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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4화 (34/113)
  • 제34화

    내부가 넓어졌다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은행의 크기가 상당히 커졌다.

    확장 전이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라면, 지금은 10평 정도 될 정도로 배는 거대해졌다.

    “어? 은행장님, 저기 문이 생겼어요!”

    그때 백예린이 한순간에 변한 은행 내부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창구 뒤에 있는 새로 생겨난 작은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창구 앞에서 보면 그저 벽처럼 보였다.

    그곳은 작은 휴식실이었다.

    과자들이 있었고, 차와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주전자와 찻잔이 있었다.

    그 앞으로 책상과 앉아서 쉴 수 있는 큼지막한 소파 두 개가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그녀의 말대로 문 네 개가 있었다.

    [수면실‘남’]

    [수면실‘여’]

    [화장실]

    [샤워실]

    그 앞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면실은 일부로 두 개로 구매했다.

    녹스와 최동수, 그리고 나는 남자였지만 백예린은 여자였다.

    아무리 같은 직원이라지만, 그녀와 같은 방을 쓸 수는 없었다.

    코인이 턱없이 부족하면 모를까, 지금처럼 충분할 때에 굳이 그녀를 우리와 같은 방을 쓰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들을 각자 방으로 안내했다.

    “백예린씨는 앞으로 이 방을 쓰시면 됩니다. 최동수씨와 녹스씨는 여기를 쓰시면 되고요.”

    “음?”

    방을 구경하러 들어간 백예린과 최동수와는 다르게 녹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는 마치 이 방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하는 군.”

    “네. 저는 그 방을 안 쓸 겁니다.”

    “어째서지?”

    “제 방은 따로 있거든요.”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내 개인 사무실 겸 수면실이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지만, 최동수가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은행은 앞으로도 점점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객의 등급에 맞춰서 상담하는 방식도 나뉘어야 한다.

    최동수는 금 등급까지, 미스릴부터는 내가 개인 사무실에서 상담할 생각이었다.

    성좌도 그럴지 모르지만, 사람에게는 특별취급이 꽤 중요했다.

    자신이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그 자리를 유지하게끔 노력하게 만들고, 자신이 밑에 있다는 것에 분노하며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고객들이 늘어나는데 그 전부를 내가 상대할 수도 없었다.

    전이야 은행에 고객이 없고 직원도 내가 상대했지만, 본래 은행장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라의 고위관리직이나, 대기업 간부들이나 겨우 면담할 수 있는 게 은행장이었다.

    그것도 유명한 은행이라는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시스템에 단 하나뿐인 나는 그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았다.

    금까지는 최동수가 상대해도 된다.

    “직권남용인가?”

    “직권남용이라는 말도 아는 겁니까?”

    “뭐?”

    “아, 아닙니다. 잘못 말했습니다.”

    “쯧.”

    내가 급히 고개를 저으니, 그가 나를 노려보며 혀를 찼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네. 저는 앞으로 미스릴 등급 이상의 고객들만 상대할 겁니다. 그 밑으로는 동수씨가 상대해야죠.”

    “음···.”

    “아, 그리고 저기 예린씨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뭐?”

    “이분이 그러던데. 예린씨에게도 재능이 있다고 하더군요.”

    내가 반지를 가리키며 말하니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방금 막 방을 둘러보고 나온 백예린을 돌아봤다.

    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얼굴이 옅게 상기되어 있었다.

    “음···.”

    “뭐, 뭐죠?”

    “죽이는 게 아니니 가만히 있어.”

    자신의 몸을 더듬는 그의 손길에 그녀가 당황하며 그 손을 뿌리치려 했다가, 녹스의 살벌한 기세에 꼬리를 말았다.

    “나쁘지 않네. 나쁘지 않아. 가르치는 맛이 있겠어.”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린씨는 앞으로 이분에게 교육을 받으시면 됩니다. 이분이 선배니까요. 그리고 예린씨의 상관이기도 하네요.”

    “네···.”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아무래도 자신의 몸을 마구 더듬은 사내의 밑에서 일하는 게 아무래도 꺼림칙하기는 할 거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이분은 다른 의미로 고자시니까요.”

    언데드로 지내오면서 성적 기능이 퇴화되었을 거고, 그리고 인간의 몸을 가졌기는 하지만 그거 하나 조절하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한 건데 아무래도 백예린은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한 것 같다.

    “아··· 그렇군요.”

    묘하게 불쌍하다는 눈으로 녹스를 바라보는 그녀에, 오해를 풀어줄까도 했지만 이걸 풀어줄려고 하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오히려 설명하려고 하면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마음이 더 편해질 테니 굳이 설명할 이유도 없기도 하고.

    저기, 멀뚱히 서 있는 본인도 가만히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른 곳들도 둘러보시죠. 앞으로 여기서 씻으시면 됩니다. 화장실은 여기고요.”

    “네!”

    “아, 필요한 게 있으시면 지금 말해주세요. 생필품 같은 건 바로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 말을 꺼내기 무섭게 최동수가 손을 번쩍 든다.

    칫솔부터, 샴푸까지.

    클린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그런 게 있는지 충혈된 눈으로 달려들었다.

    그가 원하는 걸 전부 꺼내주었다.

    그럼에도 아공간에는 아직 많은 물품들이 있었고, 또 은행을 나가면 바로 만남의 광장이니 아낄 필요도 없었다.

    ‘그에게도 만남의 광장을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까, 나중에 직원을 더 얻으면 그때 알려주던가 해야겠다.’

    앞으로 나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 밑에 직원에게 자유가 있을 수 있을 리가.

    그들에게 편히 쉬라고 말하며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은행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커진 은행에는 동전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휴게실에서 살짝 벗어난 입구와 창구의 중앙, 왼쪽 벽에 문이 하나 있었다.

    아니, 저걸 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째서 아까 발견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통짜 유리벽과 문이 있었다.

    안에 있는 물체가 흐릿하게나마 보이게 되어 있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전 내가 사용하던 과장실과 비슷한 외형의 사무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창구로 보이는 책상과 의자 두 개.

    책이나 여러 물품들을 전시하거나 놓을 수 있는 선반과 사물함.

    그리고 그 뒤로 문이 두 개 있었는데 각자 화장실과 샤워실이 합쳐져 있는 방 하나와, 잠을 잘 수 있는 개인 수면실이 존재했다.

    이천만코인으로는 절대 살 수가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그래서 문득 할인 행사를 하지 않았을 때의 가격이 궁금해졌다.

    “혹시 여기 본래 가격을 알 수 있습니까?”

    [···.]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답이 아닌, 뭔가 말을 잃은 듯한 표식이 나 있었다.

    이걸 말해야 하는 건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비밀인 건지 의문이 들었을 때쯤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할인 비적용 시 35,000,000,000입니다.]

    사, 삼백억?!

    미친, 시설이 좋다고 하지만, 저건 다른 것과는 현격히 차이 나는 엄청난 금액이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단위에서 바로 백억단위로 뛴 건 너무하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스템과 협력 관계가 되어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들과 계약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저만한 코인을 지출해야 했을 테니까.

    조에 가까운 코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백억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절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진정하자, 진정해.’

    애써 십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만 살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저런 금액들을 많이 보게 될 텐데 그때마다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지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큰 금액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다가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에 심장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이제는 적금도 본격적으로 사용해야 할 텐데, 분명 지금보다 많은 돈이 오갈 게 분명해.”

    천천히 꺼내려고 했는데, 불어난 코인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나가는 만큼 들어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객들은 계속 불어날 것이고, 거기다 화폐까지 만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적금에 숨겨진 기능이 있나 살펴봤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오히려 멸망 전 은행의 적금이 더 복잡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원 은행의 적금은 단순했다.

    [석탄 등급]

    -매월 최대 50,000코인까지 적금 가능.

    -3년 약정.

    -이자:0.1%

    이자는 거의 없다고 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최대 등급이 VIP마저 이자율이 3%였다.

    멸망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멸망 전에는 기간과 여러 부면에 따라 이자율이 바뀌는데, 여기는 오로지 등급에 따라 바뀐다.

    거기다 멸망 전이 최소 1%에서 시작하는 걸 생각하면, 이자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적금이 이러니, 반대로 대출이 열리면 어떻게 될지 크게 기대되었다.

    대출은 이자율이 막 4, 50%는 하는 게 아닐까 하고.

    희희낙락하며 최동수에게 적금에 대해 알려주려고 할 때, 시스템이 떠올랐다.

    [보유 자금이 천억 코인을 넘어섰습니다.]

    [‘은행원 최동수’에게 적금의 대한 교육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음?

    내가 직접 말하는 거하고 뭐가 다른 건가.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주입한다는 게 눈에 걸렸다.

    마치 뇌에 직접 때려박는다는 느낌이 아닌가.

    그래도 이렇게 시스템이 말하는 걸 보면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수락을 눌렀다.

    끄아아아아아악!

    은행장실 너머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가니, 휴게실에서 최동수가 제 머리와 심장을 붙잡은 채 땅을 뒹굴고 있었다.

    그 옆에서 녹스와 백예린이 당황하고 있었다.

    녹스는 갑작스럽게 고통스러워하는 최동수에 당황하며 치료 마법을 퍼부었지만 도통 듣지를 않아 인상을 썼다.

    백예린은 자신과 잘만 얘기하던 최동수가 갑자기 쓰러져 비명을 지르니, 그대로 놀라 굳어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은행장님! 큰일 났어요! 저기, 동수 오빠가!”

    내게 달려오며 그녀가 울먹거린다.

    그새 친해지기라도 한 건지, 오빠를 입에 담는 그녀를 뒤로 물리며 최동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나도 모르겠다. 말만 잘하던 놈이 갑자기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더군.”

    “음···.”

    녹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땅을 뒹구는 최동수를 살폈다.

    [‘적금’ 지식 주입 중··· 남은 시간 4:21]

    어째서 그가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주입하라고 허락을 했기에 그가 지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기가 보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뇌에 직접적으로 때려 박으니 고통스러워하는 거고.

    “괜찮습니다. 5분만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올 겁니다.”

    “이것도 네가 한 건가?”

    “네··· 하지만,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정말로 몰랐다.

    처음 한 건데 알 수 있을 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할 거였으면 하지도 않았다.

    조금은 귀찮더라도 직접 알려줬지.

    “너··· 은근히 잔인하군.”

    그런데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녹스가 내게서 살짝 떨어졌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고개를 젓기까지 했다.

    그에게 뭐라 변명할 것도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고 최동수를 지켜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도 작아지는지, 그의 발작도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숨만 헐떡이며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은행장님.”

    “네. 저 여기 있습니다.”

    그가 잔뜩 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췄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묘하게 살기가 띈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으세요···.”

    “예···?”

    그게 무슨 말인지 묻기도 전에 최동수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이다.

    “어··· 기절했네요.”

    그를 조심히 내려놓으며 뒤를 돌아보니, 녹스와 백예린이 가라앉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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