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1화 (41/113)

제41화

이 아저씨가 지금 뭐라는 거야.

황당하다는 느낌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농담은 아닌지 싶었지만,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말문이 막혔다.

나를 언제 봤다고 그런 말을 꺼내는 걸까.

대뜸 그런 말을 꺼낸다고 내가 아이고 좋습니다! 하고 말할 거라 생각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자신감을 가지게 된 건지 묻고 싶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고용을 하겠는가.

적어도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고용을 하던지 할 수 있다.

‘백예린이나 최동수와는 다르지.’

백예린이나 최동수는 무슨 일을 벌이든 내게 케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녹스보다 강하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나는 그들의 은인이었다.

몬스터들이 나돌아다니는 망해버린 세상에서 나는 그들이 안전하게 먹고 잘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 다르게 검둥이는 생판 처음 보는 성좌였다.

하다못해 나나 녹스보다 약하면 모를까.

‘저건 녹스와 동급이거나, 그보다 조금 못한 수준인 것 같은데···.’

느껴지는 것만 봤을 때는 녹스와는 다른 의미로 무척 위험했다.

가까이 있는데도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또 없는 것 같은데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조금만 방심해도 목에 칼이 들어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 직원이 되는 순간부터 내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명령을 할 수도 있었다.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그가 어째서 내 밑으로 들어오려는지 알아내고 싶다.

상상속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시스템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하다못해 카셀린은 악력으로 메시지 창을 부수지 않았던가.

그걸 생각해보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저를 받아주신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가 무척이나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제 밑으로 들어오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적어도 이유 정도는 알아야 받아줄지 말지를 정할 것 아닌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잠시 고민한다.

뭐라 대답할지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은행장님 밑에 들어가면 코인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걸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내가 이유를 말하라고 했지만 설마 그런 이유를 댈 줄은 몰랐다.

‘틀린 말은 아닌데···.’

나와 저승왕이 대화한 것만 봐도 내가 코인과 관련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은 코인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니, 그의 말이 이상한 점은 없지만,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코인을 벌기 위해서 내 밑으로 들어오고 싶다?

그것도 이상한 게 다이아 등급이면 성좌들중에서 보유 자금이 상위권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그 코인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한 일을 하고 있을 터.

그런 사람이 코인을 많이 벌겠다고 내 밑에 들어오겠다는 건 많이 이상했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코인을 벌고 싶어서라고요?”

“네. 아주 많이 벌고 싶습니다.”

“그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벌 방법은 많지 않습니까.”

“저는 안정적으로 코인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내게는 직원이 필요했고, 또 그와 같은 실력자가 내 직원이라면 그만큼 마음이 든든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쉽게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그가 누구인지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녹스야 게이트 키퍼이기도 했고,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차원 은행이 열린 지 이제 이주일밖에 지났는데··· 뭘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차원 은행이 오래되었거나, 엄청난 유명세를 자랑하고 있다면 모를까.

시스템이 준 무료 홍보권과 시스템과 계약한 게 다였다.

시스템과 계약한 건 분명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제 밑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코인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좀 곤란한데···.”

곤란하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다.

코인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코인을 많이 벌기 위해서 직원이 되고 싶다면서, 정작 적게 번다는 말에는 아무렇지 않아 한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죠. 상관없습니다.”

이 무슨 농담 따먹기도 아니고, 수상함은 배가 되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건데, 진짜 목적이 뭐가 있을까.

“검둥이님?”

“네.”

“저는 거짓말하는 분과는 같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까?”

내 말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줄곧 평온하던 그의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 검둥이님이 생각해도 검둥이님의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하시면서,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상관없다니. 이 무슨 말 장난입니까.”

“아아··· 그렇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말한다.

“그런데 그게 상관이 있습니까? 제가 기꺼이 직원이 되겠다는 건데.”

“···.”

저 당당함에 말문이 막힌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수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저를 부려주세요. 큰 힘이 되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듣고 있으니 화나네.

도대체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저러는 건지.

이렇게 되니 이제는 그가 하지 말라고 해도 그를 부려먹어야겠다.

진짜 힘들어 미치겠다고, 죽을 것 같다고 곡소리를 낼 때까지 부려 먹어야 성에 찰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바라시는 데, 원하시는 데로 해드리죠.”

“아, 감사합니다.”

그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런 그에게 마주 미소를 지었다.

감사는 무슨··· 곧 그 감사가 살려달라고 비는 게 될 텐데.

“그럼 계약을 하시죠. 제 밑에는 총 두 가지가 있는 당신은 은행원은 어울리지 않겠네요. 은행원보다는 경비원이 낫겠네요.”

시스템을 열어 경비원 고용을 눌렀다.

[‘검둥이’를 경비원으로 고용하시겠습니까?]

예의 그 메시지가 떠오른다.

나는 바로 ‘예’를 누르려고 하는데, 갑작스레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은행장에게 경호원이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차원 은행에 새로운 직업 ‘경호원’이 개방됩니다.]

[경호원을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은행원에게 붙여줄 수 있습니다.]

[경호원은 의뢰 대상의 안전을 자기 목숨보다 중요히 여깁니다.]

[경호원은 ‘절대’ 은행장에게 해를 입힐 수 없으며, 은행장의 명령을 부당하지 않은 이상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이건··· 개꿀인데.

안 그래도 반지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녹스가 나와 같이 밖에 나올 수 있다면 모를까.

저승왕에게 찾아가야 하는 지금, 반지만 믿고 움직이기에는 여러모로 불안함이 컸다.

그런데 여기서 녹스와 비슷한 힘을 가진 성좌가 붙어준다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지.

나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경호원 등록을 했다.

“어, 이건 경비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니까. 제 밑에서 그렇게 일하고 싶어 하시는데. 경비원으로 차원 은행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경호원으로서 저를 따라다니며 움직이는 게 낫지 않습니까?”

“음···.”

“그리고 무엇보다 경호원의 월급은 다른 직원보다 배는 많이 받습니다.”

“하겠습니다.”

그가 즉답을 하며 바로 수락했다.

적은 양이기는 해도, 다른 직원보다 많이 받는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큰 메리트였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디 그래 주세요.”

내가 자세를 풀고 있으니, 그가 제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뭐죠?”

“그거, 언제까지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

그가 손가락을 들어 내 왼손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왼손의 중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보였다.

그런데 이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음··· 아무래도 외관상 보기 좋지 않아서 말이죠. 위압감이 느껴지기는 한데··· 그게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거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 반지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반지가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애초에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고 있어 왼손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보기 흉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가 정말로 모르겠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반지를 가리켰던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 주위를 가리킨다.

그러면서 유리를 가리킨다.

마치 저 유리를 통해 내 모습이 어떤지 보라는 것 같았다.

그의 손짓에 따라 유리를 돌아본 나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뭐야 이거···.”

보라색 연기가 잔뜩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보라색 연기가 내 머리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색이 보라색이다 보니 성스럽다기보다는 기괴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으르렁거리듯 내뱉는 내 말에 검둥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신을 부른 거냐는 그의 눈빛을 무시하며 반지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반지가 빠르게 사과를 뱉어내며 보라색 연기를 빨아들였다.

내가 눈치도 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보라색 연기를 꺼내 내 정신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종보다는 좀 더 단단하고 냉정해지게 하는 것이지만, 나로서는 그게 기분이 나빴다.

사전에 얘기라도 했으면 고마워했겠지만, 그런 것도 없이 내 정신에 침투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

‘이것 때문에 저승왕을 상대로 그렇게 대담해질 수 있었던 건가.’

덕택을봤다고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기분이 더러운 건 더러운 거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을 조종한 건데 그 누가 기분이 안 나쁠까.

적어도 나는 싫다.

“다음부터 이런 짓을 하려면 상의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면서 보라색 연기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니, 가만히 바라보던 검둥이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거··· 데스나이트군요. 그것도 제법 상위에 속하는.”

“네.”

“밖에 있는 엘더 리치가 준 것입니까?”

“네.”

“오래 산 것 같기는 하던데··· 실력이 나쁘지 않군요.”

“계약자들중에서도 저 정도는 보지 못했는데.”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냐고 바라보니,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슬슬 나갈 준비하시죠.”

“어디 가십니까?”

“네. 저승왕에게··· 아, 그러고 보니 정확히 어디 인지 안 물어봤네요. 음. 아직 남아있으면 좋을 텐데.”

가겠다고 말만 했지, 어느 차원인지 듣지 못했다.

내가 가지 않고 있으면 또 찾아오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낭비하기는 싫다.

“어··· 그 저승왕이라면 방금 대화를 하신···?”

“네. 그분 맞습니다.”

“아.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잘 아니까요.”

“아,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다. 유리를 통해 차원 은행을 훑어봤지만, 저승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바로 움직이려는 내게 검둥이가 말을 이었다.

“근데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뭐죠?”

“저를 지켜주시겠습니까.”

“···.”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