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9화 (69/113)

제69화

시스템의 관리자.

그들은 각자 담당하는 차원들을 관리하기 바빠 잘 모이지 않는다.

특히 백 위권 내에 있는 관리자들은 십년에 한 번 모일까 말까할 정도로 주어진 공간에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모일 때는 딱 한 가지 이유다.

시스템 전체에 영향이 갈 정도의 일이 벌어졌거나, 인재가 나타났을 때.

그때야말로 관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관리자들 속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관리자들의 모임이지만.

치직, 치지직.

수천만개의 차원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의 중심,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꼭대기 층에 관리자들이 모여들었다.

시스템의 꼭대기 층은 시스템 최고 관리자이자 시스템을 만든 창시자가 거주하는 공간.

온통 금색으로 가득 찬 공간에 101개의 의자들이 있다.

최고 관리자의 앞에 모인 백여 명의 관리자들은 오랜만에 만난 다른 관리자들과 정답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네. 잘지내셨습니까?”

“오, 67위 아니십니까. 좋은 실적을 쌓으셨다죠. 축하드립니다.”

“하하. 그러는 42위야말로 최근 차원 하나를 더 얻으셨다죠. 제가 더 축하드립니다.”

그들은 각자가 경쟁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큰 질투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서로가 행한 일들을 축하하는 보기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금색 동전이 쌓여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옥좌에 앉은 남자가 조용히 지켜봤다.

“아, 맞다. 오늘 그자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자요?”

“그 있잖아요. 이번에 대어를 낚아 올렸다는.”

“아아! 그 관리자가 여기 온답니까?”

관리자들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지고, 금색 동전 옥좌에 앉은 남자가 문을 향해 손짓한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탐스러운 금발을 찰랑이며 오페라 가면을 쓴 남자의 등장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오페라 가면의 등장에 모든 관리자가 그를 예의주시했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오페라 가면은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왔다.

“쟤죠?”

“예. 저 남자입니다.”

“생각보다 평범해 보이는데···.”

오페라 가면이 안으로 들어올수록 관리자들의 수근거림도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가 옥좌에 앉은 남자 앞에 멈춰 섰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모든 격의 관리자이시며, 시스템의 창시자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그의 정중한 인사에 옥좌에 앉은 남자, 시스템의 창시자이자 최고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72위인가. 오랜만이군.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백년 전이었던가?”

“정확히는 백오십일 년 전이었습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던가.”

최고 관리자의 말에 72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신께서는 영원한 생을 사시니까요. 당신의 시간과 피조물의 흐르는 시간은 다릅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내 힘을 받은 관리자라 해도 생은 영원하지 못하니.”

72위의 말에 최고 관리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72위는 최고 관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저리를 돌아가겠습니다.”

최고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이니 72위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의 자리는 1위에게서 멀리 떨어졌으면서 문과 가까운 곳.

순위가 높을수록 최고 관리자와 가까운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에, 72위인 그는 71명의 관리자들 뒤에 자리했다.

72위는 금색의 의자에 앉은 채 최고 관리자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모두 모인 것 같군. 나는 형식치레를 좋아하지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돌아가지. 1위?”

“네. 그럼 먼저 백오십일 년 동안 발생한 수익과 지출, 변동 사항을 말해···.”

1위가 의자 위에서 일어서 두 발자국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자리에 모인 모든 관리자와 최고 관리자가 그의 말에 집중했다.

백오십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생한 일을 얘기하는 것이기에 그의 말은 바깥 시간으로 36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조차도 시스템의 기능 중 홀로그램으로 띄어 보이는 게 없었다면 두 배는 되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가 말한 내용들은 대부분 아는 내용이기에 다른 관리자들의 질문이 없어 시간이 지연되지도 않았다.

복습.

1위는 그들에게 복습을 시켜준 것이다.

“흠··· 모두 열심히 일해줬군. 수고했어.”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1위가 허리를 숙이니 최고 관리자가 두 번 박수를 쳤다.

“그럼 이제 다른 걸로 넘어가지. 백오십일 년. 그 시간동안 모이지 않던 우리가 지금 이렇게, 급하게 모여야 했던 이유가 뭐지?”

“아. 그걸 지금 말해드리겠습니다. 72위. 앞으로 나오세요.”

“네.”

1위의 부름에 72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1위처럼 두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37일전 한 존재가 직업을 각성했습니다.”

1위가 입을 연다.

“그 존재의 이름 한정우. 그의 직업은 은행장이라는, 모든 차원을 통틀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단 하나의 직업이었습니다.”

“은행장?”

최고 관리자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그가 두터운 손을 들어올려 턱을 매만졌다.

반대손으로는 이어 말하라며 손짓했다.

“최고 관리자께서도 아시듯 유일 직업은 드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관리자이 경각심을 가질 정도로 희소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차원 열 개의 차원 중 한 명에게 나타나는 거였으니까요.”

“그렇겠지. 유일 직업이 드물기는 해도 모두가 대단한 건 아니니.”

“네. 그 말씀처럼 유일 직업 중에는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직업도 있었죠. 가만히 있는 자라는 직업이 대표적인 예고요.”

“음···.”

최고 관리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가만히 있는 자.

유일 직업이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최악의 존재였다.

직업 이름처럼 가만히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직업이었다.

코인을 벌지 않아도 죽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기만의 직업.

“그리고 무엇보다 은행장이 속한 차원에는 회귀자가 있었습니다.”

“허···.”

최고 관리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회귀자.

그 직업은 모든 차원을 통틀어 단 세명 밖에 없는 직업이었다.

아, 이제 새로 생겨났으니 네명이겠네.

회귀자는 말 그대로 미래에서 돌아온 자를 말한다.

시스템은 회귀를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회귀를 한 이를 함부로 건들 수도 제어할 수도 없다.

미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없고, 회귀자들은 미래에 대한 내용을 발설할 수 없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회귀자들은 저마다 코인을 쓸어담는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조차 예측할 수 없던 방법으로 코인을 벌어들이고, 그 방법 중에는 편법이 많았다.

“회귀자가 나타났다면··· 확실히 은행장의 직업을 각성한 존재에게 신경조차 쓸 수 없었겠어.”

시스템이 회귀자를 알 수 있던 이유는 회귀자들은 직업이 회귀자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는다면 회귀자인 것도 모르고 단순히 아, 대단하구나, 미쳤네 하고 말았겠지.

회귀자에게 몇 번이고 데인 적이 있던 관리자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회귀자들이 아는 미래가 끝이 나, 그나마 한시름 놓았지만 이미 그들이 벌어놓은 코인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회귀자가 한 명이 더 나타났다.

어느 시기에 회귀한 줄 모르는 지금, 그는 1급 경계 대상이다.

그가 어떤 식으로 코인을 벌어들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코인은 세상을 이르는 근원이다.

그런 게 함부로 움직이면 세상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번 회귀자는 회귀하기 무섭게 차원 최초의 왕이 되었다.

“1급이 될만하군. 확실히 행보가 위협적이야.”

최고 관리자조차 그 회귀자가 위험하다고 인정했다.

왕의 직업을 얻은 것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의외로 왕의 단어가 들어간 직업을 가진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 문제였다.

뭐든지 최초가 가장 특별한 법이었다.

최초기에 특전을 받고 혜택을 받는다.

최초이기에 할 수 있는 게 많고 영향력도 크다.

“그래서 은행장에게서 신경이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게 실책이었습니다.”

1위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오른다.

그건 그래프였다.

코인의 금액이 적혀 있는 그래프.

무수히 많은 선 중에서 유독 짧은 간격에 높이 치솟은 그래프가 있었다.

“이게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은행장을 통해 오고 간 코인의 금액입니다.”

“···.”

최고 관리자가 그래프를 스윽, 훑어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숫자가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

“네. 은행장, 그러니까. 은행장의 능력 중 하나는 차원 은행입니다. 그리고 그 차원 은행은 코인과 직접적인 관계를 띄고 있습니다. 아주 적은 수수료로 엄청난 금액의 코인을 각 사용자에게 보낼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금이란 것을 통해 추가로 코인을 벌어들일 수 있고 최근에는 대출이란 게 생겨났더군요. 저희가 생각하기에 터무니없는 능력이더군요.”

1위가 잠시 입을 다문 채 그래프를 빤히 바라본다.

수천년을 사는 그들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찰나라고 부를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큰 금액이 움직였다.

“한 달 동안 움직인 코인이 17조 3,653억 74,944만 35,642코인입니다.”

“···미쳤군.”

17조.

그 금액은 최고 관리자에게 엄청 큰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최고 관리자가 보유한 코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추정불가.

그게 최고 관리자의 보유 금액이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게 최고 관리자의 코인은 시스템의 귀속된 차원들에서 나온다.

시스템 자체가 그의 것이기에 그가 가진 코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보면 최고 관리자가 크게 놀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그가 놀란 이유는 17조라는 금액이 한 달이라는 찰나 같은 시간에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16조는 차원 은행에 귀속되어 있다고 하니.

“그러니까. 이제 막 각성한 신출내기가, 그것도 상위종도 아닌 하위종인 인간이 그 금액을 움직였다는 건가?”

“네.”

“이건 확실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고 있기에 최고 관리자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을 각성한 지 겨우 한달이 지난 신출내기가 지금도 그 정도의 금액을 움직이는데,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중에는 나조차도 벅찬 존재가 되겠군.”

“···!”

최고 관리자의 말에 1위와 72위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했다.

최고 관리자가 누구인가. 손짓 한 번으로 수 조의 코인을 움직이고, 차원 존망을 결정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이다.

시스템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에게 대적할 존재가 있다는 건 쉬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와 비등하다는 건, 시스템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제라는 것이죠.”

1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관리자들이 그 말에 의아해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최고 관리자의 힘을 알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런데 훗날에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겠군.”

차원 은행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었다.

앞으로 규모를 더 키우면 차원 여러 개를 동시에 사들일 정도의 재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시스템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재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때는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려워지겠군. 그래, 그래서 그자가 속한 차원 담당자가 누구지?”

“아, 원래는 천이백사십육위가 그 차원의 담당이었는데, 도저히 그 순위가 담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회귀자의 담당은 78위가 은행장의 담당은 72위가 맡기로 했습니다.”

“그런가··· 흠, 회귀자야 기존에 사례가 있으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72위?”

“네. 창시자시여.”

“아무래도 남의 입으로 듣는 것보다는 본인에게 듣는 게 낫겠지. 그와 관련된 일을 고하라.”

“예. 우선 저는···.”

72위는 은행장과 했던 계약과 편의를 봐준 것, 그 외에 모든 것을 낱낱이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딱딱하게 굳어졌던 최고 관리자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나중가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무척이나 잘했어. 아주 좋은 대처였어.”

그의 말에 72위가 더욱 고개를 숙인다.

“안 그랬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를 뻔했어. 이걸 이대로 넘길 수는 없지. 72위는 앞으로 가지고 있던 차원들의 관리를 그만두고 차원 은행장만을 담당해라.”

“···!”

최고 관리자의 말에 72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관리자에게 가진 차원들을 포기하란 것은 가진 모든 재산을 버리라는 말과 같았다.

최고 관리자는 그 생각을 읽고 말을 이었다.

“72위가 관리하던 차원들은 그 하위의 관리자들이 담당하데 그 차원에서 나온 모든 수익의 70%는 72위가 받을 것이고 결정권 또한 유지한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록 순위는 72위이지만 1위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헙···!”

1위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최고 관리자와 1위를 제외한 모든 관리자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는 것과 같았다.

명예와 권력자체가 한순간에 수직 상승한 72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1위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최고 관리자의 말이라 하더라도 이건 1위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72위의 걱정과는 다르게 1위는 오히려 그를 축하하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앞으로 잘해보죠. 필요한 게 있으면 전력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1위라는 걸까.

비공식 1위가 된 72위는 감격한 얼굴로 1위를 향해 감사를 표현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최고 관리자가 회의를 파하며 말했다.

“72위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은행장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와 긴밀한 사이를 유지해주게.”

“네.”

“그에 대한 보고는 그 어떠한 것보다 최우선으로 보고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마저 이야기하지.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다.”

“네.”

“그리고 1위와 72위는 자리에 남고 모두는 돌아가게.”

최고 관리자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관리자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최고 관리자, 1위, 72위만이 자리에 남았다.

“72위.”

“네.”

최고 관리자의 부름에 72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최고 관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를 향해 말했다.

“지금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예?”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건지, 한 번 직접 보고 싶네.”

“아···.”

최고 관리자의 말에 72위가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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