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10분 정도를 걸었을 때, 나는 내 생각이 멍청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낯선 이에게 말을 쉽게 걸 정도로 얼굴이 두껍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소심한 편에 속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랬다.
내가 이렇게 돌아다닌다고 해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요새 하도 돌아다닐 일이 많아 순간 착각을 했나 보다.
백예린이나 최동수처럼 그렇게 만날 확률은 드물다.
‘그리고 굳이 내가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네.’
내 위치는 남을 찾아다니면서 굽힐 그런 위치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와서 자신을 받아달라고 굽혀야지.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인간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인간이니까, 그리고 인간들과 일을 했었다는 이유로 길을 돌아다니는 동안 이종족에게는 눈도 주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멍청한 건지 모르고.
‘면접을 어떻게 볼까. 저승 때와는 아무래도 많은 게 다르겠지.’
저승에서 면접을 볼 때는 저승왕의 도움이 있었다.
그래서 손쉽게 직원을 구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가 손상되지 않는 이상 그건 앞으로도 지속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면접보는 걸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옛날처럼 무료 홍보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시스템의 손을 빌리기에는 불안한 점이 많다.
시스템에게 빚을 지면 안 된다.
그들의 손을 빌리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그 대가가 얼마나 높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음··· 그냥 고객들 중에 몇을 뽑아서 직원을 쓸까?”
그들을 살펴보니까 생각보다 코인이 궁한 고객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코인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 얼마든지 내 밑에서 일할 것 같기도 했다.
대출을 하는 것보다야 일을 하면서 코인을 버는 게 낫지.
‘종이는 나한테 있고. 광고판을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이럴 때는 예전이 편했다.
인터넷에 모집 공고를 올리면 되니까.
지금은 그러지를 못하니.
그래서 생각해낸 게 광고판이다.
차원 은행에 고객들의 눈에 쉽게 들어올 위치에 광고를 하는 것.
좋은 방법 같다.
No.72의 말도 있었으니 슬슬 규모를 늘리는 것도 생각해야지.
‘성좌들을 고용한 인간이라··· 재미있겠네.’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모였는 거지.
“이 빌어먹을 새끼야! 네가 먼저 쳤잖아!”
“그, 그랬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 이 부러진 어깨가 증거다! 어떻게 할꺼야! 내가 너 때문에 돈 못 벌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다.”
최동수가 있었다.
건장한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빈약한 체형을 가져서인지 그는 의외로 눈에 쉽게 띄었다.
문제는 그가 덩치 큰 장정 셋에게 둘러쌓여 있다는 거다.
‘···뭔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걸까.
눈을 깜빡이거나 비비며 눈을 의심했다.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머리를 굴렸다.
‘저건 아무리 봐도 시비 털린 모습인데.’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최동수가 먼저 시비를 걸 리도 없고, 그런 성격도 되지 못한다.
봐라, 지금도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몸을 움찔 떠는 그의 모습을.
저런 소심한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기도 힘들뿐더러, 설령 그들의 말처럼 먼저 부딪혔다고 해도 사과를 했을 거다.
더 나아가면 피해를 보상하려고까지 했겠지.
“음··· 당신이 보기에 저게 무슨 상황 같습니까?”
“재미있는 상황이군요.”
말뿐이 아니었다.
그를 돌아보니 실제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최동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반짝이고 있는게 마치 자신이 최동수 대신 저 가운데 있었으면 하는 느낌이었다.
“뭐하고 있으십니까. 제 직원입니다. 가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오세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대답도 하지 않고 달려갔다.
한순간에 남자들 사이를 파고 들어간 발포스가 최동수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저기 은행장님께 말하시면 됩니다.”
“예, 예? 갑자기 무··· 으어어억!”
발포스가 최동수를 그대로 집어던졌다.
남자들 머리 위로 날아오른 최동수가 내 옆에 떨어지며 땅을 굴렀다.
세게 구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신기한 건 그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거였다.
“···설마 사고치지는 않겠지.”
죽이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아니, 처음부터 무력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왠만하면 대화로 부드럽게.
뭐,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는 잘하겠지 생각하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난 최동수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만남의 광장을 돌아다녀 보라고 했지, 싸우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라고 이렇게 되기를 바란 줄 아십니까?”
그의 까칠한 말투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기 있는 놈들에게는 말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나한테는 너무 쉽게 화를 낸다.
“그런 것치고는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럼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먼저 와서 어깨를 부딪혀 놓고서, 제 잘못이라며 마석을 내놓으라는데.”
그가 분한 목소리로 남자들을 노려봤다.
혼자 있을 때는 겁을 먹고 덜덜 떨진 모르지만, 내가 나선 이상 달랐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저기 저.
“우리 직원이랑 무슨 얘기를 한 지 모르겠는데, 나와 한 번 얘기해보는 거 어때?”
투기를 풀풀 풍기는 발포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일까.
발포스 한명만 있어도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때려눕힐 수 있다.
그런 존재를 저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저런 놈들에게 걸린 당신도 당신이지만··· 지금이 법이 있는 옛날과는 다르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저놈들도 문제네요.”
세 명의 남자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고, 위험한 상황인지.
“야, 넌 또 뭐냐?”
“어디서 이런 떡대가 나타났어. 왜, 우리가 그래서 겁먹을 줄 알아?”
그들 중 하나가 발포스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가슴을 쿡쿡 찔렀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던 발포스가 그 손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직원은 또 무슨 개소리야. 세상도 멸망했는데 직원은 또 무슨 직원.”
“에이. 뭘 그래. 저기 있는 저 괴물들이랑 같은 류인가 보지. 이것 봐봐. 뿔도 달고 있잖아.”
“뭐야, 이거 모형 아니었어?”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아무리 안전한 만남의 광장에 있어도 그렇지.
무려 세상이 멸망했다.
몬스터가 나타나고 균열이, 던전이 생겨난 마당에 저들의 조심성 없는 행동은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었고 이해를 하기도 싫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놈들을 뭐하러 이해를 한단 말인가.
저건 그냥 자살특공대지.
“진짜 뿔은 무슨 느낌이려나.”
발포스의 손이 자신의 뿔을 향해 뻗어오는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어, 뭐야. 지금 나 손 잡혔어. 봐봐!”
“···야. 야야.”
“미친···.”
손을 잡힌 남자가 제 동료를 돌아보며 웃고 있는데, 그 동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우리를 탈출한 호랑이를 만난 것처럼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야, 뭐해?”
남자가 당황하며 제 동료를 부르고 있는데, 그 동료란 사람들은 뒷걸음질치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야··· 뭐하냐고?”
“야, 야야야. 뒤!”
“미친 새끼야, 뒤를 보라고!”
“뒤? 뒤에 뭐가 있다고···?”
그가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졌다.
“은행장님에게 들은 게 있어 가만히 있었더니··· 내가 우습게 보였나 보군.”
발포스가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너무 사악하고 잔인했다.
악마, 그래 악마가 웃고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다.
실제로 악마를 지배하는 마신이기도 하지만.
“뭐, 뭐··· 끄아아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지른다.
우드드득-
발포스가 잡은 손이 새카맣게 죽었다.
뼈가 부러지다 못해 가루로 변한 그 고통에 남자가 넋을 잃은 듯 했다.
치이이익-
고기 익는 소리가 들려오고, 남자의 손이 불에 타 완전히 사라졌다.
신기한 건 불이 그의 손을 완전히 태우는 동안 그가 입고 있는 옷에는 전혀 불이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악, 내 손. 내 소오오온!”
남자가 비명을 지른다.
손이 사라진 손목을 붙잡은 채 땅을 굴렀다.
발포스가 그 남자를 빤히 내려다보니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마냥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 죽이지 않았다고 나한테 칭찬해달라는 거 맞지?’
그의 행동에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발포스를 향해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발포스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의 손에 남자 셋의 발목이 잡혀 있었다.
도망을 가려고 하는 남자들을 붙잡은 것이다.
손을 잃은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정신을 잃은지 오래였다.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데리고 오라고 하신 거 아닙니까?”
“···네. 잘했습니다.”
혼자 오라는 거였는데, 딱히 상관은 없겠지.
“일단 깨워보시겠습니까?”
“아. 네.”
발포스가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향해 손바닥을 벌렸다.
그의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나는 황급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그가 나를 당황하며 나를 돌아본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깨우라고 했지, 죽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
“죽이면 안 됩니다.”
“네. 깨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깨우려고 한 겁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
“지금 어떻게 깨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해서는 곱게 깨우면 안 됩니까? 죽을 수도 있는데.”
“아, 그렇겠군요.”
이해했다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를 보이던 손을 내리고 다른 손을 들었다.
그 손에서 뜨거운 열기와는 다르게, 차가운 얼음이 모여들었다.
카가가가각
얼음이 그들의 머리 위에 얼음이 생성되어 충돌을 일으켰다.
얼음 가루가 쏟아지기 무섭게 그가 반대 손을 뻗어 열기를 쏘았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물이 되어 그들의 얼굴에 쏟아진다.
“으헛!”
“커어억!”
그들이 입에 쏟아진 물을 토해내며 깨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황급히 돌아보더니 발포스와 눈이 마주치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사람은 안 일어났는데요?”
다른 남자 둘은 일어났는데, 정작 손을 잃어버린 남자는 여전히 기절한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손을 잘린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음···.”
나는 그저 안 일어났다고만 말해쓸 뿐인데.
그게 발포스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이건··· 좀 짜증나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남자의 머리를 붙잡았다.
우드드드득-
남자의 머리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깨어낸 남자가 제 머리를 붙잡다가 없어진 손을 보며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발포스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결국에는 깨워버렸다.
“자, 그래서 제 직원에게 무슨 볼일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나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