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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3화 (43/113)

제43화

저승 혹은 사후세계.

현대 사회에서도 저승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저승이 있는가, 없는가부터.

저승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곳은 사람들에게 있어 신대륙이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에 죽지도 않은, 망자가 아닌 생자인 내가 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내 기분은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생자가 저승에 갈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죽지 않은 이상 저승에 갈 거라고 생각못했는데.

묘한 기분이 되어 포탈을 나왔다.

발을 뻗어 저승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치이이익-

음···?

어디서 고기 익는 냄새가 났다.

그게 내 발바닥에 나는 냄새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몸서리치게 뜨거운 열기와 날카로운 식칼이 발바닥을 난자하는 듯한 통증이 동시에 느껴진다.

너무도 끔찍한 고통이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때, 뜨거움과 대비되는 냉기가 발바닥을 감쌌다.

순식간에 타오른 발바닥에 새살이 돋아나기 무섭게, 열기를 막는 보라색 막이 몸 주위로 생겨났다.

“허억··· 허억···!”

아프다.

아픈데 비명이 나오지 않았고,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내가 느꼈던 고통이 꿈처럼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몸 전체가 탈 뻔했군요.”

반지와 검둥이가 동시에 내게 말을 걸었다.

그들이 나를 보호한 것이다.

살이 타버린 발바닥을 검둥이가 회복시켰고, 공기 중에 녹아있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반지의 기운이 나를 보호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저승에 방문한 생자가 아닌, 죽어 마땅히 와야 할 망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긴 도대체···.”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둘러본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온통 불길 천지였다.

땅부터 하늘까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불이 가득했다.

“영혼을 불태우는 지옥불이군요.”

그것도 일반 불이 아닌 지옥불이란다.

자칫 잘못했으면 나라는 존재가 저 지옥불에 소멸될 뻔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저승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언급조차 없었던 저승왕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적어도 저승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었다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내가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감회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도 오랜만이네요.”

“저승에 온 적이 있습니까?”

“네. 아무래도 제 일이 일인지라 자주 와야 했었죠. 뭐,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요.”

저 미소가 왜 이리 불길하게 느껴지는 걸까.

문득 저승에 가면 자신을 지켜달라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도 그 일이라는 것 때문에 한 말이 아닐까.

“그런데 불이 좀 약해진 것 같네요.”

“···?”

이게 약해진 거라고?

사람을 한순간에 불태울 뻔할 정도로 강렬한 불이?

내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니, 그가 불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전에는 제가 제 몸을 보호하려 하지 않으면 피부가 녹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바비큐를 하듯 제 손을 불에 달구던 그가 불 속에서 손을 빼 내게 보여줬다.

그의 손을 불 속에 장시간 있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멀쩡했다.

하다못해 그가 입고 있는 옷조차 불에 그을린 흔적조차 없었다.

나는 반지의 힘으로 보호를 받았음에도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데.

누구는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롭기만 하다.

“지금은 맨손인데도 타기는커녕 그을리지도 않습니다. 불의 온도가 낮아졌다는 거죠.”

그가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반란이 크게 일어났었나 보네요. 지옥불이 이 정도로 약해진 건 보통 일로는 불가능하거든요.”

저승 입장에서는 안 좋은 일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지옥불이 지금보다 더 뜨거웠다면 나는 발을 딛는 그 순간 녹아내렸을 테니까.

이걸 시기가 좋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를 따라오시죠. 여기서부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검둥이가 집사처럼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며 허리를 굽혔다.

검둥이는 속전속결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길을 안내했다.

{살아있어! 살아있는 육체라고!}

{저건 내꺼야!}

중간중간에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등장해 덤벼들었지만, 검둥이의 손짓 한번으로 머리가 터져나갔다.

‘강하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이상인데.’

어쩌면 녹스보다 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무척 간단하게 괴물들을 처리했다.

녹스의 공격은 무척이나 화려했다면, 검둥이의 공격은 단순했다.

그저 손을 가볍게 휘두르는 게 전부였다.

그 가벼운 동작에 괴물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머리를 잃었다.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녹스는 적어도 아, 공격을 하는구나 하고, 인지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검둥이는 그런 게 없었다.

공격을 하는지도 모른 채 당해야 했다.

암살에 특화되어 있는 그의 모습에, 만약 내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많이 힘드신 것 같네요.”

“네. 힘듭니다.”

검둥이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위로의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을 믿고 꿋꿋이 발을 움직였다.

걷고 또 걸었다.

한 시간 이상을 주야장천 걷기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승왕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걸까.

최소한 건물의 윤곽이라도 보여야 정상일 텐데, 보이기는커녕 불과 괴물, 불과 괴물 둘의 반복일 뿐이었다.

차를 타면 좋을 련만, 이곳에서 차를 꺼냈다가는 바로 녹아내릴 게 분명했다.

어떻게 얻은 찬데, 그걸 함부로 망가뜨릴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걸어서 가보려 했는데.

“정말 거의 도착한 게 맞습니까?”

“네. 거의 다 왔습니다.”

“지금 그 말만 한 시간 째 하신 건 알고 있습니까?”

과장이 아니고, 정말로 한 시간 째 그는 거의 다 도착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쯤되면 그가 나를 속이고 있거나, 아니면 그와 내가 생각하는 거리가 다르다거나.

둘 중에 하나였고, 나는 되도록 후자이기를 바랬다.

나는 그를 때릴 용기가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진짜니 믿으셔도 됩니다.”

“그 말은, 전에 했던 말들은 거짓이라는 거네요.”

“···.”

그가 딴청을 피운다.

휘파람을 불면서, 그래도 운동이 되어 좋지 않냐고 말한다.

적어도 얼마나 먼지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그 모습에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처음에 보였던 진중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가 앞에 있었다.

사람? 아니지, 아무리 성좌라도 그렇지 성격이 이렇게까지 한순간에 바뀔 수가 있는 걸까.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하다는 거죠?”

“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를 이길 방법이 없고, 이길 수 있다고 해서 그를 공격할 생각도 없었다.

이미 나의 편이 되었는데 내가 왜 그런 소모적인 행동을 하겠는가.

하는 행동이 약이 오르기는 해도, 내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죠.”

그가 나를 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까, 그의 말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 보인다.’

다행히 거의 도착했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5분 정도를 더 걸어가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성의 윤곽이 보였다.

현실에 마왕의 성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저승의 성은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창처럼 높이 솟아 있는 탑들과, 맥박이 뛰듯이 건물 전체가 꿀렁이고 있었다.

캬아아아악-

그 주위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괴조들이 날아다니고, 밑으로는 오로지 입만 있는 괴물들이 가득했다.

더 신기한 건 성을 중심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지옥불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성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히려 그곳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강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강은 강이었다.

“아, 저기 마중 나왔네요.”

그때 검둥이가 성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도포를 펄럭이며 세 명의 선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승왕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 손을 붙잡으시지요.”

빠른 속도로 다가온 선비들이 나와 검둥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아도 되는 걸까.

비록 진압되었기는 하지만, 반란이 있었다는 그 말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검둥이를 돌아보니 그는 이미 자기에게 온 선비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괜찮겠지. 설마 손님을 공격하겠어?

그의 손을 붙잡으니, 선비의 무표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맺힌다.

“어. 선배님. 여기 한 분이 안 계시는데요?”

“뭐?”

그때 선비 하나가 당황하여 내 손을 붙잡은 선비에게 말을 건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나와 검둥이 외에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오류가 있었나 보군. 돌아가면 항의를 해야겠어. 너는 먼저 돌아가 저승왕께 손님을 모시고 가겠다고 전해라.”

“네!”

그의 말에 선비가 허공에 떠올라 시야에서 사라진다.

명령을 한 선비가 나를 돌아보며 소란을 떨어 죄송하다고 하더니,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차가워.’

얼음을 만지는 것처럼 무척이나 차가운 손이었다.

주변에 뜨거운 열기가 그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생각도 잠시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는 감각에 당황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하늘을 날게 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긴장하지 마시고, 편안히 제게 몸을 맡기시면 됩니다.”

아무런 안정 장비 없이 하늘을 나는 이 기분은 뭐라 해야 할지, 안 좋은 의미에서 벅찬 기분을 느끼게 했다.

무서운데, 분명 무서운데 내가 날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쾌락이 뒤따랐다.

보라색 연기가 눈을 가리고, 발판을 만든다.

발이 발판을 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안정되었다.

그렇게 5분을 더 날아서야 저승왕이 기거하는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희 9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땅으로 나를 내려주며 세 명의 선비와 그 뒤에 여럿의 선비들이 마중을 나와 머리를 숙인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저승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 중 별 세 개를 머리에 단 선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른 선비들이 별 두 개에서 한 개, 그리고 다른 도형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그가 이중에서 계급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니, 별 세 개의 선비가 내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저승왕께서는 은행장님만 초대하셨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이는 저기, 마련되어 있는 곳에서 쉬시길 바랍니다.”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검둥이를 바라보는 별 세 개의 얼굴은 무척이나 딱딱했다.

“아, 그는···.”

“네. 알겠습니다. 저는 가까운데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한 번의 반발도 없이 흔쾌히 수락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경호원이라는 작자가 나를 따라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니.

내가 그곳에서 위협을 받으면 어떡하려고.

“하아···.”

한숨이 나온다.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말을 들어먹을 것도 아니고,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리고 저승왕이 생각이 있다면 나를 건드리지는 않겠지.

“가시죠.”

검둥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선비들을 둘러보는 검둥이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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