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손에 뜨끈하고 끈적이는 액체가 묻었다.
“아악···!”
처음에는 ‘어, 뜨겁다’라고 느껴졌다.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불과 1초? 2초? 그 정도도 지나지 않아서 손등 전체가 마치 용암에 집어넣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아프다, 따갑다.
치지직-
액체가 묻은 부위가 타들어 가더니, 피부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젠장!
반지가 기겁을 하는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온다.
미칠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이 흐려진다.
이대로 기절하고 싶다라고 느낄 정도로 너무 아팠다.
서걱-.
손목이 잘렸다. 잘린 단면에서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뼈가 생겨나고, 새 살이 돋아났다.
-어? 이건 내가 한 게 아닌데 어째서 재생력이 이렇게 높아진···?
경악 어린 목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도대체 뭐였지.
내가 방금전 느꼈던 게 환상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느낌이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일어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땅에 떨어져 있는 잘린 내 손목을 보니 그건 아니었다.
“도대체 뭐야···.”
나는 뭘 때린 걸까.
뭘 때렸기에,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이번에도 반지가 도왔던 건가.
-재생력이··· 트롤보다 더 심한··· 이게 엘릭···.
반지는 혼자서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내가 때린 게 무엇인지 확인했다.
비명 소리가 들린 걸 보면 사람을 때린 것 같은데.
“검둥이씨?”
“어, 어떻게···.”
검둥이가 제 코를 붙잡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부위를 보면, 그가 코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뭡니까.”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나타난 그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가 흘리는 피와, 땅에 떨어져 실시간을 녹아내리고 있는 손목에 묻은 피의 색이 같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피가 묻었다고 내 손이 녹은 거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손을 녹일 만한 게 그거밖에 없었다.
피로 사람 피부를 녹이는 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 피가 산성으로 되어있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그가 어떤 종족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들 뭐가 이상할까.
다만 내가 화나는 이유는 날 지켜야 할 그가, 남의 말을 듣고 움직였다는 거다.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할 거라면 뭐하러 내 밑에서 일을 한단 말인가.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 존재입니까.”
“···?”
그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의 내용이 이상하다는 걸까.
나는 말을 바꿔 다시 말했다.
“당신 제 경호원이죠?”
“네.”
그가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땅에 떨어진 그의 피에서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연기로 증발하여 사라졌다.
“경호원의 할 일이 뭔지 아시죠?”
“네.”
“압니까? 그럼 그게 뭔지 말해 보시죠.”
“고용주의 안전을 지키는 거죠.”
“그리고요?”
“어··· 또 있습니까?”
한숨이 나온다.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농담인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자라면 그래도 몰라서 그랬으니 그랬다쳐도, 후자라면 참 악질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이 녹아내리고, 잘리는 코통을 느꼈기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 내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
그래서 되도록 그가 전자였으면 한다.
“경호원이 고용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해야죠.”
“그러니까, 그 잘을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잘 지켜야죠.”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 걸까.
잘 키기는 방법이 뭐냐고 묻고 있는데, 자꾸 잘 지키면 된다고 말하니 짜증이 나려 했다.
“좋아요. 잘 지키면 됩니다. 그런데 잘 지키기 위해서는 경호원이 어디 있어야 합니까.”
“어··· 고용주의 옆에 있어야죠.”
“그렇죠.”
아, 이제야 말이 통하겠구나.
그 한마디를 듣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런데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음···.”
“제 옆에 있지 않았죠.”
“그건···.”
“네. 당신은 들어오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 그게 어쩌라는 겁니까?”
“···.”
“당신은 제 경호원입니다. 저기 저 저승왕의 경호원이 아니죠. 그리고 그 본인이 말한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의 말에 따라오지 않는다? 이건 저를 지킬 의사가 없는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안전을 위해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겁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으셨겠지만, 저는 은행장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화들짝 놀라 손을 휘저었다.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며 변명을 하려는 그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점점 불쾌해졌다.
차라리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키기 있었다며 우기는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저 남자를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저를 지키고 있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거 제가 몰라봐서 미안하군요. 저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을 텐데.”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과 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예?”
“충돌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걸 왜 당신이 판단합니까? 저는 당신에게 그런 것까지 생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제게 고용된 이유는 온전히 저를 지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충돌이 일어나도 제가 책임질 일입니다. 적어도 당신은 제게 의견을 물었어야 할 겁니다. 제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왔어야 합니다. 그게 경호원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제가 보지를 못했는데. 경호에는 육체의 보호도 있지만, 고용주를 안심시킬 필요도 있습니다. 당신은 그걸 하지 않았죠. 하기는커녕 일말의 상의도 없이 떠났습니다. 그런 당신을 제가 어떻게 믿고 제 경호를 맡길 수가 있습니까?”
“그게···.”
“이럴 거였으면 뭐하러 제 경호원이 된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아까는 당신이 제 경호원이 맞는지 의심도 들더군요. 저승왕의 부하 직원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내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땠다. 이 정도면 그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다했다.
이 이후로는 그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가 경호원을 때려 친다면 아쉽기는 해도 나는 흔쾌히 보내줄 것이다.
경호원이 되면 내게 피해를 줄 수 없다?
경호원에게 명령을 할 수 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저 남자처럼 진지한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저러다 진짜 중요할 때에 쓰지 못하는 것보다 사전에 자르는 게 나았다.
“돌아가죠. 한예림씨 고생하세요.”
“아··· 네. 들어가세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황급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며 차원 은행을 나왔다.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
밖에는 저승사자 두 명이서 기다리고 있었다.
별 두 개.
내가 봤던 저승사자들 중 두 번째로 많은 별이었다.
“네. 할 일을 다 마쳤으니까요.”
“저희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저승왕께서 안전히 포탈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옥불을 걸어서 지나가야 했을 거다.
내게 큰 피해를 주지 않지만, 너무 뜨겁다.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오면서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힘든 길을 저승사자들이 편하게 데려다준다는데 마다하는 게 멍청한 거였다.
그들의 손만 잡아도 날아서 편안하게 갈 수 있다.
“네. 그럼 제 손을 잡으시죠.”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본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손을 붙잡았다.
옆에서 검둥이가 다른 저승사자의 손을 붙잡는 게 보였다.
후우웅-
바람이 일더니 어느 순간 발밑이 허전해졌다.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한번 경험해 보기는 했지만, 발밑이 허전한 이 느낌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전처럼 두 눈을 꾹 감고 있지 않을 수는 있었다.
실눈이기는 했지만, 슬며시 뜬 눈으로 밑을 내려다봤다.
아찔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저승의 모습은 여러 의미로 장관이었다.
뜨거워, 뜨겁다고!
꺄아아아아아악!
아파아파아파아파!
나를 꺼내줘! 여기서 꺼내달라고!
생자다! 생자의 몸이야!
저 밑에 망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반지의 힘과 저승사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나와는 달랐다.
닿는 것과 동시에 몸이 녹아내리는 열기에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에서 그들의 몸은 쉴새 없이 녹아내렸다.
차라리 그대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슬프게도 안타깝게도 그들의 몸은 재생되었다.
끝없는 고통.
녹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며 그들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적응도 되지 않는 그 고통 속에서 그들은 저승사자들이 꺼내주기 전까지 그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죽었더라면 저들처럼 고통을 받고 있었을까.
“저들은 죄의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저승사자가 말을 걸었다.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는데, 동정을 하지 말라니.
다소 오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동정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착잡하네.’
망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입맛이 썼다.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저승왕과 사업을 구상하면서 저승에서 고통받고 있는 망자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얼핏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듣는 게 괴로울 정도의 죄를 지었다.
협박, 강간, 폭력 등등···.
이런 게 기본적으로 바닥에 깔려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자신의 재미를 위해 수백 명을 납치해 서바이벌 게임을 벌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여 최후의 생존자가 나올 때까지 지속되는 최악의 게임.
더 최악인 건 그 서바이벌에는 따로 식량이나 옷가지들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인육을 먹어야 했고, 그렇게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는 서바이벌을 연 개최자에게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죽는다고 한다.
그런 일들을 벌인 이들이 수두룩한 게 저 망자들이었다.
그걸 듣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듣고 난 후 그들을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나도 저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만약 내가 죄를 짓고 죽었다면 저들처럼 되었을 확률이 컸으니까.
‘죽지 말자.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살아있는 생물은 자의든 타의로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런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죽지 않고 오래 사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예림의 육체를 찾으면서 불로장생의 약을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