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잡화점 주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살핀다.
대뜸 한다는 말이 흑마법이 있냐고 묻는 거였다.
백마법도 흑마법, 그건 특정 차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직업인들이 기피하는 마법이기도 했다.
영혼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
생각해봐라, 방금 전까지 나와 웃고 떠들던 친구나 가족이 타인의 언데드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당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사람들은 흑마법을 기피했다.
“없습니까?”
“아니요. 없는 건 아닌데···.”
기피하기는 하지만, 금제하는 건 아니었다.
시스템이 보기에 흑마법도 하나의 수단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거지.
애초에 흑마법을 금제했다면, 발포스가 이리 태평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다.
그는 흑마법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흑마법의 시초는 악마와 마족이었다.
‘아, 발포스가 있었네.’
생각해 보니까, 굳이 여기까지 와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바로 내 옆에 흑마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어차피 시간도 남아도니까. 구경이라도 하자.’
사지는 않더라도 구경 정도는 해도 나쁘지 않다.
잡화점 주인 입장에서는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겠지만.
“여기, 이것들이 전부 흑마법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잡화점 주인이 잡화점 내에서도 아주 구석진 곳으로 안내했다.
흑마법을 직접 찾지 않는 이상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구석진 곳이었다.
그것만 봐도 흑마법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흠···.”
제자리로 돌아가는 잡화점 주인을 뒤로 한 채 그가 알려준 흑마법과 관련된 용품들을 살펴봤다.
-흑마법이란 무엇인가.
-흑마법의 시작.
-영혼을 보는 법.
-죽어 살아···.
수십여 가지의 용품들이 떠오른다.
알고 보니 외부에 보이는 물건들은 전부 가짜였다.
보여주기 식인 것이고, 진짜는 이렇게 시스템에 보호받고 있었다.
이게 맞지.
이런 것들을 밖에 내놓았다가 도둑이라도 들면 큰일이다.
만남의 광장 내에서라면 그런 일이 드물기는 하겠지만.
‘내가 차원 은행 안에서 목숨을 위협 받은 걸 생각하면 마냥 안전한 건 아니지.’
매사에 조심하는 건 나쁘지 않다.
지나친 염려는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적당한 염려는 앞날을 대비하게 해주니까.
“종류가 많네.”
내가 한창 살펴보고 있을 때, 옆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발포스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굳이 이런 곳까지 올 필요가 있습니까?”
“···?”
“내게 물으면 이까짓 것들을 사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거기 있는 그녀에게 물어도 궁금증은 충분히 해소할 수 있으니까요.”
고개를 돌려 발포스를 바라봤다.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라고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유흥입니다.”
그거 한 마디면 충분했다.
유흥. 내가 즐기려고 하는 건데, 다른 방법이 있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날 무시하는 건가? 사지도 않을 거면···.”
뒤에서 잡화점 주인이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진다.
발포스가 목소리를 작게 한 것도 아니기에, 그가 한 말은 잡화점 주인에게도 들렸다.
그리고 내 대답도 들었으니, 그가 불평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사지 않고 구경만 할 것처럼 말했으니까.
“유흥이라니··· 당신은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발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저 물품을 살폈다.
“확실히 별로 없네요.”
대충 살펴봤는데, 당장 내게 필요한 건 없었다.
기대도 안 했기 때문인지 실망감도 들지 않았다.
‘이제 막 만들어진 곳이라 그런지 전부 하급···.’
하다못해 포션 같은 것조차 상급이 최대였다.
그 이상은 무슨 조건이 붙는다.
거기에 그 조건을 해결하면 살 수 있냐고 물으니, 지금 당장 재고도 없다고 한다.
애초에 지금까지 포션이나 아이템들이 팔린 것도 몇 개 없고, 그것조차 싸구려라고 한다.
그게 딱 현 지구의 상황이다.
상급이나 중급은커녕 하급조차 겨우겨우 사는.
“잠시 실례했습니다. 많이 파세요.”
더 볼 것도 없어 잡화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잡화점 주인이 뭐 저런 놈이 다 있냐고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다못해 아주 싼 거라도 샀으면 모를까, 나는 슬쩍 훑어보기만 하고 떠나갔다.
주인 입장에서는 나 같은 손님은 다시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시 올 생각도 없지만.
[···07:23:11]
꽤 오랜 시간 동안 돌아다닌 것 같은데 아직도 7시간 넘게 시간이 남았다.
쇼핑을 하려 해봤지만, 그간의 일들을 통해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내 눈에 드는 것들이 없었다.
이런 것들은 굳이 코인을 주고 사지 않아도 시스템의 시설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다못해 엘릭서보다는 못하더라도 최상급 포션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예비용으로 샀을 텐데.
‘최상급은커녕 상급도 구하기 힘든데, 예비용은 무슨.’
하염없이 길을 걷기만 했다.
차원 은행을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빽빽하던 길거리였다.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나는 크게 불쾌함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래서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거구나.’
발포스가 기세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나를 중심으로 반경 1m까지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엉켜들면서 뼈가 부러지면서까지 내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본의 아니게 평화로운 강에 들어간 백상아리가 된 느낌이라, 더는 생태계 파괴를 하고 싶지 않아 차원 은행 근처 주점으로 돌아왔다.
길거리와는 다르게 주점은 텅텅 비어 있었다.
주점의 음식들은 물 한 잔이 1코인이다.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코인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점 주인을 포함해 만남의 광장에 자리 잡은 상점 주인들은 따분함과 짜증이 얼굴에 가득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되고 매일 매출이 100코인을 넘지 못한다.
매일이 적자였기에, 그들은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썩을··· 이 정도로 빈약한 줄 알았다면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내 앞에 쿵, 소리 나게 술잔을 내려놓으며 주점 주인이 콧김을 뿜어냈다.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채 그가 준 술잔을 들었다.
부글거리는 황갈색 액체 위로 새하얀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흑맥주.
지구에서 파는 그런 흑맥주가 아닌, 주점 주인의 차원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만득 특제였다.
지구에서 만든 것은 팔지 않는다.
정확히는 이곳에서만 팔지 않았다. 지구인들 중 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직업인이 있을지 모르니까.
“크···.”
흑맥주의 맛은 다소 특이했다.
달콤쌉싸름하면 한번도 맛본적 없는 그 특유의 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맴돌았다.
맛있다.
굳이 안주를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한 맛이다.
내가 이곳에 와 유일하게 먹는 술이기도 했다.
500ml 한 잔에 무려 500코인이나 하는 비싼 술.
이거라도 마시고 있지 않으면 남은 시간을 버티고 있기 힘들 것 같았다.
“으음···.”
술맛을 만족스럽게 즐기는 나와는 다르게 옆에 앉아 주점에서 가장 도수가 높은 술을 시켜 마시는 발포스의 얼굴은 어두웠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원샷해버린 술잔을 손가락으로 퉁퉁, 튕기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잠깐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계속 그러고 있으니 그와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나조차 덩달아 술맛이 없어지려 했다.
“뭐합니까, 보기 안 좋게.”
“아···.”
그가 나를 바라본다. 어째서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지금 웁니까?”
“아니, 좀 들오보세요. 제가 은행장님의 경호원이 된지 벌써 이주가 지났습니다. 그렇죠?”
“네. 뭐···.”
“그 시간이 나쁜 건 아닙니다. 즐겁죠.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식탁을 탕탕, 내려치며 소리친다.
귀가 아파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그만하라고 말하니, 그가 격렬한 몸동작만 멈췄지 목소리는 여전히 커다랬다.
“먹을 거? 어차피 먹지 않아도 죽지 않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술은 다르죠! 이거 뭐, 탄산 탄 맹물도 아니고! 이게 술이라고 파는 것도 참 대단하네요!”
취한 건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도수가 낮아 불만인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을 보면 딱 취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얼굴도 붉으스름한 게 의심이 된다.
“지금 내 술이 도수가 약하다는 거지? 젠장, 분하군. 저 남자가 마신만 아니었다면···.”
잡화점 주인도 그렇고, 주점 주인까지.
의도치 않게 적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주된 범인이 내 앞에서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발포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망주를 가지고 오는 거였는데!”
“사망주?”
무슨 그딴 불길한 이름의 술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그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니, 내 행동을 오해한 발포스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오, 은행장님도 술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군요. 지옥주는 제 희대의 작품입니다! 무려 저승의 불과 천계 놈들의 피를···!”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몇 번이고 듣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망주의 만드는 과정을 나열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역한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절반도 마시지 못한 술잔에 들어 있던 술들이 식탁에 내려놓는 충격에 찰랑거렸다.
제발 좀 입을 다물어주면 좋을 텐데,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건지 그는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떠올렸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내게 꼼짝을 못하는 그의 본질은 마신이라는 걸.
그에게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당연한 거라는 걸.
‘은행장이 되어 그를 만난 게 다행이네.’
그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그를 만났다면, 나는 그에게 한 끼의 식사밖에 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내가 은행장이란 것은 변하지 않고, 그건 앞으로 마찬가지다.
“···아주 굉장하지 않습니까!”
“네. 굉장하네요.”
절반은 흘러넘겼지만, 대충 그의 말에 반응해줬다.
그리고 최고 관리자를 만나고 나서부터 품었던 의문을 그에게 말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
“격이 뭡니까. 아니, 격을 올려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
발포스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그리고 천장을 보는가 하더니, 땅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코인, 그것이 격입니다.”
“아, 그건 들었···.”
“하지만 다르기도 하죠.”
그가 식탁에 놓여진 접시를 잡았다.
그 안에는 뻥튀기를 닮은 안주가 들어 있었다.
그가 그것을 식탁에 아무렇게나 쏟아 부으며 말했다.
“격은 그릇입니다.”
그가 접시를 들어 안을 보인다.
“그리고 코인은 그릇에 담긴 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내가 남긴 술잔을 들어 접시에 따라부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은행장님께서 언제쯤 그 질문을 하실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현 상태가 마냥 좋은 건 아니거든요.”
말을 하는 그의 손에 술이 흘러내렸다.
접시에 술이 넘친 것이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계속 따랐다.
술이 땅에 뚝뚝 떨어진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접시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꾸득- 하는 소리와 함께 접시에 금이 갔다.
그 사이로 술이 새기 시작했다.
“당신이 지금 이런 상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