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9화 (79/113)

제79화

[12:23:12 후 이관이 완료됩니다.]

폐허에서 만남의 광장으로 이관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보다 한 시간 늘어났다.

거리와 위치에 따라 시간과 비용도 달라진다.

나야 시스템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에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고 코인을 따로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다.

원래 시스템의 중심부로 이관한 시간은 평균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모든 차원을 관리하는 곳의 중심이기에 절차가 복잡한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건너뛴 것이고.

‘스케일이 자꾸 커지네.’

차원 은행과 가장 가까운 주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원 은행의 건물을 가만히 바라봤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내가 하는 일의 규모가 커졌다.

물론 그 모든 게 내가 움직여 생기는 것이기는 했지만.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지.’

현대 사회에서 나는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수동에 가까웠다.

시켜서 하는, 해야 하기에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성과금이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작은 지점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주어진 업무에만 충실했다.

그때의 나였다면 이렇게 움직이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생사를 아슬아슬하게 오고 가는 중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던 내가 그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어.’

애초에 세상이 멸망하고, 그 멸망한 세상에서 은행장이 될 거라고는 나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난 현실적인 사람이다.

상상과 현실을 구분 짓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웹소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내가 절대 웹소설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현실을 살기 바쁜,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남자였으니까.

그랬는데, 그랬던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앞으로 12시간··· 남은 시간동안 뭘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다 놀러간 와중에 나 혼자 남았다.

녹스는 백예린과 헤어지기전 최대한 많은 걸 해주려는 건지 그녀를 데리고 만남의 광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를 지나치는 그의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데.

“거기가면 제대로 쉬지도 못할 텐데, 그전에 실컷 즐기게 해줘야지.”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런데 그건 그의 착각이고 오해였다.

나는 결코 그녀를 혹사시킬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내 사람에게는 잘해줄 거니까.

정해진 시간에만 충실히 일해주면 그 이외에것은 건들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곳에 만남의 광장과 같은 시장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착각이었다.

‘오히려 이런 곳보다 더 낫지. 더 고급스럽고.’

시스템의 이용자들 중에도 탑 클래스만 오가는 곳이기에 전반적으로 모든 시설이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차원 은행 직원 한정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있으니 이곳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알아서 해주겠다는데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

내 코인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가 자신의 코인으로 그녀를 챙겨주겠다는 그걸 말릴 이유는 없다.

“나도 쇼핑을 좀 해볼까.”

주점에만 죽치고 앉아 있기에는 내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뭐라도 하고 싶은데 할만한 게 쇼핑말고는 없었다.

그렇다고 만남의 광장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뭐 얻을 거 있다고 저기를 가겠는가.

굳이 밖을 나가 몬스터를 잡지 않아도 내게는 코인을 벌어들일 훌륭한 수단이 있었다.

“흠···.”

그러고 보니 윌리엄의 대해서도 말해줘야 하는데.

나는 차원 은행을 옮기면 어지간해서는 그곳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정말 아주 급할 때, 지점에 큰 문제가 생겨 영업이 힘들 게 되는 그런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면 지구에 올 생각도 없다.

그렇게 되면 윌리엄이 찾아와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아, 그가 VIP가 되면 또 모르겠네.’

VIP는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적당한 코인의 양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

코인의 양도 양이지만, 주어진 조건이 최악이다.

-천억 코인 이상 거래, 차원 은행 이용 2년 이상, 은행장의 수락.

앞에 두 개는 그래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거였다.

능력만 있다면 시간이 걸려도 충분히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것은 다르다.

내 허락이 있어야 했고, 나는 내가 보기에 만족스럽지 못하면 가차 없이 거부할 거다.

내가 관리하는 차원 은행의 VIP는 깐깐하게 받아들일 생각이다.

전에는 코인만 많으면 전부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고객이라고 아무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내게 다가오는지도 모르는데, 자칫 잘못하면 나를 해칠 수 있는 고객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군. 언제든 오라고, 은행장은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주점의 주인, 불독 수인이 나를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쓴 미소를 지었다.

차원 은행을 이관하면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곳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내가 이곳에 내려와 그를 만날 정도로 우리의 사이가 친근한 것도 아니었다.

아는 사이.

딱 그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며 주점을 나왔다.

‘여전히 사람이 많네.’

주점을 나가기 무섭게 나는 사람들 틈새에 끼어 버렸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허전하다고 느꼈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거리는 심히 북적거렸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걸지 모른다.

시스템이 나타나기 전 지구의 인구수는 팔십 억에 가까웠다.

세계 전역에 재앙이 닥치면서 인구가 줄었을지라도, 모조리 몰상 당한 게 아닌 이상 여전히 사람들은 억 소리 나게 많을 것이다.

중국과 인도만 십억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그쪽에 있는 사람들만 이곳에 넘어온다 쳐도 엄청나다.

최소 억.

오히려 지금 보이는 사람들이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모여들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수는 겨우 수백 명정도.

그 이유는 거리가 좁은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통행세 때문일 것이다.

개체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면 한 마리당 2, 3코인을 얻는다.

그리고 통행세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평균 100코인 이상.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최소 사십 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직업도 제각각인 그들은 전투직보다 생산직과 관련된 비전투직의 사람들이 많다.

그런 그들이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잡기란 어불성설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역전의 용사처럼 보일 거다.

적어도 그들은 몬스터를 사냥해 안으로 들어온 거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코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몬스터 사냥, 두 번째로는 코인으로 교환할 충분할 가치를 가진 자원 채집.

마지막으로 인간 사냥.

“이들 중에는 살인자와 같은 범죄와 관련된 직업을 이들도 있겠지.”

몬스터를 죽이면 마석을 떨군다.

정확히는 지성을 갖지 못한 몬스터 한정이다.

우리들이 몬스터라 여기는 것들 중에는 수인족과 같은 이들도 있으니까.

시스템에 직업인(무직업자도 직업에 들어간다.)으로 등록되지 않은 것들은 전부 죽으면 마석을 떨군다.

하지만 반대로 직업인들은 죽으면 코인을 떨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코인을.

그 말은 곧, 굳히 위험하게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아도 인간을 죽이면 코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성이 없어 인간만 보면 무작정 달려드는 몬스터보다 인간을 죽이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지.’

적어도 인간은 어지간히 불신에 찬 인간이 아니라면, 같이 지내다 보면 마음을 열게 된다.

하물며 인간을 죽이기 위해 자신조차 속이는 범죄자라면 어떨까.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줄 것처럼 굴기에, 처음에는 의심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방심을 하게 될 수 있다.

방심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코인을 얻은 이들은 그 코인으로 만남의 광장에 들어오는 거고.

‘다행인 건 시스템은 그런 손해적인 행동을 하지 않다는 거지.’

인간을 죽여 코인을 얻는 건 당장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손해다.

그들을 노예로 부리면 더 많은 코인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시스템도 파산한 채무자들을 죽이지 않고 노예로 부리는 것이다.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를 보기에.

‘중요한 건 나라고 안전하지 않다는 거지.’

적어도 내가 반지를 빼고 발포스 없이 혼자 다닐 때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만남의 광장은 폭력과 같은 범죄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 안전지대인 것이고, 나는 언제나 반지를 차고 다닌다는 것이다.

발포스가 없어도 나는 나를 지킬 수단이 많았다.

하다못해 불멸의 전사에게 받은 돌을 부수면 발키리들을 불러낼 수 있다.

딸랑.

잡화점으로 보이는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옵쇼!”

잡화점의 주인이 밝은 목소리로 나를 반긴다.

거리에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아직 물건을 살 정도로 코인이 많은 고객은 적다.

나는 그에게 고개만 살짝 움직여 인사를 하고 잡화점을 둘러봤다.

온갖 물건들이 보였다.

검과 방패등을 파는 대장간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없는 물건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시스템에 부탁해도 되지만, 대가가 워낙 커서···.’

굳이 잡화점에 들러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은 물건을 살 방법은 많았다.

가까이는 시스템이 있다.

관리자들에게 부탁하거나, 시스템 중심지에 있는 상점들에 방문하면 이곳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물들을 살 수 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큰 대가를 치르거나, 지금의 나로서도 부담이 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돌 하나가 3조나 한다는 말에 나는 그 자리에 굳어져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했지.

‘영생의 돌이라고 했던가?’

마력만 충분하다면 평생을 젊은 육체로 살아갈 수 있는 돌.

그것만 보면 분명 대단해 보이기는 하지만, 뭐든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영생을 얻는 대신 감정과 가장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게 된다고 했지.’

정확히 어떻게 중요한 걸 잃게 하는지 모르지만, 괜한 도박을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차원 은행을 잃을 수도 있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지.’

내가 현재 이 자리에 오고, 굳이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직업.

차원 은행을 잃는 그 날은 내가 죽는 날이라고 보면 된다.

‘굳이 그런 도박을 안 해도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많아.’

엘릭서나 신들이 마시고 먹는다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같은.

뭐, 그것들이라고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건 아니다.

그거 한잔이나 한 개를 먹는다고 불멸의 몸과 영생을 준다면, 신들이 주구장창 그것을 먹을 리가 없다.

수명을 엄청나게 늘려주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건 아닐 거다.

‘최고 관리자도 자신을 제외하고는 영생을 사는 존재도, 방법도 없다고 했지. 있다고 해도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고.’

No. 72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한 번 먹으면 끊지 못한다고 했다.

계속 먹으면 분명 수명이 늘어나고 강인한 육체를 얻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코인이 끝임없이 들어오는 최고위신이나 먹을 수 있다.

나도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걸 먹고 나서 끊을 때가 문제다.

최소 하루에서 최대 한 달까지.

그것을 끊게 되면 한순간에 노화가 찾아오고 결국 소멸한다고 한다.

죽는 것도 아니고 소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거다.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내가 시간을 오래 끌었던 건지, 잡화점 주인이 말을 건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의심이 맴돈다.

내가 코인도 없이 그저 들어와 시간을 죽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얼굴.

‘나를 처음 보나 보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런 눈빛으로 보지 못할 텐데.

만남의 광장에 있는 모든 상점 주인들보다 코인이 많은 게 나니까.

“혹시 흑마법과 관련된 것들이 있습니까?”

“흑마법이요?”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