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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0화 (70/113)

제70화

카셀린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금액의 적금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미스릴 등급인 그녀는 한 달에 최대 천만 코인까지 적금을 들 수 있다.

워낙 많은 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그녀는 천만 코인을 내는 것에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야 당연한 게 아니냐는 듯이 바로 최고 금액을 불렀다.

그녀 전에 왔던 코인을 내는 것에 쩔쩔매던 고객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어떻게 보면 카셀린의 반응이 정상적이기도 했다.

코인이 넘쳐나지 않은 이상, 단 시간에 미스릴이 되기는 힘드니까.

계좌 계설비로만 십만 코인이 드는데, 코인이 썩어나지 않는 이상 미스릴이 될 이유가 없지.

그리고 아직 미스릴이 되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대로 밝혀진 것도 아니고.

‘오직 미스릴 등급이 되어야만 알 수 있으니까.’

적금의 이자는 계좌의 등급에 달라진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얻을 수 있는 이자가 높아진다.

다이아가 월 1%라면, 미스릴은 1.5%이다.

겨우 0.5%가 느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0.5%는 코인의 양이 늘어날수록 격차 또한 커지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코인을 굴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알 수 있겠지.

땅을 판다고 코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도 코인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무엇보다 0.25%씩 상승하는 다이아 이하의 등급들과는 다르게, 미스릴부터는 0.5%씩 상승한다는 건 직접 그 등급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

마지막 등급이자 최종 등급인 VIP는 1%가 상승한 3%의 이자를 받는다.

그리고 현재 VIP는 한 명 밖에 없었다.

시스템의 최고 관리자.

현재 차원 은행의 VIP는 그 혼자였다.

아직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존재이지만, 굳이 만나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차원 은행을 이용하지 않을 거면 뭐하러 백만 코인을 날려서까지 가장 높은 등급을 사들였을까.

거기다 관리자의 권한까지 사용해 강제로 등급의 제한을 해지한 걸 보면 그냥 장난삼아 그런 게 아닐 테다.

아무리 차원 은행이 신생 기업이라 해도 그렇지, 아무리 시스템이라고 해도 하나의 기업을 강제로 건드리면 그만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먼저 호출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관리자의 방에 불려온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뭐하는 건지 알려주시겠죠?”

공간만큼이나 새하얀 의자를 뒤로 당겨 앉은 나는 다리를 꼬며 앞에 있는 남자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부르는 건 옳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 앞에 선 관리자, No. 72가 식은땀을 흘린 채 내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게 아니라며.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사전에 먼저 물었을 거라며.

정말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내게 머리를 숙였다.

그런 그를 나는 가만히 바라봤다.

카셀린을 돌려보내고 막 씻고 나왔을 때였다.

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기 무섭게 금빛 기류가 나를 감싸더니, 이렇게 관리자의 방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만약 화가 났다면 이렇게 조용히 있기보다는, 이게 무슨 지랄이라며 욕을 했겠지.

지금은 그저 뭐 때문에 나를 이런 방식으로 불러낸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이런 식으로 날 부를 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나를 이리도 급하게 부른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살짝 화가 난 것도 있고··· 잘못했으면 씼던 도중에 불려나올 뻔했으니까.’

나는 팔짱을 낀 채 그의 행동을 지켜봤다.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잊은 채, 그가 하는 말을 듣다가 물었다.

“저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저대로 두었다가는 본론에 이르기도 힘들 것 같아 내가 먼저 물었다.

“그게···.”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내쪽을 바라보더니 화들짝 놀라 다가온다.

그리고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청량한 바람이 불더니 머리카락에 가득한 물기가 사라진다.

“아, 감사합니다.”

모처럼 물에 직접적으로 씻고 싶어서 물에 제대로 몸을 담갔다가 나왔다.

옷을 갈아입기는 했지만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말려주니 귀찮음을 덜었다.

“그래서 이제 이유를 말해주시죠?”

감사는 감사고 나는 그에게 나를 부른 이유를 들었다.

정말 아무 이유없이 부른 거라면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아무리 일이 끝난 찰나라고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소중하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는 않으니까.

“은행장님을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미루는 걸 관뒀는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고민에 잠겼다.

직접 나를 찾는 것도 아니고, 저승왕처럼 심부름꾼을 보내 나를 찾는다라···.

그것만 보면 내가 그에 응할 필요는 없지만.

‘관리자를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존재란 게 문제네.’

마냥 쉽게 결정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하위 관리자도 아니고, 상위 관리자에 속하는 No. 72를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거다.

애초에 관리자를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존재가 평범할 리가 없었다.

아마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손짓 한 번으로 지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누구죠?”

“최고 관리자이십니다.”

No. 72는 순순히 대답했다.

오히려 그 순수한 대답에 더욱 고민되었다.

최고 관리자면, 시스템의 모든 관리자를 관리하는 존재라는 건데.

그런 대단한 존재가 어째서 나를 찾는 걸까.

‘최고 관리자라면 VIP 고객이기도 하다.’

차원 은행의 유일한 VIP 고객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군요.”

나는 놀란 감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태연함을 가장한 채 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째서 그분이 저를 부르는지 모르지만, 제가 부른다고 갈 이유는 없습니다.”

시스템의 최고 관리자라는 게 걸리기는 하지만, No. 72가 내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면 그들이 내게 강제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내 직업이나 차원 은행은 진작에 빼앗기거나, 노예로 부려졌겠지.

No. 72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자세로 나왔다.

그러니 내가 처음부터 굽히고 갈 이유는 없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No. 72는 그점을 인정했다.

그들과 했던 계약에도 나를 강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다면 그들과 계약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최고 관리자께서는 은행장님을 뵙기를 원했지, 강제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야죠.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의 신뢰가 무너질 테니까요.”

시스템은 하나의 기업과도 같았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힘도 힘이지만, 그들이 차원의 중재자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중립적이며, 개인적인 일로 나서지 않는다.

그러한 인식이 있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로 인해 한순간에 그 신뢰가 깨지는 건 그들로서도 상상하기 싫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No. 72도 저렇게 쩔쩔 매는 것이고.

“제가 감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습니까?”

장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차원 은행이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신생 기업이라고 하지만, 지금 내 행보는 가볍지 않았다.

저승왕과 사업 동업자가 되었고, 무수히 많은 성좌가 고객으로 등록되었다.

그중에는 시스템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강자도 있었거, 내 경호원은 무려 마신 발포스였다.

마지막으로 현재 차원 은행이 보유한 자금은 10조가 넘었다.

어딜 봐도 신생 기업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면, 나란 존재가 ‘가볍다’라는 인식이 생겨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차원 은행 자체에도 큰 타격이 있을 수 있다.

가벼운 장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겠지.

그렇기에 저승왕을 찾아갈 때에도 대가를 받아냈다.

그리고 그건 최고 관리자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나를 부르기 위해서는 대가를 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있습니다!”

여기서 물러나 윗사람과 상의할 거라고 여겼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No. 72가 준비해 온 게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도 잠시 자신이 실수했다 생각했는지 황급히 내게 머리를 숙인다.

나는 괜찮다고 손짓하며 뭘 준비했는지 물었다.

“은행장님께서 원하시는 것 한 가지를,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자신 있게 말했다.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확실히···.’

그건 파격적인 제안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평범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면 콧웃음을 쳤겠지만, 무려 시스템의 관리자가 한 말이었다.

당장 차원 은행을 무료로 평생 홍보를 해달라고 할 수 있고, 가장 부유한 차원에 지점을 낼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시계를 매만지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면 가능하다는 말은, 들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거다.’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들어줄 수 있는지, 단순한 어림짐작은 의외로 걸림돌이된다.

말막로 내가 ‘10코인을 주세요’ 했다가, ‘아. 그건 지나친 요구네요. 1코인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니 그 지나친 요구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 지나침의 수위를 알 수 있습니까?”

내 말에 그가 손을 활짝 펼쳤다.

다섯 개의 길죽한 손가락이 내 시야를 가린다.

“5조.”

“···?”

“최대 5조를 달라고 하셔도 드릴 수 있고, 5조와 맞먹는 부탁을 하셔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

이건 생각 이상으로 파격적이었다.

5조라니.

차원 은행이 가진 자금의 절반이나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지 않은가.

그러한 코인을 지급할 수가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최고 관리자가 나를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바로 5조를 달라고 하려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떻습니까? 은행의 규모를 키우신다고 들었는데, 자금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말만 하신다면 5조 코인을 바로 드릴 수 있습니다.”

No. 72의 말에서 나는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꾸만 내가 5조 코인을 받아내게끔 말하고 있었다.

다른 부탁보다 코인을 받는 게 효과적이라며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코인을 받게끔 유도하는 걸 보니, 뭔가가 있는 게 확실하네.’

저렇게 다급한 걸 보니 코인을 받겠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더 좋은 걸 얻을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아니요. 자금은 저도 충분히 있어서요. 그보다 다른 걸 들어보고 싶은데.”

내 말에 그의 얼굴이 점점 썩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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