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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3화 (83/113)

제83화

은행장님!

포탈을 타고 시스템의 중심지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니, 차분한 금발이 인상적인 오페라 가면의 남자- No. 72가 보였다.

“언제부터 기다리셨던 겁니까?”

“아··· 방금 왔습니다.”

방금 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의 평소 모습을 생각해보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리고도 남았다.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바로 차원 은행으로 가실 겁니까?”

“네. 영업을 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관리자님이요?”

뭣하러 따라온다는 거지?

와도 볼 것도 없을 텐데, 내가 의아해하고 있으니 그가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 힘드시다면 안 데려가셔도 괜찮습니다!”

“아니요. 힘들 건 없습니다.”

가서 난장판을 피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숨겨야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구경만 할 건데 데려가지 못할 것도 없다.

괜찮다는 내 말에 그의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가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아 그는 무척이나 밝게 웃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까지 차원 은행을 구경해보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보니 난 한 번도 그를 차원 은행에 초대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 영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내 담당이기도 한 그였으니까.

오히려 어떻게 보면 조금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같이 가시죠. 가서 필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네?”

“가서 얘기하죠.”

은행을 영업하기 위해서는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그 직원 중 일부는 관리자들 중에서 뽑아야 하고, 그 권한을 No. 72가 갖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천 만개의 차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관리자들이 필요한다.

그런데 그 관리자들 일부를 독자적으로 빼내 차원 은행에서 일하게 하겠다니.

관리자들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만큼 차원 은행에서 가능성을 본 걸까.

내겐 나쁘지 않은 일이다.

회귀자뿐만이 아니라 시스템의 최고 관리자까지 차원 은행의 성공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거였으니까.

“흠··· 여기가 몇 층이라고 했죠?”

“4층과 9층의 사이.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직업인들 중에서도 상류층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4.5층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탑의 딱 중간에 위치한 곳이거든요. 이 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꽤 고생했습니다. 여기만큼 위아래로 맞닿은 위치를 구하기 힘들거든요.”

칭찬을 해달라는 듯한 그의 얼굴을 뒤로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게 사실임을 증명하듯 차원 은행 주위로 빼곡하게 건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잡하지도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도시의 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차원 은행은 그 중에서도 모두의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모든 건물을 내려다보는 위치.

왕의 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이곳에 올라오고 차원 은행이 지어진 것을 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웅성웅성-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는데, 나와 관리자를 가리키며 말하는 걸 보니 대충 뭐라고 숙덕거리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대충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저 자리를 차지하는 거야?’

‘관리자와 함께 있잖아? 관리자가 너무 굽신거리는데.’

‘저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니 평번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말들을 하고 있겠지.

“여기 원래 뭐가 있었습니까?”

그렇다 보니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높디 높은 위치도 위치지만, 저들의 반응이 평범하지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을 살피며 묻는 내 말에 No. 72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얼마 전까지 최고 관리자께서 자리하셨던 곳입니다. 정확히는 그분을 모시는 신전? 그런 거였죠. 여기 있는 이들에게 최고 관리자는 ‘신’이나 다름없으니까요.”

“···.”

지금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최고 관리자라면 그 진짜 신이라고 생각되게 만든 그 사람을 말하는 게 맞나?

순간 의심이 들 정도로 그의 말은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관리자가 그런 걸로 거짓말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

어렵게 숨을 토해냈다.

최고 관리자가 내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대중적으로 그걸 보여줄 줄은 몰랐다.

이건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신인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공표하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래, 좋게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차원 은행을 홍보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데.’

좋은 쪽이 더 크기도 하고, 이런 자리일수록 가격도 그만큼 클 테니 받는 입장에서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들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재주가 있군요.”

“놀라셨습니까?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이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내 호의를 얻고 싶어 이러는 거란 걸 누가 모를까.

‘그래 좋게 생각하자. 어쩌면 이것 덕분에 내가 안전해질 수도 있는 거니까.’

최고 관리자의 비호 아래 있는 이를 건들 정도로 간 큰 놈들은 적겠지.

긍정적으로 생각을 굴리며 차원 은행에 들어갔다.

“오, 이게 그···.”

No. 72가 주위를 차원 은행 내부를 둘러보며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이런 식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거군요. 나쁘지 않네요. 고객과 친밀감을 쌓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시스템만 이용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겠어요. 좀 더 꼬드기기도 편할 거고.”

“대기석은··· 좀 작네요.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이곳이 꽉 차도 모자랄 정도로 고객이 찾아올 텐데.”

“흠··· 관리자를 세 명 정도만 파견보내면 될 것 같기는 한데··· 혹시 크기를 더 키울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이라면 규모를 키우는 것도 ‘공.짜’인데.”

래퍼를 보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그리 빠르고 정밀하게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말을 빠르게 하지는 못해서, 저렇게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이 신기하다.

거기다 귀에 쏙쏙 박히는 정확한 발음까지, 탐날 정도다.

‘확실히···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돼. 그 말처럼 이 정도 규모 가지고 부족할 수도 있고.’

도움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내가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해준다는데 뭐하러 거절하겠는가.

거절하는 게 이상한 거지.

받을 때는 확실하게 받는 게 좋다.

“그것도 그렇네요. 이 정도 규모로는 부족하죠.”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도 통이 작았다.

겨우 이것에 만족하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차원 은행의 모든 시설을 최고치까지 올려야겠네요. 어차피 공짜니까.”

“어··· 은행장님?”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가 황급히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차원 은행을 확장하고 최고급 시설들을 사들였다.

[은행장실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차원 은행의 내부가 넓어집니다.]

[차원 은행의 대기석이 늘어납니다.]

[차원 은행의 창구가 증가합니다.]

[차원 은행···.]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버튼을 눌렀다.

내 행동에 얼굴이 창백해진 No. 72가 어딘가로 연락하는 게 보였다.

그것을 무시한 채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차원 은행을 업그레이드했다.

[무료로 지을 수 있는 최대치까지 결제하셨습니다.]

[시설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 코인이 소모됩니다.]

200평에 불과했던 내부가 1,000평이 넘게 넓어지다 못해 층이 생겨났다.

1층에 불과했던 차원 은행이 3층 크기로 바뀌었다.

5성 호텔도 필요 없다고 할 정도의 시설을 갖춘 은행장실은 3층에 위치했다.

정확히는 한 층 전체를 나 혼자 쓰는 거라 보면 된다.

5개 정도의 창구는 16개로 늘어났고 대기석의 개수는 24개가 최대였지만, 대신 의자 자체가 회장님이 앉을 법한 고급 의자로 바뀌었다.

그 의자에 안마 기능까지 있으니 말 다한 거다.

거기에 고객 전용의 화장실과 직원 전용의 화장실.

예금, 대출, 적금이 파트 별로 나뉘었다.

그 외에도 기존에 있던 직원 휴게실부터 과장실이나, 부장실과도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본격적으로 회사 같다라는 느낌이 나게 변했다.

‘이 정도면 내 개인 비서도 필요하겠는데. 나중에 규모가 이보다 커지면 감사기과도 필요할 거고, 경영지원본부같은 것도 필요할 테고··· 바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필요한 부서들이 있다.

비리를 검사하기 위한 기관부터, 인사발령과도 같은 것들을 다루는 부서까지.

차원 은행의 규모가 커지면서 내가 직접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해줄 곳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직원들을 많이 필요로 했다.

‘한두 명 가지고는 안 되지. 못해도 백 이상.’

시스템이 대부분 처리해주는 세상이라고 할 지라도 직원은 필요하다.

기존 은행들은 직원수가 최소 만 단위로 시작했다.

작은 은행들은 그보다 적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나처럼 십 여명 가지고는 영업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 적은 수로도 차원 은행을 굴릴 수 있는 건, 내가 은행의 시초이고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다르다. 언제까지 지금을 유지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화사하게 웃어줬는데 No. 72는 멍하니 있었다.

이렇게 환하게 웃는 내 미소는 보기 드문데.

“코, 코인이 조, 조 단위로···.”

지금 경기 일으키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 그러겠어. 본인이 하라고 해서 했는데, 이런 거 가지고 쪼잔하게 그러지는 않겠지.

‘코인을 좀 많이 쓰기는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게 다 투자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물론 그쪽에서 입장에서.

“그럼 천천히 구경하시고 3층으로 오시겠어요. 전 미리 가서 좀 살퍼보려고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3층이니, 계단이 필요할 법도 하지만, 나는 통 크게 행동했다.

-몇 층으로 가시겠습니까?

포탈을 설치했다. 그것도 차원 은행 전용으로.

오직 차원 은행 내에서 1~3층을 오갈 수 있는 이 포탈의 가격은 무려 천억대가 넘었다.

공짜라서 산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내가 이걸 살 리가 없다.

애초에 3층까지 생겨날 수도 없겠지.

3층을 누르고 안에 타니, 눈을 한번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3층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차원을 넘는 포탈과는 다르게 이건 아주 작은 어지러움도 주지 않았다.

“오··· 장난 아닌데?”

포탈에서 나와 3층을 살펴본 나는 감탄을 아낄 수가 없었다.

살아생전 이런 곳에 내가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장실과 5성 호텔을 합친다면 이럴까.

포탈에 나오자마자 로비가 보였다.

대리석으로 쫙 깔린 로비 옆으로는 통유리로 된 벽이 있었고, 그 벽 너머로는 고객이 사용할 응접실이 있었다.

심지어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유리를 투명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그 옆으로는 휴게실과 화장실이.

굳이 이런 게 필요할까 생각되는 오락실과 찜질방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다 내가 산 거기는 하지만, 다 사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다.

은행에 찜질방이라니,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다행인 점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오락실과는 다르게, 찜질방은 오직 나와 내가 허락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길의 끝에 은행장실이 보였다.

황금색의 손잡이와 여의주를 물고 있는 황룡과 금색 돼지를 물고 있는 황금 호랑이가 마주보고 있는 문.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이문에는 특별한 기능이 한 가지 있었다.

[은행장실에 들어가는 모든 이에게 위압감을 보입니다.]

[은행장실을 방문하는 이들이 위축됩니다.]

캬··· 내게 있어 이보다 좋은 기능이 어디 있을까.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고개들은 전부 알게 모르게 나를 올려다 보게 된다.

만족스럽게 그걸 훑어보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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