 이들조차, 차원 은행을 이용해 보고는 편리함에 혀를 내둘렀다.

    기하급수적으로 고객들이 늘어났다.

    그만큼 차원 은행에 들어오는 자금 또한 많아졌다.

    더군다나 저승 관광 사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그곳이 본격적으로 개장을 하면.

    ‘지금보다 배는 수입이 늘어나겠지.’

    저승이 가지는 메리트는 무척이나 많았다.

    당장 돌아간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상대로, 잠깐이라도 면담을 하게 해준다고 한다면.

    안 올 이는 없었다. 무조건 이용하겠지.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서, 혹은 원수의 괴로움을 직접 보기 위해서.

    ‘용계도 마찬 가지일거다.’

    비록 저승만큼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용계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했다.

    당장 신룡만 해도 그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부산물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많았다.

    용의 피는 매우 뛰어난 포션이 되어줄 테고.

    용의 비늘은 강력한 무구로 재탄생할 것이다.

    ‘대장장이도 알아봐야겠네.’

    용계를 관광지로 만들어도 아주 좋을 것 같다.

    휴양지.

    명소들을 찾아 펜션을 만들면, 고객도 많아지겠지.

    “차원을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필요한 코인만 해도...”

    기겁을 하며 말하던 관리자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말을 흐렸다.

    “...코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차원 은행은 시스템에게 있어 최대의 관심사였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차원들이 시스템에 귀속된 이유인 코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곳이기에.

    현재 차원 은행에서 유통되는 코인이 얼마나 많은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용계라는 차원이 비싸기는 해도.

    ‘은행장에게는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겠지. 부담이 된다고 해도, 용계를 살 수 있는 코인은 충분히 있을 거다.’

    관리자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비록 시스템이 용계를 샀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계에 대한 모든 것을 강제하는 건 아니었다.

    시스템은 이를테면 상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코인으로 모든 게 가능한.

    코인만 있다면 차원을 사들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절차가 복잡해서 사는 이들이 없을 뿐이지.

    ‘최고 관리자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라면, 절차를 바로 건너뛸 수 있겠지.’

    한 마디로 말해서.

    한정우는 자금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차원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자금은 차원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관리자는 더 이상 한정우의 결정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막을 이유가 없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요.”

    “은행장님이시니까요.”

    관리자가 한 대답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정우가 아닌 다른 이라면 어지간해서 이렇게 빨리 결정이 나지 않을 거라는 것과.

    은행장이 가진 힘이 그 정도로 크다는 것.

    어쨌든 굳이 따지자면 한정우에게 특혜를 준다는 거였다.

    “그럼, 용계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코인만 있다고 해서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기는 한데... 은행장님에게는 크게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다행이네요. 번거로운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하하하.”

    한정우의 말에 관리자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던 가볍게 흘려넘길 수는 없었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위치가 주는 힘이었다.

    “본래 차원을 사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시스템에 등록이 되어 있는 차원이기에, 그것을 인계받는...”

    “하지만 제게는 통용되지 않는 일 아닙니까.”

    “그렇죠.”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해야 하는 것만 딱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코인을 주시면 됩니다.”

    “간단하군요.”

    “네. 간단하죠.”

    “그럼 코인은 어디로 보내드리면 됩니까?”

    “음... 그게 문제인데. 사실 여태까지 거래는 마석으로 했습니다. 혹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았죠.”

    알고 있다.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관리자가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정확히는 차원 은행이라는 거래소가 생겨났죠.”

    “아...”

    이해했다. 어째서 관리자가 난처해하는지.

    시스템은 이제 차원 은행을 이용해 거래를 했다.

    수수료도 적을뿐더러, 차원 은행을 이용하는 게 여러 방면에서 훨씬 편리했다.

    차원 은행이 없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시스템 내부에 차원 은행 본점이 들어섰기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최고 관리자가 직접 차원 은행을 통해서 모든 코인을 거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건 차원을 사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그렇군요.”

    한정우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저 말이 주는 의미는 하나였다. 한정우가 사용하는 코인도 결국 차원 은행에 도로 돌아온다는 거였다.

    물론 시스템에서 코인을 가져간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져가 사용하는 것조차 차원 은행을 통하니.

    한정우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수료를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을 볼 수 있겠지.

    ‘은행을 혼자서 독점한다는 게 이렇게 작용하네.’

    한정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코인을 써야 해서 마음이 살짝 아팠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그래서... 그.”

    “바로 거래하죠.”

    “예?”

    “망설일 거 있습니까? 거래하는 방법도 알았겠다. 바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관리자가 울상을 지었다. 분명 차원을 팔아 이득을 보는 상황인데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째서인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기에.

    “바로 하죠. 저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요.”

    “...알겠습니다.”

    거래를 끝마친 한정우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매우 좋은 거래였다.

    시스템에게 준 코인마저 도로 차원 은행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더해 최고 관리자가 조금씩 차원 은행에 코인을 넣고 있어.

    코인이 줄기는커녕 자꾸 불어갔다.

    “...하아.”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한정우는 그를 돌아보며 상큼하게 웃었다.

    “그럼 용계로 보내주시죠. 그 정도 서비스는 가능하잖아요.”

    “...네.”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관리자가 손을 휘저었다.

    한정우는 산뜻한 기분으로 빛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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