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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2화 (42/113)

제42화

차원 은행을 나가려는 나를 백예린과 최동수가 달라붙었다.

자기를 두고 어딜 가냐면서 가지 말라고, 이번에는 또 어딜 가는 거냐고 나를 놓지 않으려 했다.

그들을 때어놓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 할 정도였다.

어떻게 겨우겨우 그들을 달래놓고 차원 은행을 나왔다.

‘잠깐, 그런데 그는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잖아.’

차원 은행을 나오기 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차원에서 사는 사람인데, 입구를 나가면 서로 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내 걱정은 우려에 불과했다는 듯이, 검둥이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따라 만남의 광장에 나왔다.

[‘은행장의 경호원’은 특별한 일이 없을 시 언제나 은행장과 함께합니다.]

그가 어느 차원에서 살던 존재인지는 큰 상관없이, 오직 내 경호원이란 이유만으로 가능해진 일이었다.

“흐읍··· 하···.”

만남의 광장으로 나온 검둥이가 달콤한 향을 맡든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야릇하게 숨을 뱉었다.

“이곳이 은행장님의 세계인가 보군요.”

그는 흥미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나는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를 뒤로한 채 주변을 스윽 훑었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마석 상점 주인인 라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

내가 그녀에게 인사를 했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한 건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주점에서 한 번 만난 게 다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려 했다.

화폐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녀와 일을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아직 하지도 못하는 걸 벌써부터 희망고문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 보는 거야?’

그녀의 시선이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녀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차원 은행을 나올 때만 해도 그녀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런데 그녀가 어딘가를 보더니, 그대로 가만히 선 채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라탄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검둥이가 보였다.

뭘 그리 눈빛 교환을 하는지, 라탄을 바라보는 검둥이의 눈빛이 그윽하다.

“둘이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요. 처음 봅니다. 그냥, 이렇게 라미아를 볼 수 있는 게 신기해서요.”

“···?”

뭔가 어순이 이상했다.

라미아를 처음 봤다는 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보는 게 처음이라는 건지.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움직이죠.”

둘이 대화를 할 것도 아니고, 나도 아직 그녀에게 일이 없다.

여기서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을 것도 아니고, 후딱후딱 움직이는 게 낫다.

“가시죠.”

검둥이의 말에 몸을 돌려 만남의 광장 중심으로 향했다.

관리자가 알려준 방향대로 걸음을 옮겼다.

저승왕을 만나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느라 검둥이가 라탄을 향해 입 모양으로 “뱀탕해먹으면 맛있겠네.”라고 말하는 걸 보지 못했다.

라탄의 얼굴이 창백해져 마석 상점으로 도망치듯 돌아가는 것도.

*

우웅, 우우웅-

성인 남성 세 명은 합쳐 놓은 듯한 거대한 크기의 수정이 둥둥 떠 있었다.

그 앞으로 검날을 밑으로 향하게 잡고 있는 3m가 넘는 거대한 전사의 석상 두 개가 있었고.

그 가운데에 새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보였다.

“포탈 관리자네요.”

검둥이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 그의 정체를 말해줬다.

포탈 관리자라고 하길래 외계인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박한 이미지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수염만 좀 길고 새하얀 법복을 입었다 뿐이지, 포탈 관리자의 외모는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의 외형이었다.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가까이 다가가니 가만히 서 있던 포털 관리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이름을 알려줬다.

“은행장님이시군요. No. 72에게 들었습니다. 처음 이용에는 무료로 해드리라고 하더군요. 가시고 싶은 곳이 있으십니까?”

내 이름을 들은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이번에도 시스템 덕택에 혜택을 받는다니, 이렇게 되니 하도 받기만 해서 무안할 지경이었다.

“검둥이씨. 그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검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포탈 관리자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이곳에···?”

포탈 관리자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검둥이가 등을 보이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뭔가를 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검둥이를 보며 놀라던 포탈 관리자가 급히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놀람, 두려움, 공포 등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검둥이를 데리고 있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계속 그러고 있을 겁니까? 저희 보내주셔야죠.”

멍하니 있는 포탈 관리자에게 그가 서늘하게 웃으며 말하자, 포탈 관리자가 화들짝 놀라며 움직인다.

“포탈 위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가 수정이 있는 제단 위로 올라서며 손짓했다.

그를 따라 올라가니 포탈 관리자가 수정에 손을 대며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웅-

수정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 떨림은 점점 강해져, 터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붉은색으로 바뀌고 있어···.’

거기다 푸른색이었던 수정이 점차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찌나 불길한 색이던지, 보는 것만으로도 팔에 닭살이 돋았다.

그렇게 5분에서 1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저승왕에게로 향하는 포탈이 완성되었다.

포탈을 여는 것만으로도 힘이 다한 건지 포탈 관리자의 얼굴이 그새 창백해져 있었다.

“당신도 당신이지만, 당신이 모시는 분도 알만하군요. 포탈을 처음 이용하면서 그곳에 가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건지.”

포탈 관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검둥이에게 말을 걸었다.

포탈 관리자의 말에 검둥이는 “흐음”하고 볼을 긁적였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포탈 관리자의 하얀 턱수염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검은색 막이 생겨나 둘을 감쌌다.

포탈 관리자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검둥이가 수염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네가 포탈을 열어준 건 알겠는데, 내가 언제부터 네놈의 당신이 된 거지? 급수도 낮은 놈이 내게 당신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 그게···.”

“그리고 네까짓 게 뭔데 ‘그’를 평가하는 거야. ‘그’는 네가 감히 평가하지도, 바라보지도 못할 위치에 설 남자다. 아니, 지금도 네가 감히 말을 걸어서도 안 되지.”

“···.”

검둥이의 스산한 말에 포탈 관리자가 마른 침을 삼켰다.

어느새 그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하위 차원의 포탈 관리자면 그 수준에 맞게 굴어. 자기가 직책을 얻었다고 나대다가 객사한 놈을 내가 많이 봤거든? 나는 내 ‘주인이 될 그’의 첫 포탈 관리자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아. 자신과 관련된 놈이 죽으면 ‘그’가 얼마나 슬퍼하겠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그 말이 귀가 아닌 여기에 새겨져야 할 거야. 다음에도 똑같이 굴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거든.”

심장이 있는 부위를 콕 찌르며 하는 말에 포탈 관리자가 새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옵니까? 저희 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갑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가면을 바꿔쓰듯 미소를 지은 검둥이가, 포탈 관리자의 수염을 놓아줬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포탈 관리자가 힘겹게 대답한다.

그것에 만족한 얼굴로 검둥이가 포탈 관리자를 지나쳐 수정으로 향했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나눈 겁니까?”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가까이 다가오는 검둥이에게 바로 말을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포탈 관리자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쪽과 이쪽의 공간이 차단된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잘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뭔가 의심스럽다.

슬쩍 그의 뒤를 보니 포탈 관리자가 잠깐 사이에 폭삭 늙어있었다.

동공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고, 몸 전체가 잔떨림이 있었다.

땀은 어찌나 흘렸는지 입고 있는 법복의 목 주위가 목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잠깐이었다.

내가 수정으로 향하고, 그를 기다린 시간이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 잠깐 사이에 대화를 오래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가 살기를 뿜어내며 위협을 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검둥이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만 봤을 때 그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어서 들어가시죠.”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검둥이가 포탈을 향해 내 등을 떠밀었다.

물어본다고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위협한 건 없으니.

이내 그들에게서 신경을 끈 채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포탈의 느낌은 참 오묘했다.

던전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물속으로 들어간 것으면서도 뜨거운 불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잠깐 사이에 나를 감싼 온도가 높이 치솟다가 가라앉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

“···옮겨달라고 할까?”

한정우와 검둥이가 들어간 포탈을 바라보며 포탈 관리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하필이면 이곳에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막 귀속된 하위 차원이라면 그 빌어먹을 놈들을 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런 놈이 여기에 있는 거야?’

이제 막 시스템에 적응해 가는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존재보다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악의 존재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길래, 그런 놈을 부하로 둔 거야?”

그도 그지만, 그런 그를 부리는 은행장이라는 사람이 더 신기했다.

그 성깔 더러운 놈을 부하로 부리다니.

그럼 도대체 은행장이라는 작자는 성격이 얼마나 지랄맞은 걸까.

앞으로도 계속 그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시스템에게 하소연을 한다고 해서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은행장과 시스템의 사이가 각별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코인에 있어서는 거의 악마나 다름없는 시스템이, 거리와 급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포탈의 비용을 첫 번째만 이기는 하지만 전면 부담하겠다고 할 리가 없다.

“아, 막막하다 진짜.”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저앉았던 다리를 피고 일어나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포탈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불쑥.

완전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던 검둥이가 포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포탈 관리자를 향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더라고. 나에 대해서 다른 놈들에게 말하면 알지?”

“···.”

포탈 관리자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잘 생각해. 다른 놈들은 널 지켜주지 않다는 걸.”

검둥이가 사라지고, 포탈 관리자는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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