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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6화 (56/113)

제56화

마신을 노예로 얻었다! 라고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한번 잘못 행동한 바람에, 그가 내게 상의도 없이 멋대로 움직인 바람에 내가 얻을 수 있었던 모든 게 사라졌다.

화가 났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조금만 관리자를 일찍 만났다면.

그랬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금액을 넘는 코인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것 말고도 은행을 지금보다 훨씬 성장할 수 있었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그 모든 게 날아갔다.

‘저 짐덩어리를 어떻게 하지?’

그게 내 잘못이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랬다면 조금 아쉽기는 했어도 순순히 인정했을 텐데.

“이거 은근히 불편하군.”

제 기분대로 행동해 모든 걸 망친 마신과 앞으로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하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지도 모르게 제 불만을 토로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안 됩니까?”

“지금 내게 하는 소린가?”

그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본다.

뭘 잘했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까.

부릅뜬 저 두 눈을 찌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네. 당신한테 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그 시끄러운 입 좀 닥치고 있으시겠습니까?”

“어··· 알겠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그에게 거칠게 말했다.

욕을 하기는 했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누구 때문에 손해를 봤는데 욕 하나 먹으면 어때.

그 정도 손해를 봤는데 욕정도야 먹을 만하지.

오히려 때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

“그럼 이제 돌아가면 되는 겁니까?”

“네.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저희가 해결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No. 72가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이곳에 왔을 때처럼, 환한 빛과 함께 만남의 광장으로 이동했다.

“일단은··· 돌아가죠.”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셨다.

그에게 따지고 욕한다고 해서 이미 떠나간 배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손해 본 것들을 그에게 배상하라고 하면 된다.

비록 그가 내 부하 직원이기는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오히려 같은 일을 하는 사이일수록 돈에 있어서 더욱 철저해야 했다.

‘격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2조를 썼다는데, 나한테 그 정도 코인은 충분히 줄 수 있겠지.’

내가 그에게 할 요구는 절대 부당하지 않았다.

직권 남용도 아니었다.

나는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이다. 마신이라는 작자가 설마 코인 하나 주기 싫어서 발뺌하지는 않겠지.

‘정 안되면, 아예 그를 시스템에 팔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자신이 한 잘못의 대한 책임은 져야 하는 법.

마신이니 몸값을 제법 많이 받을 수 있겠지.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샐러리맨의 모습이 아닌 마초적인 전사의 모습이기 때문인지 공손했던 그의 말투가 건방지게 바뀌었다.

조금 거슬리기는 해도, 녹스도 내게 반말을 한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아니, 내게 배상만 한다면 그 당시에 욕을 해도 웃어줄 수 있다.

“제가 뭘 어떻게 바라봤다는 겁니까?”

코인을 받을 생각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려 그를 바라보니, 발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빚을 잔뜩 진 채무자를 잡으러 가는 채권자의 얼굴이다.”

오, 정확하다면 정확한 안목이다.

나는 차원 은행에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그에게 코인을 배상하라고 할 것이다.

우선 그 때문에 잃은 1조와, 은행을 건설하는데 오백억 정도 들고, 포탈 10회니까 대충 10억··· 아니 100억이라 치고, 내 정신 피해 보상으로 9,600억. 그럼 2조를 달라고 해야겠다.

기적의 계산법.

숫자로 밥을 먹은 사람이라면 무슨 그런 터무니 없는 계산이 다 있냐고 따지겠지만.

그건 그들 얘기다. 나는 충분히 그 정도의 금액을 받을 이유가 있었다.

그를 데리고 있다는 것부터가 내게 큰 피해를 주는 거니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아도 무방하다.

‘하, 내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원 은행 안으로 들어섰다.

슬슬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고객들이 대거 빠져나가 있었다.

“아, 은행장님 돌아오셨네요···.”

“은행장님!”

최동수가 의자에 앉아 힘없이 나를 바라봤고, 고객의 줄을 세우던 백예린이 달려와 나를 덮쳤다.

“너무 가까이 붙지 마라.”

달라붙으려고 했다.

발포스가 손을 뻗어 제지하지 않았다면, 나는 최동수에게 당했던 것처럼 한번더 뒤통수가 깨질 뻔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서 뒷걸음질을 친 걸 발견했다.

멋쩍음에 볼을 긁적이니, 백예린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왔다.

그녀를 막으려는 발포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미소를 보였다.

“많이 걱정하셨나 보군요. 그래도 고객들이 보는 앞이니 눈물은 참아주시겠습니까.”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눈물은 그녀의 뜻과는 상관없이 또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려 일주일이에요. 은행장님께서 일주일 동안 돌아오시지 않으셨다고요.”

저승과 지구의 시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저승에서의 하루가 지구에서는 일주일이었다.

그걸 관리자에게 듣지 않았으면 지금쯤 그녀의 말을 듣고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걱정을 끼쳤군요. 보다시피 저는 멀쩡합니다.”

양팔을 들어 올리며 다친 곳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아직 영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궁금증은 잠시 묻어두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은행장실로 가는 길에 녹스와 눈이 마주쳤다.

“···.”

“···.”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를 지나쳐갔다.

내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익숙해진 것이다.

“동수씨도 잘하고 계셨군요.”

내 말을 들었을 텐데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기보다는 고객을 상대하는데 집중했다.

처음 내가 들어왔을 때 눈이 마주쳤던 걸 제외하면 그는 내게 일절 관심을 끈 상태였다.

“수고하세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다고 내게 인사를 아예 안 한것도 아니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고객을 상대하느라 바쁜 걸 아는데,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는 걸 트집잡을 정도로 나는 악독하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 은행장실로 들어갔다.

발포스가 나를 따라 들어오고, 자리에 앉은 나는 은행장실과 창구를 이어주는 유리문과 벽을 블라인드 처리했다.

“발포스씨.”

“어··· 으응.”

“발포스씨와 저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입니다. 존댓말을 써주시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존대를 쓰는 건 어렵지 않다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말을 마냥 무시하기에는 구속구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내가 구속구를 사용해 그에게 명령하면 어지간한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무슨 명령이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예를 들어서 그가 가진 코인을 모두 내게 넘기라는 명령은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 명령할 수 있는 존대를 하거나, 나를 지키라는 단순한 것들 뿐이다.

그걸로 충분하기도 했다.

그가 나를 지키면 정말로 강한 존재가 아니라면 내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발포스님께서 이번에도 실수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실수···.”

“네. 실수 말입니다. 제가 저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저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은행장을 지키···!”

“저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라면 집어치우시죠. 당신이 그렇게 멋대로 행동하지만 않았으면 관리자들이 화를 낼 일도, 당신의 목과 제 팔에 이런 게 찰 일도 없었을 겁니다.”

내가 그에게 팔찌, 그러니까 시계와 융합한 구속구를 흔들어 보였다.

내가 구속구를 차고 있는 게 불편하다고 하니, No. 72가 기존에 차고 있던 시계와 합쳐 버렸다.

그렇게 나쁠 건 없는 게, 구속구와 시계가 합쳐지면서 디자인이 무척 신비로워져서 소위 간지가 살았고, 발포스가 구속구를 풀지 않은 이상 시계의 약이 다할 일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코인을 아낄 수 있기도 했고, 어차피 차고 다닐 거라면 이런 게 훨씬 나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먼저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어도 일이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분명 말했죠. 나서기 전에 제게 먼저 물으라고요.”

“으음···.”

반박할 수가 없었는지 그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변명을 하고 싶기는 한데,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게 느껴졌다.

“당신은 벌써 두 번이나 저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제 말에 의견이 있다면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없습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는 모습.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해줄 마음은 없었다.

“뭐, 그렇다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변명에 가깝기는 하지만 저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는 건 맞으니까요. 그리고 마신이신데, 그 성격을 억누르는 것도 쉽지 않겠죠. 오히려 꽤 오래 참으신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

그가 조금은 감동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그의 반응에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쓸 때가 있었다.

채찍과 당근을 교묘히 사용하라고.

매를 들었다면 약도 주라고.

어째서 그런 방법을 쓰는 건지 묻는다면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채찍은 사람이나 동물의 이성을 흐리게 한다.

그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한계까지 몰아 붙여지면 모든 걸 포기히고 싶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때 도움의 손길, 즉 당근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성이 흐려질 대로 흐려진 상대는 당근을 준 이가 채찍을 휘두른 사람이란 걸 잊고 마음을 열게 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몸과 정신이 가장 힘들 때가, 반대로 마음을 열기에 가장 쉬운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신적으로 지치게 하고 위로를 하는 것만큼 효과 좋은 방법도 없지.’

봐라, 그렇게 욕을 먹었으면서 이해한다는 말에 풀어지는 모습을.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마신이다.

온갖 더러운 것을 다 경험했을 그가 이런 유치한 방법에 놀아나는 것도 신기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당해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믿는 걸까.

뭐가 됐든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원래였다면 발포스님의 신변을 시스템에 넘겼겠지만···.”

뒷말을 흐리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시스템이라는 말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No. 72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주먹을 쥔 손이 떨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조금이기는 하지만, 함께한 정이 있으니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

“단, 제게 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제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피해를 보면서까지 발포스님을 데리고 있고 싶지는 않군요.”

“다, 당연하죠! 뭐든 말하면 들어드리겠습니다!”

호언장담을 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어···?”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것 같은데 이미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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