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6화 (66/113)
  • 제66화

    노예들의 교육은 녹스가 맡았다.

    노예들은 녹스를 따라 고객들의 정리를 맡았다.

    원래 은행에 그토록 많은 경비는 필요 없었지만, 이곳은 법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무력과 코인이 전부인 세상.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감시 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그들을 부린다고 해서 코인이 더 드는 것도 아니니, 굳이 인원을 줄일 필요도 없지.

    ‘성좌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지구인들이 문제네.’

    언제까지 지구인들은 안 받을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한다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차원 은행을 이용해도 될 만큼 코인을 충분히 보유한 이들이 생겨날 거다.

    ‘성좌들과 지구인들을 한데 모아도 되는 걸까.’

    괜히 같이 받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그 왜 그런 거 있잖아.

    지구인들이 궁금해서 괜히 한 번 건드려보는 성좌들이 있거나, 아니면 강한 힘을 얻고 싶어서 성좌들에게 접근하는 지구인들이 생겨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차원 은행은 더 이상 은행이라 불릴 수 없는 만남의 장소가 되겠지.

    아니면 다투는 일도 생길 수도 있고, 관리자들이 나서야 할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직은 일어나지도 않은 무의미한 걱정이기는 하지만.

    ‘미리 대비를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머리를 긁적였다.

    항상 시키는 대로 해왔기 때문인지 한 무리의 장이 되어 움직이는 건 어렵다.

    책임감도 책임감이지만, 이 직장이 내 생명줄과도 같으니 함부로 굴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코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고객이 많아지고 계좌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차원 은행의 자본도 덩달아 늘어났다.

    거기에 적금을 드는 고객들도 있으니, 이제는 숫자를 세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1조는 넘은 지 오래다.

    저승에서도 한예림이 열심히 일해주고 있어 걱정할 건 없었다.

    ‘저승 관광 사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고객들의 수도 엄청나게 불어나겠지.’

    지금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지만, 반년. 딱 반년만 기다리면 본사를 앞지르는 수입원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출인데···.”

    법치국가의 은행과 무법지대의 은행은 여러 의미에서 그 차이가 컸다.

    전에는 법이라는 안전성이 있어 대출을 해주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빌리는 금액이 ‘억’으로 가면 과정이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천 단위까지는 보증 같은 걸 잡아 대출을 해줬다.

    백 단위는 직장이나 여러 가지를 기준으로 빌려줬고.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

    그 무엇보다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 튄다고 해서 그것을 대신 잡아줄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 그것 때문에 관리자를 만나러 갔던건데··· 정작 중요한 건 말하지 못했네.’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고.

    지금 중요한 건 대출을 받아낼 방법을 찾는 거였다.

    윌리엄이 지원해준 인간들?

    그 사람들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없다.

    아니,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코인을 있어야 한다.

    그들을 부리려면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 해야겠지.

    ‘발포스와 같은 강자가 한 명더 있으면 좋은데.’

    그러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녹스에게 부탁하기에는 그가 발포스처럼 강한 것도 아니고, 그에게는 경비팀장이라는 직책이 있다.

    그러니 새로 뽑아야 한다.

    “발포스.”

    “네.”

    “마신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차원도 하나 가지고 있겠네요?”

    “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밑에 수하들도 있겠네요.”

    “그건···.”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자신있게 말했으면서, 이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아무리 적이 많다고 해도 그래도 마신인데, 설마 부하 하나 없으려고.

    신이라하면 천사를 수하로 둔 사람들이다.

    발포스는 마신이니 악마들이나 마족을 수하로 두는 게 정상이지.

    “그걸 왜 묻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있으면 제 밑에서 일 좀 시키려고요.”

    “음···.”

    그가 침음을 흘린다.

    코인을 벌 수 있는 기회인데 마다하는 건가, 아니면 일, 이천 코인은 코인도 아니라는 건가.

    “우선 밑의 것들이 있냐고 묻는다면, 예. 있습니다.”

    그 대답에 나는 숨통이 살짝 트이는 걸 느꼈다.

    마신의 수하라면 그 힘도 범상치 않을 거다.

    윌리엄의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발포스의 악명도 있으니 그의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며 코인을 받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마냥 내 생각대로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수하는 수하인데 수하가 아니라니.

    무슨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다 있을까.

    “말 그대로입니다. 제 밑에 악마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놈들이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무려 신의 말이다.

    그것도 악명이 자자한 마신.

    그의 말을 어기는 놈들이 있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 천계에 사는 천사들과 같은 ‘정의’ 쪽에 있는 이들은 그의 말을 절대 듣지 않겠지.

    하지만 악마들은 다르다.

    자고로 악마라고 하면 마신이 어떤 명령을 하든 죽는 시늉까지 해야 정상인데.

    ‘도대체 어떤 행보를 걸었길래, 광적으로 믿고 따를 악마들조차 등을 돌린 거야?’

    하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가.

    수십 개의 차원을 적으로 돌릴 정도면 어지간한 행동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기는 한데, 그거 아니니 이상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속으로 뜨끔한 나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악마들이 당신의 말을 어기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마신이지 않습니까.”

    “그 말이 맞기는 한데,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처한 얼굴을 하던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악마나 천사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이란 힘, 성격, 특성 등과 같은 것들인데. 조용한 신의 밑에는 조용한 권속들이, 온화한 신에게는 역시 마찬가지로 온화한 성품을 가진 권속들이 있죠.”

    “저는 마신입니다. 마신이라면 대충 예상하듯이 광포하죠. 제입으로 이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한때 저는 모든 마신과 악신 중에서도 가장 싸가지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개과천선했다는 그의 말에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치고는 그는 여전히 싸가지가··· 하여튼 내가 본 그의 모습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최근에야 내가 한 지적들로 좀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대충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네.’

    악마가 그의 성향을 닮는다고 했고, 한때 그는 마신들과 악신 중에서도 최고봉이었다고 하니.

    “최악이겠네요.”

    “네. 최악입니다.”

    자신의 권속을 욕하는 말인데도 그는 한치의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봐도 쓰레기들이라며 내게 험담을 했다.

    “그래서 놈들을 부리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뭐, 은행장님이라면 어떻게 부릴 수는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놈들은 쉽게 머리를 굽히지 않으니 꽤 고생을 할 겁니다.”

    “당신의 말도 안 듣는데 제 말을 듣는 게 더 이상하겠군요.”

    편하게 일을 해보려 했는데, 이건 생각 좀 해야겠다.

    그 당사자가 저리도 몸서리치는데 실제로 만나면 얼마나 더 최악일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 그건 다시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럼 다른 거. 당신의 차원은 어떤가요?”

    “제 차원 말입니까?”

    “네.”

    “어떤 쪽으로 말하시는 겁니까.”

    “코인관 관련해서요.”

    “음···.”

    이번에도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영지에 관한 일이라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신중한 모습이었다.

    “코인이라면 나쁘지 않게 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위 차원이다 보니 마수들을 잡으면 꽤 많은 코인이 떨어지기도 하고, 부산물들도 제법 가치가 있죠.”

    “오···.”

    그 말에는 흥미가 돌았다.

    코인을 잘 벌어들인다는 건 곧, 내가 그곳에 지점을 내면 그만큼 코인을 벌 수 있다는 거였으니까.

    물론 모두가 차원 은행을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용하는 고객은 분명히 생겨난다.

    “그럼 거기있는 악마들이나 다른 생물들은 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겠군요.”

    “네. 뭐. 그렇죠. 다른 생물은 모르겠는데, 그놈들은 그럴 겁니다. 애초에 전투에 미쳐 사는 놈들이다 보니 코인을 쓰지 않고 쟁여두는 경우가 많죠.”

    흥미가 돈다.

    악마들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들은 것만으로도 그들이 내게 아주 좋은 고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으로 부리기 힘들다면 고객으로 받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걸 묻는 이유가··· 아. 제 차원에 지점을 내시려는 겁니까?”

    “네. 그러면 안 됩니까?”

    “안 되는 건 아닌데···.”

    그가 뒷말을 흐린다.

    묘한 표정을 지은 그를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게 속 시원하게 한 번에 말해주는 경우가 없다.

    그렇게 말을 얼버무리면 괜히 찝찝해져서 하고자 하는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번에 또 뭐가 문제입니까.”

    “제 차원에는 나중에 방문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지점을 짓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방문하라는 건 또 무슨 소리인지.

    안 되면 안 된다, 되면 된다. 이렇게 딱 확답을 주면 좋을 텐데.

    저런 애매한 대답은 정말 짜증난다.

    “하아··· 알겠습니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 그건 나중에 마저 이야기하죠.”

    그와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아예 오지 말라는 건 아니니, 그를 달달 볶을 이유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고객이 없으니 상당히 지루하네요.”

    금까지는 새로 들어온 직원이, 다이아는 최동수가 상대한다.

    명목상으로는 내가 상대해야 할 등급은 미스릴 이상부터인데.

    ‘조건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시간이 걸리는 거라 그런지 미스릴 이상의 고객이 적단 말이지.’

    그렇다고 조건을 낮출 생각은 없었다.

    미스릴 등급 해제 조건은 1억 코인 거래.

    계좌 거래 한도가 최대 100억 코인인 걸 생각하면, 그 조건은 크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밑에 등급인 다이아 등급의 최대 거래양은 오천만 코인이니.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하다.

    ‘당분간은 새로 들어온 직원이나···.’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한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은행장실로 녹스와 한 명의 고객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객이 직원들을 놓고 내게 올 이유는 하나.

    미스릴 등급 이상의 고객이라는 거였다.

    나는 녹스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들여보내라고 말했다.

    은행장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가 굳이 두드리지 않아도 고객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르륵.

    유리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군인들이나 입을 법한 복장이었는데, 갑옷처럼 중요 부위를 감싼 곳에 방어구가 둘러싸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군용검 하나와 권총 두 자루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내가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