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6화 (86/113)
  • 제86화

    최동수.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은 평범함의 극치였다.

    외모도 평범, 운동신경도 평범, 성격마저 평범했다.

    왕따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학창시절 때만이었다.

    사회에서 그는 건축 현장을 돌아다녔다.

    신체가 좀 왜소하기는 했지만,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자신이 살아있음에 원망을 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찢어졌다.

    허공이 갈라지며 불길한 색의 균열들이 생겨났고,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형에 도망치기도 한참.

    몬스터에게 쫓기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균열에 몸을 던졌다.

    그게 평생 노예가 되는 길인 줄도 모르고.

    미래를 알았다면, 균열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거다.

    ‘그곳이 싸이코와 만나는 길이란 걸 누가 알았겠어.’

    다른 곳을 찾아 도망쳤겠지.

    그때부터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살기 위해 계약을 했고, 개 같은 놈을 위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를 살려주고 먹여주는 건 감사한 일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식을 주입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한 거?

    그것도 참아낼 수 있다.

    비록 그 고통이 도끼로 머리뼈를 쪼개 뇌를 드러내, 그 뇌에 15cm가 넘는 장침 수십 개를 찌르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기는 했지만.

    그와 약속한 거니까,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빌어먹을 새끼, 그런 괴물들을 상대하게 될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잖아!’

    은행 일을 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

    세상이 망하기 전에 일급을 받을 때마다 저축을 위해 은행에 자주 갔었다.

    그렇기에 은행 자체는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기까지 했다.

    은행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 끔찍한 고통을 통해 얻어낸 지식이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딱 거기까지 괜찮다는 거다.

    -뭐야? 은행장 어디 갔어?

    -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란 거지? 맛있게 생겼네.

    -네 뇌는 어떻게 생겼니? 은행장은 시스템의 비호를 받아서 건드리기 힘들지만, 너는 그게 아니니까.

    -오늘 밤 나와 같이 가지 않을래? 네가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게 해줄게. 대신 네 정기를 내게 줘야겠지만.

    -네 피를 좀 줘. 달콤한 냄새가 나서 미칠 것 같아.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마실 게.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몬스터들이 고객이랍시고 찾아왔다.

    공포, 호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괴물들이 나를 건드렸다.

    ‘지켜준다고 했으면서, 안전할 거라면서···!’

    촉수가 몸을 더듬었다.

    마녀의 손톱 같은 게 내 손등을 긁었다.

    잘 갈린 칼에 잘린 돼지고기처럼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흘러나왔다.

    그 피를 머리가 산발이 남자가 핥아 마셨다.

    내 피를 마시며 황홀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그 모습에 어찌나 소름이 돋던가.

    ‘경비원이라는 놈은 가만히 지켜보고나 있고!’

    녹스라고 했던가.

    은행장은 그가 나를 지켜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고객들과의 다툼에서 그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강한 힘을 갖고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곳이 밖이었다면, 은행원과 경비원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이런 생각을 갖는 게 이상할 수 있다.

    강자라고 약자를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같은 직원으로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그저 나를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 아니구나. 단순히 지켜본 건 아니다.

    “죽이지만 마. 죽이면 귀찮아지니까.”

    경비원이란 작자가, 은행원을 지켜야 할 경비원이란 새끼가!

    지금 그게 할 말이란 말인가!

    뭐? 죽이지만 말라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따질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은행장이 잘 챙겨주기만 했어도.’

    그래, 경비원? 그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게 되었다고 치자.

    그래서 일을 하기 싫어 그러는 거라 생각한다, 하려고 해본다.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내가 그보다 강한 것도 아니고, 어찌 됐든 나는 그의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하지만 은행장은 아니다.

    그는 약속을 했다. 지켜주겠다고.

    비록 반강제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라면 녹스에게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라고 시키리라 생각했다.

    비록 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기는 해도, 일에 있어서는 달랐으니까.

    “지금처럼만 하세요. 동수 씨도 잘 하고 있군요.”

    녹스에게 하는 말이 지금처럼 하라는 거였다.

    좀 더 일을 착실하게 하라던지, 나를 좀 더 지켜주라는지, 그런 말 없이 그냥 지금처럼만 하라고.

    배신감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했던 약속은 뭐란 말인가.

    그래 놓고 내게 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일과 관련되어서 간섭하는 거 뿐이었다.

    이렇게하면 더 좋을 거라고.

    점점 초췌해져 가는 내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걸까.

    피곤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데도 고객이란 단어를 쓰고 괴물이라 부르는 놈들에게 당하는 게 너무 많아 피곤함이 가시지를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닌지, 이렇게 죽을 거였으면 차라리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고문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문.

    방치해 놓고서, 제대로 챙겨주지 않고서 시키는 일은 많다.

    은행에 새로운 기능이 생겨나면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머리를 걱정했다.

    귀찮더라도 말로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끄아아아아악!”

    그는 그런 거 없이 지식을 주입시켰다.

    예상할 수도 없는 타이밍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끔찍한 고통이 닥치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악에 바쳐 소리 지르는 것 뿐이었다.

    아프다. 아프고 화가 났다.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일은 일대로 시키고, 고통을 동반하는 지식 주입도 예고 없이 한다는 게.

    고통으로 가득 찬 머리에 고통을 밀어내고 분노가 차오를 정도다.

    ‘개 같은··· 시발.’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속으로 분노를 삭히는 것밖에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은행장은 내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이 은행을 동수 씨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당신이 지구 은행 지점의 지점장이 되는 거죠.”

    싫다. 죽어도 싫다.

    내가 미쳤다고 지점장이 된단 말인가.

    권력? 그딴 거 필요없다.

    분명 지점장이 되면 지점장에 맞게 내게 뭔가를 요구할 텐데, 나는 그런 게 싫다.

    지금도 힘들다. 지점장이 되면서 생기는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는 건 사양이다.

    내가 지점장이 된다고 해서 밑에 있는 직원들이 내 말에 잘 따를 것 같지도 않고, 지점장이 되면 어떤 고객을 상대하게 되는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월급이 상승하고, 보너스도 있을 겁니다. 좋죠?”

    좋기는 시발!

    싫다고, 나는 하기 싫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그는 내가 지점장이 된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 적응도, 정도 생기지 않는 이 개 같은 은행을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제대로 해줄 거라 믿습니다. 뭐, 망하게 되면···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귀찮은 일을 떠맡기면서 하는 말이 협박이다.

    어떻게 되겠냐고? 분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내게 주겠지.

    같은 인간으로서 그럴까 싶지만, 내가 아는 그라면, 지금까지 본 그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를 지경이다.

    “아, 그리고 삼일 내로 영업을 시작해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고객들 사이에서 불평이 나오면 안 되고요.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간단하다고 말하는 저 입을 단 한 대만이라도 때릴 수 있다면 소원이 따로 없을 텐데.

    그럴 수 있는 확률이 불가능에 가까운 게 아닌, 아예 불가능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포기.

    분노도, 억울함도, 고통도.

    결국 포기하게 된다는 걸, 포기하면 편하다는 걸 그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차피 할 수도 없는 거라면, 거부할 수 없다면 포기하고 수긍하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뭐라도 얻는 게 낫겠지.’

    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이라도 더 받으면 억울함이 덜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우선··· 직원들부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은행의 구조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기존에 있던 직원들이 유지되었다는 거.

    그래서 어찌어찌 불만을 가라앉히려 하는데.

    “녹스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

    “말 걸지마. 기분 더러우니까.”

    “···네. 그럼, 저기 노예 2······.”

    “삼일 동안 쉰덴다! 놀자!”

    “은행장이 안 온데!”

    녹스는 원래부터 내 말을 무시했으니 그렇다 쳐도, 노예들까지 저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저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 혼자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은행장이 본진을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날뛰는 걸 보니.

    삼일 만에 정상 영업을 하라고? 저런 놈들을 두고?

    엿이나 처먹으라 그래.

    “자유다!”

    “삼일 동안은 우리 세상이다!”

    날뛰는 그들을 보며 최동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의 심정과는 다르게 한없이 하얗기만 한 그 천장을 바라보며,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 때려쳐, 시발.”

    은행장 개새끼, 언젠가는 죽여버릴 거야.

    *

    후비적- 귀를 긁었다.

    누가 내 욕을 하는지 갑작스레 귀가 가려워졌다.

    귀에 집어넣었던 새끼손가락을 빼 내려다봤다.

    귓밥이 있는 걸 보니, 귀를 판 지 오래되어서 귀가 가려웠던 것 같다.

    하긴, 내가 평상시에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욕할까.

    나는 내 직원에게도 잘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흠···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네.”

    주위를 둘러본다.

    지구에서는 보지 못했던 넓직한 공간이 나를 반겨준다.

    30평이 넘는 공간 하나를 은행장 혼자서 차지한다.

    마냥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회장님이 이런 기분일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비서가 옆에 있는 것도, 여럿의 듬직한 경호원들이 내 옆을 지키는 것이 아니지만.

    발포스 혼자 나 혼자 지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걸 다 건너뛰어서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좋다.

    비서야 언제든지 고용할 수 있는 거고, 내 자신이 비서를 고용할 정도로 아직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직원 수십 명은 보유하고, 지점 다섯 개 이상은 갖고 있어야 비서를 가질 만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

    “직원들은 뭐합니까?”

    “메··· 메탁? 메텔? 하여튼, 그놈 주도하에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 종족상 직원을 이끄는 게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그래도 용종이니까요.”

    “용종에 대해 잘 아시나 봅니다?”

    “잘 알죠. 제 애완동물 중 하나가 차원 다섯 개를 말아먹은 마룡이기도 하고, 용을 잡아먹은 적도 많으니까요.”

    그때 용고기 진짜 맛있었는데-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곳에 메켄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있었다면 아마 바짝 굳어져 덜덜 떨고 있겠지.

    아, 아닌가. 그라면 졸고 있어 듣지 못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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