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4화 (74/113)

제74화

파산, 혹은 부도.

기업인에게 그리고 기업을 이끄는 사장이나 회장에게 가장 두려운 말이자 절망을 안기는 단어.

최고 관리자가 내게 한 제안은 나를 파산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알려주다 못해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전혀 좋은 기회가 아니야.’

현재 시스템과 차원 거주민들의 거래 방식은 마석이었다.

마석으로 코인을 거래한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코인을 직접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기관이 생겨났다.

시스템이 직접 보증하기에 사기도 아니다.

그 이후에 그들이 할 행동은 간단하다.

‘마석을 환전하겠지.’

그게 마냥 나쁜 건 아니다.

돈은 순환한다는 말이 있다.

마석이 들어오면 그만큼 나가는 게 있다.

그렇게 돌고 돌면 그 수수료를 받아먹는 차원 은행은 당연히 이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처음’이었다.

내가 가진 자본이 그들의 마석을 감당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수천만개의 차원에서 몰려오는 거주민들의 마석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 1%? 그정도만 받아도 전재산이 사라지겠지.

어찌어찌 버틸 수 있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힘들다.

‘그렇다고 거절 할 수도 없고.’

분명 이번 건은 큰 기회였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아마 이 제안을 거절하면 최고 관리자와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외로 그 답은 간단히 있었다.

‘최고 관리자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해결책은 가까이 있으니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럽다? 그 말은 할 수는 있다는 거군.

“네. 할 수는 있지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가.

“맞습니다. 제 말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창피하지만, 차원 은행은 아직 충분할 정도로 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태로 넘겨받았다가는 아마, 망하는 건 순식간이겠죠.”

-음··· 그것도 그렇군.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크게 실망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다는 얼굴. 오히려 그런 것도 못 알아차리면 실망했을 것 같다는 얼굴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데 제가 새로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안을?

“네.”

-말해봐라.

“알다시피 현재 무수히 많은 차원 거주민들이 마석으로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최고 관리자께서 차원 은행을 이용하여 마석 대신 코인을 받고자 하시는 거고요. 물론 그 외에도 있겠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거죠.”

-그렇긴 하지.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손실도 꽤 크고.

최고 관리자가 팔걸이를 톡톡 두드린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손짓한다.

“솔직히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이 나서서 차원 은행을 이용하라고 하면 되니까요.”

-···.

“그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는 마석을 차원 은행에 환전하려고 할 겁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현재 차원 은행에서 마석을 환전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극히 드물다.

차원 은행이 마석을 환전해준다는 것을 모르는 고객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굳이 마석을 코인으로 환전하려 하는 고객들도 없긴 하다.

나는 시스템의 시세에 맞춰서 그들에게 거슬러 주었다.

마석을 코인으로 환전하면 손해라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이 굳이 환전하려 하지 않겠지.

마석 환전을 그만둘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게 짭짤해.’

그들에게 마석을 팔 때에는 원가로, 살 때에는 싸게 사니 그것도 제법 수익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는 괜찮아진다는 거였다.

아무리 차원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난다고 해도, 기존에 방식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손해를 보기는 해도 가장 간편하기도 하다.

그러니 고객들은 마석을 환전할 때 팔기도 하겠지만, 다시 살 때도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이 문제였다.

시스템이 차원 은행으로만 코인을 받겠다고 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마석을 팔 텐데.

그렇게 되면 마석의 가격도 대폭 하락하게 되는 건 둘째치고 자본이 남아나지 않는다.

매일 수량을 정해두는 방법도 있지만, 계속 팔기만 하면 답이 없어진다.

“그러니 우선 한 곳을 선두로 실험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실험을 한다고?

“네. 처음부터 전부를 받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그걸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나의 차원만을 담당하면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그 차원은 이곳, 지구가 될 것이다.

마석의 거래 방식을 한 지 반년도 안 된 지구야말로 실험의 대상으로 합당했다.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내 설명을 들은 최고 관리자가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가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아. 확실히 미리 체험을 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게 좋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그렇게 해보자고 한다.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처음은 지구겠지만, 그게 늘고 늘어 나중에는 모든 차원을 담당하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그럼 기한은···.

“일 년.”

-···?

“일 년이면 충분합니다.”

-일 년이라··· 시간을 더 줄 수 있다. 일 년 가지고 부족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니요. 일 년이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그보다 늦어지는 것도 안 좋습니다. 딱 일 년이면 됩니다.”

-흠···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일을 했던 사람이니 정확하겠지. 알겠다.

최고 관리자가 뒤에서 멍때리고 있는 No. 72를 향해 손짓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들었겠지?

“네. 들었습니다.”

-필요한 건 네가 지원해주면 되겠지. 가능한 한 원하는 건 전부 들어줘. 그때 말한 것처럼.

“알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은 제대로 해야겠지.

[최고 관리자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최고 관리자가 보낸 메시지는 이러했다.

차원 은행과의 계약.

지구와 관련된 모든 코인 거래를 차원 은행을 이용한다.

일 년마다 한 개의 차원씩 늘려간다.

차원 은행의 은행장은 최소 일 년에 한 번 차원 한 개에 지점을 내야 한다.

그 기한은 모든 차원에 차원 은행의 지점이 생길 때까지.

거래 방식은 온전히 차원 은행에 맡긴다.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계약서에 싸인을 하니, 최고 관리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주 좋은 동업자가 생긴 것 같아 좋군.

“저도 그렇습니다.”

시스템과 사업 동업자인만큼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시스템도 이용하는 차원 은행이라고 소문을 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내가 관리자를 만나려 했던 이유.

이제 슬슬 헤어질 기미를 보이는 최고 관리자에게 말을 걸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채무자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음···.

그의 얼굴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시스템의 주된 수입원이 빚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먹인 것이고.

“채무자에게 빚을 받는 방식을 들었습니다. 전담반이 있고, 그들이 마석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도 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어서요.”

-자네가?

“네. 차원 은행의 상품 중 대출이란 상품이 있습니다.”

-대출?

“네. 저희 차원 은행에서 코인을 빌려주는 것이죠.”

-허··· 하긴, 불가능하지는 않겠군.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코인을 빌려주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코인을 돌려받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

그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뭐가 문제냐며.

“빌려주고 나서 그들이 도망가면 그것을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계좌를 건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코인을 갚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흠···.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건 그리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들에게 코인을 빌려주는 이유는 이자를 받아먹기 위함인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

코인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내 반응을 읽은 건지 그가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해결법을 알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게 도대체 무슨···.”

-그들이 코인을 빌리면 그 코인은 그들이 가진 거래에 들어가지. 그러면 자네는 시간이 될 때 그 계좌에서 정해진 만큼의 코인을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가능한 겁니까?”

-불가능한 건 또 뭐지?

“하지만 그건 관리자들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우리야 그렇지. 그래서 관리자들이 고생을 하는 거고.

“그렇다면 당연히 저희도···.”

-자네와 우리는 다르지. 자네의 차원 은행은 권한이 있네. 고객의 계좌를 건드릴 권한이.

“···?”

-자네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겠네. 우리가 못하니 당연히 자네도 못하겠지 생각하는 게 같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네. 자네의 담당자에게 들었을 걸세. 시스템은 그저 잠재력을 깨우는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고.

“네.”

-그 말이 뭐겠는가. 잘 생각해 보게.

그 말이 무슨 의미냐고?

나는 입을 다문 채 고민했다. 뭘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러한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제힘은 별개의 것이었군요. 시스템은 단순히 보조도구에 불과한 것이고.”

-그렇지.

생각해 보니 이렇게 고민할 것도 아니었다.

차원 은행은 당연히 고객의 계좌를 건드릴 수 있다.

다만 그게 범죄이기에 그러지 않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당연히 아무 때나 계좌를 건드릴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코인을 빌리고 이자를 갚을 때가 오면 어떨까.

‘내가 가진 권한을,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거다.’

그때에는 문제가 없어진다.

그들이 내야 할 것을 받아내는 것 뿐이니까.

그게 아닌데 건드리면 문제가 생기는 거지.

나는 너무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세상이 멸망했지만, 차원 은행은 내가 일하던 은행의 체계를 기반에 두고 있었다.

그 틀이 어디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계좌에 있는 코인을 다 써도 큰 문제는 없었다.

집행원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그들이 약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차원 은행도 지금보다 커질 것이고, 무엇보다 시스템이 이용하는 곳을 상대로 사기치는 간 큰 놈도 그리 많지 않겠지.

-그 대출이란 상품도 차원 은행이 지어진 곳에서만 진행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맞는 말이다.

차원 은행이 없는 곳에 코인을 빌려주면 받아내기 힘들지 몰라도, 차원 은행이 있는 곳이라면 다르다.

이미 충분한 준비를 하고 나서 지을 것이니까.

머리가 맑아졌다.

조금만 생각해도 될 문제를 나는 너무 꼬아 생각했다.

‘그냥 일반 은행을 떠올리면 되는 문제였던걸···.’

내 멍청함에 혀를 찼다.

그리고 해답을 알려준 최고 관리자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최고 관리자는 별거 아니라면 손을 휘젓던 것도 잠시,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나를 불렀다.

-이렇게 들어보니 자네의 능력은 무척 좋아 보여.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쉽군.

그러면서 꺼낸 그의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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