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나는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내 앞에는 적발의 남자가 눈덩이 한쪽에 피멍이 든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누가 알았을까.
미국 대통령이 이리도 가벼운 사람이라는 걸.
그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회귀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거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 거다.
무엇보다 그가 회귀하기 전만 해도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던 히키코모리였다는 것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그래, 지금 나처럼.
회귀자라고 자신을 지칭한 것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이제는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동양 사람이 말이다.
“믿지 않으면 방법이 있나?”
눈두덩이가 퍼렇게 물든 남자가 제 눈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당신 이름이 윌리엄이고 내게 사람을 보냈던 그 미국 대통령이다?”
“그래. 네가 직접 찾아오라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잖아.”
남자, 아니 윌리엄은 너무도 당당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듯이 그는 원하는 걸 다 들었냐고 묻는다.
“그런데 왜 회귀를 한 겁니까? 그게 가장 궁금한데. 그리고 회귀를 했어도 굳이 저를 찾아올 필요가 있습니까?”
“우선 첫 번째는 대답해줄 수가 없어. 제약에 걸리거든. 하지만 두 번째는··· 네가 코인이 많고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결국 코인 때문이라는 거구나.
하긴 코인이 아니고서야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
회귀자라는 건 곧, 온갖 기연이란 기연을 다 차지할 수 있는 존재니까.
그런 존재가 유일하게 할 수 없는 게 자본을 제멋대로 굴리는 거고.
어느 정도의 코인을 손에 질 수 야 있겠지만, 그게 그가 담을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면 말이 달라지니까.
“그래서 제게 뭘 바라는 겁니까?”
“바라기는···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가 뭐겠어. 당연히 코인 때문이지.”
“코인을 빌려달라는 겁니까?”
“아니! 내가 미쳤다고 그딴 돌은 짓을 하겠어?”
대출을 입에 담기 무섭게 그가 화들짝 놀라며 기겁을 했다.
자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내게 코인을 빌리겠냐며.
“아쉽네···.”
하긴 회귀자니 내게서 대출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대출이 곧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너 지금 아쉽다고 한 거지?”
“네. 아쉽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감추지도 않는다는 거네.”
“당신한테 그까짓 것을 감출 필요도 없고,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네요.”
“후··· 코인을 빌려달라는 건 아니야. 굳이 빌려야 할 정도로 궁한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멸망한 세상이라도 미국 대통령이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그럼 뭐가 필요하다는 걸까.
“직원 필요하지 않아?”
“직원···?”
“어. 직원. 슬슬 규모를 넓혀야 할 거 아니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도 없고, 또 걱정도 되잖아. 어디서 직원을 구할지.”
맞다.
직원을 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직원을 구하는 것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제 밑에서 일하시겠다는 겁니까?”
“어? 어··· 뭐. 그렇지?”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왜 말을 빙빙 돌리나 했더니 결국 답은 그거였구나.
생각해 보니 내가 이럴 이유가 없었잖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이렇게 화를 내고 답답할 일이 없었는데.
그가 나를 찾아올 이유가 뭐 있겠는가.
내게 필요한 게 있으니 나를 찾아온 거지.
급하지 않고서야 무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손수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
단지 회귀, 그 한 마디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흐려졌었다.
“큭.”
웃음이 나왔다.
어째서 나는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까.
좀만 더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거였는데.
‘나는 을이 아닌 갑이라는 거.’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앞으로 은행장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
저승왕을 만나고 오면서 나도 배포가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내 밑에서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와 대화를 하는 내내 불편하게 있었던 정자세를 풀며 다리를 꼬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무릎 위로 손깍지를 꼈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내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던 딱딱한 입주변이 부드러이 풀렸다.
“어, 너. 그 미소 짓지마.”
“왜 그러시죠.”
“웃지 말라고! 너 꼭 그 미소 지으면 일이 터진다고!”
그가 제발 웃지 말라며 애원한다.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나는 말을 이었다.
“당신이 직접 제 밑에서 일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일을 할 사람을 보내시는 겁니까?”
“어, 어. 일을 할 사람을 보낼 거야.”
“그럼 그 수당은 당신한테 주면 되는 겁니까? 뭐··· 어차피 계좌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당신밖에 없을 것 같지만요.”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하시는 거죠? 은행원 일은 힘들 테고, 경비원··· 은 녹스와 백예린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파견 근무원을 시키기에는 당신들을 믿을 수도 없죠.”
“···나를 믿고 맡기라고는 못하겠고, 나는 그런 거창한 일을 바라는 게 아니야.”
“흠··· 그럼 뭘 원하실까?”
“대출팀. 정확히는 대출 금액을 받아내는 집행원을 시켜달라는 거지.”
그건··· 생각도 못한 일이다.
그가 부탁하는 게 은행원이나 경비원 같은 그나마 안전한 쪽을 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채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위험을 감수해야 할 집행원을 시켜달라니.
그것도 코인을 빌리고 제대로 갚지 않아 강제 징수에 들어가야 하는 악석 채무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그런 자리를.
‘회귀자가 맞기는 하네. 그런 것도 아는 걸 보면.’
내가 아직 실현시킬 생각도 못한 걸 먼저 입에 담는 걸 보면.
‘나쁘지는 않은데?’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직원을 구해야 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구할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특히 집행원처럼 위험한 자리는 어지간히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는 존재가 아닌 이상 하려고 하지 않을 테고.
‘발포스가 집행원을 하면 편하기는 할 텐데···.’
슬쩍 발포스를 바라봤다.
그는 윌러엄과 내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윌리엄에 이따금 무슨 신호를 보내기는 하는데, 워낙 괴상한 동작이어야지.
알아보기도 힘든 신호를 보내서 무슨 대화를 주고 받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날 지켜야지.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발포스를 사용하는 건 보류다.
혹시 모르지, 집행에 그가 나서게 될 지도.
“그런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집행원, 그거 쉽지 않을 텐데.”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르고 얘기했겠어?”
“아, 하긴··· 회귀자라 했으니까.”
아니, 근데 이게 무슨 가불기도 아니고.
회귀 한 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언제부터 일을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쉽게 수락을 한다고?”
“네. 뭐··· 거절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어차피 저는 직원을 구해야 했고, 당신은 코인이 필요하고. 오천만 코인이 많기는 하지만, 나라를 운영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 많다고도 볼 수 없고. 그리고 어차피 코인을 주는 사람은 전데 뭐가 꿀리겠습니까.”
“···너 분위기 제대로 탔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제 직원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는 거죠.”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가 씨익, 웃으며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인간 최초의 왕이 당신과 거래를 요청합니다.]
「인간 최초의 왕은 차원 은행의 은행장과···.」
뭐야 이건.
인간 최초의 왕?
여기 안에 있는, 은행장실에 있는 인간은 나와 그가 전부인데.
인간 최초의 왕이라니··· 다른 곳에서 내게 거래를 요청했을 리도 없고,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마자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왜, 많이 놀랐나 봐. 내가 인간 최초의 왕이라고 해서.”
“당신이 인간 최초의 왕이라니··· 이게 가능한 겁니까?”
“원래라면 불가능한 건데··· 시스템이 적용되고 나서의 세계라면 다르지.”
“아, 그렇군요.”
“수긍이 빠르다?”
“수긍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내가 있었던 세상이 망가지고 바뀌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수긍을 해야죠.”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원래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받아들이는 게 더 편한 법이다.
“그래서 이건 뭡니까?”
“말 그대로 거래지. 너와 나의, 인간 최초의 왕과 은행장과의 거래.”
“거래의 내용은?”
“내가 보낸 인간들에게 계좌를 만들어주지 않고, 그들이 번 모든 코인을 내게 주는 것.”
“그게 가능하다고?”
“난 무리의 왕이니까. 내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 무리에 속한 이들에 대한 권한 대부분이 내게 있지.”
“그거··· 범죄아닙니까?”
“누구보다 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놈이 범죄를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웃기냐.”
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그의 말처럼 누구보다 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게 나니까.
“그래서 제가 이걸 받아들이면 된다는 겁니까?”
“응. 어려울 거 없잖아. 너는 직원을 고용하고, 나는 코인을 벌고.”
“그런데 무척 위험합니다. 그렇게 자국민을 마음대로 굴려도 되는 겁니까?”
“도태된 자는 결국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그리고 어차피 지금 당장 악성 채무자가 생긴 것도 아니잖아. 못해도 삼개월 이상은 있어야 할 테니까. 무엇보다 내가 보낼 사람은 네가 걱정할 정도로 약하지 않을 거야.”
“아, 예. 알겠습니다.”
자기가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내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몇 명 정도 보내실 생각입니까?”
“음··· 대충 열 명 정도. 처음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뭐, 그렇겠네요.”
열 명··· 열 명이라.
집행원은 한 사람당 위험수당까지 합쳐서 오만 코인을 받으니, 열 명이면 오십만 코인.
그 정도면 크게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아, 그러면 혹시 은행원으로 쓸만한 사람도 보내줄 수 없습니까? 일일이 돌아다니며 찾기보다는 당신한테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당신도 코인을 벌 수 있고, 저는 직원을 늘릴 수 있고. 일석이조아닙니까.”
“음··· 그건 그렇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미리 준비해놨지. 지금 당장은 세 명 정도면 될 것 같지?”
“네. 그 정도면 되겠네요.”
세 명이면 충분하지.
효율도 늘어날 테고, 로테이션으로 돌리면 은행을 24시간 영업할 수 있다.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거래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는 나에게 인력을 주고, 나는 그에게 코인을 준다.
“그럼, 은행원은 당장 내일부터 보내면 되는 거지?”
“네. 아, 그리고 올 때 마음의 준비를 당당히 하라고 하세요. 처음에는 꽤 고통스러울테니까.”
“아, 그··· 지식주입?”
“네.”
알겠다며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다 끝났습니까? 그러면 돌아가시죠.”
“뭘, 그렇게 급하게 보내. 그래도 고객인데 차 한잔 대접해주지.”
대접해주기는 무슨, 이 정도만 해도 최고로 대우해준거지.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그를 내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