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5화 (75/113)

제75화

어느 날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모든 지구인에게 한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89434323. 지구의 채무자들은 차원 은행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뭐야, 이거? 차원 은행?”

크아아아!

“아, 씨. 귀 아프잖아!”

사냥을 하고 있드는 이들에게.

“나, 난 살 거야! 살 거··· 뭐야 이거? 으아아아악!”

콰득, 콰드드득.

몬스터들에게서 도망을 치던 이들에게.

“이야. 코인이란 게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은행이 있었네. 신기하지 않아?”

“으으. 사, 살려주세요.”

“개새끼가 어떻게 사람 말을 하지? 개처럼 짖어.”

그 외에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전해졌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쾌락을 위해서, 혹은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던 이들이 차원 은행에 관심을 가졌고.

“하아? 진짜, 대박이네. 최고 관리자를 만나게 되는 건 1년 뒤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나댔나? 슬슬 만나러 가보기는 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짓던 회귀자까지 차원 은행을 향해 움직였다.

*

[차원 은행을 이관하시겠습니까?]

나는 지금 한 가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본사를 옮길지 말지.

원래 본사를 옮길 생각은 아니었다.

적어도 당장은 없었다.

이관에는 돈이 들고, 당장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본점을 지구에 둬도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시스템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지점을 내야 한다.’

시스템과 계약을 한 나는 어느 한곳에 속해서도 안 되는 중립적인 역할을 취해야 한다.

그런 차원 은행이 하나의 차원에 본사를 뒀다?

고객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분명 그걸 좋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해서라도 옮기기는 해야 했다.

‘최고 관리자가 이관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지원해준다고 했으니.’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시스템의 중심지였다.

차원 거주민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올 수 있는 곳.

어떻게 보면 이곳이 차원 은행이 들어서기에 알맞은 곳이기도 했다.

시스템의 중심지인 만큼 진상들도 그만큼 줄어들테니까.

‘다만 문제는 관리자들이나 관리자들이 추천하는 이를 직원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건가.’

이관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해줘야 하는 거다.

큰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감시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옮긴다고 해서 바로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직원들은 관리자들로 구성한다고 해도, 추가로 더 뽑기는 해야 한다.

직원 전체를 관리자로 채울 수는 없다.

아니, 내가 싫다.

분명 좋기야 하겠지만, 그들은 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적어도 한두 사람은 내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직원이 필요했다.

“옮겨도 기존에 있던 은행은 지점으로서 운영해야지.”

은행을 옮겼다고 기존에 있던 자리를 버리기에는 아깝다.

그것도 공짜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이후에는 내 코인이 들어갔다.

그 구조는 그대로 두고, 새로 이관한 차원 은행은 그 구조를 본 따 만들 생각이다.

기존에 있던 건 두고, 지점장을 한 명 둬야지.

‘지점장으로는 역시 최동수밖에 없겠지.’

지나치게 빠른 승진이기는 하지만, 지금 믿고 맡길 사람은 그놈밖에 없었다.

나 다음으로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하고, 윌리엄이 보낸 이들을 지점장으로 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새로 직원을 뽑을 수도 없다.

역시 지점장으로는 최동수가 제격이다.

차원 은행이 만들어지고 나랑 가장 오래 붙어 일을 했던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계약도 했으니 나를 거스를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최근 슬슬 기어 오르는 것 같지만··· 일만 잘해준다면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도를 지나치면 당연히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그 전에는 풀어줄 생각이다.

지점장이 될 몸인데 너무 압박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그래도 말은 해둬야겠지?’

본사를 이관하는 건 정해진 일이었다.

이미 최고 관리자와 계약을 한 상태이고, 나부터가 그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잠시 꺼두고 걸음을 옮겼다.

본사를 옮기기 전 준비할 것도 있었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포탈로 걸음을 옮기는 내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오페라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내 담당 관리자인 No. 72였다.

“네. 옮기려면 준비해야 할 게 있으니까요.”

“제가 도울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자잘한 것들 뿐이라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직원을 뽑는 과정 말입니다.”

“···?”

“은행장님께서 차원 은행을 이관하시고 나서 은행 내에서 면접을 진행하고자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음···.”

면접, 면접이라···.

예전에는 본사에서 보내준 사람만 써서 내가 면접이라고 할 만한 걸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걸 잘할 거라는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해야하는 것이고.

“면접관으로는 당연히 은행장님과, 그리고 저와 No. 2가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불편하게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없습니다.”

크게 고민이 되지 않았다.

도와주겠다는데, 내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거절할 이유도 없지.

그리고 설마 동업자에게 사기를 치겠는가.

오히려 나와 척을 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면접을 보겠지.

뭐, 이건 내 예상이지만.

“그럼 더 있습니까?”

“아니요. 나머지는 면접 후 직원을 뽑으시고 나서 이야기하시죠.”

“알겠습니다.”

시스템의 중심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차원 은행으로 향했다.

직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최동수에게 지점장에 대해 말하고 교육하기 위해서.

그렇게 차원 은행 안으로 들어간 나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광경에 굳어졌다.

“야, 좀 내놔 보라고!”

“친구한테 그 정도도 못해주냐? 어? 와, 이 새끼 진짜 나쁜 놈이네.”

최동수가 보였다.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는 그의 주위로 여럿의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은 더러웠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온 용사처럼 그들의 몸은 몬스터들의 체액이 묻어 있었고, 옷은 헤질 대로 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 개로 그들의 얼굴은 악마, 그 자체였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협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딱 반 친구를 괴롭히는 일진들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어? 그깟 코인이 뭐라고 못 주는 건데.”

“우리랑 오래 떨어져 있어서 미친 거지. 그래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 모르는 거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고객들이 없었다.

24시간 영업인데, 고객 한 명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게 당연했다.

본사를 옮기기 위해 이틀간 휴업했다.

고객들의 불평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면서 이관을 하는 건 복잡해진다.

하려면 할 수야 있기는 하지만···.

‘시스템에서 손해를 다 보상해준다고 하니, 굳이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시스템과 계약을 한 건 여러모로 내게 큰 이익을 주었다.

장사를 하지 않아도 돈을 받는다니. 이보다 큰 혜택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 이후에는 내가 알아서 해야 하지만, 그때만이라도 책임져 준다니 마음이 든든했다.

그래서 지금도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어째 하루도 빠짐없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지.

한숨만 나온다.

‘녹스는··· 없네?’

녹스 뿐만이 아니었다.

백예린도 없었고 노예들도 싸그리 사라져 있었다.

있는 거라고는 저기 구석에 쭈구려 앉아 땅을 파고 있는 발포스 뿐이었다.

“이번에도 나만 놓고 갔어. 어째서? 내가 그렇게 미덥지 못한 건가? 나는 가치가 없는 거야?”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의 한심한 모습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질렀다.

[22:34]

시간을 본 나는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짐작이 되었다.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쇼핑을 즐기고 있는 거겠지.

나는 포탈을 통해 바로 차원 은행에 온 것이기에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설마 윌리엄이 보낸 사람들마저 나갔을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노예들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아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여기 남아 있으면 뭐할까.

이럴 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최동수를 향해 소리치는 남자들 중 한 명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시죠?”

“허억! 넌 또 뭐야!”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놀랐는지 내게 어깨가 붙잡힌 남자가 주저앉았다.

그의 동료들은 나를 보며 기겁한다.

그들을 둘러보다 최동수에게 다가갔다.

“동수씨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 어어···.”

최동수가 나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남자들 중 하나.

“너, 뭐···!”

“발포스.”

나는 그의 말을 끊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남자를 불렀다.

“누굴 부···!”

콰득.

내게 말을 걸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대로 벽으로 날아간 남자의 몸이 벽에 부딪혀 땅에 쓰러진다.

목이 기괴하게 돌아가 있는 게 목뼈가 부러진 것 같다.

신기한 건 그런 모습으로도 아직 살아 있다는 거였다.

내가 명령하기 전에는 죽이지 말라고 했단 걸 그가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

“은행장님!”

발포스가 내 어깨에 손을 뻗다가 중간에 멈춘다.

차마 내 어깨를 붙잡지 못한 채 그가 발을 동동 구른다.

그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제가 그렇게 싫으셨습니까? 제가 못 미더우셨건가요? 도대체 왜 저를···.”

“그건 있다가 얘기하고.”

도저히 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리고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들을 스윽 둘러보며 말했다.

“저것들부터 정리하시죠.”

“알겠습니다!”

발포스가 움직인다.

남자들은 이렇다 할 비명이나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 모두 몸 어딘가가 부러졌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한곳에 모아두라 말하며 최동수를 돌아봤다.

“최동수씨.”

“···예.”

그가 힘없이 대답한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온몸이 잘게 떨리며 손톱을 깨문다.

자신이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들과 무슨 관계이기에 이렇게까지 떨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녹스가 있었다면 그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이 진상짓을 하기도 전에 그가 막았을 테니까.

‘그런데 이건 좀 어떻게 해야겠네. 문을 닫았음에도 지구에 있는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면 이렇게 쉽게 들어오니. 나중에는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다.’

24시간 경비를 두던가, 아니면 문에 계폐 장치를 하나 만들던가 해야겠다.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내며 최동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 겁니까.”

“그, 그게···.”

최동수가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는다.

저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면 편할 텐데.

솔직히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들과 무슨 사이인 건지.

나는 그에게 캐묻기를 그만두고 말을 돌렸다.

“제가 뭘 해주기를 원합니까?”

“···네?”

“원하는 걸 말하세요. 설령 그게 저들을 죽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내 말에 그의 얼굴이 멍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