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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7화 (77/113)

제77화

나는 최동수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라 생각했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그런 반응을 할 만한 게 나는 무려 지점장을 하라고 한 것이다.

그의 나이는 스물셋.

시스템이 나타나기 전으로 따지면 군대에 들어가 있거나, 한창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야 할 나이였다.

지점장은커녕 일을 하고나 있으면 다행이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나와 대학교를 나오지 않고 취업을 한다면 다른 이들보다 경험을 더 쌓을 수 있고, 승진도 빠르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다고 해서 지점장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 개인 사업을 내면 사장은 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현재 그가 다니는 직장이 어디인가.

신생 기업이라고 하지만 엄청난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차원 은행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고, 만들어진지 한달 만에 조 단위의 코인을 벌어들인 곳이다.

그것만 놓고 봐도 엄청나다. 대기업이라 해도 이 정도의 금액을 단기간에 벌어들이기는 힘들다.

그건 일반 은행도 마찬가지.

그런 곳의 지점장이 될 수 있는 거였다.

정말 미쳤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고속 승진.

기뻐해야 정상이건만.

“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는 경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미쳤다고 그 일을 하겠냐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들을 대할 때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당신은 ‘왜?’라는 질문이 아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셔야 합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그런 내 분위기를 읽었는지 그가 불평을 내뱉던 걸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답하셔야죠?”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분명히 미소를 지었는데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족제비를 닮았다.

“하,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야죠. 월급도 오르고, 직위도 오르는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대답을 들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반강제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는 나와 계약을 했기에 내 말을 거스를 수 없다.

그의 반응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기는 했지만, 한다고 했으니 더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아, 그리고 이곳도 옮길 생각입니다.”

“네?”

“이미 한번 경험해 보셨잖아요. 제가 차원 은행을 그곳에서 이곳으로 이관한걸.”

“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며 은행장실 밖에서 입구를 서성이는 직원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경비원들인 그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사이 이런 일이 벌어져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몇 명이라도 남겨놓고 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최동수도 은근히 그들을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이 놀러가게 둔 것도, 같이 나가지 않은 것도 자신이기에 원망을 빠르게 접었다.

“다 모였군요.”

나는 은행장실에 모여 내 앞에 서 있는 직원들을 훑어봤다.

녹스, 백예린, 최동수··· 그리고 개인 경호원인 발포스까지.

윌리엄이 보내준 직원들을 일부로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내 사람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직장은 계속 이곳이 될 것이기에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는 최동수가 알아서 챙겨줄 것이다.

지점장인 그의 손발이 되어줄 직원이니까.

굳이 내가 그들에게 일일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

“동수 씨에게 말하기는 했는데, 저는 차원 은행을 옮길 생각입니다.”

“···.”

“또?”

“차원 은행을 이동하다니요?”

최동수는 입을 다물고, 녹스는 눈살을 찌푸렸으며, 백예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반응이 어떻든 상관없다.

이건 그들의 의견을 구하는 게 아닌 통보였으니까.

애초에 그들은 차원 은행을 옮긴다고 해서 큰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소속된 나라가 사라지고, 세상 전체가 무법지대가 된 지금 집을 이사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확히는 본사를 옮기는 겁니다. 이곳은 차원 은행 본사가 아닌 지점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동수 씨와 녹스 씨는 이관을 한번 경험해 보셨죠? 그때와 비슷할 겁니다.”

최동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가 지점장이 될 거라는 소리를 한 후로 그는 충격을 받고 말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최동수는 둘째치더라도 녹스는 조금 반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얌전했다.

정확히는 이런 내 막무가내 행동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기만 했다.

“동수 씨와 녹스 씨는 지금처럼 이곳에서 일해주시면 됩니다. 정해진 시간대로 주어진 업무에 충실히.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나머지 시간에는 원하는 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잠깐만··· 저와 그만 말한 의미가 뭡니까? 예린이는 어떻게 되는 거죠?”

녹스가 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벌써 이름으로 부를 만큼 친해진 걸까.

나는 신기해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면 된다고 말한 사람은 그와 최동수뿐이었다.

원래 그들과 일한 이들은 백예린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녀를 빼고 말한 것에 이상한 걸 느낀 것이다.

“어, 저요?”

정작 당사자는 이상한 점을 못 느꼈지만.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만남의 광장에 밖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거지꼴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배에서는 계속해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땀을 흘렸지만 씻지 못한 그녀의 몸에서는 역한 쉰내가 났었다.

머리카락은 흙먼지로 가득해 푸석했으며, 그녀의 얼굴은 피로와 공포에 쪄들어 폐인과 같았고,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삼시세끼 제대로 제공되는 식사에 살이 보기 좋게 올랐다.

숙소에 딸려 있는 샤워실에 그녀의 몸에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났고, 녹스와의 단련을 통해 그녀의 얼굴과 몸은 한눈에 봐도 건강해 보였다.

녹스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그녀의 피부는 단련한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기 피부처럼 탱탱했으며, 머리카락 또한 CF 광고처럼 좋은 머릿결을 자랑했다.

녹스가 잘 챙겨주고 있었다는 증거 그 자체였다.

‘내가 본 것도 있으니.’

녹스는 그녀에게 최상의 훈련 방법을 마련했다.

그의 가신 중 주먹을 가장 잘 사용하는 이에게 전투를 배우게 했으며, 훈련이 끝날 때면 마법으로 근육의 피로를 없애는 둥 성심성의를 다했다.

부탁했던 나조차 과한 게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백예린을 엄청 챙겼다.

어떻게 보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가 딱히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수백년간 던전에 갇힌 채 밖으로 나가지도, 그렇다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념무상.

그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쭉 그 상태로 지내왔다.

그런 그에게 아주 오랜만에, 수백년만에 제자가 생긴 것이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무예가들처럼 후계 양성에 힘을 쓴다.

다만 그 집착의 성향이 강하다.

최고로, 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걸 이루게 만든다.

더군다나 망자가 아닌 생자를, 무재능자가 아닌 재능이 있는 이를 가르친다.

비록 그 재능이 ‘마법’이 아닌 ‘무예’에 있었지만, 그 두가지의 궁금적인 목표는 한 가지였다.

힘.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에게는 그 힘을 줄 힘과 경험이 있었다.

수백년을 산 엘더 리치.

거기에 발포스와 여러 성좌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다.

시야가 넓어져 그에 맞춰 지식의 폭도 넓어졌다.

정체되었던 경지에 금이 간 것이다.

그를 막고 있던 벽이 조금이지만 틈이 생겨났다.

“그는 나와 갈 것입니다.”

“동의할 수 없다.”

녹스가 내 말에 강한 반발을 일으키는 것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백예린을 가르치면서 그도 배우는 게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그 조금만을 가로채려 하고 있었다.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상황.

다만 그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이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떡하실 거죠?”

“···뭐?”

그가 눈살을 찌푸린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눈치가 빠른 리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알고 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라던가.

“오해하고 계신 게 있는데, 저는 예린 씨가 당신에게 배우게 했지,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언제라도 그녀는 제 말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계약을 했으니까요.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나는 너와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

“그래요. 세부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았죠. 그걸 잊고 있었네요.”

그와 내가 계약한 내용은 내 직원으로서 일하면서 내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가 전부였다.

그 외는 추가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뭔가를 할 생각 자체를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죠. 당신은 이곳에 묶여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린 씨를 데리고 갈 생각이고요. 뭐가 더 필요한가요?”

“···그녀는 아직 내게 배울 게 남아 있다.”

“저는 더 좋은 스승을 구할 능력이 있습니다. 녹스 씨의 능력도 좋지만, 당신은 마법사입니다. 권사가 아니죠.”

“···.”

“아, 물론 당신의 가신 중에 훌륭한 스승이 있을 수 있죠. 실제로 저는 이렇게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요.”

왼손을 들어 그에게 보였다.

그가 나에게 보호 수단이라며 준 반지였다.

정확히는 데스나이트가 들어 있는 반지.

그것도 녹스의 가신 중 가장 강한 존재였다.

이 반지 덕분에 나는 여러 위기들을 넘길 수 있었다.

“잠깐만··· 뭐지, 어째서 연결이 끊긴 거지?”

그런데 반지를 본 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그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거기까지.”

그런 그의 앞을 발포스가 막아섰다.

녹스가 발포스를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최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발포스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엘더 리치이고, 발포스는 그 리치들을 만들어낸 마족과 악마들의 신이었다.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녹스가 평생을 수련한다고 해도 발포스를 이길 수는 없다.

종족이 바끼지 않는 이상 그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나는 발포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그에게 반지를 보이며 물었다.

녹스는 발포스를 힐끔 바라보더니, 반지를 살핀다.

그리고 눈살을 팍 찌푸리며 말한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나와 영혼의 계약이 끊기고 당신에게 귀속되었군.”

그의 말은 다소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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