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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9화 (39/113)

제39화

당황하는 그를 보며 습관처럼 시계를 만졌다.

은행원 업무를 볼 때는 표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웃어야 했고, 기분 나쁜 걸 티내지 않아야 한다.

만약에라도 고객이 민원이라도 넣으면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상대가 민원을 넣든 말든 상관 없었다.

애초에 민원을 넣을 수 없을뿐더러 내가 장인데 무슨 상관이랴.

“아시다시피 저는 차원 은행의 장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을 움직이기 위해서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

저승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곤란하다는 얼굴로 손끝으로 제 손등을 두드렸다.

“들어오시면 보셨으면 아시다시피, 현재 저희는 매우 바쁩니다. 이런 말 아십니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현재 저희가 딱 그런 상황이죠. 고객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지금이 저희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냐에 따라 저희가 얼마나 성장하는지도 달라지죠.”

「···.」

“당신들은 그런 상황에서 저를 부른 겁니다.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부르는 저를 따라오겠습니까? 겨우 마석 오천 개를 받기 위해서?”

「그래도 마석 오천 개면···.」

“네. 그렇겠죠. 마석 오천 개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의 얼굴이 살짝 밝아지는 게 보였다.

일순간 마석 오천 개가 뇌리에 떠오른다.

아깝기는 하지만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필요가 있었다.

“저한테는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오억을 준다는 것인데, 그것을 마다하니 저승이의 눈이 찢어지라 커졌다.

“겨우 그 정도 코인에 움직일 정도로 제가 코인이 부족하지는 않네요.”

사실이다.

비록 은행에 들어있고, 고객의 코인이 저금되어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게는 1조가 있다.

그 코인이 있는데 겨우 5억 가지고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니, 없다.

이미 간이 커질 대로 커진 뒤라 그 정도 금액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저를 움직이시려면 좀 더 제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음··· 이건 저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동정심에 호소하면 내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무르게 할 생각이 없다.

“네. 안 됩니다. 그럼 다음에 얘기해야겠네요.”

「자, 잠시만요! 이대로 나가라는 겁니까?」

“당장에 하실 수 있는 게 없다하지 않았습니까.”

「왕, 왕과 연락할 수단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진작에 말하시지.”

그런 줄도 모르고 바로 내쫓을 뻔했잖아.

“그런 게 있으시면 바로바로 얘기해주세요. 저는 순수해서 있는 그대로 믿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그래, 괜히 한 번 튕겨보지 말라고.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하거든.

정확하게는 내가 듣는 것만. 내가 말할 때는 당연히 돌려 말해야지.

그런 나를 저승이가 이상한 사람 바라보는 것도 잠시, 품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한지를 돌돌 말아 활짝 펼친 두루마리에 끼어 넣었다.

그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니, 한지를 품은 두루마리가 허공에 붕 떠오른다.

두루마리는 둥둥 떠다니다가 나와 저승이, 검둥이가 모두 담기는 위치에서 멈춘다.

그러더니 붓이 떠올라 한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의 왕과 연결 중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두루마리를 살펴봤다.

모습은 박물관에나 나올 법한 옛날 두루마리였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박물관에 있는 건 낡았다면, 저승이가 가지고 있던 두루마리는 새것처럼 깨끗하다는 게 다르다.

‘스마트폰과 같은 건가?’

점점 사람의 모습을 완성시키는 붓과 두루마리를 보며 시계를 만졌다.

왠지 아주 불편한 통신 기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디서나 통화를 할 수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준비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근데 통신기기라···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필요하겠네.’

은행의 규모가 커지면 멀리서도, 다른 곳에 있어도 나와 직원들이 연락할 수단이 필요하다.

그게 지금은 아니지만 생각할 필요는 있다.

[무슨 일이지? 네가 여기로 연락을 다하고 말이야.]

그때 피로에 젖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두루마리를 본 나는 살짝 당황했다.

분명 붓에서 나오는 색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할 때에도, 그림을 그릴 때도 검은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종 색이 어우러져 실제 사람을 만들어냈다.

영상 통화를 하는 것처럼 두루마리는 거대한 화면이 되어 있었다.

‘저건 대박이네···.’

만들어지는 속도가 느리기는 했지만, 저것만 보면 가지고 싶다.

목소리도 제대로 전해지고, 무엇보다 멋있지 않은가.

‘대가로 저것도 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승이가 두루마리에 그려진 여인에게 머리를 숙였다.

「저승왕을 뵙습니다.」

[어, 그래. 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게···.」

[내가 시킨 일은 다 끝냈고?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처음 보는 장소인데···.]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타박을 하던 그녀의 고개가 내부를 살피듯 돌아가더니 내게 고정되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피며 그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검은색의 긴 생머리, 보라색 배경에 붉은 별이 가득한 눈동자, 저승이처럼 새하얀 피부, 그와 대조되는 붉은 입술.

가히 절세미인이라고 할만하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아름답다라는 생각보다 무섭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느 진상짓을 할 수 있는 고객이라 무서운 게 아니다.

그녀를 보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며 식은땀이 흐른다.

책상 밑으로 감춰진 다리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 다리에 모터를 단 줄 알겠지.

[···.]

저승이를 향해 한창 타박하던 그녀가 입을 다문 채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동물원 원숭이를 바라보듯 나를 살펴보는 그녀의 눈빛이 슬슬 부담스러워지고 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탐스러운 영혼의 소유자는 누구?]

그녀가 저승이를 돌아보며 묻는다.

탐스러운 영혼의 소유자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탐스럽다고 표현한 걸 보면 좋은 거 같은데, 영혼이라고 말하는 거 소름돋았다.

마치 내가 어서 죽어 수집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은가.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저승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분이 저승왕께서 그토록 찾으시던 분입니다.」

[···?]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을 하는 그의 말에 그녀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저승이가 “은행장”이라고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나와 저승이를 번갈아 돌아보더니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 이번에 새로 태어난 ‘#$%#’말하는 거지?]

잠깐만, 뭐라고?

지금 뭔가 외계어같은 게 들린 것 같은데.

「네.」

당황하는 나와는 다르게 저승이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더욱 숙였다.

[오··· 어쩐지. 하긴 그러니 저런 영혼을 보유할 수가 있는 거지. 황금색 영혼이라니, 저런 영혼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데. 크··· 정말로 탐스럽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눈에 탐욕이 스쳐지나간다.

[같이 있는 거 보니까,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거겠지?]

「그게···.」

[거기서 뭐하고 있어. 어서 데리고 와. 가까이서 보면 얼마나 더 화려할지 기대되네.]

「아니···.」

저승이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반응을 보고 일이 틀어졌다는 걸 알았을 법도 한데, 그녀는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나를 데리고 오라며 그를 닦달하고 있었다.

이러다 저승사자 하나 잡을 것 같아 황급히 그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저승왕님?”

[음, 나?]

네, 님이요.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어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녀가 말해보라며 턱을 까딱였다.

“우선 저승왕께서 하신 제의는 거절했습니다.”

[···.]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내 말을 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제 귀를 후비기까지 했다.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다. 제대로 들으셨어요. 저는 저승왕을 찾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다.

직접 마주한 게 아님에도 순식간에 가라앉은 그녀의 분위기에 닭살이 돋으며 오싹해졌다.

착각인 건지 모르겠는데 밝았던 은행장실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기가 죽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시계를 만지며 평정심을 찾았다.

빠르게 진정하는 내 모습에 그녀가 묘한 눈빛을 보였다.

[어째서지?]

살기가 내 목을 옥죄이는 것 같았다.

말을 잘못하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생겨났다.

손끝으로 시계의 유리를 긁었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이건 업무라고 나 자신을 세뇌했다.

그 어떤 직원이 고객을 상대로 두려움을 얻겠는가.

적어도 나는 그래서 안 된다.

내가 고객을 상대로 두려워하면 그 밑에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은 돈이 많은 고객이야. 다만 조금 무섭게 생겼을 뿐이지.’

겁을 먹지 마라.

겁먹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뜯어낼 생각을 해라.

“반대로 묻겠습니다. 만약 제가 저승왕을 부르려 하는데, 그 대가가 오억 코인입니다. 그럼 오시겠습니까?”

[단순히 초청이라면 그렇겠지.]

그녀가 그게 뭐 대수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상대는 처음 보는 상대입니다. 평생 안면을 튼 적도 없는 상대가 오라고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도 부르는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달랑 코인만 주며 오라고 하면 오실 거라는 겁니까?”

[어떤 미친놈이 그따위 짓을 해? 그런 놈이 있으면 내 당장에 모가지를 부러뜨···!]

화를 내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진다.

내가 말한 그 ‘상대’가 그녀를 의미하고 있다는 걸 말하면서 느낀 것이다.

[흠, 흐흠.]

그녀가 급히 제 목을 가다듬는다.

그녀의 새하얗고 기다란 손이 제 목을 쓸어내렸다.

‘저거··· 피, 아니야?’

자신의 목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에는 붉은색 액체가 묻어 있었다.

걸죽하게 흘러내리는 그 액체에 내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듣고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군. 미안하다. 내가 워낙 성격이 급하고 일이 많아 그쪽으로 신경을 쓰지 못했어.]

“아닙니다. 그 정도 실수야 저도 자주하니까요.”

아니, 안 한다.

중요한 일을 그렇게 대충 처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말했다가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으니.

[그래. 그래서 내게 뭘 원하지?]

“음···.”

뭐든 들어주겠다는 그녀의 반응을 보니 어지간해서는 다 들어줄 것 같은데.

마석을 더 달라고 할까? 아니면 코인을?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우선 첫 번째로 땅을 좀 주실 수 있습니까?”

[땅을?]

뜻밖의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땅을 요구하는지 모르는 그녀로서는, 한번도 자신의 차원에 오지 않은 내가 땅을 요구한 게 의아했겠지.

‘땅이 있어야 차원 은행을 건설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이 그 땅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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