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감미로운 음악이 들려온다.
경쾌하게 귀를 두드리는 피아노 소리에 만족하려던 것도 잠시.
으적으적-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 먹는 소리가 내 귀를 더럽혔다.
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크흐···!”
시뻘건 고기를 뜯으며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시원한 맥주 마시듯이 입안에 부어버리는 발포스가 보였다.
며칠을 굶은 것처럼, 그는 자신의 앞에 산처럼 쌓인 고기들을 먹어치웠다.
“정말··· 맛있게 먹는군요.”
내 말에 그가 목인 막힌 듯 제 가슴을 두드렸다.
입안 가득하던 고깃덩어리가 한순간에 식도로 넘어가는 게 보였다.
부풀려진 볼이 가라앉고, 그가 포도주를 병나발을 불며 입을 열었다.
“맛있으니까요.”
간결한 대답.
진심으로 가득한 그의 대답에 나는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코가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노린내가 났다.
애완견이 오줌을 싸고 며칠을 방치한 패드도 이보다 냄새나지 않을 것이다.
냄새만 그랬다면, 홍어를 먹는 것처럼 참고 먹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홍어였다면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겠지.
하지만 이건 그럴 수가 없었다.
‘질기고 비려.’
고기는 어찌나 질긴지 타이어를 씹는 것 같았고, 물자마자 상한 죽과 같은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딴 걸 내가 돈 주고 먹어야 한다니··· 짜증이 다 나네.’
코인을 주고 먹으래도 고민을 할 고기를 진미를 먹듯 맛있게 먹으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생각이 고대로 표정에 드러난 걸까.
내 얼굴을 살핀 그가 슬며시 내 눈치를 본다.
“맛없습니까?”
“네. 맛없네요. 솔직히 이딴 걸 뭣하러 먹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좋게 말하려 해도 좋게 말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직설적으로 말해버렸다.
내 목소리가 조금 컸던 걸까.
주위에 있던 식당 손님들이 이쪽을 돌아본다.
그들 중 몇이 ‘그럴 거면 뭐하러 온 거야?’와 같은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게 다가와 직접적으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눈 안 깔아?”
바로 앞에 우리 마신님께서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포크마저 내려놓으며, 그에게 내 몫을 밀어 주었다.
“제 것도 드시겠습니까?”
“아, 그럼 감사하죠. 모처럼 먹는 거라 잘 들어가네요.”
딱 한 번의 나이프 질밖에 하지 않은 고기를 제 쪽으로 끌어오며 그가 기분 좋게 웃는다.
띠링-
입이 터지라 꾸역꾸역 먹고 있는 그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푸른색의 창이 떠오른다.
[‘지구’지점이 정상적으로 영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차원 은행 지점이 영업을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그걸 보며 나는 작게 감탄했다.
내가 정해준 영업 시작일보다 이른 시기에 영업이 시작되었다.
최동수가 제대로 은행을 장악하고, 정리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일을 잘해 만족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처음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하지만 그런 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승’지점의 수입이 줄어들었습니다.]
[‘저승’지점의 기존 고객들이 일부 떠나갔습니다.]
잘 진행되는 것 같은 지구와는 다르게 저승은 그렇지 못했다.
수익이 늘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고객이 줄어드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네.”
발포스가 먹던 것을 멈춘다.
나를 바라보며, 그가 진중한 얼굴이 되었다.
사장님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그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아무래도 저승에 한 번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쯤 가실 겁니까?”
“당장은 힘들고··· 이틀 뒤에 가죠.”
“알겠습니다.”
발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의자에서 일어나니, 그가 덩달아 나를 따라 일어난다.
그러면서 그의 눈은 식탁에 쌓인 고깃덩어리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먹는 용고기라 다 먹지 못하는 게 아쉽겠지.
‘내가 어디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당장에 그가 있을 필요는 없겠네.’
데스나이트가 함께 있기도 하니까.
굳이 그가 음식을 남기고 올 필요는 없다.
“마저 먹고 오세요. 저 먼저 가 있겠습니다.”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
“네. 계산은 해놓고 가겠습니다. 편히 먹으세요.”
“감사합니다!”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는 발포스.
나는 손을 설렁설렁 흔들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A급 마석 42개입니다. 손님.”
어, 뭐라고?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A급 마석 42개라니.
A급 마석 하나가 오십만 코인에 맞먹는 가격이다.
그런 게 42개면···.
‘저것들이 이천 만 코인이라고?’
생각지 못한 큰 금액에 당황스러워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지만, 종업원은 42개라고 확실하게 답변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종업원에 나는 뒷골이 당겨온다.
한 끼 식사가 이천만 코인이라니.
제대로 맛이라도 즐겼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그리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기는 발포스를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아무리 고민을 해도 저승의 수입과 고객이 줄어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저승은 지금 발전이 되고 있었다.
나와 시스템, 그리고 저승왕이 한 사업은 저승을 크게 키우는 것이었다.
저승의 일부를 관광지로 만들어 다른 차원들에서 고객들을 끌어오는 것.
아무리 저승이 마이너한 곳이기는 하지만, 찾아올 이들은 분명히 있다.
당장 교도소에 들어간 범죄자와 면회를 하듯, 죽은 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면 억만금을 주어서라도 할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
혹은 원한을 가진 이가 자신을 괴롭힌 죽은 자를 찾아가 말로서 복수를 하려고.
저승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무척이나 많다. 사업 가능성이, 성공성이 많다.
“고객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고객이 늘어나지 않을 수는 있다.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 것도 이해된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하다못해 전자가 줄어든다는 건 저승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은행원에 문제가 있는 거다.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죽기 전에 하던 일도 은행 일이기에 그녀만큼 차원 은행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
“음··· 이렇게 되면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저승 사업이 상당히 좋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그 기대가 상당히 컸었나 보다.
되려 고객이 줄어들고 있으니. 당장에 저승에서 수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생각보다 지출이 많단 말이지.”
지금껏 소비한 것들과 앞으로 나갈 금액을 정리하고 보니, 이게 나눠져 있을 때는 몰라도 합쳐지니 상당하다.
특히 앞으로 여러 사업에 나갈 금액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코인으로는 모자랄 것 같았다.
그나마 세금을 내지 않아서 다행이지.
1조 코인이라는 금액에 마음이 풍성해지던 것도 잠시, 지출 금액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수입이 없으면 결국 자금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지구의 매출이 좋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거기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식으로 가는 게 가장 무난하겠지. 본사는 중요고객만 상대하고 나머지는 영업 쪽으로 돌리는 거야.”
나는 은행 일만 해서 돈을 벌 생각은 없다.
은행 일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게 언제까지 유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은행 일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할 필요는 있었다.
‘차원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고객이라고 해서 전부 코인이 많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지점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중 지구가 유독 코인을 잘 번 이유는 포탈을 타고 넘어 온 성좌들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에 성좌들이 찾아갈 수가 없지.’
본래 성좌들은 자신들과 연관되어 있는 차원에세만 움직일 수 있다.
포탈을 타고 가는 것도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그들은 차원의 포탈이 아닌, 은행에 직접적으로 찾아왔다.
차원 은행 본사, 즉 나와 연결된 것이다.
내가 은행을 옮겼으니 당연히 그들의 입구 또한 바뀔 것이다.
이건 시스템이 알려준 것이기에,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본사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1층은 고객 상대용, 2층은 회사 운영으로, 3층은 내 전용이고.’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커지면 회사 규모도 커지겠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반대로 수입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이곳에서도 수입은 늘겠지만, 앞으로 지출될 금액이 많다.
은행이 커진만큼 직원들의 수도 늘었고, 덩달아 줘야 할 월급도 늘어났다.
보너스도, 그 외 자잘한 것들이.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건물 자체가, 땅이 내 것이기에 자릿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적당한 사업이 필요해.”
저승은 최소 3년을 잡고 봐야 한다.
아니, 최소 2년은 수입이 없을 거라 본다.
적자라도 안 나면 다행이겠지.
‘그리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사람의 심리란 그렇다.
아무것도 없으면 포기하게 되지만, 뭐라도 쥐고 있으면 만족하지 않고 더 욕심을 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많이, 보다 안정적인 삶이란 명목하에.
핑계를 대면서 더 많은 자본을 끌어 앉고 싶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거.
솔직히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고 본다.
남은 건 미래의 일.
그렇다고 다른 차원에 가서 지점을 새로 열 수가 없다.
지금은 내실을 다질 때다.
괜히 일을 벌여서 좋을 건 없다.
지점을 늘리는 건 과유불급이다.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관리자를 불러 물어볼까 싶었다.
그라면 알려줄 것도 같지만, 발포스에게 관리자에 대해 워낙 많이 들어서일까.
물어보는 게 꺼려진다. 그들에게 물으려면 뭐라도 대가가 필요해보인다.
내가 지점을 만들기 전이었다면 내가 ‘갑’의 위치에 있어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지 않았겠지만.
본사를 옮기면서 너무 많은 코인을 써버렸다.
그 금액을 전부 계산한다면 내가 지금 보유한 코인량과 비슷할 거다.
“이럴 때 누구라도 나타나서 조언을 해준다면 좋을 텐데.”
발포스는 분명 좀 괴팍한 방법을 말해줄게 분명하다.
그 방법은 어쩌면 적을 늘릴 수도 있겠지.
안정적으로 코인을 벌 수 있는 방법.
“소설에서 보면 조언자가 나타나 주인공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던데···.”
나는 그런 조언자가 없어서 아쉽다··· 라고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지구’지점에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VIP 등급 예정자가 방문을 요청합니다.]
우연히도, 정말 신기하게도 내 상황에 딱 알맞은.
도움을 줄 수 있는.
[VIP 내정자는 지구 ‘인간 최초의 왕’입니다.]
그 누구보다 내 상황을 잘 알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는 사람.
회귀자가 나를 만나려 했다.
“이거··· 잘하면···.”
우울하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