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9화 (89/113)
  • 제89화

    윌리엄을 보내고, 한정우는 발포스를 통해 메켄을 은행장실로 불러냈다.

    메켄이 올라오고 있을 때 한정우는 시스템을 열어 윌리엄에게 코인을 보냈다.

    [100,000,000,000코인을 송금합니다.]

    이만한 코인을 한 번에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 내가 부자가 되었구나.

    한정우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멸망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

    생각해 보니 최근에 계속 달리기만 했다.

    말로는 쉬고 있다, 할 게라고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쉰다 싶으면 그의 몸이 알아서 일을 찾아 움직였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너무 급하게 달려왔다.

    ‘내가 기계도 아니고... 휴식 기간이 필요하기는 한데.’

    도통 시간이 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쉰다는 게 겁이 나기도 했다.

    한정우가 쉰다고 했을 때나, 아니면 어딘가를 가려고 할 때마다 일이 생겨났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그가 꼭 움직여야 할 사건들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겁이 났다.

    이번에도 쉰다고 난리치다가 또 사고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고.

    똑똑똑.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한정우의 귀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유리 문 너머로 잔뜩 긴장한 채 문을 두드리고 있는 메켄이 보였다.

    비늘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들어와요.”

    “시, 실례하겠습니다.”

    메켄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정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의자에 그를 앉혔다.

    의자에 앉은 메켄이 한정우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고양이 앞에 선 쥐새끼마냥 덜덜 떨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한정우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메켄의 몸에 흘러내리는 땀의 양이 더욱 많아진다.

    졸음기 넘치는 태도는 어디가고 벌벌 떨고만 있으니.

    자신이 괜히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느낌이었다.

    “메켄.”

    “네, 네!”

    군기가 반짝 든 얼굴로 그가 벌떡 일어난다.

    그가 일어나면 생겨난 충격에 땀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한정우가 휴지를 뽑아 얼굴에 튄 땀을 닦아내니 메켄이 더욱 긴장하며 고개를 숙여댔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긴장하게 만들었을까.

    한정우는 마냥 기다려줄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렇게까지 떨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야 상관이 없었다.

    그를 365일 24시간 내내 옆에 두고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지금 면담이 끝나면 그를 볼 일도 없다.

    그리고 새로운 부서가 늘어나고 직원도, 직급도 점점 다양해지면 그를 보기도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건, 지금 당장 직원 하나하나가 귀중하기 때문이다.

    저런 상태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나 의문이고, 그렇게 되면 그를 고용한 이유자체가 사라진다.

    제대로 일도 못하는 직원을 어디다 쓰겠는가.

    “뭡니까. 이유가.”

    “어... 그게...”

    한정우의 말에 메켄이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그와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한정우가 그를 괴롭힌 것도, 그렇다고 해서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니 조금 억울해질 정도다.

    “계속 그러면 좀 화가 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왜 그렇게 겁을 먹고 있는지 이유라도 알려주시면 좋겠군요.”

    “죄, 죄송합니다.”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한정우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죄송하다는 말도 그만 듣고 싶군요. 제가 알고 싶은 건 이유입니다. 뭐가 당신으로 그렇게까지 겁을 먹게 한 건지.”

    “그, 그게...”

    그의 눈이 한정우의 눈과 마주치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

    그러다 은행장실 구석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발포스와 눈이 마주치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발포스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한정우의 입장에서는 발포스와 그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반응이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저러니...

    “하아... 죄송합니다. 이럴 수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군요.”

    그때 발포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다는 그의 말에 한정우의 얼굴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발포스가 무슨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얌전히 있던 메켄이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특히나 직장 상사 앞에서도 졸던 그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 한정우의 생각과는 다른 말이 발포스의 입에서 나왔다.

    “직원 중에 용종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군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떨 줄은 몰랐는데. 혹시 용족 사냥꾼을 만난 적이 있던 건가?”

    용족 사냥꾼.

    그 한 마디에 메켄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메켄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그의 파충류 눈동자가 더욱 자세히 보일 정도였다.

    “있나 보군.”

    메켄은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렇지. 그놈들을 만나지 않고서야 저런 반응은 힘들지. 그런데 용쾌 살아남았어.”

    메켄은 덜덜 떨고 있고, 발포스는 묘하게 기뻐 보이는 얼굴로 말한다.

    가만히 지켜보던 한정우는 탁자를 툭툭, 내리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발포스와 메켄이 한정우를 바라본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둘의 대화가 너무 오래 걸렸다. 듣고 있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지루하다.

    한정우가 듣고 싶은 건 이유지, 저런 사소한 일들이 아니다.

    대충 들어보니 알 것 같지만. 그래도 저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건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사소한 것들을 원하는 게 아닌, 결말을 원하는 거였다.

    “저희가 용고기를 먹어서 그런 겁니다.”

    “아, 그렇군요.”

    봐라, 이렇게 딱 질문한 것만 대답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바로 이해되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먹지 않았는데, 애초에 먹었다고 해서 그걸 알 수 있는 거였습니까?”

    “용족은 같은 용족의 피에 예민합니다.”

    아, 막 그런 건가. 개고기를 먹으면 개가 다가오지 못하는 거.

    그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기는 하다.

    “겁이 상당히 많나 보군요.”

    그래도 그렇지, 본인을 잡아 먹은 것도 아닌데 겁을 먹다니.

    필요없는 겁까지 있다며 불평하는 한정우였다.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도 못하고.

    반신이 되면서 사고 방식이 달라진 한정우는 지금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니까요. 겨우 그것 가지고. 심지어 먹은 것도 하위종인데 말이죠.”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도 그런 쪽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이가 없었다.

    한 놈은 차원 몇 개를 부숴뜨리고, 수만명의 선신들을 적으로 돌린 최악의 마신이었고.

    다른 한 쪽은 두려움에 떠느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쳤어. 미쳤다고.’

    동족이 잡아 먹혔는데 어찌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하위종이라고 하지만, 인간으로 따지면 황인의 시점에서 백인을 잡아먹힌 것과도 같았다.

    하위종이라 상관없다고?

    야만스럽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가 없어서 더 문제였다.

    “뭐...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당신을 잡아 먹을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용고기는 맛이 없어서 별로 먹고 싶지도 않군요.”

    ‘그 말은 곧 맛이 있으면 먹었을 거라는 거잖아!’

    메켄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관리자로 일할 때도 이 정도로 두렵지는 않았는데.

    하긴 그때는 시스템이라는 방어책이 있었지만, 시스템에서 나온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생각을 잘못한 게 아닐까 고민하는 메켄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한정우가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는 별 게 아닙니다. 최근에 제가 어떤 사업에 관심이 생겨서요.”

    바짝 긴장을 한 메켄에게 무슨 위로를 한들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같잖은 위로를 할 바에는 일 얘기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메켄이 마른 침을 삼키며 한정우를 바라봤다.

    “당신이 사는 차원, 그곳이 궁금해졌습니다.”

    “...!”

    메켄의 동공이 확장되며 심하게 흔들린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그의 눈두덩이에 눈물이 맺힌다.

    “제,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메켄이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용서해 달라고 몇 번이고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한정우가 당황한다.

    “와... 역시 은행장님은 달라도 뭐가 다르군요.”

    발포스가 감탄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한정우만 그 이유를 몰라 볼을 긁적였다.

    “헛소리하지 말고 일어나세요.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이, 죄송은 무슨 죄송입니까.”

    “요,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용서해야 할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당신의 차원을 찾는 이유는 별 게 아닙니다. 용들에게 동업을 청하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이걸 어째서 당신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그저 알려주면 되는 건데. 제가 그 차원을 멸망시키는 것도, 시킬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정우의 말에 메켄의 고개를 돌아간다.

    그의 시선이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발포스에게 향했다.

    그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차원 하나를 부술 수 있다.

    그게 비록 지상최강의 생물이라 불리는 용들이라 하더라도, 마신 발포스의 밑에 있는 악마들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발포스의 수하들은 천계 전체가 나서야 겨우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투쟁을 원하는 종족.

    그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면 막을 수 있는 차원은 드물다.

    그나마 마신 발포스가 차원의 입구와 출구를 막은 것과 시스템의 지속적인 감시가 있었기에 지금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말해주세요. 아, 그냥 말하기 힘들다면 정보에 상응하는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보, 보상은 괜찮습니다. 대신 약속 하나만 해주세요.”

    “어려운 게 아니라면.”

    “저, 저희 용족을 멸종시키지마 말아주십시오!”

    “에...?”

    당황스러웠다.

    뜬금없이 용족을 멸종시키지 말아달라니.

    내가 언제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다고 했었나?

    그런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오해가 있다는 건데...

    “그, 그리고 부디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 절대 방해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이어 말하는 그의 모습에 한정우는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무슨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리 기분이 좋지는 못했다.

    누굴 죽이지 못해 안달난 살인마로 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것과는 별 개로, 조금만 고민해보면 그의 제안이 그리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정우는 용들의 차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 말은 곧 길을 안내해줄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거였고.

    길잡이로서 용족인 메켄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보답을 안 해도 되겠습니까?”

    “네! 데려만 가주십시오!”

    한정우가 시계를 만지던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기분은 나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마냥 나쁘지는 않은 일.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한정우는 두 말 할 것 없이 수락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