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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5화 (45/113)
  • 제45화

    순간 눈앞이 노래졌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0’을 잘못 세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시발.”

    아니다.

    나는 제대로 봤다.

    너무 큰 돈이었기에, 각인이 되듯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욕이 나온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저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릴 정도로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빠졌다.

    겨우겨우 몸에 힘을 줘 버티며, 메시지를 바라봤다.

    [50,000,000,0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바라보고, 눈을 비벼도 금액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오백억.

    내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한순간에 오백억이라는 거금이 사라졌다.

    말로 설명할 수는 벅찬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이라면 저 불길에 맨몸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쳤네. 내가 미쳤지.’

    남들이 보면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었다.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코인이 1조였으니까.

    그걸 떠올리면 오백억은 큰 금액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목을 조를 생각이 충분히 있었다.

    오백억이 남의집 자식 이름도 아니고.

    무려 오백억이다.

    오백억으로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

    하다못해 은행원이나 경비원 등을 수백 아니, 수천 명도 고용할 수 있다.

    지금 내 밑에서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녹스의 월급이 이만 오천코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무려 녹스를 이백만명이나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인 것이다.

    그것 뿐이겠는가.

    은행 자체를 엄청나게 발전시킬 수 있고, 하다못해 천만 코인이나 해서 차마 사지 못했던 그 차를 대량 구입할 수가 있다.

    현대라고 해도 이 정도 금액은 감히 만질 수가 없는 금액이었다.

    거대한 은행에서도 그 정도의 금액이 한번에 빠져나가면 비상이 걸린다.

    “아아아아악!”

    가슴을 붙잡은 채 목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갑작스럽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에 저승왕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미친놈을 바라보듯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에도 나는 산경 쓰지 않았다.

    “미치겠네.”

    그래도 소리를 지르고 나니 어질어질하던 머리가 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인데 이제와서 후회하고 탓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차라리 이번 일은 바탕으로 더 큰 코인을 벌어들이면 된다.

    그래, 나가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코인을 벌어야 한다.

    벌고 말 것이다.

    [차원 은행의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3일이나 걸렸던 본점과는 다르게, 지금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분? 5분? 그 정도 시간이 지나니 아무것도 없던 텅 비어있던 공터에 반듯한 건물이 생겨났다.

    만남의 광장에 있는 차원 은행의 외관을 닮았으면서도 그보다 조금은 작았다.

    “후우···.”

    그래도 이렇게 차원 은행을 하나 더 얻은 걸로 만족해야겠지.

    어째서 시스템이 차원 은행을 무료로 건설해주면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되었다.

    이렇게 많은 코인이 드는데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벅벅 긁다가 마음을 정돈하며 뒤를 돌아봤다.

    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저승왕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그러지.”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묘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차원 은행의 문을 열었다.

    [은행장의 방문을 확인하였습니다.]

    [차원 은행이 추가로 건설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차원 은행이 본사로 지정됩니다.]

    [이후 추가로 지어지는 차원 은행들은 차원 은행 지점으로 영업이 될 것입니다.]

    [차원 은행에 지점 ‘저승 9계’가 등록되었습니다.]

    [현재 저승 9계 지점에 직원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영업을 위해 직원과 경비원을 고용하시기 바랍니다.]

    차원 은행에 들어가기 무섭게 메시지들이 시야를 가렸다.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차원 은행 밑에 지점이란 게 새로 생겨났다.

    -저승 9계

    그것을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코인이 대거 소모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건물주의 기분인 걸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게 상품 가치가 매우 높은 건물 두 채를 갖게 되니 감추려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오. 차원 은행이란 건 이렇게 생겼군.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저승왕이 자신의 턱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원 은행 지점의 내부는 본사와 그리 다를 게 없었다.

    처음 차원 은행이 만들어졌던 그때를 닮아있었다.

    창구 하나와 대기석 8개.

    그게 전부였다.

    추가로 더 만들려면 본사와 마찬가지로 코인을 지불해야 했다.

    물론 그전에 직원을 먼저 고용해야겠지.

    “자,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지?”

    내가 내어준 창구 앞에 앉은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창구 뒤로 가 자리를 잡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듯 그녀를 대했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승왕님께서 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차원 은행이 지어지는 걸 봤기 때문인지, 그녀는 의심 없이 나를 대했다.

    나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우선 계좌를 개설해주셔야 합니다.”

    “계좌?”

    “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차원 은행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은 계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만들어야지.”

    그게 뭐 어렵냐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 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계좌의 등급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게 있었다.

    나를 부를 정도로 코인이 급한 그녀에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코인이 있을까였다.

    마석 오천개를 준다고 한 거나, 엘릭서를 아무렇지 않게 주는 걸 보면 그 걱정이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물건은 있는데 당장에 사용할 코인이 없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에이, 그래도 계좌 개설할 코인은 있겠지.’

    계좌 하나에 천만 코인이나 억이 드는 것도 아니고, 겨우 몇만 코인이 전부였다.

    생쥐 성좌처럼 비스켓 하나에 만족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겠지.

    이 정도 영지를 운영할 정도면 그 정도 코인을 있을 테니까.

    “으음···.”

    그런데 당장 결정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곤란한 듯 그녀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석탄 등··· 급은 안 되겠지. 그래 내 체면이 있는데.”

    석탄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내가 인상을 쓰니,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바꿨다.

    설마 진짜로 석탄 등급의 계좌를 하려고 했던 걸까.

    그렇다면 실망인데.

    이제는 계좌 개설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금액에 크게 감흥을 얻지는 않지만, 그래도 급이라는 있는 거였다.

    적어도 카셀린과 맞먹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가 석탄 등급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현재 할 수 있는 계좌 중 가장 높은 등급을 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계좌의 등급에 따라 빌릴 수 있는 코인의 금액도 달라지니, 그녀에 입장에서는 최대한 높은 등급을 개설하는 게 낫다.

    “저승왕님.”

    “···?”

    “이건 그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승왕께서 개설할 등급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같으니까요. 다이아. 저승왕께서는 다이아 등급의 계좌를 개설하셔야 합니다.”

    강압적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녀를 배려해주는 것이다

    그녀가 석탄 등급을 개설해봤자 빌릴 수 있는 코인은 최대가 100만코인이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는 그녀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억 소리는 나게 빌려야 겨우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겠지.

    그 정도 코인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닌 이상 나를 부를 이유도 없다.

    “어째서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승왕께서 현재 어중간한 코인 가지고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실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녀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척하고 있지만, 그녀는 현재 매우 급한 상태였다.

    산처럼 쌓인 업무를 뒤로한 채 나를 따라온 것만 해도 그렇다.

    그 업무들을 뒤로할 정도로 코인이 급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금액은 백만, 천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테고.

    “석탄이나 구리, 그리고 금의 계좌를 개설해도 만족할 만큼 코인을 빌리시기는 힘들 겁니다. 적어도 다이아. 다이아 그 이상은 되어야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는 되겠죠.”

    “등급에 따라 빌릴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나 보군.”

    “네. 맞습니다. 오만 코인을 지불하면 최대 오억 코인까지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음···.”

    “이게 부족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희 은행을 다섯 번, 딱 다섯 번만 더 이용하시면 제가 무료로 등급을 상승시켜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저 차원 은행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미스릴 등급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놀라는 거겠지.

    원래라면 이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고객들이 그녀를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녀와 나의 거래를 시스템이 아니라면 모를뿐더러, 대출로 엄청난 이익을 안겨 줄 고객인데 그 정도 혜택을 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십만 코인으로 그 배는 코인을 벌어들일 수가 있으니까.

    그녀의 등급이 미스릴이 되면 천 억이나 빌릴 수 있다.

    그러면 내게 하루에 떨어지는 코인은···?

    말하지 않아도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가 비밀을 지켜준다면 나는 얼마든지 해줄 의향이 있다.

    “네. 저승왕께서 비밀만 지켜주신다면 얼마든지요.”

    “나야 나쁘진 않지. 아니 오히려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미스릴 등급이 되기 위해서는 1억 코인이 넘는 금액을 거래하거나, 적금을 일정 기간 유지해야 한다.

    그녀에게 그럴 코인과 시간이 없다.

    “저승왕이신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겠다.”

    망설일 것도 없다며 그녀가 바로 다이아 계좌를 개설했다.

    이제 대출을 할 차례만 남았다.

    나는 바로 대출을 하기 전에 다른 것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뭐든지 대답해주겠다며, 그녀가 뭐든 물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궁금했던 걸 말했다.

    “제게 마석을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랬지.”

    “그 마석을 파시면 굳이 제게 코인을 빌릴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어째서 마석을 팔지 않으시는 거죠?”

    “음? 당연한 거 아닌가. 마석을 판다고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얼마 없기 때문이지.”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비록 마석을 팔 때 바가지를 씌운다고 해도, 마석 오천 개면 재정에 도움이 된다.

    심지어 그 정도의 마석을 아무렇지 않게 내게 준다는 건, 현재 그보다 많은 마석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어째서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까.

    내가 그녀를 향해 의문점을 말하니, 그녀는 어쩐지 화가 난 얼굴로 대답했다.

    “와··· 미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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