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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0화 (40/113)
  • 제40화

    저승왕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이라는 사람이 그깟 땅쯤 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땅이란 게 그렇게 쉽게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뭘 할 줄 알고 땅을 준단 말인가.

    나를 받아줬다가 내부에서 적을 키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처럼 반란이 번번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땅을 원하는 거지?]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녀에게 땅을 요구한 이유.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것보다 그녀처럼 질문을 했다.

    “어째서 저를 부르신 겁니까?”

    [내가 먼저 질문한 것 같은데···.]

    “제 대답이 지금 제가 한 질문에 담겨 있습니다.”

    [음···.]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태연하게 그녀를 마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걸 잊지 않았다.

    그녀가 제 입술을 매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를 말입니까.”

    [그래. 코인을 관장하는 힘을 가진 존재는 처음이거든. 거기다 힘을 얻자마자 시스템과 계약을 하는 것도.]

    확실히 들어보니 왠지 나라도 그런 존재가 생기면 궁금해질 것 같다.

    이제 막 나타난 신인이 폭풍을 몰고 다니니 궁금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겠지.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아직 다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하기만 했다면 나중에라도 오면 되는 거였다.

    지금처럼 급하게 부하를 보내 나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게 부족한 인력을 낭비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반란이 일어나 그걸 처리하는 데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직원을 모아 그걸 빨리 끝낼 생각을 해야지.

    자기가 궁금하다고 일하는 직원을 타지에 보낸다는 게 이상하지.

    그렇다면 뭘까.

    그녀가 급하게 나를 찾아야 했던 이유가.

    ‘반란, 반란이라···.’

    어라, 뭔가 감히 잡힌다.

    그녀가 나를 급하게 부르는 이유가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반란이 일어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돈이 부족해진다는 거였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물자를 사들이고, 병력을 모집한다.

    망자들이 사는 저승에도 그게 통용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코인을 사용하는 걸 보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코인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계좌를 만들 필요도 없었고, 굳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겠지.

    ‘코인이 필요한 건가.’

    반란군을 상대하느라 코인이 지나치게 소모되어 빈곤한 상태라면 말이 되었다.

    차원 은행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테니, 코인을 꾸기 위해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음··· 코인을 빌려준다라, 아직 대출이 안 되어서 아쉽···.’

    다···?

    나는 뒷말을 있지 못했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가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1,000,000,000,000를 채우셨습니다.]

    [‘대출’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대출’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박인데?

    정말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게 떨어졌다.

    안 그래도 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적금으로 코인이 깨지면 그걸 채울 만한 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역시 대출만한 게 없었다.

    적금의 이자보다 대출의 이자가 비싼 건 사실이었으니까.

    「대출

    고객 등급에 따라 대출 가능 한도가 달라진다.

    -매일 이자 1%.

    -만기 2년.

    -한 달간 이자 미지급 시 강제 집행.」

    와. 이건 사채보다 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매일 이자 1%라니.

    이건 진짜···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빌려서는 안 된다.

    돈을 빌리는 이유가 뭔가.

    당연히 당장에 코인이 급해서 빌리는 거다.

    그래서 은행도 한달 단위로 끊지 이렇게 하루 단위로 이자를 받지 않는다.

    생각해 봐라.

    돈을 빌렸는데 알고 보니 수수료처럼 1%를 가져가고 준다.

    1,000코인이면 겨우 1원에 불가하지만, 금액이 계쏙 불어나면 어떨까.

    10,000코인이면, 또 십만, 백만, 억까지 불어난다면?

    내가 쓸어 담을 수 있는 코인이 엄청나진다.

    나야 좋지만, 빌리는 입장에서는 최악이나 다름없다.

    아니, 이걸 듣고 과연 코인을 빌릴 사람이 있을까?

    내 생각에는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정말로, 정말로 급하지 않은 이상 빌리지 않겠지.

    ‘아니야. 나는 너무 옛날만 생각하고 있어.’

    지구의 은행과 차원 은행은 다르다.

    지구야 은행도 많고, 법이 있지만.

    시스템에 속해 있는 차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법이 없고 오로지 코인이 많으면 장때이었다.

    오히려 1%의 이자를 때간다고 해도 코인을 빌릴 고객이 많을 수 있다

    모 아니면 도라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그럼, 뭐가 또 있어야 하나?]

    “음··· 제 생각과는 다르네요. 저는 저승왕께서 저를 찾으신 이유가 코인이 필요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면 어···.”

    [잠깐···!]

    그녀가 내 말을 중간에 끊었다.

    어딘가 급해 보이는 그녀의 반응에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뒤늦게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그녀가 황급히 진정하려 했지만.

    나는 그녀가 생각보다 코인이 더 급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그러시죠?”

    내가 모르는 척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처음의 여유가 사라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까 했던 얘기를 다시해봐.]

    “아까요? 제가 무슨 얘기를 했었죠?”

    [코인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잖아!]

    “빌려준다고는 안 했습니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그런 쪽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말했죠.”

    [그게, 그거지.]

    “네.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 있습니까?”

    [내가 코인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몰랐습니다.”

    [뭐?]

    “제가 저승왕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려주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 말에 그녀가 멍한 얼굴을 했다.

    나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필요해서 찾아온 것 같다고 했지, 돈을 빌려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은 그녀가 금방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자신을 착각하게 만들었단 것에 화가 났는지 나를 노려봤다.

    [그 말을 꺼낸 이유가 뭐지?]

    그녀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허튼 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코인이 급하신 것 같은데 제가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차원 은행에서요.”

    [정말인가?!]

    “네.”

    부정해서 무얼할까.

    대출이 열리고 그걸 실험해볼 실험체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럴 때 얻을 수 있는 걸 마음껏 얻어야지.

    “대신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

    “네. 제가 누군가에게 코인을 빌려주는 건 처음입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차원 은행에 대출이란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아직 시중에 보일 생각이 없거든요.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지나야 풀 생각인데··· 저승왕께서 너무 급해 보이시니 이번만 미리 하려는 겁니다. 제가 손해보는 건데 저도 작은 무언가라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은 거짓이고 반은 사실이다.

    우선 대출은 계좌가 있는 고객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능했다.

    그 부면에서는 약간 거짓을 보탰지만, 그 외에는 사실이었다.

    대출이 열렸다고 해서 당장 풀 생각은 없었다.

    지금 당장 적금만으로도 차원 은행이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

    적어도 직원을 한 명이라도 더 뽑고 나서 대출을 시작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기한은 한 달.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다.

    정 안 되면 최동수가 더 고생해야겠지.

    [음, 하긴···. 코인을 빌려준다는 건 성좌들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녀의 말을 통해 나는 성좌들끼리도 코인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마석으로 코인을 빌려줘야 하는데, 그건 너무 많은 손실이 있어 코인을 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차원 은행이 생겨났으니까.

    ‘사실 불안한 게 한 가지 있기는 한데···.’

    고객들이 계좌를 이용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불안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계좌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코인을 벌려고 하는 고객이 있을까 봐.

    성좌들 사이에서는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이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약아빠져 보이지는 않았다.

    ‘음··· 아닌가. 성좌라도 사기를 칠 수는 있겠네.’

    하다못해 사기의 성좌도 있을 정도니.

    그래도 내가 가장 걱정되는 건 지구인들이다.

    사채, 도박, 사기 등등···.

    전문가들이 많은 지구에서 그들이 계좌를 가지고 코인을 불리기 위해 움직일까 걱정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일어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두는 편이 나았다.

    “저는 대가로 큰 걸 바라지 않습니다.”

    [···.]

    “제가 해드리는 것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소소하죠.”

    [그래서 뭘 원하는 거지? 질질 끌지 말고 말해라.]

    “우선 첫 번째는 제가 아까 말했던 땅입니다.”

    [땅을? 어째서지?]

    “이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이기는 한데··· 제가 지점을 내려고 하거든요.”

    [···.]

    “그런데 지점을 내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은 내가 준 땅에다 네 상점을 짓겠다는 건가?]

    “상점은 아니고 은행인데··· 네. 그렇죠.”

    [음···.]

    “이건 오히려 저승왕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 저승에 차원 은행이 들어서면,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움직이지 않아도 바로바로 코인을 빌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차원 은행을 자주 방문하면 계좌의 등급도 올릴 수 있으니, 한번에 빌릴 수 있는 금액도 높아지죠.”

    [주지. 내가 특별히 땅을 엄선해서 주겠다.]

    그녀는 고민할 게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코인을 빌릴 수 있다는 게 그녀에게 크게 와닿은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땅을 받았는데 거기서 또 뭘 받을 거란 건가?]

    “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저는 코인을 빌려드리는데.”

    [···계속 얘기해라.]

    “그럼 두 번째로 마석을 좀 주시겠습니까?”

    [마석을?]

    “네. 아까 저분이 그러던데. 제가 찾아가기만 해도 마석 오천 개를 주신다고.”

    [그랬지··· 음··· 알겠다. 그것도 들어주지.]

    코인을 빌릴 수만 있다면 뭘 못할까.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세 번째로 직원을 뽑을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직원을?]

    “예. 아, 이건 제가 직접 찾아뵙고 얘기를 하죠. 어차피 차원 은행을 지으려면 제가 직접 찾아가야 하니까요. 나머지는 만나 뵙고 얘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알겠다. 준비하고 있지.]

    “네. 그때 뵙죠.”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니, 그녀를 보이고 있던 두루마리가 돌돌 말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말린 두루마리가 저승이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나와 그녀의 대화를 들어놓고 믿기지 않는지 멍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나가 보시겠습니까? 저는 다음 고객을 상대해야 해서요.”

    그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은행장실을 나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검둥이를 바라봤다.

    “···.”

    “···.”

    그와 눈이 마주치고 한동안 침묵이 오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슬쩍 시계를 내려다봤다.

    저승이와 그리고 저승왕과 대화를 나눈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한 고객당 10분으로 제한하고 있던 나로서는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그에게는 미안할 뿐이었다.

    적당히 끊었어야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해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친절하게 말을 걸었고.

    “저를··· 부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상한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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