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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8화 (88/113)
  • 제88화

    “이야, 이거 맛있네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회귀자가 쿠키를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아니꼽게 바라봤다.

    그와 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건방진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모습 아닌가.

    그렇다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입장에서 그가 우위에 있는 건 맞으니까.

    아니, 그건 아닌가.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어쨌든 내게 필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아직 누가 갑이고 을인지 판단할 수 없다.

    누구의 정보가 높고, 값어치가 있는지 그걸 먼저 파악하고 나서.

    갑과 을은 그 이후에 판단하는 것이다.

    제대로 가치를 매긴 후.

    “그래서 무슨 사업입니까?”

    시간을 끄는 건 싫었다. 회귀자, 윌리엄은 쿠키를 하나 더 입에 집어넣더니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간단합니다. 엄청.”

    “말해보세요.”

    “용을 이용하는 겁니다.”

    “용?”

    “네, 용. 다른 말로는 드래곤이라고도 하죠. 날개 달린 도마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굳이 제가 물어보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윌리엄이 말끝을 흐린다. 차원 은행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메켄을 떠올리고 있나 보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죠?”

    윌리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용들로만 이루어진 차원이 하나 있습니다. 하위종에서 상위종까지. 그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죠.”

    “음···.”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오만하다는 겁니다. 지기 싫어하죠. 그리고 이걸 좋아합니다.”

    그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만든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돈.

    “용들은 반짝이는 것에 환장합니다. 특히 이 코인이란 것에 미쳐 있죠. 오죽했으면 코인을 얻기 위해서 타 차원에 쳐들어갔을까요.”

    “그들은 그 정도로 코인에 대한 탐욕이 대단합니다. 어떤 놈들은 제 목숨보다 코인을 중하게 여기기도 하죠.”

    용이라.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나도 그랬지만, 용에 로망이 있는 사람이 있다.

    소설과 같은 여러 매체들로 인해 용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거다.

    그런데 그게 이곳에도 똑같이 적영되는 건 몰랐다.

    용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다양한 종족들이 있으니까.

    “용들은 코인에 탐욕이 강한 만큼, 코인을 벌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겁니다. 그들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척이나 많죠.”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다고,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문득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지구에 있는 지점을 찾아온 게 아닌, 시스템의 성지이자 차원 은행 본사에 직접적으로 찾아온 거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VIP가 되어 있었다.

    차원 은행장인 자신이, 한정우의 동의가 없었는데도.

    그 이유를 살펴보니, 웃기게도 그는 한정우도 모르는 차원 은행의 숨겨진 조건을 찾아 이뤄낸 거였다.

    그가 회귀자이기에 가능한 일.

    한정우는 그에 대해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윌리엄의 능력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무기를 이용하는 것도 그의 힘이다.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겠습니다. 자본이 충분히 있으면 용들을 이용해 좋은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거겠죠.”

    “네. 맞습니다.”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정우는 턱을 쓸어내리며 흠, 하고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윌리엄이 말하는 내용들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잘만 한다면 충분히 큰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면 꾸준히 수입원이 될 수도 있겠지.

    이것도 그가 회귀자이기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이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문제는 다른데에 있다.

    ‘내가 그를 믿어도 될까.’

    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시스템도 윌리엄이 회귀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에, 그가 허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이건 계약이다.

    신뢰의 문제였다. 그와 한정우의 신뢰가 깨지면 큰 손해를 보는 건 한정우가 아니다.

    바로 그 본인, 윌리엄이 손해를 보는 거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다.

    용을 이용한다? 분명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하다못해 용의 피를 이용해 만든 포션은 엘릭서의 성능과 맞먹는다고 한다.

    피를 희석한다 해도 그 효과는 엘릭서보다 낮을 뿐, 어지간한 포션은 비교도 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들의 비늘은 가장 단단한 광석으로 만든 갑옷과 맞먹는 강도를 가졌고.

    그 외에 그들의 부산물들은...

    ‘분명 좋은 게 분명한데... 왜 이리도 찝찝할까.’

    놓친 게 있는 것 같았다. 용, 용은 오만하다.

    오만하다는 말은 그들을 이용하기도 힘들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한정우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이대로 결정이 날 것 같지 않을 것 같음을 느꼈다.

    결정하기 전에 윌리엄이 뭘 바라는 건지 먼저 듣고 싶어졌다.

    “좋습니다. 그건...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기로 하죠.”

    “뭘 선택하든 그리 나쁘지 않을 겁니다.”

    “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전에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요.”

    윌리엄의 얼굴에 의문이 깃든다.

    한정우는 그를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뭘 원하십니까.”

    “아, 제가 원하는 건 별 게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한정우의 질문에도 윌리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건 들어봐야 알겠죠.”

    “진심입니다.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은행장님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일이죠.”

    “그래서 그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게 뭡니까?”

    “지원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지원.

    윌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에게 지원을 하라고.

    딱 그 말만 했다.

    한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윌리엄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게 은행장님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죠?”

    “그럼 좀 서운하겠죠... 제가 그래도 먼저 정보를 말해드렸으니까요. 신뢰가 깨지지 않을까요.”

    신뢰.

    은행원에게, 그리고 은행장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한정우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가 빠르게 풀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윌리엄은 자신의 요구를 먼저 말하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먼저 말했다.

    그건 곧, 자신이 말한 정보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한정우가 치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한정우는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차원 은행이 비록 한정우의 것이기는 하지만, 시스템의 눈은 어디에나 있다.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거였다.

    물론 한정우는 변명을 할 거리도 많았다.

    계약을 하기도 전에, 서로 요구 조건을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윌리엄이 먼저 말을 꺼낸 거라고.

    하지만 이건 성의의 문제였다.

    자신은 윌리엄을 필요로 했기에 차원 은행에 들어오는 걸 허락했고, 그런 그를 먹을 것만 쪽 빼먹고 버리는 건 여러 의미로 보기 좋지 않다.

    단 둘이 있으면 모를까.

    “자세하게 말해주시죠. 그렇게 뭉뚝하게 말하면 저로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한정우의 말에 윌리엄이 미소를 지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며 그가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인간들에게 투자를 해주시길 바라는 겁니다.”

    “투자라...”

    “다시 말하지만 은행장님께서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3년. 3년 내로 은행장님께서 흡족해할 만한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럼 은행장님의 평생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윌리엄의 이어지는 말에 한정우는 솔깃해졌다.

    다른 걸 다 떠나서 회귀자를 노예로 둘 수 있다는 건 여러 의미로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회귀하기 전에 있었던 미래를, 꼭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지 얻어낼 수 있다는 거였으니까.

    그건 끌린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얼마를 투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단위가 억을 넘어설 것임은 분명했다.

    분명 회귀자의 정보는 그 가치가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지금 당장은... 천억. 딱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예상은 어째 틀리지 않는다.

    억 단위를 부를 것 같더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윗단계를 부리지 않았다는 건가.

    ‘얼마가 남아 있었더라.’

    한정우는 윌리엄이 말하기 무섭게 바로 차원 은행의 자본을 확인했다.

    [2조 4억 코인]

    2조라...

    한정우가 시계를 만졌다.

    차갑고 딱딱한 시계의 촉감이 생각을 정리시켜준다.

    천억이라는 금액은 분명 큰 금액이다.

    현 시점에서 지구인들은 절대 벌어들이지 못하는 금액.

    하다못해 회귀자조차 그 정도의 금액을 벌어들이지 못하게 한정우를 찾아왔다.

    아무리 대단한 직업이라고 한들 한정우처럼 코인과 직접적인 직업을 얻지 못한 이상 그만한 코인을 벌어들이기는 힘들다.

    하다못해 얻었다해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겠지.

    솔직히 한정우가 운이 좋기는 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게이트 키퍼를 만났고, 또 빠르게 시스템과 계약을 하는 둥...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춘 채 시작했다.

    “딱 천억이면 됩니까?”

    “음...”

    혹시나하는 질문에 윌리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단순히 천억만 지원해주는 거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만한 성과를 무조건적으로 이룬다고 하기도 했고, 천억으로 회귀자를 사는 거라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윌리엄은 수십 년 이상을 멸망한 세상에서 버틴 회귀자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시스템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귀중한 것.

    그렇기에 시스템도 회귀자의 존재에 크나큰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그 여파 또한 시스템자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데.

    “천억은 초기 금액이고... 아마 조금씩 더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은 솔직하게 말했다. 한정우를 속인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귀 전 한정우를 알고 있기에, 그의 앞에서는 왠만한 일들은 전부 솔직하게 말하는 윌리엄이었다.

    “천억, 천억이라...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제게 크게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닙니다.”

    2조라는 금액이 있다. 조 단위로 빌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천억은 그리 신경쓸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한달에 몇 십억씩 들어오기도 하고, 천억은 어떻게해서든 매꿀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다.

    정 안 되면 개인 자본을 움직여도 되는 거고.

    “그냥은 드릴 수 없습니다. 분명 당신이 말한 정보는 가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까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니 계약서를 작성하죠. 그리고 조건을 더 걸겠습니다. 그게 싫으시다면 지금 말해주시면 됩니다.”

    “아니요. 좋습니다. 이런 건 확실하게 해야죠.”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정우는 바로 시스템을 열었다.

    그리고 그 중 계약을 선택해 윌리엄과 계약서의 내용을 조율했다.

    그렇게 두 시간 후.

    “이 정도면 되겠네요.”

    한정우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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