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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8화 (58/113)
  • 제58화

    다이아 등급의 고객은 최대 오억 코인까지 빌릴 수 있다.

    미스릴 등급의 고객은 천억 코인까지 빌릴 수 있다.

    하지만 미스릴 등급 이상의 고객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그 반대로 다이아 등급의 고객은 꽤 많았다.

    내가 저승에 가 있을 때, 최동수가 부지런히 일을 한 결과였다.

    그 덕분에 관리자들을 제외하고 다이아 등급의 고객이 이백 명이 넘었다.

    전부가 코인을 빌리지는 않았다.

    무려 다이아 등급이다. 그 등급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코인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설마 했는데··· 이게 이 정도로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는데.’

    코인이 많다고 생각했던 고객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코인이 많지 않은 이상 다이아 등급이 되기는 힘들었다.

    모순적인 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웃기게도 코인이 많아야 할 다이아 등급의 고객 중에는 은근히 빚을 진 고객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코인을 빌리고 싶다고 간곡히 청하는 고객들이 꽤 있었다.

    ‘하나같이 시스템에 빚을 진 이들, 개중에 몇은 거부들에게 빌린 것이고.’

    빚을 졌으면서 다이아 등급이 된 게 의아하기는 했지만, 굳이 내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나야 고객을 잘 상대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건 좀 문제인데.’

    코인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 같았다.

    기껏 빌려줬는데 그 코인을 갚을 것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 내가 도로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미치겠네.”

    오늘은 다이아 등급 이상의 고객들에게 코인을 빌려주지 않았다.

    점액질 고객도 코인을 빌릴 수 있다는 말에 놀랐을 뿐이지, 지금 당장 코인을 빌릴 정도로 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찾아온 고객들이 문제였지.

    그들의 모습은, 행색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돈에 쫓겨 사채까지 쓴 이들의 모습.’

    안타깝기는 하지만, 안타깝기에 섣불리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그때 내가 도와줬으면 거기에 기대 또, 또, 그 다음에 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으니까.

    저들의 모습이 딱 그때 도박꾼의 모습이었다.

    나중에는 돈을 빌리러 오지 않아 생사를 알 수도 없는.

    ‘이기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나도 손해를 봐서는 안 돼.’

    차원 은행의 고객들로 만들어진 자본을 함부로 막 굴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고객들에게 섣불리 코인을 빌려주지 못했다.

    빌려줬다가 되찾지 못하면 결국 나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감 잘했습니까?”

    “네.”

    “그럼 잠시 얘기할 게 있으니 은행장실로 와주세요.”

    아, 그러고 보니 게이트도 설치해야 하는데.

    이 회의를 끝내고 바로 설치해야겠네.

    “부르셨습니까?”

    최동수가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옆에 서 있는 발포스를 향해 말했다.

    “발포스님께서는 밖에 나가 계세요.”

    “나는···.”

    “나가세요.”

    그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포기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은행장실을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앞에 있는 소파에 최동수를 앉혔다.

    “커피 좀 드시겠습니까?”

    “아니요. 지금 마시면 잠을 못 자서요. 그냥 물을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에는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것 같은데.

    이제는 내 앞에서 하품까지 쩍쩍하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몫의 커피를 타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그에게는 생수병을 건넸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일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고객분들을 상대하는데 힘드신 점은 없습니까?”

    “네. 처음에는 좀 무섭긴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지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솔직히 적응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했거든요.”

    그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것도 잠시 생수병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걸 묻고 싶어서 저를 부르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해야 하는 게 있는 겁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동수씨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같은 일을 하실 겁니다. 직책에 따라 조금 변동이 되기는 하긴 할텐데, 지금 당장 변하는 건 없습니다.”

    “그렇군요.”

    “네.”

    “···.”

    최동수가 정말 그게 전부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의 피곤한 눈빛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성격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전에는 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었는데.”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니까요. 하도 비현실적인 일을 겪다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더군요.”

    “그것 참···.”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뭐죠? 정말 단순히 대화를 하자고 부르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별거 아닙니다. 그저 오늘 일을 한 것에 대해서 들을 게 있어서요. 오늘 대출을 처음···.”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대출이란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마에 혈관이 돋아난 그의 눈에 일순 살기가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것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아, 예. 말씀하시죠.”

    쾅!

    그가 탁자를 두 손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커피잔에 담겨 있던 커피가 조금 넘쳤다.

    ‘아씨, 감짝이야.’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하며 그를 바라보니, 그가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예?”

    “전에도 그랬습니다. 적금에 대한 지식을 제 머리에 바로 때려 박으셨죠. 아, 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동의한 거니까요. 하지만 이건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저와 일절 상의도 없이 일하던 중간에 대출을 주입시켜야 했던 겁니까? 그 정도로 급하셨습니까?”

    “어···.”

    “그 느낌이 얼마나 개같은 줄 아십니까? 머릿속에서 막 벌레가 꿈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구역질 같은 느낌이 말입니다!”

    “저기, 지금 이거 하극상인 거 아십니까?”

    “하극상이든 뭐든! 왜, 또 이번에도 절 죽인다고 하시게요? 와, 진짜 무서워서 같이 일을 못하겠네.”

    그가 화가 난다며 제 가슴을 두드렸다.

    이 상태로는 한동안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가 뚜껑을 따놓고 입을 대진 않은 생수병이 보였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최동수를 봤다.

    “아니, 도대체 일을 왜 그딴 식으로···!”

    음, 이건 안 되겠네.

    손을 뻗어 생수병을 잡았다.

    적당히 차가운 게 딱 알맞았다.

    나는 생수병을 들기 무섭게 최동수의 얼굴에 조준했다.

    “지금 제 말을 듣고 있습니까? 그건 또 뭐···!”

    푸확!

    그의 얼굴에 물이 쏟아진다.

    내가 부은 물이 그의 정수리에서 흘러내려 얼굴을 가득 적셨다.

    “···.”

    “···.”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고, 나도 입을 다문 채 그를 바라봤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몸을 움직여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덮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되십니까?”

    “···네.”

    그가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길게 숨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내게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제가 뭐에 씌었나 봅니다.”

    “아니요.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하극상이야 뭐··· 가끔 짜증나면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덕분에 저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네요.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지식을 주입시켜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화가 나면 하극상을 할 수도 있죠. 저도 예전에 밑에서 일해봐서 그 맘 잘 압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정말로 괜찮은데, 어째서인지 그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기만 했다.

    그에 멋쩍어져 볼을 긁적였다.

    이대로는 대화를 제대로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아까 그러셨죠. 다른 용건이 있냐고.”

    “···?”

    그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네. 있습니다. 아까의 연장선이기는 한데,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오늘 몇 분에게 대출을 해줬는지 기억하십니까?”

    “음··· 잠시만요.”

    그가 허공을 바라본다.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21명에게 빌려줬습니다. 더 원하시는 분들이 있기는 한데, 시간이 부족해서요.”

    “음···.”

    생각보다 많은 고객에게 빌려줬다.

    능력이 너무 좋아도 문제인가.

    “그럼 대충 빌려준 코인의 금액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제일 많이 빌리신 분은 오만 코인 정도에서 적게는 삼천 코인 정도 빌리셨습니다.”

    그 정도라면 크게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이야 마감에 가까울 때 빌려줘서 그렇지, 내일이 되면 대출을 신청할 고객들의 수가 배로 늘어날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출의 조건을 만들도록 하죠.”

    “조건 말입니까?”

    “예.”

    모두에게 코인을 빌려줄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주먹구구식으로 했을지 몰라도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는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차원 은행은 대한민국의 은행들과는 다르다는 걸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은행들은 보증이 있었다.

    법과 경찰이라는 보증이.

    은행의 돈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든 대가를 받아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코인을 갚지 않으면 그 손해는 내가 감당해야 했다.

    하다못해 징수를 한다 해도 빌린 고객이 거지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니 코인을 빌려주려면 신분이 확실한 고객이거나, 어느 정도 신뢰가 있는 고객이어야 했다.

    “차원 은행을 반년 이상 이용한 고객에게만 빌려드리는 걸로 하죠.”

    “네? 하지만, 차원 은행은 만들어진지 이제 막 한달이 넘어가는데···.”

    “그렇죠. 그러니 한 가지 조건을 더 걸겠습니다. 고객이 100회 거래를 했을 시,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될 때 대출을 해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이것도 많이 봐준거다.

    까놓고 말해서 100코인씩 백번 거래를 해도 만코인이다.

    그 두 가지는 그 고객이 코인을 갚을 거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쌓는 행위였다.

    그래야 조금은 마음 놓고 코인을 빌려줄 수 있다.

    “그렇게 아시고 얼굴은 이걸로 닦으세요. 이제 나가셔도 좋습니다.”

    내게 수건을 받아든 최동수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말하기를 포기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은행장실을 나온 걸 확인하기 무섭게 나는 품에서 호출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바로 눌렀다.

    파아앗-

    환한 빛이 나를 감싸고.

    쏴아아아-

    민망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

    한 남자가 달려가고 있었다.

    금발을 찰랑이며 복도를 달려간 그가 ‘president’라고 적힌 방문 앞에 멈춰 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들뜬 가슴을 진정시킨 그가 천천히 문으로 손을 가져갔다.

    똑똑똑.

    세 번의 노크.

    “들어오게.”

    문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그가 거울을 들어 제 몸을 가다듬고 나서, 품에 거울을 집어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자네인가.”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이었다.

    서류 위로 네 개의 팬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적발의 남자가 있었다.

    피폐한 얼굴의 남자.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는 그 남자를 향해,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가 최대한의 존경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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