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저거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지?
나한테 개새끼라고 한 거 맞지?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너한테 한 거 맞는데.”
당황하는 내게 그가 확인사살을 했다.
그러면서 그게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이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 개새끼 맞잖아.”
“···.”
나를 언제 봤다고 저런 말을 지껄이는 건지.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개새끼, 개새끼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졌다.
도대체 누구이길래, 뭐하는 놈이길래 생전 본적이 없던 내게 욕을 하는 걸까.
친한 친구였다면 장난으로 넘길 수 있었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안면도 튼 적이 없는 남이었다.
“저를 아십니까?”
“뭔, 도를 아십니까도 아니고. 아무리 어색해도 그렇지, 너답지 않게 너무 당황하는 거 아니야?”
나를 언제봤다가 그런 망발을 지껄이는 건지.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난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닐지 모른다.
은행일을 해오면서 진상들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그처럼 내게 다짜고짜 욕을 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믿기지 않게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 같아.’
괜히 화가 났다.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평생을 쫓아다니던 원수를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증오 뒤편으로.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옛날 그 일 이후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내 마음 한켠을 간질였다.
“그럴 리가 없지.”
처음 보는데 그리워하긴 누굴 그리워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내게 욕부터 내뱉는 놈을.
“음··· 아무리 기억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반응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뭐, 그건 그렇다치고.”
남자가 재미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남자를 내 앞으로 던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중요한 인력을 그렇게 쉽게 죽이려 하면 쓰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후우웅-
바람이 불더니 사람들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그는 그 사람들을 데리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발포스를 불렀다.
“멈춰라.”
발포스가 나와 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불의 채찍을 소환해내며 발포스가 남자를 노려봤다.
“음···.”
남자는 나와 발포스를 번갈아 돌아보더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발포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발포스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내게 보이지 않게 교묘하게 가리며 그를 향해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너···.”
발포스가 몸을 움찔 떨며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이제 지나가도 되겠죠?”
내게도 쓰지 않던 존댓말을 발포스에게 쓴다.
그래, 발포스의 외모나 덩치가 위협적인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게 되는 것도.
‘그런데 발포스를 아는 듯한 말투인데··· 존대를 한다고? 나한테는 욕부터 지껄인 놈이?’
아, 잘 모르겠다.
그냥 짜증이 났다. 대뜸 나타나 욕을 하는 것도, 우리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오, 예린이잖아. 이야, 이렇게 풋풋할 때가 있었구나. 동수는 까칠한 게 이때부터였고···.”
지금도 봐라. 나와 발포스 뿐만이 아니라 백예린과 최동수도 아는 체를 해왔다.
그 모습이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생각해 봐라, 안면도 없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해오면서 시비를 거는 걸.
“발포스, 계속 가만히 있을 겁니까?”
“음···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심지어 내 말을 들어야 할 발포스조차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대화를 해보자며,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 행동이 내가 그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궁금해지기는 했다.
도대체 누구길래 저딴 개짓거리를 하는 건지.
‘지가 무슨 회귀자라도 돼?’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화를 해보자는 발포스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 나와 대화를 좀 하자고. 기껏 찾아왔는데 그렇게 내쫓으면 너무하잖아. 일단 은행에 들어가서 얘기하는 건 어때?”
실실 웃고 있는 저 남자도 마음에 안 든다.
“내가 너를 왜 데리···.”
그래서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아, 참고로 말하는데 나 코인 많아. 네가 거절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하는 거야. 네가 지금쯤 한 1조? 그 정도 있을 테니까, 그것에 절반 정도 있다고 보면 돼.”
“같이 가시죠.”
그의 재산을 듣고 들여보내는 건 아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이는 거지.
봐라, 주위에 있는 관리자들의 눈치도 보일뿐더러 여기서 그와 싸우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우선 발포스가 싸우는 걸 꺼려하고 있었고, 내가 그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발포스도 꺼려 하는데, 나를 개인적으로 지키고 있는 반지의 그녀도 그를 엄청 경계하고 있었다.
-위험한 냄새가 납니다. 되도록 싸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를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보이던 그녀가 그렇게 말할 정도니.
“푸하하! 너 지금 얼굴 겁나 웃겨!”
폭소를 터뜨리는 놈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셨다.
*
[현재 차원 은행은 일시 휴업 중입니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잠시 영업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 큰 타격이 있기는 하겠지만··· 지금도 후회 중이지만.
“잘한 거야. 안 그랬으면 고객들 대다수가 빠져나갔을 걸?”
남자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시하기에는 그가 말하는 모든 내용이 하나하나 정확했다.
심지어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내가 했던 행동들까지 알고 있었다.
무슨 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신들이 있다는 걸 실제로 본 마당에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도대체 당신은 뭡니까? 아니, 누구길래 저희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겁니까?”
“내가 누구냐라···.”
남자가 다리를 꼬며, 위로 올라온 다리의 무릎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왜 이제야 묻냐는 듯한 얼굴을 하며, 그가 입을 열었다.
“대충 예상은 했을 것 같은데···.”
“···.”
“난 회귀자야.”
무척이나 간단하고 간략한 대답.
오히려 너무 간단해서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회귀··· 설마설마했는데 회귀라니.
‘그런데 그게 가능한 거야? 아무리 불가능한 게 없다는 시스템이라지만, 회귀는 말이 다른데.’
시스템이 그것을 허용했다는 게 더 신기했다.
관리자들도 그를 보기 무섭게 놀라는 걸 보니 회귀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니까. 이상한 생각은 하지마.”
“그리고 언제 봤다고 계속 반말을 하는 겁니까?”
“회귀했다고 했잖아? 그러면 미래에서 널 봤겠지하고 생각해.”
“현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과 저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입니다만.”
“그럼 너도 날 놓으면 되겠네. 언제부터 존댓말을 썼다고. 그때는 나를 보자마자 반말부터 한 놈이. 너도 말 까. 어울리지 않게 존대는.”
“···.”
진짜 사람을 말문 막히게 하는데 큰 재주가 있다.
어쩜 이리도 얄밉게 말할까.
“그리고 회귀를 한 건 맞기는 한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회귀는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주위를 둘러본다.
나와 발포스, 그만이 들어와 있는 은행장실.
백예린과 최동수는 쉬기 위해 숙면실로 들어갔다.
“이야, 여기는 초반에 이렇게 생겼구나. 전에는 그리도 으리으리하더만.”
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슬슬 궁금해지기는 한다.
그가 기억하는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떨까하고.
“아, 네가 옛날에 어땠는지 묻고 싶은 것 같은데. 어차피 물어도 대답 못하니까 묻지마. 그래도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입을 잠시 다문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맴돈다.
마치 뭘 말하면 내가 화를 낼지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저 표정을 읽은 나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네가 9,999,999,999,999,999코인을 내게 아무렇지 않게 줬다면 믿을 수 있겠어?”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만한 코인을 주었다는 말도 쉽게 믿기지 않을뿐더러, 지금의 내가 그런 게 아니기에 거짓말 같았다.
“그 덕분에 내가 이렇게 회귀를 할 수 있었던 거고. 이 정도면 네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 있겠지?”
“···대충 재산이 많았다는 것은 알겠네요.”
“그냥 많은 건 아니지. 전 차원을 통틀어 가장 많은 코인을 보유한 회장님이었··· 으갸갸걋!”
말을 있던 그가 돌연 괴상을 비명을 내지르더니 땅에 쓰러졌다.
파지지직-
그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긴다.
방금 회장님이라는 말을 하기 무섭게 괴로워한 거지?
“아오. 젠장. 이 정도는 말해도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내가 말하던 안 하던 이룰 텐데.”“알았어. 알았다고, 닥치고 있으면 되잖아. 하여튼 성질머리하고는.”
“저런 성질머리로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하긴 그리 오래 살았는데 성격이 지랄 맞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
그가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시스템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척이나 친근해 보였다.
“하여튼 그렇다고. 그런 줄로만 알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래, 그때처럼 수긍은 빨라서 좋네.”
“자꾸 그때 그때하는데. 저는 그 예전을 모르니까, 그만 좀 얘기하시죠.”
“까칠하기는 그때도 그렇··· 아, 하지 말랬지.
그가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그것도 잠시 금방 본래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 안 했지? 나는 네 이름 아는데, 너는 내 이름 모를 거 아니야.“
”제 이름이 뭔데요?“
”너? 네 이름···.“
그가 그걸 모를 리가 있냐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한정우. 차원 은행의 은행장, 한정우.“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이것조차 대답하는 걸 보면 정말 미래에서 회귀를 한 것 같다.
심지어 나와 일을 하고 있는 백예린이나 최동수, 녹스와 발포스조차 내 이름을 몰랐다.
항상 은행장이라는 말을 썼지, 내 이름을 먼저 말한 적이 없었다.
굳이 아는 이를 찾는다면 나와 계약을 한 시스템과 내 담당 관리자인 No. 72가 전부일 거다.
”하아, 짜증나네.“
”와, 너 지금 짜증난다고 했지? 이제 본성을 드러내는 거 봐.“
”그 입 좀 어떻게 다물면 안 됩니까?“
자꾸만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 그거구나. 그녀가 담겨져 있는게.“
그때 그 남자가 내 양 손을 덥썩 붙잡았다.
”이게 발포스와 너를 연결해주는 족쇄고.“
무척 흥미로워하는 그의 눈빛에 나는 머릿속 무언가가 뚝 끊기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