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자신의 부하를 보낼 테니, 그 월급을 자신에게 달라.
저승왕이 직원을 주는 대가로 내게 요구하는 조건이었다.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을 마음대로 부려먹고 그 대가마저 홀라당 삼키겠다니.
“음··· 저승사자들보다는 망자들 위주로는 안 되겠습니까?”
“망자들로?”
“네.”
그녀가 눈살을 찌푸린다.
설마하니 망자를 달라 요구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그럴 만한 게 저승에 오는 망자들은 하나같이 악질적인 놈들이었다.
여기있는 놈들은 죄다 자신의 쾌락과 이익만으로 살아왔고, 개중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이들은 대부분 빠르게 저승을 나갔다.
그러니 망자를 요구하는 게 얼핏 미친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망자들은 대다수가 엄청난 죄를 쌓은 놈들이다.
피해를 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절대 이익을 보기란 힘들다.
오죽했으면 영혼을 원하는 악마들조차 저승과는 거래를 안 할까.
뭐, 악마들이 원한다고 해도 시스템으로 인해 제지당한다.
괜히 마석이 저승의 유일한 수입처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시스템에게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수명 조작으로 코인 좀 만졌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어째서 망자들을 원하는 거지? 그놈들은 절대 네게 도움이 될 수가 없다. 피해를 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야 알고 있다.
저승에 있는 놈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을 거란 것 정도는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내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은행원과 경비원은 절대 은행장을 공격할 수 없고 명령을 어길 수도 없습니다.]
내 부하직원이 되는 순간 내게 피해를 줄 수 없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 그들이 일을 똑바로 하겠냐는 거였다.
그 부면에 있어서 내 개인적인 힘보다는 저승왕의 도움이 필요했다.
망자의 관리에 있어서 저승왕의 힘이 가장 탁월할 테니까.
“도대체 어째서 망자를 원하는 거지? 설마 내 부하들이 망자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설마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망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진심이다.
나는 저승사자들을 무시할 생각이 없었다.
망자들을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내 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망자를 다스리고, 망자를 관리하는 그들이 배운다고 해서 당장에 숫자놀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배우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거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녀가 일을 빡세게 하는 걸 보니 굳이 부족한 인력을 빼앗아 가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본 목적은 따로 있었다.
‘망자 중에 지구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운이 좋으면 은행원이었던 이들이 있을 수도 있지.’
세계에 몬스터들이 생겨나면서 많이 이들이 죽었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서 올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부릴 수만 있다면 일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망자 중에 저와 같은 세계에 살던 이들이 있는지 찾아 봐주시겠습니까?”
“아··· 그렇군. 하긴, 같은 세계에 인간이라면 같은 일을 하던 망자를 찾을 수 있겠지.”
그녀는 단번에 내 의도를 이해했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중얼거렸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고 한다.
“내가 망자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음···.”
“그리고 망자들은 절대 저승을 나갈 수 없어. 특정 매개체가 있다면 모를까, 그것은 비싸기도 하고 불법인 게 많아 망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있어봐야 네크로맨서 같은 놈들이 전부이겠군.”
“그건 괜찮습니다.”
망자들이 저승을 벗어나건 못 벗어나건 그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망자들을 부리려는 이유는 저승 9계 지점에서 일을 시키기 위함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른 직원을 뽑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일을 시켜도 하던 사람에게 시키면 더 편하잖아.
아, 죽었으니 망자인가.
“애초에 그들을 데리고 나갈 생각도 없었거든요. 아, 그리고 그 죗값을 치르는 거요. 제가 따로 생각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
나는 그녀에게 내가 생각했던 방법을 말하기 시작했고, 내 말을 듣는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
웅성웅성.
나와 저승왕만 있었던 휑한 은행 지점이 어느새 망자들로 가득 차 득실득실했다.
망자들의 외형은 정말 개성이 넘쳤다.
죽었을 그 당시의 모습이 유지되는 건지, 짐승에게 머리를 반쯤 뜯겨진 자국이 있는 망자하며, 내장을 계속해서 질질 흘리는 망자까지.
끔찍한 외형인데, 그렇기에 이곳이 저승이라는 게 확 와닿았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들이 전부 저와 같은 지구에 있던 이들이라는 거죠?”
“그래.”
옆에서 망자들을 지켜보던 저승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왕의 뒤에 두 명의 선비, 그러니까 저승사자들이 있다.
그리고 망자들 앞에서 저승사자들 넷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저승왕에게 했던 제안은 간단했다.
망자들의 벌을 은행의 일을 하는 것으로 대체하자고.
그리고 그것을 저승사자들이 관리하게 하자고.
그렇게 제안하기 무섭게 내 시야에 새로운 조건을 충족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장 관리원을 임명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진짜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것들만 나올 수 있는지, 시스템이 나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기가 무섭게 저승왕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내가 관리원 직을 줄 테니,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그 말에 저승왕은 생각보다 흔쾌히 수락했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왕인데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게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자율을 조금만 더 줄여주실 수 있나?”
0.5%도 많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제는 내 밑에서 일을 하게 될 건데 그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오억을 빌리면 하루 0.1%도 많다.
하루에 오십만 코인을 갚아야 하는데, 하루에 오십만 코인씩 한 달이면 천 오백만 코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코인을 갚지 못해도, 이자가 중첩되지는 않다는 것이다.
원금의 이자를 유지하기에, 추가로 이자가 늘어날 일은 없었다.
내게는 큰 손해가 아니기에,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0.1%로 줄여드리겠습니다. 대신 확실하게 관리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살인적인 이자인 건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이자가 줄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바로 그녀를 관리팀장으로 임명했다.
관리원으로는 지금 망자들을 관리하는 저승사자 네명을 임명했다.
그들의 월급은 경비원과 같다.
거기다 그들이 관리원이 되면 굳이 따로 경비원을 임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진상들을 정리할 테니 일석이조였다.
“자, 그럼 면접을 시작하죠.”
내 말에 현장 관리원이 된 저승사자들이 망자들을 줄을 세워 한 명씩 내게 보냈다.
첫 번째 순서는 찢어진 양복을 입은 팔 한 짝이 뜯겨진 망자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기, 김은성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부동산중개업자였습니다!”
“네. 탈락입니다.”
“하, 한번만 기회를···!”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관리원에게 내보내게 시켰다.
지금 은행 안에도, 그리고 밖에 있는 망자들까지 합치면 수천 명이 있었다.
그들 중에 은행 일을 해본 망자가 아예 없진 않을 터.
은행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망자들을 일일이 상대할 시간은 없다.
그렇게 망자들을 얼마나 떠나보냈을까.
구백 번째 망자를 상대했을 때 드디어 내가 원하던 망자를 찾아낼 수가 있었다.
“은행원이었다는 거죠?”
“네. 죽기 전만 해도 은행원이었습니다.”
깔끔한 인상의 여자.
정장 차림의 그녀는 끔찍한 외형의 망자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깔끔했다.
몸 어딘가 손상이 된 곳도 없었고, 그렇다고 피를 질질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온몸이 물에 축 젖어있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물에 막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축 늘어진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신기한 건 물방울이 떨어진 그 자리에 물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그것만 보면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쉽게 유추해볼 수가 있었다.
“막 퇴근을 할 때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물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자신이 죽은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은행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다고 했다.
심지어 대리 진급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불쌍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저승에 있는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기도 했다.
“여기에 들어온 지 이제 이틀 된 망자군. 제법 착하게 살아서 현재 3계를 통과하고 있었네.”
저승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던 그녀가 저승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순조롭게 재판을 끝내오다가 이곳에 끌려온 것이고.
그냥 보내주어도 다시 살아나겠지만, 어떻게 찾은 인재인데 그녀를 보내주기는 싫었다.
“이름이 한예림이라고 하셨나요?”
“네.”
“제 밑에서 일하시지 않겠습니까?”
“음···.”
그녀가 고민한다.
다른 망자였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했을 것이다.
저승에서 고문을 받느니, 이곳에서 편하게 앉아 일을 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른 망자들과는 달랐다.
현재 지은 죄가 별로 없기에 환생이 확정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굳이 내 밑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기에 하겠다고 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예림 씨에게 환생의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환생하고 싶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환생을 한다고 해서, 그 생이 좋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 나는 최악의 상황을 입에 담았다.
환생을 했는데 집안이 개판이거나,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저와 일을 한다면 안전에 위협을 느낄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어 있다는 건 변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당신과 일을 한다고 해도 저는 망자일 텐데, 제가 새로 태어난 곳이 위험하다고 해도, 종이 달라진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낫겠죠.”
“그것도 맞죠.”
은행원이 된다고 해서 죽은 그녀가 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면에 있어서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 면에 있어서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
“시스템에는 죽은 자를 되살리는 부활의 아이템이 있다고 합니다. 비싸기는 하겠지만, 저와 같이 일을 하시겠다고 하시면 제가 되살려드리겠습니다.”
없는 게 없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망자에게 육체를 주는 힘을 살 수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녀에게 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 말에 그녀가 순간 혹했는지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