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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6화 (46/113)
  • 제46화

    저승에는 저승에서만 생기는 마석이 있다고 한다.

    저승 망자들의 한이 뭉쳐 만들어진 그 마석은 의외로 소요가 많은 편이었다.

    매니악한 구매자들이 제법 많은 것이다.

    저승의 마석은 망자들의 한이 담겨 있어 정신이 약한 이들은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마석에서 들려오는 망자의 목소리에 홀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저승의 마석을 사는 이들이 있었다.

    특히 흑마법사들.

    그들에게 있어 저승의 마석은 최고의 연구재료나 다름없었다.

    영혼은 아무리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와 같았다.

    저승에는 워낙 망자들이 많고 실시간을 계속 늘어났기에 마석의 생산 속도가 빨랐다.

    특히 저승의 심부나 다름없는 7계부터는 망자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석에 서린 한 또한 엄청나게 짙어진다.

    그만큼 가격도 올라간다.

    별달리 팔 게 없는 저승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게 마석 판매였다.

    저승에서는 절대 영혼을 가지고 거래를 하지 않고, 저승에 있는 거라고는 불과 삼도천의 물 뿐이었다.

    팔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끔가다 삼도천의 물이나 지옥불을 사가는 미친 연구자들이 있기는 한데, 그들은 그것을 사가고 나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아니 돌아오기는 했다.

    망자로.

    그 일은 한 두 번도 아니고, 수천 번 넘게 일어나니 시스템이 나서서 마석을 제외한 모든 것들의 판매를 제제했다.

    대신 마석 판매를 전담해주겠다고 한다.

    기본가보다 5% 얹은 가격으로 마석을 전부 매입하는 것이다.

    저승왕도 그건 나쁜 일이 아니기에 바로 수락했고, 그 이후에 후회했다고 한다.

    그 계약 이후로 마석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선물은 가능하지만, 절대 코인을 받고 팔 수가 없다고 한다.

    마석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오직 시스템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시스템은 일정량의 마석들만 사가기에, 그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코인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시스템을 무시하자니 감당을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가끔가다 엘릭서나, 종이와 같은 물품들과 마석을 바꾸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현재 시스템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들이 소모하는 코인이 100이라면, 벌 수 있는 코인은 80에서 70정도라고 보면 된다.

    적자도 이런 적자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애초에 저승을 운영하는데 코인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코인이 필요할 때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 그들이 사용하는 자원들, 종이나 먹 같은 경우에는 저승에서 자체 생산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오히려 조금씩 코인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롭나 싶었는데, 문제가 생겨났다.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저승에서 반란을 밥 먹듯이 일어나는 것이기에 큰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반란은 달랐다.

    무려 저승 4계와 5계의 왕들이 힘을 합쳐 들고 일어난 것이다.

    저승 전체의 왕이자 저승의 왕들에게 대왕이라 불리는 그녀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각자 엄청난 힘을 가진 그 둘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큰 문제였는데,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마석을 대량으로 뒤로 빼돌린 것이다.

    그 마석들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채운 그들을 어찌어찌 진압하기는 했지만, 그 후폭풍이 엄청났다.

    당장에 시스템에게 보내야 할 마석들이 없는 것이다.

    계약상 그렇게 되면 저승에서 손실피해를 대야 했다.

    그동안 모아 놓았던 코인을 싹싹 모았지만, 충분치 않았다.

    결국 그녀는 시스템에 빚을 져야 했다.

    그렇게 진 빚이 무려 350억 코인이 넘는다고 하는데.

    한달에 한번씩 시스템에 마석을 넘길 때, 그녀가 받는 금액에서 대략 1억 코인 정도가 깎인다고 한다.

    1년이 12개월이니, 그녀는 적어도 30년간 한달마다 빠지지 않고 1억씩 빼앗기게 생겼다.

    문제는 저승에서 판매하는 코인의 금액이 겨우 1억 오천이다.

    현재 반란을 수습하는 데에만 억 소리가 나는 코인이 필요한 데, 벌어들이는 금액은 오천에 불과하니.

    당장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그리고 그 불을 끌 수 없게 몸이 묶이고, 물조차 없는 상황.

    거기다 4계와 5계의 왕도 새로 뽑아야 했기에 코인이 엄청나게 필요했다.

    ‘와··· 나 같으면 다 포기했겠네.’

    빚이 350억에 당장 필요한 금액도 그에 준한다.

    그녀가 거주하는 9계를 제외한 총 8구역의 왕들은 저승왕에게 봉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금액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이명에 왕이 들어간 것처럼 그들이 받는 봉급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새로운 왕들도 뽑아야 하니.

    그녀가 모든 걸 포기하지 않은 게 대단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갚아줄 마음은 없는데.’

    처음에는 간단하게 말하려던 그녀가 말하면서 감정이 격해졌는지 나중에 한탄을 했다.

    자신의 말을 이렇게 잘 들어주는 놈은 처음이라며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는 식으로 내게 하소연했다.

    그래 불쌍하다.

    많이 힘든 것도 알겠고,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겠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

    내가 대신 갚아달라고 하는 걸까.

    그녀가 불쌍하지만, 그건 불쌍할 뿐이지 내가 대신 갚아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350억 코인이 땅 파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이득도 없이 내가 그런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잘 알겠습니다. 많이 힘드셨겠군요.”

    “···위로해줘서 고맙군.”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차라리 내가 차린 차원 은행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하면 어떨까하는.

    그녀의 위치를 생각하면 저승 9계의 지점장 자리를 주면 딱 알맞을 것 같은데.

    내가 이곳에 자주 올 것도 아니고, 지점에 지점장은 필수다.

    그런 생각을 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제안을 그녀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무려 한 차원의 왕이었다.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척이나 많을 텐데 그걸 포기하고 내 밑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왕이란 자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하기에 누군가에 밑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저승왕께서 코인이 필요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았습니다.”

    “···.”

    “현재 저승왕께서 이번 달에 빌리실 수 있는 금액은 오억 코인입니다. 빌리시겠습니까?”

    “···빌리지.”

    “아, 그리고 저희 차원 은행은 코인을 그냥 빌려드리지 않습니다.”

    “···?”

    “하루 1%의 이자가 붙는다는 걸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

    내 말에 화들짝 놀란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지, 지금 내게 이자를 받겠다는 건가?”

    “네. 이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희 차원 은행 지침이거든요. 그래서 바꿔드릴 수도 없습니다. 설마 그냥 빌려드릴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시겠죠?”

    “하, 하지만 그건 없던 얘기가 아닌가!”

    “물어보지를 않으셨으니까요. 그래도 빌리시기 전에 이렇게 먼저 말해드렸잖습니까. 저는 그래도 양심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아···?”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나는 진심이었다.

    이자가 있다는 걸 당장에 알려주지 않고 대출을 해줘도 상관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은행이라면 대출 전에 세부 조항들을 전부 알려줬겠지만, 차원 은행이 제대로 된 은행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

    내가 양심이 있으니까 이렇게 알려준 거지.

    코인에 환장했다면 알려주지도 않았다.

    알려줬다가 빌리지 않으면 손핸데 왜 알려주겠는가.

    나중에야 신용 문제로 대출 전에 낱낱이 알려주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건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그, 그건··· 1%의 이자라니. 하다못해 한 달도 아니고 하루에 1%는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죄송합니다만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미 그렇게 정해진 걸 제가 어떻게 합니까.”

    이것도 반은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시스템이 이미 대출을 조건을 정해놨다.

    [은행장의 개인 권한으로 이자의 %를 최대 10에서 0.1까지 늘리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대출은 예금이나 적금과는 달랐다.

    그 두 개는 당장에 건드릴 수 없지만, 대출은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자를 조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내가 뭐하러 자진해서 수익을 줄일까.

    저승왕이 안 됐기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면 모를까 그녀와 나는 오늘 본 게 전부였다.

    친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 빌리실 겁니까?”

    “으음···.”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자를 넘어서 그녀에게는 당장에 코인이 절실히 필요했다.

    잘못하면 파산할 수도 있는데 빌려야지 별수가 있겠는가.

    그걸 알고 있기에 이자에 대해 말해준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많이 고민되시는 거 압니다. 그러니 한 가지 제안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들으시겠습니까? 이걸 들어주신다면 제 은행장의 권한으로 이자율을 0.5%로 줄여드리겠습니다.”

    “아까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건 은행원 입장에서 그런 거죠. 저는 은행원이 아닙니다. 차원 은행의 주인인 은행장입니다. 그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밝아진다.

    최악이나 다름없는 이자를 줄여준다고 하니 좋을 수밖에.

    그럼에도 하루에 이자를 내야 하는 건 최악이지만, 1%의 늪에 걸린 그녀에게 그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오직 %를 줄여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아, 잘하면 그 마석 건도 어떻게 해결해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시스템과도 좀 긴밀한 관계인지라.”

    이것도 사실이다.

    시스템이 내 편의를 최대한 봐주고 있다.

    환전 업무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걸 저승에서 먼저 시행한다고 보면 된다.

    관리자에게는 적당히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보이면 충분히 들어주리라.

    내 말에 혹한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얘기해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 안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주겠다.”

    “아, 그렇게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하니까요.”

    정말로 간단하다.

    그저 저승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거였으니까.

    “보다시피 제가 이곳에 차원 은행을 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왠지 좀 휑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음··· 내가 장식품이라도 주면 되나?”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공짜로 준다면 그것도 좋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게 중요했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 너무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

    “아, 사람이라고 하면 이상하겠군요. 여기에 직원이 없습니다. 저승왕께서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터에는 직원이 필요하다는 걸.”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차원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이 필요하죠. 그런데 슬프게도 저는 이곳에 아는 분이 없습니다. 저승왕을 제외하면요.”

    “···.”

    “오기 전에도 말해드린 것 같은데, 제가 직원을 뽑을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이왕이면 실력 있는 직원들로요. 그것만 도와주신다면 이자를 낮춰드리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제안도 아니고,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내가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입을 다문 채 고민하고 있었다.

    뭔가를 고심하는 듯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제 팔뚝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고민이 끝내며 일을 연 그녀의 말에 나는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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