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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90화 (90/113)

제90화

한정우가 포탈로 다가갔다.

포탈 관리자가 한정우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인다.

한정우는 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용들의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를 열어주세요.”

“용들의 세상 말입니까?”

한정우의 말에 포탈 관리자가 슬쩍, 한정우의 뒤를 살펴봤다.

최악 최강의 마신과 덜덜 떨고 있는 용인이라니.

‘제대로 거슬렸나 보군.’

포탈 관리자가 속으로 혀를 찼다.

용인이 은행장의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신을 데려갈 리가 없다.

아무리 용들이라도 마신을 막을 수 없을 텐데... 단순히 호위로 데려가기에는 마신은 너무 과하다.

특히 마신 중에서도 악독하고 용고기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마신 발포스라면 더더욱...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포탈 관리자가 고개를 저었다. 용인의 어리석음에 혀를 차면서, 시스템과 마신 발포스의 비호를 받는 은행장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인데.

하다못해 전 포탈 관리자 또한 은행장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시스템에게서 해고 통지를 받지 않았던가.

자신만큼은 그렇게 되지 말자며 포탈 관리자가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보내주실 겁니까? 기다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 죄, 죄송합니다!”

한정우의 말에 포탈 관리자가 황급히 ‘용들의 세상’으로 향하는 포탈의 입구를 열었다.

한정우가 포탈에 발을 들이고.

퀴에에에에엑!

거친 괴성이 그를 맞이했다.

건물 한 채는 덮을 것 같은 거대한 날개와 성인 남자를 한입에 삼킬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커다란 주둥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괴수에 한정우가 한숨을 내셨다.

어떻게 나오기 무섭게 괴수를 만날 수가 있는 건지.

키에엑!

괴수가 한정우를 향해 날아왔다.

톨날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입을 쩌억 벌리며, 빠른 속도로 한정에게 다가왔다.

그대로 한정우를 집어삼킬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린다.

평소 한정우였으면 도망치거나, 덜덜 떨었을 텐데.

지금의 한정우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발포스.”

단 한 마디였다.

콰드득.

한정우의 뒤로 손이 하나 뻗어져 나왔다.

그 손은 앞으로 뻗어질수록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괴수의 입을 한 손에 붙잡을 정도로 커졌다.

괴력이 맴도는 손에 붙잡힌 괴수의 주둥이가 부러진다.

주둥이가 전부 뭉개져 괴수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감히...!”갑작스럽게 나는 유황 냄새에 한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고 있었다.

바닥에 용암이 흐르면서 땅이 녹아내렸다.

반지의 데스나이트가 보호를 하지 않았으면 그의 발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온도였다.

“발포스. 덥습니다.”

“아, 저도 모르게 흥분했군요.”

등 뒤로 근육이 우그러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괴수의 주둥이를 잡고 있는 손을 제외한 팔부터 그의 몸까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발밑으로 흐르던 용암이 딱딱하게 굳어 돌이 되었고, 유황 냄새도 바람에 흩어져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상당히 예의가 없는 놈들이군요. 감히 주제 파악도 못하고.”

발포스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뒤에서 히익, 하는 겁에 질린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네, 뭐. 알아서하세요.”

쩌억.

한정우가 답을 하기 무섭게 괴수를 잡고 있던 손에 입이 생겨나더니, 괴수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우득, 우드득.

손에 돋아난 입이 우물거리더니, 뼈만 퉷 하고 뱉어냈다.

앙상한 백색의 뼈가 쿠웅 소리를 내며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어, 이렇게 보니까. 한 걸음만 더 걸어갔어도 절벽에 떨어졌겠네. 이게 포탈 관리자가 의도한 거 아닌가?’

나중에 돌아가면 얘기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한정우의 귀로 괴수의 맛을 감별하는 듯한 발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맛은... 별로군요. 용족이 아니라, 그 먹이였나 봅니다. 질이 떨어지는 걸 보니 하위종의 식사였겠군요.”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슬쩍 뒤를 돌아보니 발포스의 말에 창백하게 질린 메켄이 덜덜 떨었다.

“약속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위로하기 말을 건넨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어째 한정우의 위로가 독이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아예 실신을 할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겁이 많다니.

처음에 보였던 그 나태하고 겁 없던 모습은 전부 상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한정우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이제 안내해주세요. 어서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여, 여기로...”

메켄이 절벽으로 나아간다. 한정우를 지나쳐, 그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메켄은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설마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밑에 둥지라도 있는 걸까 싶어 한정우가 절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펄럭!

황금색 두 쌍의 날개가 퍼덕이며 메켄이 날아올랐다.

어찌나 휘황찬란하지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다.

“아, 아! 죄송합니다. 수십 년만에 날개를 꺼낸 거라!”

빛이 사라진다.

뭐야, 저걸 껐다 켤 수 있는 거였어?

어이없음에 한정우가 머리를 만졌다. 메켄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느낀 것인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딱히 따지고보면 잘못한 게 하등 없는데도.

“그런데... 저는 어떻게 따라가라는 거죠?”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한정우가 물었다.

“어... 아!”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메켄이 입술을 깨문다.

워낙 그의 주위로 엄청난 이들이 있어서언지 한정우가 날 수 없다는 걸 까먹은 것이다.

애초에 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신도 부리는 놈이 날지 못한다고 누가 생각했을가.

그 정도로 발포스를 밑에 두고 부린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방법이 있으니 망정이지.’

한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계를 만졌다.

후웅-

바람이 한정우의 몸을 휘감더니, 그대로 하늘로 떠오르게 했다.

이번에 새로이 추가된 비행 기능.

대천사의 날개를 재료로 한 차례 시계를 강화했었다.

비행 능력 외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었지만, 적은 돈이 들어간 게 아니라 아까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쓰게 되니 다행이었다.

“으...”

그때 발포스가 인상을 쓰며 목을 벅벅 긁었다.

그의 목 위로 황금색의 목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천사의 날개 한 쌍이 달려있는 목줄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한정우가 시계의 힘을 이끌어내면 목줄 또한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마족이었다면 목줄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몸부림쳤겠지만.

“씁. 좀 따끔하네요.”

그게 전부였다. 발포스는 목을 벅벅 긁고는 아무렇지 않게 날개를 펼쳤다.

마신에게 그 정도 고통쯤은 아무렇지 않게 참아낼 수 있었다.

사지가 잘려도 웃으며 전투를 벌이는 그가 겨우 몸이 저릿하게 만드는 게 전부인 스파크에 질 리가 없었다.

“안내하세요.”g

한정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메켄을 돌아보며 말했다.

별문제도 없는데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네.”

메켄이 대답과 동시에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메켄을 따라 움직였다. 뒤로 자꾸만 번쩍이고, 전기충격기로 지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발포스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기에 괜찮은 거라 생각하며 한정우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는 관광지로 해도 좋을 것 같은데?’

메켄을 따라 이동하면서 주위를 살펴본 한정우는 의외로 아름다운 세상에 감탄했다.

저승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땅에는 굉음을 내며 건물 크기만한 지렁이처럼 생긴 것들 수십 마리가 이동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여러 용족들이 하늘을 날 거나, 풀숲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고, 그 중 하나의 색은 보라색이었다.

몽환적이었다.

저승이 군대를 면회하러 가는 느낌이라 치면,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제격이었다.

아니,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관광지로 손색이 없었다.

용족과의 거래가 불가능하다면, 이곳을 사업지로 사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그것도 용족의 허락이 있어야겠지만.

정 안 되면...

“그땐 진짜 어쩔 수 없지.”

작게 중얼거리는 한정우의 말에 앞에 길을 안내하던 메켄이 삐끗했다.

머리가 꿈틀꿈틀하는 게 뒤를 돌아보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속도를 높이죠.”

한정우는 굳이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하지 않았다.

그를 재촉하며 움직였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를 줄곧 하늘에서 움직였다.

한참을 움직인 끝에야 한정우는 모든 용족의 왕, 신룡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

한정우가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과 같은 다양한 색의 구슬들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형태가 있는데 실체가 없는 구슬이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구슬들 너머로 거대한 체구를 가진 용이었다.

뱀이 똬리를 틀 듯 몸을 웅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한 것 치켜 올려야 겨우 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신룡은 거대했다.

형형색색한 몸체에 은빛이 도는 기다랗고 반짝이는 새하얀 수염.

[...뭐냐.]

신룡이 한쪽 눈을 떠 한정우 일행을 내려다봤다.

세상만사 귀찮다는 감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한정우는 금색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걸 전에도 느꼈던 것 같은데...

그래, 전에 저승왕을 처음 만났을 때 한정우는 지금과 같은 위압감을 느꼈었다.

그 말은 신룡이 저승왕과 맞먹는다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승왕은 강함을 계산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저승을 나오면 모를까, 저승 안 그녀의 영역에서만큼은 시스템조차 그녀를 함부로 막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런 걸 느낀다는 건.

‘격이 올라서 그렇구나.’

저승왕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한정우는 반신까지 격이 올라간 상태였다.

그러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된 것이고.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기에, 한정우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거래? 하찮은 반신 따위가... 지금 나와 거래를 하겠다는 건가.]

어이없는 소리를 다 들었다며 신룡이 한숨을 내쉰다.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신룡이 한정우를 무시하며 눈을 감으려 할 때였다.

[음...!]

한정우의 옆으로 본 신룡의 눈이 부릅 떠진다.

웅크리고 있던 몸이 쿠궁, 소리를 내며 펼쳐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조금은 공포 가득한 얼굴로 신룡이 소리쳤다.

[어찌, 어찌하여 그대가 여기 있는가!]

한정우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신룡은 단순히 목소리를 높인 것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한정우의 고막이 터져 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엘릭서를 마시지 않았으면, 죽어도 진작에 죽었겠어.’

엘릭서의 회복 능력이 남아 있어서 망정이지... 돌아가는 대로 몸에 좋은 건 닥치는 대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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