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0화 (60/113)
  • 제60화

    차원의 조율자.

    귀속된 모든 생물에 대한 권한을 가진 결정권자.

    죽음과 계약··· 등등.

    시스템을 뜻하는 말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 말들은 대부분 시스템이 얼마만큼 영향력이 큰지 알려줬다.

    ‘그런 시스템조차 생물의 본질을 건드릴 수 없다···.’

    정확히는 그 생물이 가진 코인을 강제로 빼앗아 올 수는 없다고 한다.

    시스템이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수 있는 만능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하지는 못했다.

    시스템이 하지 못하는 유일한 한 가지.

    코인에 대한 강제력.

    그렇기에 시스템은 채무자에게 코인을 받아낼 때 여러 방법을 사용했다.

    ‘시스템조차 할 수 없는 걸 내가 할 수가 있다라.’

    No. 72는 내가 가진 특성을 듣고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자신들에게 그 특성이 있었다면 굳이 힘들게 움직이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하지만, 문제는 그 특성을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은행장님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거네요.”

    나는 시스템과 다르다.

    한 명 한 명이 막강한 힘을 가진 관리자들을 보유한 시스템과는 다르게 나는 직원의 수가 다 합해도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도 수로는 채무자를 일일이 찾아갈 수도 없었다.

    텅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반대되는 상황이다.

    안에 있는 건 엄청난 보물인데, 정작 그것을 담고 있는 수레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금가루가 담긴 질그릇.

    지금의 내 상황이 딱 그 모습이었다.

    “이런 적은 저도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는 하네요.”

    시스템에 귀속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용자가 빚을 다 갚는 것도 모자라 1조 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도 계속 불어나는 추세이고, 코인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았다.

    ‘문제는 나다.’

    내가 그것을 감당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특성들이 개방된다고 해도 그 매개체가 되는 내가 약한데.

    제대로 사용하지를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 부면에 있어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해결책을 내놓던 No. 72가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뭐라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고 했다.

    그런 내게 No. 72가 은근슬쩍 말했다.

    “은행장님께서는 현재 가지신 코인을 감당하실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셔서 바로 차원 은행 상태창을 다시, 제대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예?”

    “그리고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세요. 규모는 대기업인데 정작 직원은 중소기업만도 못하니 그 괴리가 지속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

    경고일까, 아니면 걱정일까.

    아마 둘다이지 않을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며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후···.”

    은행장실로 돌아온 나는 숨을 내쉬었다.

    No. 72가 자신은 도움이 안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상담 덕분에 나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직원을 더 많이 빠르게 고용해야겠어.’

    직원이 부족하니 제약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아무나 받을 수도 없으니.

    면접을 좀 봐야겠는데.

    “면접··· 면접이라···.”

    발포스를 슬쩍 바라보다가 문득 저승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한예림이 떠올랐다.

    이곳에 와서 게이트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생각난 김에 바로 하자며 은행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어디에 설치하는 게 좋을까.

    출구 옆?

    아니, 그쪽은 고객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좀 더 으슥하고 잘 보이지 않는 곳이 좋겠지.

    애초에 게이트의 외형 자체가 신전 입구처럼 보이니.

    “여기가 좋겠네.”

    차원 은행을 돌아다닌 끝에 가장 적합한 자리를 찾았다.

    휴게실의 뒷모습.

    대기석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여기라면 게이트를 설치하기에 충분하다.

    “뭐하십니까?”

    “뭐하나?”

    “뭐하세요?”

    최동수와 녹스, 백예린이 내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무슨 이상한 짓을 하나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최동수는 아예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득, 콰드득.

    코인이 빠져나갔다는 소리와 함께 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녹스가 기겁하며 백예린을 붙잡아 뒤로 물러났다.

    백예린을 자기 뒤로 물리는 게, 내가 없는 일주일동안 제법 정이 든 모습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보시면 압니다.”

    경계하며 벽을 노려보는 그에게 나는 이렇다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런 건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빠르니까.

    [게이트의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황금색 균열의 양 옆으로 금색 기둥이 생겨났다.

    균열의 위로는 무더기로 쌓여 있는 황금 코인을 나르는 짐꾼들의 문양이 있었다.

    “저건··· 균열이잖아.”

    녹스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한 때 던전의 보스이자 게이트키퍼로서 있었기 때문인지, 내가 만들어 낸 게이트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눈초리였다.

    “제가 좀 오래 나가 있지 않았습니까.”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갔다 온 곳에 새로 지점을 하나 냈습니다. 이건 그곳과 연결해주는 입구이자 출구입니다.”

    딱 거기까지 설명했다.

    녹스에게라면 모를까, 백예린과 최동수에게 그곳이 저승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와 같은 지구 출신이다.

    저승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그리고 약간의 좋지 않은 환상이 있는.

    무엇보다 살아있는 생자가 망자들만이 기거하는 저승에 가는 건 좋지 않다.

    차라리 아예 모르고 있는 게 나았다.

    “굳이 가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예린씨와 동수씨는 가급적이면 게이트에 관심을 안 가지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예···.”

    “가라고 해도 안 갈 겁니다.”

    의문을 품는 백예린과 다르게 최동수는 단호했다.

    절대 내가 하는 일에 연관이 되기 싫다는 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관심을 가질 바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게 더 나았다.

    “좋습니다. 애초에 당신들이 들어간다고 해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 리도 없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아, 녹스는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거기에 갔다 오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는 흑마법사다.

    망자를 부리고, 망자를 소환하는 네크로맨서.

    그런 그에게 있어 저승은 기연 밭과 같았다.

    “아, 그리고 모두 할 일 없으시죠?”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최동수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출에 대한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다음에도 그에게 지식을 주입할 일이 생기면 되도록 먼저 말을 해주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후임을 만들어줘야겠네.’

    좀 쓰레기 같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 후임을 푸는 상사가 많았다.

    나는 애초에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기도 하고, 마음에 별로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기에 후임에게 풀지 않았지만.

    일을 하면서 몇 번 본적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의아하면서도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는 후임을.

    그런데 마냥 불쌍하다고 할 수 없는 게 그 후임도 만만치 않은 성격이었다.

    자기를 괴롭히는 선임의 뒤를 1년 동안 미친 듯이 캐낸 끝에 후임은 결정적인 순간에 폭탄을 터뜨렸다.

    선임은 비리와 탈세로 잡혀 들어갔고, 후임은 고발하기 무섭게 일을 관뒀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선임이 후임을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기도 했다.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할 게 없으시다면 잠시 저와 어디 좀 갔다 오시죠.”

    “어디를···?”

    “밖에요. 언제까지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일을 했으면 즐길 수 있는 것도 있어야지.”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휴식은 필요했다.

    휴식의 방법은 많았고, 사람마다 휴식을 즐기는 방법도 다 달랐다.

    일을 하고 숙소에서 자기만 하는 생황은 최악이었다.

    지금에야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지쳐 일을 안 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휴식거리를 쥐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밖을 돌아다니면서 인재를 찾아봐야지.’

    솔직하게 말해서 그들을 위해 나간다는 건 핑계였다.

    어차피 인재를 찾기 위해서 나갈 건데, 이왕 나가는 거 직원들을 챙겨주면 두 번 고생할 거 한 번만 하면 되니 더 좋았다.

    우우웅-

    차원 은행을 나가니, 밤인데도 불구하고 낮처럼 환한 만남의 광장 길거리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길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와···.”

    “대박. 여기 뭐야?”

    백예린과 최동수가 멍하니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이 차원 은행을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몬스터들과 지진 등으로 망가져 버린 세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이나 평화로운 거리의 풍경이 들어왔다.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아, 그 의미에서 감동한 거구나.

    최동수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미친놈 바라보듯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감격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사람같지 않은, 기괴한 모습의 고객들만 만나다고 자신과 같은 인간을 보게 되니 기뻐 미칠 지경이었다.

    “자, 이건 당신들에게 드리는 월급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보너스도 넣어드렸으니, 가셔서 원하시는 거 하시면 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백예린이 크게 기뻐하며 내게 머리를 숙였다.

    안 그래도 은행에만 갇혀 있어 답답했었는데, 이렇게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니 그게 무척이나 기쁜 모습이었다.

    최동수도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기쁜 모습을 감출 수가 없는지 입술이 씰룩거렸다.

    나는 백예린과 최동수에게 각자 5,000코인씩 주었다.

    원래 그들의 월급을 생각하며 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순수히 기뻐하며 상점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녹스가 생각보다 조용··· 지금 우는 거야?’

    녹스를 돌아본 나는 그의 볼에 흐르는 투명한 물방울에 당황했다.

    웃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어째서인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우시는 겁니까?”

    “···무려 사백 년이다. 사백 년이 지나 드디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어.”

    “아··· 네.”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까. 그때 나가지 못해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바깥 공기를 맡을 수가 있다니.”

    “그래도 저와 일은 계속하셔야 됩니다.”

    “···너는 분위기를 깨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군.”

    그가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거, 그것의 이름이 뭐지?”

    “지금 반말··· 헙! 엘더 리치!”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녹스에 눈살을 찌푸리던 상점 주인이, 녹스의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아 자네의 무례를 용서해주겠네. 지금 자네가 굽고 있는 그것의 이름이 뭔가.”

    “이, 이건 닭꼬치라고 하는 겁니다.”

    “닭꼬치?”“네. 닭의 부드러운 살을 뭉쳐 제가 직접 만든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죠.”

    “그거 하나 줘보게.”

    “그, 그전에 코인을 주셔야 하는데···.”

    “이거면 되겠나?”

    그가 아공간을 열어 마석을 하나 꺼내 건넸다.

    상점 주인이 아직 계좌를 개설하지 않아 코인 거래가 불가능했다.

    상점 주인은 그가 든 마석을 보더니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지더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침이 되기 전 돌아오라고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 인재가 없으려나.’

    길거리를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봤다.

    무수히 많은 사람 속,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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