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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5화 (35/113)

제35화

날이 밝았다.

세상이 개변하고 처음으로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개운함을 느꼈다.

수면실, 샤워실 등을 구매한 건 정말이지 신의 한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선택이었다.

전에는 맨바닥에 자서 등이고 어깨며 온몸의 근육들이 아팠다.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프고, 제대로 씻기는커녕 녹스의 마법에 의존해야 했다.

그래서 몸이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답답한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다.

비누로, 샴푸로 머리를 감고 싶다.

이번에 그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수면실에 있는 침대는 상상이상으로 포근하고 푹신했다.

내가 전에 썼던 것보다 더 좋은 재질의 침대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몸의 한군데가 배기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푹 자서 개운했다.

거기다 샤워실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끝도 없이 나오는 뜨거운 물에 몸을 씻는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소소한 일들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일이 끝나고 욕조에서 씻어야지.’

은행장실에 붙어 있는 화장실의 구조는 들어가자마자 변기와 세면대가 있었고, 그 뒤로 가림막이 있었다.

가림막 뒤로 사람 두명은 들어갈 수 있는 욕조가 있는 샤워실로 이뤄져 있었다.

족히 1평은 넘어 보일 정도로 화장실은 컸다.

수면실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호화스럽다.

은행장이라는 대우를 해주는 건지, 5성급 호텔에 버금가는 수면실과 화장실이었다.

세상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내가 은행장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정도로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긴 그러니 삼백억 코인이 넘는 거겠지만.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와 베이컨을 먹는 게 좋겠네요.”

창구 뒤에 있는 휴게실에는 세면대와 라면이나 국 같은 것을 끓일 수 있는 인덕션도 함께 있었다.

프라이팬이나 재료들은 내게 있으니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해 먹을 수 있었다.

“자, 드세요.”

녹스도 자기도 같이 먹겠다며 소파에 앉았다.

어차피 백예린을 생각해 넉넉하게 빵과 베이컨을 구웠다.

그리고 3분 스프를 20인분 넘게 끓였다.

넷이서 먹기에는 무척이나 많은 양이었지만, 주점에서 보았던 백예린을 떠올리면 오히려 부족할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3분 스프나 죽 같은 것들을 꺼내 인덕션 옆에 쌓아놓았다.

양이 부족하면 알아서 끓여먹게 하기 위해서.

“먹으면서 들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빵을 부욱 찢어 걸쭉한 스프에 찍었다.

“오늘부터 저희는 고객들을 두 분류로 나눌 겁니다. 석탄부터 금 등급의 고객들이 ‘1’이고 다이아부터 VIP가 ‘2’입니다. 녹스 씨는 백예린씨와 함께 이렇게 두 가지로 고객들을 분류하셔야 합니다. 이건 어제 제가 간단하게 얘기했으니 이해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 시선에 녹스가 베이컨 여러 장을 한입에 밀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잘해줄 거다.

지금까지 극소수, 불멸의 전사나 카셀린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가 일어난 경우가 없었다.

그것도 그에게 탓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너무 강하고 가진 영향력이 막강했다.

시스템조차 그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던 것만 봐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그도 지금보다 강해질 필요가 있지.’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그 둘과 같은 고객들이 나타나지 않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수 천개나 되는 차원들에서 성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강한 성좌들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주된 전력인 그가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시스템에게는 함부로 빚을 지우면 안 돼.’

시스템에게 보호를 청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지는 알 수 있었다.

지구만 해도 그랬다. 시스템에게 코인을 빌려 갚지 못해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그러니 정말로, 정말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시스템은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보루로 남겨야 한다.

‘상점 중에 스킬 상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일 끝나고 둘러보고 와야겠어.’

그건 나중에 일이기도 하니, 지금 고민하기보다는 그때가서 같이 고민해 보는 게 낫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본인이 나가서 살펴보는 거지만.

‘관리자하고 화폐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물어봐야지.’

시스템에 의해 막힌 것이니, 시스템 관리자인 그에게 물어보면 해결 방법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지금의 일에 충실하면 된다.

“동수 씨는 딱 금 등급까지. 그 밑으로만 상대하시고 그 이상은 절대 상대하시면 안 됩니다.”

“어째서죠?”

막 스프를 싹싹, 비운 그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고객은 자신이 특별하기를 바라니까요.”

그게 성좌에게도 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통할 거라고 믿는다.

상점 주인들이나, 지금껏 만나온 성좌들은 대부분 은행 일을 하면서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보였으니까.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백예린 씨는 녹스 씨가 하는 걸 보고 배우시면 됩니다.”

“네!”

뭐, 그녀는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녹스가 알아서 잘하리라.

거기다 그녀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으니, 어떻게 그녀를 도와줄지 궁금하다.

“슬슬 시간이 다 되었네요. 적당히 치우고 자리로 돌아가죠. 동수 씨,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네!”

바짝 긴장을 했는지 최동수가 몸을 떨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겁이 많으면서 어떻게 그런 성과를 보인 건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이게 직업의 힘인가?’

문득 그가 일꾼이라는 직업을 얻은 게 떠올랐다.

일에 대한 능동력을 5%나 올려주는 능력을 가진 직업.

어쩌면 그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 들었다.

개운하게 양치를 하고, 은행장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폭신한 감촉이 참 마음에 든다.

녹스에게 말을 해뒀으니 적당히 분류를 해서 보내주리라.

등급의 분류 방법은 간단했다.

시스템으로 그 고객이 어떤 등급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은행원 최동수’의 등급은 ‘구리’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검색하면 상대의 계좌의 등급을 알 수 있었다.

녹스와 백예린에게 등급을 검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니, 어렵지 않게 고객을 나눌 수 있으리라.

[차원 은행의 영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차원 은행의 입구를 개방합니다.]

은행의 입구가 열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성좌들이 우수수 몰려 들었다.

-어? 뭐야. 전보다 더 커졌잖아!

-저기에 못 보던 방이 생겼어!

-대기석이 무려 16개야!

고객들은 하루만에 바뀐 은행의 모습에 신기하다는 듯이 감탄을 터뜨렸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 밖이 보이는 구조라. 너무 좋은데?’

내가 있는 은행장실은 은행 내부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리는 너무도 투명해, 그 밖의 광경이 선명히 들려왔다.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유리의 불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실 수 있습니다.]

유리의 기능은 다양했다.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고, 밖에서 안을 볼 때에 유리의 색을 다양하게 바꿀 수도 있었다.

거기다 소리까지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이거면 아주 편하게 한 고객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여긴 뭐야? 은행장실? 오, 그 녀석이 있는 곳인가!

-나부터 갈래!

-아니, 나부터다! 모두 비켜!

은행장실을 본 고객들이 서로 먼저 들어오겠다며 달려온다.

그 앞을 녹스가 가로 막았다.

녹스를 본 적이 있는 고객들인지, 그에게 함부로 비키라고 소리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겁을 먹은 듯 우물쭈물거렸다.

그의 뒤에서 백예린은 녹스가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직접 나서서 하지 않는 이유는 녹스가 방해된다고 처음에는 보고 배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말해주십시오.”

뭐야, 존대를 쓸 수 있었던 거야?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것과는 다르게 정중한 그의 말투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나와 일을 할 때는 존재는커녕 언제나 상대를 무시하던 그였는데.

도대체 내가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어, 음··· 나는 자비를 구하는 별이다.

-폭발은 예술이라 여기는 예술가다.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대기가 무섭게 녹스는 내게 권한을 받은 시스템으로 그들의 이름을 검색했다.

“은등급과 금등급인가··· 당신들은 여기로 오면 안 됩니다. 저쪽으로 가라. 그곳에 가면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조금 부족하기는 했다.

존대와 반존대를 섞는 걸 보면, 그가 제대로 경비 역할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지금 고객을 차별해서 받겠다는 건가?

-허, 어이없군.

성좌들은 녹스의 말에 화를 터뜨리면서도 이렇다 할 반항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뭔 말을 하려고만 하면 녹스가 그들을 노려봤기 때문이다.

-칫. 가라면 우리가 못 갈줄 알아?

-절대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 같은데···.

고객들이 줄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그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고객들이 녹스에 의해 가로막혔다.

‘오늘은 내가 할 게 없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다이아 등급 이상의 고객은 없었다.

대부분이 금에서 구리를 오갔다.

이대로라면 오늘 하루는 내가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은행장실을 나와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위해 먹을 거라도 준비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요깃거리를 만들어 그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확인도 할 겸 최동수에게 향했다.

“···이번에 적금이란 기능이 생겼는데, 한번 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적금? 그게 뭐지?

“지금 가지고 있는 코인 중 일정 금액을 달마다 저축하는 겁니다.”

-계좌에 집어넣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내가 뭐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해.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그런데 저축한 금액이 불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음?

최동수가 두 손을 비비며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백 코인을 저금한다고 칩시다. 이것만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자가 붙으면 어떨까요. 3년 동안 매달 백 코인을 그러니까, 총 삼천육백 코인을 적금을 넣었다고 칩시다. 현재 고객님의 등급이 은 등급이시니, 이자율은 0.5%시네요. 그러면 총 28코인을 추가로 얻으실 수 있습니다.”

-···.

“코인의 양이 적어 그다지 의미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금액이 늘어나면 어떨까요. 은 등급은 한 달에 최대 오십만 코인씩 넣으실 수 있습니다. 매달 오십만 코인을 3년 동안 넣었다 치면 음··· 천 팔백만 코인이군요. 여기에 0.5% 이자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요?”

최동수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바라본다.

늑대인간의 모습을 한 고객은 그의 말에 빠져들며 마른침을 삼켰다.

-어, 어떻게 되지?

최동수가 엄지와 검지의 간격을 만들어 보이더니, 이게 천 팔백만코인이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손가락의 간격을 한 뼘이나 넓히며 말했다.

“이야. 무려 십삼만 코인을 더 얻으실 수 있으시네요. 정확히 하면 십삼만팔천칠백오십 코인이고요. 그저 돈을 한달에 오십만 코인씩 넣으시는 것만으로도 십만 코인이 넘는 금액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완전 대박이죠!”

그는 말발이 무척 화려했다.

늑대인간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던 고객들마저 그의 말에 빠져들 정도였다.

십만 코인은 그리 많은 고객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동수는 처음에 백 코인이라는 무척 적은 코인을 예로 들었다가 한 번에 코인의 양을 불려 그 금액이 엄청나다고 부각시켰다.

그로 인해 고객들은 그의 말에 현혹되어 적금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는 아직 쐐기를 박을 정도의 스킬을 가지지 못했는지 그 이상 나가지 못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아니지, 거기서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안 되지.

나는 최동수의 어깨를 붙잡아 그의 입을 닫게 했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최동수의 책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동수 씨. 왜 그건 말하지 않았어?.”

“예?”

“그거 있잖아. 등급이 오를수록 이율도 오른다는 거.”

그에게 작게 소곤거리는 척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눈치가 나쁘지 않은 건지, 최동수가 바로 내 말에 장단을 맞췄다.

“그건 비밀이지 않습니까. 괜히 저분들이 등급을 올리겠다고 용을 쓰다가 지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다 고객이 줄 수도 있다고요.”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정직해야 해. 사실 그대로 말해줘야지. 등급이 낮다고 차별하지 말고 모두에게 기회를 줘야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리에게 남는 게 없는데···.”

최동수가 입맛을 다신다.

나는 한순간에 돌변한 그의 연기에 속으로 감탄했다.

어찌나 감칠나게 연기를 하는지 옆에서 듣고 있던 고객들이 황급히 말을 걸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에게 알 권리를 줘라! 등급이 낮다고 차별하는 거냐!

-우리도 들을 권리가 있다고! 우리도 고객이야!

그들의 아우성에 나는 씨익, 웃었다.

이 정도면 됐다 생각해 최동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수고해.”

“예! 들어가십시오!”

“너무 숨기려고 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최동수가 벌떡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이며 끝까지 연기를 하는 모습에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작에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다 차려진 밥상에 재를 뿌릴 뻔했다.

내 앞에서 녹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와 최동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

한숨을 내쉬더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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